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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과 런던의 한국전 참전 기념물 銘文

작성자睦園.박이환(고10회)|작성시간22.07.27|조회수18 목록 댓글 0
워싱턴과 런던의 한국전 참전 기념물 銘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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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의 한국전쟁 기념물 銘文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조국은 우리의 아들 딸들에게 경의를 표하노니, 그대들은 이름도 알지 못한 나라의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조국의 부름에 응했도다.
  
  Freedom is not free.
  Our nation honors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the country they never knew and the people they never m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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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 어디냐”고 할 때, 1등과 2등에 대해선 이견이 별로 없다. 제자들의 서열대로 가장 큰 것은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이다. 2등은 런던의 세인트폴 성당, 쉽게 말하면 성바울 성당이다. 성바울 성당은 짓는 데 36년밖에 걸리지 않아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이 생전에 자신이 완공시킨 성당에서 예배를 올릴 수 있었다, 성베드로 성당은 세계 천주교의 중심이지만 서열 1위는 아니다. 성바울 성당도 세계 성공회의 중심이지만 서열 1위 성당은 켄트주의 대주교가 있는 켄터베리 성당이다.
  성바울 성당의 역사는 영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직후인 서기 604년까지 거슬러 오르지만 1066년 잉글랜드를 정복한 노르망디 윌리엄공(잉글랜드에선 왕)이 이 자리에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을 짓기로 결심하면서 시작된다. 16세기 헨리 8세가 앤 볼린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로마 교황청에 맞서 성공회를 만들고 모든 교회를 왕의 직할로 둔 이후 이 성당은 성공회 소속이 되었다. 17세기 청교도 혁명이라고도 불리는 영국 내전 때는 크롬웰이 이끄는 공화파 군대가 이 성당을 마굿간으로 썼다.
  
  1666년 런던 대화재는 런던의 3분의 2를 불태웠다. 1만3200 채의 집이 소실되고 87개 교회가 피해를 입었다. 찰스 2세 왕은 손상 당한 성바울 성당을 크게 재건하기로 결심, 크리스토퍼 렌이 설계한 건축안을 재가하여 1675년부터 시작된다. 렌은 옥스퍼드 대학에서 천문학을 가르친 교수로서 수학자이기도 했다.
  
  맨 첨엔 정사각형 모양의 그릭 크로스였는데 동서가 길고 남북이 짧은 라틴 크로스로 바뀌었다. 1697년에 성가대 시설이 만들어져, 건축 중임에도 예배를 볼 수 있었다. 건축 기간 영국은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찰스 2세의 후계왕 제임스 2세가 천주교도였는데 천주교 복권 움직임을 보이자 신교도와 성공회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네덜란드의 윌리엄 공을 왕으로 영입하고 네덜란드 군대를 불러들여 제임스 2세를 몰아내고, 권리장전을 수용하게 만드는 명예혁명이 1688~89 년에 있었다.
  
  완공된 성바울 성당은 길이가 158 미터, 돔의 높이는 111 미터이다. 돔의 돌 무게가 6만5000톤이다. 항공모함 한 대분의 무게를 이고 있는 셈이다. 성당의 위용은 돔으로 대표된다. 성바울 성당의 돔은 3중 구조인데 지름이 34 미터(안 지름은 31 미터)이다. 세계최대인 성베드로 성당은 길이 220, 너비 150 미터에 돔은 지름이 42 미터(안 지름은 41.5 미터)다. 성베드로 성당보다 먼저 완공된 피렌체 대성당 돔은 200년 뒤의 성베드로 성당 돔과 같은 크기이다. 피렌체 성당 돔은 무게가 3만7000 톤이고 400만 개의 벽돌이 사용되었다. 브루넬레스키의 설계인데, 유럽 건축사상 최고의 업적으로 꼽힌다.
  
  성당 구경에서 하이라이트는 돔 아래에서 오르간 연주를 들으면서 돔 천장을 올려다 보는 것이다. 절대자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인간의 신앙과 신념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일 것이다. 지난 6월 초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70주년 축하 행사가 여기서 거행되었으나 여왕은 身病으로 불참했다. 1981년 찰스 왕태자와 다이아나의 결혼식이 있었다. 나폴레옹을 바다와 육지에서 격파했던 넬슨 제독과 웰링턴 장군의 장례식도 여기서 있었고 두 사람의 석관은 이 성당 지하에 있다. 성당 맨 안쪽에는 2차 대전 때 영국에 주둔했다가 전사한 미군 2만8000명을 추모하는 예배실이 있고 병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한국전 때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남아공 등 영연방 국가는 약 6만 명을 파병, 1078명이 전사, 4909명이 부상했다. 나폴레옹에 이긴 두 장수의 무덤 사이 벽에는 한국전 전사자들을 위한 추모의 글 판이 있었다.
  
   "REMEMBER THE BRITISH SERVICEMEN WHO DIED IN THE FIRST WAR FOUGHT IN THE NAME OF THE UNITED NATIONS. THANK GOD FOR THEIR COURAGE AND ENDURANCE AND PRAY FOR PEACE AND RECONCILIATION AMONG THE PEOPLES AND NATIONS OF THE WORLD. KOREA 1950-1953. Not one of them is forgotten before God."
  
   “유엔의 이름 아래 싸운 첫 전쟁에서 죽은 영국 병사들을 기억하면서, 그들의 용기와 인내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세계의 국가들과 사람들 사이의 평화와 화해를 위하여 기도한다. 한국 1950-1953. 하나님 앞에선 아무도 잊혀지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선 아무도 잊혀지지 않는다”는 한때 한국전을 ‘잊혀진 전쟁’으로 불렀던 세론에 던진 메시지로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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