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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묘비명

작성자덕유|작성시간26.06.21|조회수11 목록 댓글 0

+ 꽃의 묘비명 - 어떤 임종을 위하여

내 이승을 떠나는 날

별이여 너는 더욱 빛나거라

울음소리는 이미 귀에 들리지 않고

내가 지상에서 조용히 사라질 때

태양이여 너는 어김없이

나의 창문을 다시 찾아오너라

내가 앉았다 간 자리에

찬란한 꽃들 그대로 피고

빈 의자 하나 없는 만원인 땅 위에

바람이여 너는 여전히 정답게

구름을 움직이고 나뭇가지를 흔들어 주어라

삶의 애증은 이미 부질없는 누더기

썩은 육신에 깃들일 나비 한 마리 날지 않거니

내가 흘린 눈물 한 방울 남김 없는 땅 위에

너 찬란한 일월이여 더욱더 오래고 빛나거라

이미 고백은 늦어 버린 때

내 무덤은 하나의 삶의 마침표 길고 긴 어둠이어라

용서받기에도 이미 늦어 버린 때

내 무덤 위엔 꽃 한 송이 새 한 마리 두지 말라.

(문병란·시인, 1935-)

[출처] 묘비명 시 모음|작성자 푸른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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