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자

작성자덕유|작성시간26.06.08|조회수32 목록 댓글 0

     몸은 아파도 생기 돋는 하루

 

                                                                                                                        정영자

 

예전에 어린 손주들이 왔다가 갑자기 열이라도 나면 자다가도 찾았던 병원이다나도 일 다닐 때 몸이 아프면 종종 들려 야간 진료받던 병원을 오랜만에 가보는 날이다일요일 날 밤에 어린애도 아니고 갑자기 코가 막히고 열이 나면서 재채기와 콧물로 마스크를 쓰고 밤잠을 설쳤다예전 같으면 아무것도 아니게 지나가는 바람이었는데 집에 환자가 있으니 두려운 감기다아침 일찍 일어나서 집안일을 해놓고 용암동에 있는 그 병원을 가려고 나섰다버스를 타려다가 오랜만에 운동 삼아 걸어 보려고 수곡동 샛길로 걸었다복지관 거리와 맞먹는 거리 같은 생각에 수양교 다리만 건너면 될 줄 알았다다리를 건너 큰길 앞에 당도해서 살펴보니 병원 길이 아니었다신호에서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다한 라인 더 올라가라 하는데 괜시리 열이 확 오르고 등줄기에 땀이 나서 촉촉한 기분이 들었다그나마 바깥 공기를 마시니 속이 탁트이는 것 같았다.

 

병원 앞에 도착하니 모두가 문을 닫고 공사 차량이 줄을 섰다혹시나 오랜만에 알아보지도 않고 와서 병원이 없어진 것은 아닌가 싶었다걱정 반으로 살펴보니 다행히 그대로 문이 열려서 감사한 마음으로 접수창구 줄에 섰다오늘 역시 사람이 많았지만 안에서는 아기 울음소리가 요란했다점심시간이 가까 운데도 계속 접수는 이어진다다행히 나는 점심시간 전에 진료가 끝났다약국에서 탄 약부터 한 봉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이번에는 약도 먹었겠다 무심천 변으로 걸어 보려고 걷는데 무언가가 발에 툭 차였다깜짝 놀라서 보니 예쁜 3색 볼펜이었다사방을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었다지금은 누구도 이런 물건은 쳐다도 안 보는 세월 같다볼펜 겉 파란 색깔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여서 무심코 집어 손바닥에 그려보았다3색 모두 다 정상으로 그려졌다누군가가 나에게 글쓰기 교훈으로 주는 선물 같은 생각을 해보았다하지만 잃어버린 사람은 집에 가서 어디에 빠졌을까하고 찾겠지라는 생각을 했다볼펜을 손에 꼭 쥐고 걸으며 많은 생각에 빠져 걷다 보니 무심천 운동길까지 발걸음은 옮겨왔다.

 

앞을 바라보는 순간 양쪽 뚝 전체가 녹색 지대로 푸르름이 생기를 돋게 한다나는 양옆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에 발걸음이 늦추어지고 눈길은 무심천 한가운데 갈대밭 속으로 옮겨갔다해묵은 갈대밭 속에서도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따뜻한 4월의 햇살을 머리에 이고 힘찬 푸른 잎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며 손을 뻗는다살기 위해서 참고 견디며 황무지 모래 자갈 속에서도 살아 나오는구나하며 바로 이것이 자연의 본능이라고 생각해 보았다그때 바로 영자야 정신 차리자 너 오늘 참 잘 나왔다오랜만에 고마운 발 덕에 감사함을 느꼈다걷다가 길옆 운동기구에 앉아서 높고 파란 하늘을 보며 크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답답한 속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기분이다내게도 이런 한유한 날이 있구나 하며운동하시는 분들과 함께 여유도 가져보는 날이었다오늘 하루는 감기몸살에도 불구하고 운동 삼아 병원까지 걸어갔다그 길에서 마음에 쌓여 있던 찌꺼기들을 무심히 흐르는 물에 실려 떠내려 보내는 기분이 들었다집에 돌아와 보니 어느덧 두 시 반이 훌쩍 넘었다모처럼 바깥바람을 쐬고 들어오는 순간많은 생각들이 한결 가벼워진다늘 비어 있던 컴퓨터 앞 의자에 앉으니 할 말도 많아지고눈빛마저 맑아지는 듯하다오늘의 이 작은 걸음이 나를 다시 살아나게 한다이번 주는 가벼운 마음으로조금 더 밝은 하루들을 이어가고 싶다.

