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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장 소중한 추억은?

작성자睦園.박이환(고10회)|작성시간20.12.07|조회수38 목록 댓글 0
당신의 가장 소중한 추억은?

엄상익(변호사)                                                                

  사십대 중반 암 진단을 받고 수술대에 오른 적이 있었다. 바퀴 달린 이동 침대를 타고 가는 내 눈에 복도 천정의 하얀 형광등 불빛들이 서늘하게 지나쳐 가고 있었다. 바닥에 눕혀놓은 십자가 같은 수술대에 발가벗긴 채 손발이 묶였다. 싸늘한 빛을 튕겨내는 도구들과 윙윙거리는 기계음 그리고 크게 울려 퍼지는 락 음악과 의사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내게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장소지만 그곳은 의사들의 평범한 일터인 것 같았다. 마취제가 투여되고 깊은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직전 파노라마 같이 일생의 기억들이 떠오르며 스쳐 지나갔었다.
  
  여섯 시간의 수술 끝에 나는 다시 세상으로 되돌아 왔었다. 다시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그때 순간적으로 스쳐 가던 파노라마 같던 인생의 장면들을 생각해 보곤 한다. 인간은 저세상으로 벌어놓은 돈을 가져갈 수 없다. 지위나 명예도 가져갈 수 없다. 그러나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있다고 한다. 사랑이 넘치는 기억들이라고 했다. 그 기억들이야말로 진정한 재산이라는 것이다.
  
  장애인 아들과 사는 엄마가 뇌종양으로 죽음이 멀지 않았다. 엄마는 감옥같은 시설에 아들을 넣기가 싫었다. 엄마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아들이 존재할 수 있도록 아들이 혼자서 밥을 하고 계란 프라이를 하고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도록 남은 시간 혼신의 힘을 다해 아들을 가르친다. 장애아들을 돌보며 살던 가난한 엄마는 닥쳐온 죽음에 대해 분노한다. 교회의 창에 그려져 있는 예수를 보고 저주를 했다. 그리고 죽음이 더 가까워 오자 제발 한 번만 살려달라고 절규한다. 그러나 죽음의 시간은 소리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엄마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추억을 떠올려 본다. 젊은 시절 서너 살 되던 장애아들과 하얀 파도가 치는 바닷가에 갔던 추억이 떠올랐다. 나이가 삼십이 넘어도 아직 어린애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장애아들을 데리고 행복했던 그 고운 모래사장으로 간다. 엄마는 아들에게 업힌다. 그리고 그 기억을 간직하면서 죽음 저쪽으로 가는 운명을 받아들였다. 얼마 전 한밤중에 보았던 ‘채비’라는 영화의 내용이었다.
  
  지난밤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추억을 묻는 다큐멘터리 같은 일본 영화를 봤다. 대답들이 다양했다. 중학 시절 여름방학 전날 전차 맨 앞 운전수 옆 창가에 서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을 때가 좋았다는 대답이 있었다. 지금 세대는 모르지만 내가 그랬다. 초등학교 시절 냉냉냉냉 파란 불꽃을 전선에서 불꽃을 튀기며 전차가 시내를 미끄러져 가곤 했다. 전차를 타면 맨 앞 유리창에 서서 보는 것이 허락됐었다. 나는 빛을 튕기며 내 앞으로 다가오는 레일이나 침목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런것도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구나 하고 깨달았다.
  
  어떤 일본인 남자는 중학교 시절 좋아하던 여학생의 가방에 달린 방울소리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어떤 할머니는 전쟁 후 군대를 가서 헤어졌던 연인과 다리에서 우연히 만날 때의 기쁨을 간직하고 있었다. 군인이었던 남자 일본 노인은 전쟁에서 포로로 잡혔을 때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얻어먹던 쌀밥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비행사 출신의 한 남자는 어느날 오후 비행기 창을 통해 본 투명한 하늘과 솜같이 하얗고 부드러운 구름을 얘기했다. 저 세상으로 가지고 갈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무엇인지를 대충 알 것 같았다.
  
  나는 다시 기억의 서랍을 열고 빛바랜 흑백사진 같은 세월 저편의 일들을 떠올렸다. 다섯 살 무렵 동네에서 놀다 돌아오면 삼십대 초반의 엄마는 내가 너무 예쁜지 나를 꼭 안고 어깨를 깨물었다. 나의 행복인 동시에 엄마의 행복이었다. 중학생이 된 내가 검은 교복을 입고 비가 내리는 버스 차창에 기대어 망연히 종로거리를 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가장 소중한 추억을 발견했다.
  
  스물네 살 무렵의 겨울 깊은 산속의 외딴 집에서 공부를 하다가 심한 몸살을 앓았었다. 당시 대학 이학년이던 아내에게 약을 사 가지고 와 달라고 연락을 했다. 그 다음 날 아내는 마치 일본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무도 없는 하얗게 눈 덮인 들판을 빨간 파커를 입고 걸어서 내게 왔었다. 내 인생을 통해 얻은 부(富)는 가져갈 수 없다. 그러나 내가 가져갈 수 있는 사랑이 넘쳐나는 기억은 많은 것 같다. 내가 진짜 부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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