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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it be / The Beatles

작성자睦園.박이환(고10회)|작성시간19.11.04|조회수46 목록 댓글 0


    

           

 


The Beatles - Let It Be

              Let it be / The Beatles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내가 어려운 시기에 처해 있을 때 Mother Mary comes to me 어머니께서 내게 다가와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순리에 맡기라는 지혜의 말씀을 해주셨어요 And in my hour of darkness 내 마음이 어두운 시절에도 She is standing right in front of me 어머니는 내 앞에 똑바로 서서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순리에 맡기라는 지혜의 말씀을 해주셨어요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걱정말고 그냥 그대로 두고 순리에 맡기라고 Whisper words of wisdom let it be 순리에 맡기라는 지혜의 말씀을 속삭여 주셨어요 And when the broken hearted people 그리고 상심을 겪게 되는 사람들이 Living in the world agree 이 세상을 살아가려고 할 때에도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순리에 맡기라는 현명한 대답이 있어요 For though they may be parted 그들이 비록 의견은 다르지만 There is still a chance that they will see 다시 알 수 있는 기회는 아직 남아 있기에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순리에 맡기라는 현명한 대답이 있어요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걱정말고 그냥 그대로 두고 순리에 맡기라고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순리에 맡기라는 현명한 대답이 있어요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걱정말고 그냥 그대로 두고 순리에 맡기라고 Whisper words of wisdom let it be 순리에 맡기라는 지혜의 말씀을 속삭여 주셨어요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걱정말고 그냥 그대로 두고 순리에 맡기라고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순리에 맡기라는 현명한 대답이 있어요

                                Beatles-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걱정말고 그냥 그대로 두고 순리에 맡기라고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순리에 맡기라는 현명한 대답이 있어요 And when the night is cloudy 그리고 구름이 가득한 밤일지라도 There is still a light that shines on me 여전히 나를 비춰줄 밝은 빛은 있어요 Shine on until tomorrow let it be 순리에 맡기세요 다음 날이 밝을 때까지 I wake up to the sound of music 내가 음악 소리에 잠을 깨어 보니 Mother Mary comes to me 어머니께서 내게 다가와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순리에 맡기라는 현명한 대답이 있어요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걱정말고 그냥 그대로 두고 순리에 맡기라고 There will be an answer let it be 순리에 맡기라는 현명한 대답이 있어요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걱정말고 그냥 그대로 두고 순리에 맡기라고 Whisper words of wisdom let it be 순리에 맡기라는 지혜의 말씀을 속삭여 주셨어요
                          1957년 3월 Quarry Bank Grammar School을 다니던 John Lennon(존 레논)은 The Quarrymen(쿼리맨) 이라는 스키플 그룹을 결성한다. 이후 1957년 7월 6일 John Lennon과 The Quarrymen은 기타리스트 Paul McCartney(폴 매카트니)를 울튼이라는 교회축제에서 만나게 되었고 이때부터 그룹에 합류하게 되었다. Paul McCartney와 George Harrison(조지 해리슨)은 리버풀 인스티튜트의 학교 버스에서 만나 친해졌고 Paul McCartney는 1958년 2월 6일 리버풀의 윌슨 홀에서 열렸던 The Quarrymen의 공연에 George Harrison을 초대하게 되었다. 이후 계속된 Paul McCartney의 설득 끝에 1958년 3월 다른 멤버들 앞에서 리허설을 마친후 The Quarrymen의 리드 기타리스트로 가입했다. 