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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귀신'의 노예들/ 고객이 갈 때 엘리베이터까지 따라가서 구십도 허리를 굽히고 인사하는 것부터 ...

작성자睦園.박이환(고10회)|작성시간22.03.31|조회수45 목록 댓글 0

'돈 귀신'의 노예들

“로펌에 들어가니까 고객이 갈 때 엘리베이터까지 따라가서 구십도 허리를 굽히고 인사하는 것부터 배우라고 하더라구요"

엄상익(변호사)

<돈 귀신의 노예>

오랫동안 변호사를 해 왔다. 돈을 받는 순간 나는 심리적으로 위축이 됐다. 그리고 나의 간사함을 발견했다. 고기조각을 주는 사람 앞에서 꼬리를 흔드는 개처럼 범죄인도 밉지 않았다. 돈은 나의 눈을 흐리게 만들고 판단력을 약하게 만들기도 했다. 내 편은 옳아보이고 상대편은 틀린 것 같아 보였다.

속물 의뢰인이 많았다. 그들은 내가 거짓말도 하고 모략도 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기를 원했다. 자기들이 법망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내가 어떻게 망가지든지 상관없었다. 오히려 내가 욕보는 걸 즐기는 것 같았다. 그들은 돈 몇푼을 던지면서 그렇게 나를 지뢰밭으로 내몰았다. 그런 속에서 양심을 지킨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토스토엡스키는 변호사를 고용된 양심이라고 글에서 쓰고 있는 것 같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검사를 하다가 변호사 개업을 한 후배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검사를 할 때 발발 기던 놈들에게 굽신거리고 있어요. 고객이 갈 때면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가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인사를 한다니까. 이게 다 돈 때문이지. 가족이 먹고살고 아이 유학을 보내야 하니까.”

사법연수원을 최고 성적으로 졸업한 변호사 후배가 있었다. 그는 판사가 되기를 거절하고 대형 로펌에 취직했다. 그가 어느 날 이런 말을 했다.

“로펌에 들어가니까 고객이 갈 때 엘리베이터까지 따라가서 구십도 허리를 굽히고 인사하는 것부터 배우라고 하더라구요. 처음에는 그게 참 어색했어요. 친구인 판사들은 모두 목을 빳빳이 세우고 인사를 받는데 나는 그렇게 했어요. 돈 때문이죠.”

돈 귀신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돈 귀신은 사람들에게 네가 내게 엎드려 절하면 모든 것을 주겠다고 했다. 돈 귀신이 정치가도 성직자도 예술가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무릎 꿇게 한다. 돈 귀신에 씌운 한 재벌회장이 이런 말로 그의 내밀한 속내를 드러낸 적이 있다.

“수십억 원을 주면 국회의원 한 사람을 매수할 수 있어. 천억만 쓰면 정당을 만들 수도 있지. 사회에서 존경받는 대통령감의 유명인사도 돈을 주고 살 수 있어. 거액을 주면서 정당의 대표로 오라고 하고 앞으로 대통령까지 하라고 하면 거절할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당을 만들고 마지막에 대선후보 경선 전당대회에서 극적인 반전상황을 만드는 거야. 내가 대통령후보가 되는 거지. 당원들이라야 모두 내 회사의 머슴들이고 내 돈 먹고 사는 사람들이니까 뒤집기는 쉽지.”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돈 귀신은 그렇게 민주주의도 능멸해 왔다. 국민들의 신성하다고 하는 한 표 한 표는 돈이라는 오물에 오염되어 존재가 없어졌다. 국민들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돈이 주인이었다. 그래서 경제민주화란 말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대통령도 대부분 돈 귀신에 잡히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대통령은 취임 당시 가진 재산이 오억원과 대구근처의 물려받은 약간의 임야라고 했다. 임기를 끝낼 때까지 재산에서 단돈 일원도 늘이지 않을 것을 약속했었다. 그러나 그는 임기 후 수천억의 뒷돈을 받은 게 들통이 나 감옥으로 갔다. 아들들이 돈 귀신에 잡혀 감옥으로 간 대통령도 있고 아직도 뚜껑이 덮혀있는 판도라 상자도 있는 것 같다. 돈 귀신이 자살을 하게 한 대통령도 있다. 대통령들을 감옥에 가게 한 것은 돈 귀신이었다.

정말 돈은 귀신만 주는 것일까. 모든 악의 뿌리일까? 돈은 악마가 낚시미끼로 주는 것 만이 아니라 그분이 주시는 돈도 있다는 생각이다. 하나님이 허락하는 돈이다. 언젠가는 그 분 앞에서 사용보고서를 내야 할 돈이다. 그 돈은 땀 흘린 노동으로 거두어들인 돈이다. 그걸 절약해서 모은 돈이다. 돈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귀신이 주는 돈은 노예고 그분이 주는 돈은 자유를 준다. 카알라일은 속인에게 곤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분이 주는 돈으로 우리는 속인의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이웃을 도울 수도 있다. 나는 변호사를 하면서 이렇게 기도해왔다.

‘주여 바라옵기는 당신의 능력으로 저로 하여금 이 21세기의 악마를 이길 수 있게 하옵소서. 비록 내가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당신이 허락하시지 않는 돈을 한 푼이라도 받는 일이 없게 하옵소서. 가증하고 비천한 돈 귀신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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