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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상(眞相)'이고, 규명할 대상인가

작성자睦園.박이환(고10회)|작성시간21.04.26|조회수58 목록 댓글 0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상(眞相)'이고, 규명할 대상인가

사고의 본체적 인과관계나 그에 대한 형사처벌과 관계없는 궁금증까지 끝까지 조사하고 다 밝히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석동현(前 서울 동부지검장) 페이스북

수학여행 학생들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가 도로변 난간을 들이받고 난간 아래 계곡으로 추락하였다. 구조대가 계곡으로 출동하여 구조작업을 했는데 버스 탑승자 절반가량은 사망을 했고 나머지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조사 결과 사고 원인으로는 차량의 노후, 정비불량 등 차체의 문제도 있었지만 운행 부주의가 더 큰 문제였다. 처음에는 옆을 지나던 차가 그 버스를 충격한 것 아니냐는 설도 있었고 도로상의 어떤 물체를 피하려 핸들 급조작한 것 아니냐, 또는 도로에 패인 홈이나 기타 도로 파손이 운행에 지장을 준 것 아니냐 온갖 가설이 등장했으나 결국 버스 운전기사의 진술 등에 의해 졸음운전으로 인해 고속주행중에 균형을 잃고 난간을 들이받은 것이 직접적 원인으로 모아졌다.

주된 원인이 그렇게 밝혀지면 그 버스기사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상의 책임을 물어 구속기소를 하고, 사고가 크다 보면 사고에 인과관계가 있든 없든 정비를 소홀히 한 관계자, 만약 그 버스기사에 고용주가 있다면 졸음운전할 정도로 과로하게 만든 고용주, 낡은 버스 타이어를 제때 안 갈아준 고용주도 같이 재판에 넘기는 정도로 사고의 '진상' 조사와 형사처벌 절차는 일단 마무리가 된다.

사상자에 대한 보상은 민사 문제다. 그런데 졸지에 금쪽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나 그 유족의 궁금증은 더 많을수 있다. 우리 애가 왜 여러 대의 수학여행 버스중 하필 사고가 난 그 버스에 탔나. 그 버스는 차량 정기검사를 제대로 받았나. 타이어가 노후했는데 왜 정기검사 때 문제삼지 않았나. 우리 애는 그 버스의 몇번째 좌석에 앉았나. 창가였나 복도였나, 우리 애 옆좌석엔 누가 앉았나, 옆좌석 그 친구는 살았나 죽었나. 왜 3번좌석 4번좌석 학생은 살았는데 5번좌석의 우리 애는 살지를 못했을까.

당시 버스가 도로 난간을 충격하기 직전 운행속도는 얼마였나. 블랙박스 속도기록은 정확한가, 누가 사후에 손대지 않았나, 버스가 지그재그로 차선을 침범했다는데 왜 고속도로 경찰대는 뭐했나.

도로변 난간의 재질이며 강도는 기준에 맞나. 버스가 추락하는 순간 그 지점을 같은 차선이나 반대차선에서 지나던 차량이 있었는지 조사했나. 사고 신고는 누가 했고. 최초신고 때 어떤 내용으로 신고했으며, 경찰이 신고 받은 후 몇분 만에 출동했나. 구조대가 좀더 일찍, 좀더 많이 출동하고, 좀더 신속하게 추락지점에 내려가 구조했더라면 우리 애가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 버스기사는 운행 전날 밤 술을 마신 것 아닌가. 기사가 매일 먹는 약이 있다는데 그것은 사고와 관계 없나. 사고 전에 들른 휴게소에서 무엇을 잘못 먹었나.

궁금증은 이뿐이 아닐 것이다. 피해자나 유족 입장에서는 슬픔 때문에, 혹은 불신 때문에 아무리 여러 번 조사하고 재판을 해도 남는 궁금증이 있고 심지어 의혹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문제는 무슨 '진상'을 규명하는 차원이 아니라 궁금증이고 의혹일 뿐이다. 어떤 사건 사고에서도 피해자나 그 유족 입장에서는 궁금증이나 의혹 몇가지는 제기할 수 있다

다만 사고의 본체적 인과관계나 그에 대한 형사처벌 문제와는 관계없는 궁금증까지 끝까지 조사하고 다 밝히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사건사고는 매일같이 계속 생긴다. 그런 상황에서 수사인력이나 조사역량, 예산의 한계 등도 생각해야 한다. 도대체 인명사고가 났을 때 어디까지가 '진상'이고, 규명해야 할 대상인가.

[ 2021-04-24, 2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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