그 당시 John Lennon은 George Harrison이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가입을 거절했었다고 한다. The Quarrymen의 구성원은 계속 변했으나 John Lennon과 그의 친구 Stuart Sutcliffe(스튜어트 서트클리프), Paul McCartney, George Harrison을 주축으로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The Beatles(비틀즈)가 공연했었던 독일 함부르크의 인드라 클럽 The Quarrymen이란 밴드 이름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Johnny And The Moondogs로 바뀌었다가 Long John And The Beatles란 이름으로 다시 The Silver Beetles로 바뀌어 갔다. 이들은 1960년 8월 17일 마침내 The Beatles라는 이름으로 결정을 내리게 된다. Beatles라는 이름과 그 흔치않은 표기인 Be'a'tles의 기원에는 여러 설이 존재한다. 대체적으로 이 이름은 John Lennon이 지었다고 여겨지는데 그는 Beatles라는 이름이 Beetles(딱정벌레들)과 Beat 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말 장난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또한 후에는 Beat-less를 변형해서 만든 것이라 얘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Cynthia Lennon(신시아 레논: 첫번째 부인)은 John Lennon이 Beatles라는 이름을 '랜쇼 홀 바에서 술에 취한 상태에서 한 브레인스토밍의 결과' 로서 정하였다고 주장하였다. Cynthia에 따르면 John Lennon은 그 곳에서 les beat와 같은 프랑스어 느낌의 이름을 정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고 한다. 1961년 John Lennon은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농담을 하기도 했다. 'Flaming Pie(불타는 파이) 위에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타나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From this day on you are Beatles with an A(오늘부터 당신들은 A를 쓰는 비틀즈다)' Beatles는 데뷔 이전에 The Quarrymen과 The Silver Beetles등으로 리버풀의 캐번클럽과 독일의 함부르크 일대에서 라이브 공연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Brian Epstein(브라이언 엡스타인)의 눈에 띄게 되어 Beatles의 매니저가 되었고 그의 노력으로 1962년 1월 1일 데카 레코드의 오디션을 보지만 거절당하였다. 이후 EMI의 레이블 팔로폰 레코드에서 일하는 녹음 기술자인 George Martin(조지 마틴)이 록 밴드를 찾고있다는 소식을 듣고 매니저 Brian Epstein은 George Martin을 찾아가 Beatles의 시험 음반을 들려줬고 그는 오디션의 기회를 주었다. Beatles는 EMI의 오디션을 통과했으며 팔로폰과 계약을 맺었다. 그러던 중 드러머 Pete Best(피터 베스트)는 George Martin의 요구에 부흥하지 못하였으며 Beatles 멤버들은 그를 추방시키고 새 밴드를 찾고 있던 Ringo Starr(링고 스타)로 드러머를 교체한다. Beatles는 녹음을 통해 드디어 첫 싱글 Love Me Do를 1962년 10월 4일 발표하였으며 차트 17위까지 오르는 무난한 성적을 이루었다. 그리고 다음해 1월에는 두 번째 싱글인 Please Please Me로 차트 1위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Beatles는 이번에는 싱글 형태가 아닌 10곡 이상으로 된 정규 앨범을 내자는 제안을 하였고 결국에는 첫 정규앨범 Please Please Me를 1963년 3월 22일에 발표하였고 그주 차트 6위까지 올랐다. 이로서 Beatles는 역사적인 데뷔를 할 수 있었다. Please Please Me 발표 이후에 Beatles는 싱글 Frome Me To You로 차트 1위를 달성하게 되었고 뒤이어 발표한 싱글 She Loves You는 차트 1위는 물론 영국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때부터 Beatlemania (비틀마니아)라는 신조어 등장과 함께 Beatles는 엄청난 팬들을 거느리게 됐다. She Loves You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쉬지않고 두 번째 정규앨범인 With The Beatles를 1963년 11월 22일 발표하였으며 이어서 싱글인 I Want To Hold Your Hand를 선주문 100만장이라는 경이로운 기록과 함께 발표해 차트 1위곡이 되었다. 그후 Beatles는 미국 진출을 노리며 She Loves You와 I Want To Hold Your Hand를 차례로 발표하였고 미국의 인기 프로그램인 Ed Sullivan Show(에디 설리반 쇼)에 출연하였다. 그들이 출연한 설리반 쇼는 시청자가 약 7천 3백만명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1964년 3월 16일 Beatles는 싱글 Can't Buy Me Love를 미국에 발표하여 단숨에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1964년 4월 4일 빌보드 싱글 차트에는 1위에서 5위까지의 노래가 모두 Beatles의 노래가 된 놀라운 사건이 발생하였다. 1위 Can't Buy Me Love, 2위 Twist And Shout, 3위 She Loves You, 4위 I Want To Hold Your Hand, 5위 Please Please Me 이로써 Beatles는 영국 뿐만아니라 미국에서 까지 슈퍼스타가 되었다. 