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들썩한 잔치 마당에 숨겨진 비밀
…피터르 브뤼헐의 〈농민의 결혼식〉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중대한 행사를 꼽으라면 단연 결혼식일 거
예요. 결혼에는 성대한 잔치가 따르게 마련이지요. 잔치의 풍속은 나
라나 시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매우 흥미로워요. 브뤼헐의 〈농민의
결혼식〉은 16세기 네덜란드 농민들의 결혼 풍속을 생생하게 보여 주
고 있어요. 첫눈에 봐도 매우 왁자지껄한 분위기예요. 동서고금을 막
론하고 결혼식은 이렇듯 떠들썩하고 흥겨워야 제맛이 나는 법이지
요.
농민의 결혼식답게 잔치가 열린 곳은 널따란 곡식 창고입니다. 손
님들 뒤로 밀짚 다발이 천장까지 높이 쌓여 있어요. 오른쪽에 밀짚
두 다발이 쇠갈퀴와 함께 엑스(X) 자 형태로 매달려 있는데, 이것은
수확을 축하하는 당시의 관습이라고 해요. 곡식을 거둘 때 맨 나중에
수확한 것을 이렇게 건다고 하네요.
밀짚 중간에는 커다란 휘장이 쳐져 있어요. 머리에 쓰는 관처럼 생
긴 것이 휘장 복판에 덩그러니 걸려 있는데, 이건 주인공을 위한 영
예로운 자리임을 나타낸다고 해요. 결혼식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신
부가 바로 그 아래 앉아 있어요. 신부는 당시의 풍습대로 머리를 양
어깨에 늘어뜨리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어요. 볼살이 통통하
고 몸집이 매우 풍만하네요. 결혼식이 기쁜지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데 조금 바보스러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 그림에서는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어요. 신부는 분
명하지만 신랑이 누군지는 확실치 않다는 거예요. 도대체 누가 신랑
일까? 연구자에 따라서 갖가지 다른 주장이 나오고 있어요. 신부 오
른쪽 두 번째 등받이가 높은 의자에 앉은 노인이다, 아니 왼쪽 세 번
째 음식을 게걸스레 먹고 있는 사나이다, 혹은 신부 맞은편에 앉아
술 항아리를 들고 먹으려는 남자다 등등…….
하지만 등받이에 앉은 이는 나이가 너무 많은 노인이라, 그 옆에
나란히 앉은 여자와 함께 신부의 부모라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나머
지 두 사나이 역시 신랑이라고 하기엔 너무 평범한 차림이라 그냥 결
혼식에 참석한 농부라 보는 게 맞을 겁니다. 그렇다면 신랑은 과연
어디 있을까?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그림 속에 신랑이 없다는 것
입니다. 당시 네덜란드의 결혼식 풍속에는 저녁이 될 때까지는 신랑
이 신부 앞에 나타날 수가 없었다고 하네요. 이런 전통 때문에 신랑
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어쨌거나 그림 속에는 지금 한창 잔치 분위기가 무르익어 있습니
다.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대부분 가까운 이웃의 농민들이에요. 그
들은 지금 대각선으로 가로놓인 식탁에 앉아 한창 먹고 마시고 떠들
고 흥겨운 기분에 취해 있어요. 화면 앞쪽에는 두 사람이 널빤지 위
에 음식 그릇을 얹어 나르고 있고, 또 한 사람은 그것을 열심히 탁자
로 옮기고 있어요. 악기 연주자 중 하나는 자신의 본분을 잊고 음식
그릇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한눈을 팔고 있네요. 술을 어지간히 마셨
는지, 화면 왼편의 남자는 바구니에 가득 담긴 빈 항아리에 열심히
술을 채우고 있어요. 그 앞에 한 아이가 철퍼덕 주저앉아 빈 그릇을
손으로 핥는 모습이 매우 익살맞게 그려져 있어요. 화면 뒤쪽에는 음
식을 먹으려는 사람들이 계속 밀려들어 혼란스러운 상태지요.
브뤼헐의 작품에는 이처럼 사람들이 시끌벅적 등장하는 그림이 많
아요. 그의 작품에는 은근한 도덕적 암시와 교훈이 깃들어 있는데,
이 그림 역시 마찬가지예요. 얼핏 보면 떠들썩한 결혼 잔치를 묘사한
듯 보이지만 사람들을 일깨우는 교훈적인 내용이 숨어 있답니다.
이와 관련하여 눈여겨봐야 할 인물이 화면 맨 오른쪽 귀퉁이에 앉
은 두 남자예요. 그들은 차림새로 봐서 농부들이 아닙니다. 맨 끝에
검은 옷에 긴 칼을 찬 남자가 보이는데, 결혼 서약을 담당한 판사나
마을의 촌장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그러나 브뤼헐 자신을 그려 넣은
것이라는 얘기도 있어요. 그는 허름한 옷을 걸친 채 몰래 남의 잔치
자리에 끼여 음식을 얻어먹으며 사람들을 구경하곤 했답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당시의 풍속을 생생하게 담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 테
지요.
하지만 검은 옷의 정체가 누구든지 간에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마주
하고 앉은 남자입니다. 회색 옷을 머리까지 뒤집어쓴 이 남자는 수도
사지요. 수도사는 세속적 욕망을 멀리한 채 매우 엄격하고 절제된 생
활을 하는 성직자예요.
두 사람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요. 모두들 술과 잔치 음식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마당에 이들만이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는 듯 초연한 모습이지요.
당시 기독교 윤리에서는 이른바 ‘칠대죄’라 불리는 일곱 가지 죄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음식을 탐욕스레 먹는 것도 끼여 있었답니다. 아
마도 브뤼헐 자신이 수도사와 이야기하는 장면을 그려 넣어, 흥청망
청 먹고 마시는 데 정신이 팔린 사람들에게 그런 죄를 짓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피터르 브뤼헐(1525~1569년) | 피터르 브뤼헐은 16세기 후반 네덜란드 최고의 화가
예요. 브뤼헐이란 성은 그가 태어난 마을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겁니다. 그는 농민의
생활을 사실적, 해학적으로 그린 화가로 잘 알려져 있어요. ‘농민의 브뤼헐’이란 별
명을 얻을 정도로 농촌을 소재로 한 작품을 즐겨 그렸답니다. 그의 그림을 통해 당
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으니 ‘풍속화가’라고 할 수 있지요. 농민의 생활과 풍속뿐
아니라 성서나 신화, 속담 등의 내용을 풍자적으로 그린 그림도 많습니다. 그의 작
품에는 재미있고 우스꽝스런 장면이 많은데, 그 속에는 인간의 탐욕과 감각적 쾌락
을 경고하는 도덕적 암시가 동시에 깃들어 있답니다.
* 별첨 사항: 이 글은 <새콤달콤한 세계명화 갤러리>(길벗어린이)에서 일부 발췌 수록한 것입니다.
글과 도판은 길벗어린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싣는 것이며, 본 내용은 저작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