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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읽는 시간

초상화 읽기4: 주인공이 없는 이상한 초상화-<궁정의 시녀들>

작성자울림|작성시간12.10.11|조회수590 목록 댓글 0

주인공이 없는 이상한 초상화

  …벨라스케스의 〈궁정의 시녀들〉

 

 

어둑어둑한 방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죽 늘어서 있어요.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첫눈에 잘 와 닿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목은 〈궁정의 시

녀들〉입니다. 제목으로 봐서 궁정 어딘가의 공간일 것입니다. 과연

어디일까요?

그림 왼쪽에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커다란 캔버스가 놓여 있고, 그

앞에 붓과 팔레트를 든 화가가 서 있어요. 이 작품을 그린 화가 벨라

스케스지요. 그는 스페인 왕실의 궁정화가였어요. 궁정화가가 뭐 하

는 사람이냐고요? 옛날에는 사진기가 없었기 때문에 그림이 많이 필

요했어요. 그래서 나라에서 솜씨 좋은 화가를 뽑아 궁정에서 필요한

그림을 전문적으로 그리게 했지요. 이들을 일컬어 궁정화가라고 한

답니다.

궁정화가의 가장 큰 역할은 초상화를 그리는 거였어요. 특히 왕의

초상화는 굉장히 중요했지요. 왕을 쉽게 볼 수 없는 백성들에게 초상

화로 얼굴을 알릴 수 있었을뿐더러, 외교를 위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

니는 대사들도 왕의 초상화를 가지고 다녔어요. 대사들은 왕의 임명

을 받아 이웃 나라에 온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섬기는 왕의 초상화를

보여 줄 필요가 있었지요. 왕의 초상을 실제보다 더 젊고 위엄 있게

그리려고 애썼던 것도 이런 까닭이죠. 실제와 똑같이 그려서 늙고 무

기력하게 보인다면 나라의 체면도 서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나라를 깔

보고 집어삼키려는 엉뚱한 생각을 품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왕실의 초상화는 결혼 중매에도 요긴하게 쓰였어요. 유럽의 각 나

라는 왕실의 안위를 위해 이웃 나라와 혼인을 맺어 동맹 관계를 튼튼

히 하곤 했지요. 이때 신부가 될 공주의 초상화를 신랑이 될 왕자에

게 보내 왕실끼리 혼인 협상을 벌였던 것이지요. 혼인이 성사되어 훗

날 자녀가 태어나도 마찬가지였어요. 새로 태어난 자손들의 초상화

를 그려 보내 서로 얼굴을 익히도록 했지요. 초상화가 이렇듯 중요한

기능을 하다 보니 실력 있는 궁정화가를 따로 둘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림 속 공간은 궁정화가로 일했던 벨라스케스의 방이에요. 화면

뒤쪽의 어둠 속에는 여러 점의 그림이 흐릿하게 걸려 있어요. 지금

공주 일행이 벨라스케스의 화실에 구경 와 있어요. 그림 한가운데 예

쁘장하게 치장한 작은 소녀가 마르가리타 공주랍니다. 당시 다섯 살

이었던 공주를 중심으로 좌우에 두 시녀가 있고, 오른쪽에 난쟁이와

어릿광대가 있습니다. 그 앞에 개 한 마리가 쭈그려 앉아 졸고 있는

데, 짓궂은 어릿광대가 발로 툭 차서 깨우고 있습니다. 아마도 일행

이 머문 지 한참이 지난 모양입니다.

이들은 개가 꾸벅꾸벅 졸 때까지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요? 그림

속에 비밀을 푸는 열쇠가 있습니다. 공주 일행의 시선이 그림 밖을

향하고 있는데, 뭔가를 뚫어져라 보고 있습니다. 무엇을 쳐다보고 있

는지 궁금하다면 벨라스케스 쪽으로 주의를 돌려 보기 바랍니다. 그

는 그림 도구를 들고 무언가를 그리고 있습니다.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모델을 관찰하는 듯한 자세입니다. 공주 일행은 그가 그리고 있는

모델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림 밖의 모델은 누구일

까요?

이 수수께끼의 해답은 방 뒤편에 걸린 거울에 있답니다. 거울에는

두 사람의 모습이 희미하게 비치고 있어요. 이들은 다름 아닌 국왕

펠리페 4세와 왕비지요. 따라서 이 그림은 벨라스케스가 국왕 부부

를 그리고 있는 화실에 공주 일행이 와서 구경하고 있는 장면을 담은

것입니다. 우리가 그림을 감상하는 자리가 바로 모델인 국왕 부부가

서 있는 곳이지요. 그래서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공주 일행이

지켜보는 가운데 벨라스케스가 지금 우리를 그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기막힌 모순이 존재합니다. 한번 곰곰이 생

각해 보세요. 사진사가 자신이 사진 찍는 모습을 스스로 찍을 수 있

을까요? 마찬가지로 화가가 자신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스스로 그

릴 수 있을까요? 이론상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남이 찍어 주거나 남

이 그려 줘야만 하니까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벨라스케스 자신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스스로 그렸어요. 화가와 모델이 그림 밖과 그림

속에 동시에 존재하는 이상하고 흥미로운 작품이지요. 한마디로 생

각할 것이 많은 그림이죠. 이런 묘한 구성으로 인해 이 작품은 지금

까지 숱한 얘깃거리를 낳고 있답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년) | 궁정화가로 이름을 떨친 스페인 화가예요. 열한

살 때 아버지의 권유로 프란시스코 파체코라는 화가 밑에 들어가 그림을 배우게 되

었지요. 처음에는 종교화나 풍속화, 정물화를 그렸으나 1623년 궁정화가로 왕궁

에 들어간 뒤로는 국왕 펠리페 4세의 보살핌 속에서 초상화를 주로 그렸어요. 화가

루벤스의 권유로 1629년 이탈리아를 방문하여 고전 미술을 연구했으며, 1649년

두 번째로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 1651년 왕의 부름을 받고 돌아왔지요. 그 후 전

성기를 맞이하여 〈궁정의 시녀들〉을 비롯하여 여러 점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왕

의 신임을 받아 1658년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이듬해 산티아고 기사단에 가입하

게 되었지요. 그의 작품은 고야, 마네, 피카소, 달리 등 후세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피카소가 그의 미술에 깊이 빠져 수십 점의 작품을 모방해 그렸

답니다.



 * 별첨 사항: 이 글은 <새콤달콤한 세계명화 갤러리>(길벗어린이)에서 일부 발췌 수록한 것입니다.

  글과 도판은 길벗어린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싣는 것이며, 본 내용은 저작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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