이런 Beatles의 활약을 평론가들은 British Invasion(영국의 침략)이라고 칭하였다. 이 후에 Beatles는 정규앨범 A Hard Day's Night을 1964년 7월 10일에 발매하고 앨범차트 1위를 차지했다. 그 앨범에 속한 곡들을 넣은 동명의 영화까지 찍게 됐다. 거기다가 그들은 월드투어를 시작하여 세계 각지에서 콘서트를 가졌으나 무리한 일정으로 그들은 육체 뿐만아니라 정신까지 힘들어 졌다. 후에 George Harrison은 이 시기가 가장 싫었다고 밝혔다. 무리한 일정속에 그들은 작곡하는 시간조차 부족했고 새 싱글 I Feel Fine은 괜찮은 평가와 함께 1위를 차지했으나 한달 뒤 발매된 정규앨범 Beatles For Sale은 Beatles의 앨범 중에 가장 안좋은 앨범으로 평가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범 차트에서는 1위를 싱글 Eight Days A Week도 1위를 차지하였다. 이런 인기속에 점점 그들은 회의를 느끼고 과도한 인기가 싫증이 났다. 이때 그들은 Bob Dylan(밥 딜런)을 만나게 되고 그동안 지친 일정으로 제자리 걸음을하던 음악적 수준이 눈부시게 발전을 이루게 되고 있었고 변화로 향하고 있었다. Bob Dylan과의 만남 이후 그들은 그들의 노래에 대한 싫증을 느끼고 특히 가사에 대해선 엄청난 반성을 하였다. 초기 그들의 노래 대부분은 사랑과 이별에 관한 노래, 별다른 의미없는 노래였다. 그들은 싱글 Ticket To Ride를 발표하고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고 1위를 차지하였다. 뒤이어 그들은 싱글 Help와 동명의 정규앨범 Help를 1965년 8월 6일에 발매하여 1위를 차지했다. 앨범 Help는 그동안 그들이 보여주지못한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었고 대중과 평론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다. 특히 13번 트랙 Yesterday는 대중음악 최초로 현악 4중주를 사용하였고 기존의 로큰롤 밴드 성향에서 탈피 로큰롤에 예술성을 부여한 곡으로 평가받고 있다. Yesterday 역시 싱글로 발매 1위를 차지하였다. Beatles는 엄청나게 성장해버린 자신들을 만족해 하지않고 바로 다음 앨범을 위해서 레코딩에 들어갔다. 결국 Beatles는 그들의 노력이 고스란히 묻어난 명반 Rubber Soul을 1965년 12월 3일에 발매하였다. 그들은 이 앨범에서 완전히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었고 특히나 작사 능력은 엄청난 발전이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Beatles는 이 앨범에 수록된 곡은 하나도 싱글로 따로 발매시키지 않았다. 이는 그들 스스로가 제안하였고 곡 하나하나가 아닌 앨범 전체를 들어달라는 부탁을한 셈인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서 Rubber Soul이 발매되기 전 발표된 싱글 Day Tripper와 We Can Work It Out은 Beatles 최초로 두곡 다 A사이드에 발매하여 두곡 모두 1위를 차지한 곡임에도 불구하고 앨범엔 넣지 않았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 Norwegian Wood는 대중음악 최초로 인도 악기인 시타르를 사용한 곡이다. Beatles는 Rubber Soul에 대한 평론의 엄청난 찬사에 부담을 갖지않았고 여전히 앞으로 나아갔다. 1966년에는 싱글 Paperback Writer, Rain을 발매하였고 A사이드인 Paperback Writer는 1위를 차지했다. 이 싱글은 그들 음악에 사이키델릭이 추가되는 것을 알려준 첫 곡이 되었다. 특히 이 싱글을 통해 Beatles는 그동안 자신들의 인기에 비해 과소 평가 받았던 연주실력에 대해 재평가 받았다. 특히 George Harrison과 Paul McCartney의 연주실력에 대해선 찬사가 끊임없이 있었다. B사이드 곡인 Rain은 최초로 테이프를 역회전시키는 백마스킹을 사용한 노래로 화제를 모았다. 1966년 8월 5일에는 일곱 번째 정규앨범 Revolver를 발매하였다. Revolver는 싱글인 Paperback Writer, Rain에서 보여준 사이키델릭 록을 펼쳤고 몇몇의 곡들은 대중적으로 나아가 대중들과 평론가 모두에게 호평받았다. Revolver에 속한 곡인 Eleanor Rigby와 Yellow Submarine은 서로 확연히 스타일이 다른 곡인데 계획적으로 그 곡을 묶어 싱글로 발매하여 두곡다 1위를 차지하였다. 이 앨범에서도 Rubber Soul 에서 보여주던 시타르를 Love You To라는 곡에서 George Harrison이 사용하였다. 시타르는 그 후 사이키델릭 록에서 필요한 악기로 자리매김 하였다. Revolver에 속한 몇몇 곡들은 마약을 한것처럼 느껴지는 사이키델릭 록으로 그 당시 방송에서 금지곡이 되기도 하였다. 특히 14번 트랙 Tomorrow Never Knows는 최고의 사이키델릭 록 명곡으로 지금까지 손꼽힌다. 1966년에는 Revolver의 발매와 함께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다. Beatles가 8월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순회공연을 하지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상업성을 포기해서라도 음악에 집중하겠다는 Beatles의 생각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Rubber Soul이나 Revolver에 포함된 몇몇 곡들이 그 당시에는 라이브를 하는데 준비 시간이 너무 길고 스튜디오에서 사용한 장비를 모두 무대로 가져올 수 없으니 사실상 완벽한 라이브가 불가능 하다고 판단해서이기도 하다. 