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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용 삼국지 이야기/ 1-6 풍도천수(風道天书)

작성자덕유|작성시간26.06.23|조회수20 목록 댓글 0

1-6 풍도천수(風道天书)

 

신선(神仙)으로부터 풍도천수(风遁天书)를 받아 엄청난 힘을 얻게 된 장각(張角)은 황제(黃帝)와 노자(老子)의 사상에 심취하여 도교(道敎)의 경전인 태평청령서(太平淸領書) 등을 공부하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스스로 대현량사(大賢良師)“라 칭하고 자신의 가르침을 태평도(太平道)라 이름 붙였다.

원래 장각은 과거 시험에 떨어진 수재로 약초를 캐며 살아가고 있다가 남화노선(南華老仙=장자=莊子) 이라는 사람을 만나서 태평 요술서(太平 妖術書)라는 것을 받고 도사가 되었다. 세상이 혼란해지자 주술(呪術)이나 부적(符籍), 영수(靈水) 등으로 병을 고치는 요법(療法)으로 민심을 모아 수만 명의 신도들을 바탕으로 조직화하여 184년 후한 왕조 타도를 기치로 거병함으로써 이름하여 황건적(黃巾賊)의 난()이 발발한다.

 

장각은 기주 거록군 출생으로 천공장군(天公將軍)으로 장보(張寶)는 지공장군(地公將軍)으로 장량(張寶)은 인공장군(人公將軍)이라는 두 동생과 함께 농민들을 규합하여 이끈 농민군을 황건적(黃巾賊)이라 불렀는데 이는 머리에 노란 두건을 걸쳤기 때문이다. 신도들과 백성들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였으니 그 노래는,

 

한나라 말 틈을 타서 몰래 발동하여,

태평도인 이라 칭하여 불리었다네.

한말승간절발(漢末乘間竊發) 호칭태평도인(號稱太平道人)

어찌 유학을 배운 것이 나를 그르쳤겠나?

구연하게 머리에 누런 두건을 둘렀다네.

개위유관오아(豈爲儒冠誤我) 거연수과황건(居肰首裹黃巾)

푸른 하늘이건만 이미 죽어 있으니

마땅히 누른 하늘이 서리라.

창천이사(蒼天已死) 황천당립(黃天當立)

때는 바로 갑자년,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세재갑자(歲在甲子) 천하대길(天下大吉)

 

위의 말은 백성들이 푸른 하늘에 해당하는 한나라가 망하고 노란 하늘에 해당하는 새 세상이 올 것이라고 여기게 했다.

 

황건적은 거대하게 자라난 집단이라 순식간에 두 달 만에 한()나라에 크게 영향을 끼칠 정도로 세력을 넓힌 장각은 대현량사(大賢良師)이자 천공장군(天公將軍)이라 자칭하였으나, 정부군에 의해 동생 장량인 행림장은 연주 등에서 패하고 동생 장보도 광녕군으로 도망 오자 장각은 크게 분노했다. 또 대방(大方) 마원의(馬元義)에게 낙양의 환관인 중상시(中常侍) 봉서(封諝)와 서봉(徐奉)에게 장각의 거사에 맞춰 낙양에서 호응하도록 했다. 그러나 184년 초에 장각의 제자 당주(唐周)가 조정에 이 사실을 알리자, 마원의는 관군에게 붙잡혀 처형당했다.

 

전국 각지에서 황건적들이 봉기하자 당황한 조정은 하진(何進)을 대장군으로 임명하고 주준(朱儁), 노식(盧植), 황보숭(皇甫嵩) 등에게 토벌하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황건적이 우세했으나, 황보숭이 조조(曹操)와 함께 장사(長社)에서 파재(波才)가 이끄는 수만 명의 황건적을 무찌른 후 관군에게 밀리게 되었다.

 

한편, 장각 자신은 북중랑장(北中郞將)으로 전투를 벌였으나 노식에게 연달아 패하고 하북의 광종(廣宗)에서 관군에게 포위당했다. 그런데 노식이 조정에서 황건적 토벌을 감찰 나온 좌풍(左豊)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 벼슬에서 쫓겨난 덕에 위기를 넘겼다. 조정에서는 다시 동탁(董卓)을 노식의 후임으로 임명했으나, 동탁은 별다른 전과를 올리지 못하여 황보숭이 장각과 맞서게 되었다.

 

장각이 18410월에 황보숭은 장보가 이끄는 황건적에게 대승을 거두었는데, 그때 장각은 이미 병으로 죽어 없었다. 결국 관군과 영웅들이 활약에 패하여 1차 진압되었다.

황보숭은 장각의 시체가 든 관을 부수고 부관참시(剖棺斬屍)하여 머리를 잘라 낙양으로 보냈다.

 

이후 황건적은 급속히 무너져 관군에게 진압당했으나, 각지에 남아 있던 잔당들은 수년 동안 저항을 계속하였다. 또 한 황실의 위상이 무너진 데다가 황건적 진압을 구실로 거병했던 제후들이 황건적의 뒤를 이어 각자 봉기하여 군웅할거(群雄割據) 상태가 되었다가 후에 위촉오(魏蜀吳) 세 개의 세력이 최후까지 남아 중국의 삼국시대(三國時代)가 도래하는 계기가 되었다.

 

종교(宗敎)를 바탕으로 하여 국가 타도를 목표로 반란을 일으킨 것은 중국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이후 중국의 왕조들은 신흥 종교에 경계심을 품게 되었다. 중국은 19세기 말까지도 여러 종교 반란이 일어났기 때문에,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은 이를 경계하고 있고, 그리하여 1990년대 신도 수를 1억 명까지 확장했다고 주장하던 파룬궁도(볍류노=法轮图) 중국 정부의 대 탄압으로 중국 내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 태평도(太平道)

동한(후한) 중기에 우길(于吉)이 창시하고 후한 말기에 장각이 널리 퍼뜨린 종교. 도교의 한 일파. 우길 등이 연구한 음양재이(陰陽災異) 사상과 당시 민간에 있던 무술(巫術), 그리고 도교를 혼합하여 만든 종교

천지 만물은 모두 원기를 받으며, 음양이 서로 교감하고 오행이 배합하여 만물이 이루어지기에 사람은 오행의 이치를 따라야 하며 그런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는 자는 벌을 받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태평한 기운이 뻗어나가면 큰 덕을 지닌 군자가 세상에 나타나 평화의 시대를 이룩한다는 메시아 사상도 담겨 있다. 유교의 천명사상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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