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만나자고 했다.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다음에 만나자며 거절했다. 여느 때와 달리 한 번 더 애원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며칠 뒤 그녀로부터 거절이 반사되었다. 더이상 약속할 수 없는 곳으로 그녀가 영영 가버렸다. 뒤늦게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그곳엔 메마른 기계음만이 열심히 수신 거절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통화할 수 없으니 다음에 다시 걸어 주십시오.’ 우리에게 다음은 없었다.
허겁지겁 달려간 곳에 그녀가 벗어 놓은 육체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귀가 제일 늦게 닫힌다는 말이 생각나 미안하다는 말과 가지 말라는 말을 반복해 불어넣었다. 이미 결정을 끝낸 듯 그녀의 눈과 입은 어금니를 깨문 채 굳게 닫혀 있었다. 단호하고도 완벽한 거절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부풀어 오르는데, 슬픔을 대신할 수 있는 말이 세상에 없었다. 후회되는 일들은 왜 모든 것이 소용없어지는 순간이 되어야만 선명해지는 걸까. 잘못한 일들로 죄인이 되고, 자진해 감옥 속으로 수감 되었다. 그 후 낯선 통증이 찾아왔다. ‘벼락성 두통’, 충격으로 인한 것이라고 했다. 통증은 눈물, 슬픔과 반응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시작되었다. 한 번 시작된 통증은 정신을 잃어야만 끝이 났다. 이별의 슬픔보다 고통이 두려워 감정을 절제하며 조문객을 맞았다.
급작스럽게 생을 마친 그녀의 장례식에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그들은 흰 국화로 조문을 하고, 차려진 밥상에 둘러앉아 고인과 얽힌 사연을 풀어 놓으며 밥을 먹었다. 슬퍼도 밥은 넘어갔다. 부고함에 담기는 하얀 봉투에 유독 고된 삶의 손길들이 보였다. 옥수수를 팔던 노점상 할머니, 굽은 허리로 폐지를 줍던 할아버지, 헌 옷가게 아주머니. 그녀가 평소 살피던 가난하고 허름한 그들의 눈물에는 슬픔보다 서러움이 더 많아 보였다. 그들은 조문을 끝내고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자꾸 뒷걸음질을 쳤다. 사람을 좋아하는 그녀는 나흘 동안 찾아온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녀의 기다림과 외로움은 그렇게 채워졌다.
나는 ‘운명’이라고 위로하는 사람의 손을 잡으며 내 탓을 벗어나려 애썼고, 병든 몸은 거추장스러운 겉옷 같아서 늘 벗고 싶어진다는, 몸이 아픈 사람의 위로에 기대어 죽음을 안식 쪽에 밀어놓았다. 조금 덜 아팠고 역류했던 감정들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파킨슨병에 휩싸여 손발이 흔들리고, 몸에 든 병의 습기로 힘들어하던 그녀 모습이 떠올라 슬픔도 덜어졌다. 영정 사진 속 그녀도 삶의 불편한 무게들을 내려놓은 듯 가볍고 편안해 보였다.
강하고 솔직한 그녀의 성향은 나의 예민함과 자주 부딪혔다. 모난 돌이 부딪혀 깨어진다고, 내 안의 예민함은 그녀의 강하고 직선적인 말들을 적당히 받아넘기지 못했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감정으로 서로의 마음을 베었고, 상처보다 오래 남는 말의 흔적을 남겼다. 밀어낸 만큼 금을 긋고, 물리적 거리보다 더 멀게 정서적 거리를 두며 살았다. 그녀가 떠나기 며칠 전에도 가족 모임을 위한 의논을 하다, 의견 차이로 부딪혔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그녀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노발대발하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시 전화를 해보았지만 받지 않았다. ‘내가 잘못했고, 지혜롭지 못해 미안해요’로 시작하는 긴 문장의 사과 문자를 보냈다. 답은 없었지만 가라앉은 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그녀와 늘 다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주말이면 함께 들판에 나가 나물을 뜯고, 이 산 저 산 둘레길을 걸으며 운동을 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차를 마셨다. 성향은 달라도 서로를 아끼는 마음은 유별났다. 좋은 곳, 맛있는 걸 먹을 때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도 그녀였다. 받는 것 보다 챙겨주는 것이 편한 자매였다. 힘들고 약한 사람들을 거두는 건 유전인 듯싶게 닮았다. 나서지 않아도 될 어려운 사람을 돕다 사건에 휩싸이고, 오지랖 소리를 들었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정 많고 손이 크다’라는 말을 듣고 살았던 만큼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그녀의 흔적들이 몸살을 앓게 한다.
입관하기 전 평소 좋아했던 물건과 옷을 챙겨 오라고 했다. 멋쟁이 소리를 듣던 그녀였지만 제대로 된 옷 한 벌이 없었다. 대부분 중고 옷가게에서 산 옷들이거나, 라벨이 없는 것이 더 많았다. 언젠가 운동하고 돌아오는 길에 옷가게에 들러 마음먹고 좋은 옷 한 벌을 사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옷가게에 가서 현금으로 바꾸었다고 했다. 그 값이면 다른 옷 몇 벌을 더 살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 후로 다시 옷을 선물하지 않았다. 남에게는 후하면서도 자신에게 인색했던 그녀. 비타민C 한 알, 천마 한 봉지, 원피스 한 벌, 70년 동안의 삶에서 들고 갈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이 너무도 소박해 눈물이 났다.
‘언니, 다음 주에 산에 가자.’라고 보내놓은 문자 앞에 붙은 숫자 1이 사라지지 않는다. 너무 늦게 보낸 약속문자는 열어보지도 못한 채 잠겨 버렸다. 되돌릴 수 없는 일은 아픔이나 상처까지도 그리움이 되게 한다. 다시는 갖지 못할 그녀와의 일상에 다 열어 보이지 못한 마음이 ‘다음’이라는 빈 껍질을 쓴 채 둥둥 떠다닌다.
(오서진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