이후 대부분을 스튜디오에서 지내온 Beatles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싱글이라고 불리는 Strawberry Fields Forever, Penny Lane를 1967년 2월 13일 영국에서 발매하였다. 하지만 A 사이드인 Penny Lane이 영국에서 아쉽게 2위를 하였고 다행히 미국에서는 1위를 하였다. 앞에서 말한 싱글로 평론가들은 여전히 Beatles는 진화하고 있다며 다음 앨범을 목놓아 기다리고 있었다. 1967년 6월 1일 Beatles는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음반이라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발매하였다. Revolver에서 보였던 사이키델릭 록은 더욱 발전했고 대중 음악에 클래식 같은 예술성을 부여했다. 3번트랙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는 발매당시 LSD(환각)를 나타 낸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John Lennon은 아니라고 했다. 사실 현재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LSD를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하고 John Lennon이 자신의 곡이 금지곡이 되는 것을 막기위해 변명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6번트랙 She's Leaving Home은 클래식 지휘자 Leonard Bernstein (레너드 번스타인)이 극찬하였고 13번 트랙 A Day In The Life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시초라 평가받는 곡이다. 특히 이 앨범의 특징 중 하나인 컨셉트 앨범 형식은 비록 최초는 아니지만 컨셉트 앨범 형식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게 하였다. 또 이 앨범이 발매된 해에는 The Jimi Hendrix Experience(지미 헨드릭스 익스피어리언스)의 데뷔 앨범과 The Doors(더 도어즈)의 데뷔 앨범, The Velvet Underground(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데뷔 앨범 The Velvet Underground & Nico가 발매되어 대중음악 최고의 해로 불린다.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는 빌보드 차트에서 무려 15주간 1위를 차지하였다. 이 앨범에는 싱글로 따로 발매된 곡이 하나도 없으며 대신에 수록되지않은 곡 All You Need Is Love와 Hello Goodbye를 차례로 싱글로 발매하여 두 곡다 1위를 차지했다. 그 해 11월 27에는 앞에서 말한 싱글 곡들과 미발표 곡을 묶어 Magical Mystery Tour를 발매하였다. 하지만 Magical Mystery Tour 발매전 매니저 Brian Epstein이 수면약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고 John Lennon과 Ono Yoko(오노 요코)의 관계가 깊어지자 맴버들 간의 사이에 금이 가는 것처럼 보였다. 1968년 Beatles는 싱글 Lady Madonna를 발표 별다른 활동없이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Beatles는 George Harrison의 추천으로 인도의 Rishikesh(리쉬케쉬)로 가게되었다. Maharishi Mahesh Yogi(마하리쉬 마헤시 요기)의 가르침을 받게된 Beatles는 그 곳에서의 생활에 적응해 나가지만 Maharishi Mahesh Yogi의 부도덕함에 큰 충격을 받은 Beatles의 맴버들은 영국으로 오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곳에서 후에 The Beatles(White Album)에 들어갈 곡들을 작곡하였고 충격받은 George Harrison은 다른 스승을 찾아서 다시 인도에 대한 열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여전히 순회공연을 멈춘 상태에서 John Lennon은 Ono Yoko와의 사랑이 더욱 발전되어 Beatles에 별로 신경을 쓰지않게 되고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때처럼 Beatles의 주도권은 John Lennon에서 Paul McCartney로 가고 있었다. 점점 Beatles는 결속력을 잃어 버리는것 같았다. 그래도 8월 Paul McCartney가 John Lennon의 아들 Julian Lennon을 위해 쓴 노래 Hey Jude를 발표해 9주간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그리고 Hey Jude는 그당시 빌보드 1위곡 중 가장 긴 노래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기쁨이 있는 가운데도 John Lennon과 다른 Beatles 맴버간의 불화가 끊임없이 벌어졌고 결국 Beatles는 화해를 하지못한 채 거의 자신들을 솔로곡을 넣은 것처럼 보이는 앨범 The Beatles(White Album)을 1968년 11월 22일에 발표하였다. 발매전 수록곡 문제로도 서로 다투어 결국엔 2CD로 이루어진 30곡으로 발매되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평론가들과 대중들의 반응은 뜨거웠으며 평론가들은 그 당시 모든 록 스타일이 들어있다며 극찬을 하였다. 