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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습관

작성자덕유|작성시간26.06.21|조회수31 목록 댓글 0

                                 메모 습관

                                                                     이 강 흠

 

나는 어려서부터 글에 대한 욕심이 참 많았다 고향 마

을에는 육십 여 호가 살고 있었지만, 초등학교 졸업 후 중

학교를 간 사람은 나와 형님 두 분밖에 없었다. 시골 살림

은 농사 일손이 부족하여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자동으로

농사꾼이 되는 시절이었다. 또한 곡식을 팔기 전엔 현찰

이 귀하고 먹고살기도 힘든 시절이라 자식 공부시킨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나 역시도 수업료

를 내지 못해 수업 중 쫓겨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부모님께 돈을 달라고 하기도 어려워 교내 온실 당번은

수업료 면제가 된다는 말을 듣고 신청을 하였다. 그도 자

격기준이 있었는데 온실 담당 선생님의 친척인 학우가 당

번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나는 매우 분하고 절박하

였다. 내 생각으론 그 학우는 자격 미달이었기 때문이었

다 나는 학급회의 시 건의사항에 “선생님들이 백(back)을

행사하여서는 아니 된다." 라고 의견을 개진하였고 회의가

끝이 나자 선생님은 나를 교무실로 끌고 가셨다. 매를 맞

을 각오를 하고 따라 갔는데 나의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오해일 거라고 말씀을 하셨다. 얼마 후 선생님의 말씀처럼

나는 온실 당번이 되었다. 교사에 대한 불신을 해결하려고

담임선생님이 많은 노력을 하셨을 거란 생각에 지금도 중

학교 때 담임선생님 생각을 많이 한다.

중학교 때의 고생으로 고등학교는 가지 않으려 하였다.

아버지 또한 보낼 마음이 없으셨던 것 같다. 그러나 큰형

님은 아버지와 나를 설득하여 원서마감 날 늦게 학교에 갔

다. 담임선생님은 퇴근하고 안 계셨다. 그러나 온실 당번

을 하며 선생님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더구나 다행인 것은

중·고 교무실이 같이 있어 접수하여 주셨다 1963년 괴산

고등학교 입학시험 수험번호 끝번은 내가 되었다. 나는 살

아가면서 참 행운아라는 생각을 많이 하며 살았다. 자연히

나의 어려운 사정이 알려져서 고등학교 때는 도서관 일을

보며 학비 면제를 받으며 다니게 되었다.

책과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당시 교장 선생님은

나중에 도 교육감까지 하셨던 분으로 도서관에 많은 책을

사 주셨고 수시로 방문 하시어 공부하는 학생들을 칭찬하

시고, 또한 나를 무척 예뻐하셨다 나는 졸업 후에도 충주

실업고 계실 때도 찾아뵈었고, 교육감이 되신 뒤에도 수시

로 찾아뵙고 인사드렸지만, 퇴임 후 대전 아들 집으로 가

신 뒤 뵙지 못하였다. 돌아가신지 오래 되었지만, 지금도

나의 멘토 자리는 항상 지키고 계신다.

많은 책을 분류하고 접하다 보니 직업의 달인이 되어 밤

에 불을 켜지 않아도 책장에서 내가 보고 싶은 책을 찾아

낼 정도로 책에 정이 들어 있었다. 그 후 평화시장 헌책방

점원으로도 있었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지병이 생기며 오

래 있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책에 대한 욕

심은 끝이 없어 버스, 기차, 대합실, 병원, 거리에서나 어

디에든 책, 잡지, 신문, 심지어 전단지까지 눈에 보이는 대

로 수집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좋은 글귀는 메모지에

기록하여 40여 년 모으고 모은 메모지가 수십 킬로그램은

되었다. 이사를 열 번은 넘게 하였으니 메모 보따리도 4년

에 한 번씩 나와 함께 이사를 했다.

청주에서 요양원 원장으로 살면 좋겠는데 뜻하지 않게

시골 살림을 하게 되었다 전에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왜 저렇게 살까 했는데, TV에서 '세상에 이런

일'을 보면서 나름대로 사정들이 있는 것을 알면서 고생스

럽게 사는 사람들에게도 정이 가는 마음이 생겼다 내가

그런 사연의 주인공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간 살아온 게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앞에 큰

소각시설이 있어 그동안 소중하게 모았던 메모지를 불사르

고 말았다. 아쉽지만 정리할 용기도 없고 머리만 아파 모

든 걸 잊고 싶었다.

아침저녁 시간이 날 때마다 부모님 산소에 성묘를 간다.

그리고 어린 시절 이웃에 같이 살았던 분들의 산소도 다

돌보며 살고 있다.

 

매일 산소에 가다시피 하니 내가 이승과 저승을 오가

는 사람인가 하는 착각까지 든다.

그렇게 사는 것이 요즘은 마음이 편하다

 

부모님 산소에 가서 그간 살아온 사연을 말씀드리면서

부모님께 대한 사랑의 기억들을 세월에 묻어 버릴 순 없다

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의 알뜰한 사랑을 글로 남기고

가야겠다. 40년 세월 모아왔던 메모지에 써놓았던 글들은

없어졌지만, 한번 생성된 메모들은 생명력이 있는 듯 기억

에 남아있다. 메모하던 습관은 부모님을 생각나게 하는 마

음을 남기고 갔다 다시 하나하나씩 추억을 되새기며 내가

살아있는 날까지 부모님에 대한 은혜를 글로 보답 하고 싶

다.

      2011/ 3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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