           만남

                                                                                                              정영자


사람의 만남이란 자연의 이치와 같다는 것을 또 배운다글과 책을 통해서 낮 선 사람들도 만나는 즐거움을 얻는다지난 2월 아는 문우님으로부터 내가 11책 낸 것을 몇 권만 부탁해서 가지고 찾아간 곳이 조촐한 찻집이었다그곳에 들어서니 여러 작가님들과 이영희 소설가님이 쓰셨다는 메이저아르카나 13번이란 수필 내용과 시를 낭독하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그러나 나는 처음 와서 듣는 알 수 없는 이야기가 아리송하기만 했다그날 그분이 상석에 앉아서 말씀을 너무 잘하셔서 교수님인 줄로 알았었다그러나 한달 후 만남에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분이 앉아있던 상석에 나를 앉으라고 했다나는 깜짝 놀라서 내가 왜 이 자리에 안 느냐며 쑥스러워하니오늘은 내가 주인공이라고 했다어리둥절한 정신을 가다듬고 의자에 앉아서 앞을 보는 순간 벽에 내가 쓴 내 팔자 내 인생이란 프랭카드가 걸려있었다그때 서야 이 자리가 주인공 자리란 말이 실감 나는 색다른 경험에 감사한 마음으로 진솔한 답변을 듣고 싶어 하는 자리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처음 만난 분들 앞에 마음조이고 앉아서 이영희 작가님의 그 날을 떠 올리며 묻는 질문에 답을 했다그분처럼 우아하고 쌔련 됨과는 동떨어진 정반대지만 내 글이란 자신감에 마음은 놓였다두 번째 만남의 자리에서 내가 쓴 글이야기를 많은분들 앞에서 나눈다는 것은 꿈도 못 꾸어본 일이었다나는 묻는 말에 알아듣기 쉽게 답하는 자리여서 소개해주신 문우님께 실망을 드리지나 않을까그것이 조심스러웠다그러나 내 글을 많은분들이 진지하게 듣고 질문해주셔서 오후 4시가 넘도록 대화의 공감대가 이루어지는 아쉬움을 남겼다.


늦은 나이에 11책을 내고 직지 회관에서 상받던 날 기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날이었다내 글이 이렇게 여러분들 앞에까지 나와서 전설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뿌듯함은 지난날에 서러움과 아픔을 보상받는 마음이었다존암은 모르지만 어떤 남자작가분 말씀이 솔직히 처음 나를 보았을 때 저런 노인 글이 뭐라고 생각했다며책을 한 문장씩 나누어 읽어가면서 이야기를 들으 니 미안함을 느꼈다고 말씀 해주셨다그리고 대단하시다는 칭찬도 아끼지 않아서 글이란 진정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솔함에 가슴이 뭉클했다겨우 눈 뜨다만 글로 나를 이만큼 가르쳐서 책을 내기까지 지도해 주신 교수님은 식사 한 끼도 거절하신 대쪽같은 성품에 많은 것을 뉘우치며 나를 되짚어 보았다다시 새 학기를 맞이해서 수업에 들어가니 왠지 어색하지만 써간 글을 읽었다하지만 책을 내고 나서는 글쓰기가 더 두려워서 요즈음은 우왕좌왕 무기력한 시간만 보낸다나의 이 병을 어떻게 이겨내야할지 고민하면서 또 다른 글 세상을 탐험해 본다언젠가는 정신차리고 이해하면 깊이있는 배려와 기품을 나눌수 있는 문인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을 안고 또다시 글로 사람 만나는 새로운 배움의 희망을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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