이 앨범 역시 싱글로 따로 묶어서 발매된 곡들이 없었으며 Revolution1 과 Revolution9 이 Hey Jude의 B사이드였던 Revolution을 다시 편곡하여 만든 곡이라 할 수 있다. 이 앨범 7번 트랙의 While My Guitar Gently Weeps는 George Harrison이 절친한 친구사이인 Eric Clapton에게 기타 연주를 부탁하여 만들어 졌고 두번째 CD 6번 트랙 Helter Skelter는 헤비메탈의 시초라 불리는 곡으로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그 밖에 John Lennon이 쓴 Sexy Sadie는 Maharishi Mahesh Yogi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내용의 곡이었다. 1969년 1월 17일 Beatles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주제로한 애니메이션 Yellow Submarine의 OST인 Yellow Submarine을 발매했는데 예전에 발표되었던 곡이나 보컬이 포함되지않은 곡이 대부분이였으며 신곡은 몇곡되지 않았지만 인기가 높아 정규 앨범으로 속하게 되었다. Beatles는 여전히 불화상태에 있었으며 서로 화해를 하려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 Paul McCartney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자라는 뜻이 담긴 싱글인 Get Back을 발표하여 1위를 차지하는 기쁨을 맞이하였고 Beatles는 화해의 길로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John Lennon은 The Ballad of John And Yoko를 발표하여 1위를 하였다. Beatles는 Get Back 앨범의 녹음을 마치고 발매하려 했지만 Paul McCartney는 앨범이 맘에 들지않았고 발매가 보류되었다. Get Back 앨범이 보류되자 Beatles는 사실상 마지막 앨범인 Abbey Road의 녹음에 들어갔고 서로 화합된 모습으로 녹음은 무사히 끝마쳤다. Abbey Road의 자켓 촬영을 마친 후 발매되자마자 무서운 인기로 1위를 차지하였으며 Abbey Road는 Beatles 음반중 가장 잘꾸며진 앨범이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이 앨범의 특징인 짧은 곡들로 이어지는 메들리 (트랙 9번 부터 16번 까지)는 오페라적인 요소를 띄며 극찬을 받았다. 끝곡인 Her Majesty는 최초의 히든트랙이라 평가받는 곡이다. Abbey Road 1번 트랙과 2번 트랙 Come Together와 Something은 따로 싱글로 발매 두 곡다 1위를 차지했다. Something은 George Harrison의 최초 1위곡이다. 계속되는 성공으로 Beatles는 화해된 것처럼 보였지만 다시 불화로 이어져갔고 John Lennon은 더 이상 Beatles를 원하지 않게 되었다. Beatles는 사실상 해체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고 이미 맴버들은 각자의 솔로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Paul McCartney는 Beatles를 놓지 않았고 보류되었던 앨범인 Get Back을 George Martin이 아닌 Phil Spector(필 스펙터)에게 프로듀싱을 맡겨 Let It Be라는 이름으로 발매 되었다. 싱글로 Let It Be를 발매 1위를 차지하였고 후에 The Long and Winding Road도 마지막 싱글로 발매하여 1위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그 유명한 애플 옥상 공연이 포함된 다큐멘터리 Let It Be를 개봉하였다. Let It Be 앨범이 발매되고나서 여전히 화해를 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맴버들은 이미 각자의 솔로 앨범을 발매하였다. 언론에서도 Beatles의 해체를 기정 사실화 하였다. 결국에는 Paul McCartney가 1970년 4월 10일 데일리 미러와의 인터뷰에서 해체를 공식 발표하여 해체하였다. 해체 후 공연이나 신곡을 녹음하는등의 활동은 없었으나 1995년 시작된 The Beatles Anthology(더 비틀즈 앤솔로지) 기획에 맞춰 John Lennon이 1977년 녹음한 미완성곡 Free As A Bird의 데모 테이프에 남은 세 멤버가 연주와 코러스를 덧입혀 Beatles의 신곡으로 발표하였다. 이것이 공식적으로 유일한 재결성이 되었으며 그 다음해에 John Lennon의 솔로곡인 Real Love도 같은 형식으로 제작하여 Beatles 버전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George Harrison이 2001년에 사망함으로써 더 이상의 재결성은 불가능해졌다. 2000년에는 영국 및 미국에서 음악 차트 1위를 한 곡을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 '1'을 발매해 1주일만에 360만장을 판매하여 세계에서 가장 빨리 팔린 앨범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었다. 전세계적으로는 3000만장 이상 팔린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003년에는 Let It Be 앨범을 리믹스하고 보너스 디스크 Fly on the Wall을 추가한 Let It Be... Naked를 발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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