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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용/ 삼국지 이야기 1-1 후한(後漢) 영제(靈帝)

작성자덕유|작성시간26.06.11|조회수23 목록 댓글 0

 

1. 184(광화 7~중평 원년)-황건적(黃巾賊)의 란()

1-1 후한(後漢) 영제(靈帝)

 

()나라 효령황제 유굉(漢 孝靈皇帝 劉宏)은 중국 후한의 제12대 황제로, 장제(章帝)의 고손자이다. 할아버지는 해독정후(解瀆亭侯) 유숙(劉淑), 아버지도 대를 이어 해독정후 유장(劉長)이며, 어머니는 후한 환제의 5촌 조카인 동태후(童太后)이다. 재위 중의 잇따른 재해와 소규모 반란, 그리고 황건적(黃巾賊)의 난() 등으로 그의 사후, 군웅할거(群雄割據) 시대가 열리게 되고, 이는 삼국시대(三國時代)로 이어진다.

 

영제는 13세의 나이로 제위에 올랐다. 환제(桓帝) 때부터 환관(宦官)들이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두무(竇武)진번(眞番) 등이 환관들을 배척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그 계획은 들통나, 환관들은 역습하여, 환제 시대의 외척들과 거사에 합류했던 진번과 이응(李膺) 같은 사대부들을 몰아내고, 조절(曹節), 후람(侯覽), 왕보(王甫) 같은 환관들이 권력을 잡았다. 그 후로도 청류파(清流派)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환관들과 내응하는 사람이 환관들을 탁류(濁流)라고 부르며 저항했지만, 당고의 옥이라고 불리는 사건에 의해서 진압되었다.

 

이 기간에 강족(羌族)과 선비족(鮮卑族) 같은 이민족들의 침입이 일어나고, 천재지변(天災地變)이 해마다 발생하며, 각 지방에서는 반란이 많이 일어났다. 이때 장환(張奐), 단경(段熲), 황보규(皇甫規) 같은 사람들이 이런 반란을 진압하는 데 분주했지만, 영제 자신은 궁전 내에서 상인(商人)의 흉내를 내거나 술과 여자들에 빠져 조정에 관심을 나타내지 않아, 정치의 실권은 이윽고 환관 장양(張讓)과 조충(曹忠) 등의, 십상시(十常侍)라고 불리는 환관들에게 넘어가게 된다. 역사에서 영제도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인 군주 혼군(昏君)이라 불렀다.

 

후한서(後漢書)에서 나오는 이야기로, 영제와 환관의 관계이다. 영제와 환관의 관계는 유비(劉備)와 제갈량(諸葛亮)보다 더 사이가 좋았다. 영제가 환관들과 대신들에게 말을 한마디 남겼다:

"장상시는 나의 부친(父親)이고, 조상시는 나의 모친(母親)이다." 장상시는 장양(張讓)이고, 조상시는 조충(趙忠)이다. 그들은 모두 당시의 환관 중 우두머리이다. 그렇지만 영제도 안면을 바꿀 때가 있었다.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기 전날, 조정에서는 밀고를 받았다. 황건적인 장각(張角)은 궁궐 내의 환관인 중상시(中常侍) 봉서(封諝)와 서봉(徐奉)과 결탁하였다는 것이다. 영제는 이를 알고 난 후, 환관의 최고위층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항상 당인(黨人)들이 불궤(不軌)하니 모조리 금고(禁錮)나 죽여야 한다고 하더니, 지금 당인들은 더욱 나라에 쓸모가 있는데, 너희는 오히려 장각과 내통하다니 참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자 모두 고개를 조아리며 말한다:

"그것은 왕보, 후람이 한 짓입니다." 이것은 원래 환관 집단을 숙청해서 정리해야 할 일이다. 그러자 낭중 장균(張鈞),

황건적의 난은 근원이 십상시 때문이니, 십상시를 참해야 마땅하다.”라고 주청하자, 영제는 먼저 장균의 상소 글을 장양에게 보여준다. 장양 등은 모두 관을 벗고, 맨발로 머리를 숙이며,

스스로 낙양의 감옥에 들어가겠으며, 가산을 모조리 내어 군비로 쓰겠다.”라고 애걸한다. 그러자 영제는 모두 신발을 신고 모자를 쓰게 하고 예전처럼 대해주었다. 그리고 돌연 장균에게 크게 화를 낸다.

"이자는 정말 미치광이로구나. 십상시(十常侍) 중에 좋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단 말인가?" 결국 장균은 감옥에서 죽는다

 

환관에게 그러했고 조정 대신들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황건적의 난의 발발을 전후하여, 특히 그 후에는 비록 일찌감치 텅텅 비어버린 조정이지만 여전히 충간을 계속하는 인사가 몇몇 있었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들의 운명은 서로 달랐다.

사도 진탐(陳耽), 간의대부 유도(劉陶)가 직언하다가 하옥되어 죽었다. 시중 향익(向栩), 장균과 같은 환관에 대하여 간언한 사람들도 하옥되어 죽었다. 그러나, 영제는 관용대도(寬容大度)하고 종선여류(從善如流)하는 일면도 있었다. 영제는 부섭과 개훈(蓋勛)에 대하여 그러했다. 부섭은 평소에 환관을 미워했고 일찍이 황건적 난의 근원으로 환관을 지목한 바 있다.

환관 중에서 간사한 자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화란(禍亂)은 갈수록 심해지고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부섭이 환관들에게 무고(無故)를 당하자, 영제는 부섭의 말을 인정하고 죄를 더하지 않았다. 그러나 작위를 봉하지 않았고 더 좋은 자리인 안정도위로 삼았다. 또 영제가 개훈을 불러 묻는다.

"천하가 왜 이렇게 반란이 많은가?" 개훈이 대답한다.

"행신(幸臣=총애받는 신하)의 자제들이 교란하게 시켜서입니다" 당시 환관으로 상군교위로 있던 건석(蹇碩)이 자리에 있었다. 황제가 건석을 돌아보며 묻자, 건석을 두려워하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이때부터 그는 개훈을 미워하게 된다. 황제가 다시 개훈에게 묻는다:

"나는 이미 군대를 평락관에 펼쳐두었다. 보관해 두었던 재물을 많이 내놓아서 선비들을 나오게 하면 어떻겠는가?" 개훈이 대답한다:

"신이 듣기로 선왕은 덕을 밝혔고 병사를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 도적은 멀리 있는데 가까이 군대를 펼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서는 우리의 용감함을 그들이 알게 할 수는 없고, 그저 무력을 과시하는 것뿐입니다." 영제가 말하기를

"좋다. 그대를 늦게 만난 것이 한스럽다. 여러 신하는 이런 옳은 말을 하지 않았다."

 

처음에 장균이 환관이 나라를 망친다고 얘기했을 때는 영제가 그를 죽였다. 개훈은 환관뿐 아니라 황제 자신까지 함께 몰아서 질책하고 면박을 주었지만, 영제는 그를 칭찬하였다. 둘을 비교해 보면, 확실히 이 황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게 만든다. 안정성과 명확성도 없다. 이를 혼군(昏君)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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