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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
1896 / the toilette
후기 인상주의(Post-Impressionism)
인상주의의 단계를 거치면서도 그 양식의 한계에 만족하지 못하고 갖가지의 방향으로 인상주의를 넘어선
일군의 화가들을 가리킵니다. 인상주의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독자적으로 해결책을 추구하던 이들
작가군을 인상주의 이후의 세대라는 포괄적인 관점에서 `후기인상주의 화가'라는 명칭을 얻게됩니다.
이들은 인상주의가 지나치게 순간적인 시각세계에만 사로잡혀 있다고 믿었기에 보다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에 근거한 미술을 추구해야 함을 표방했습니다.
Paul Cézanne (1839-1906)
세잔느- 눈으로 받아들인 감각세계의 혼란된 모습에 어떤 구성적 질서를 부여함으로서
대상의 견고하고 영구적인 모습을 구현하려 했습니다. 대상의 표면, 내부골격의 입체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해 모든 자연 속의 대상을 원통, 원추, 구조로 환원시켜 처리하였습니다.
이후 입체파(Cubism)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Still Life with Cherub, 1895, Courtauld Institute Galleries, London, England
그는 하나의 사물을 화면에 올리는데 있어 집요하게 연구하고 파고드는 성격이었습니다.
자칫 편집증처럼 보일정도의 그의 집착은 마침내 자신만의 튼튼하고 개성있는 작업의 양식을 만들어 냅니다.
위의 그림은 특히 그가 입체파에 영향을 절대적으로 끼친 그림중의 하나 입니다.
탁자의 각도와 그위에 얹혀진 사물들 그리고 뒤 배경의 시점이 모두 동일하지 않습니다.
전통적인 회화의 원근법 또는 시점은 완전히 무시되어있고 이그림에서 제쟌느가 가장 역점을 둔것은
사물이 가장 완전하게 보일수 있는 각 사물에 맞는 시점입니다. 그리하여 보다 완벽하게 각각의 사물을
표현하길 원했던 겁니다.
세쟌느의 이그림과 피카소의 아래 그림을 비교해 보시죠..
Dora Maar au Chat, 1941
세쟌의 그림과 사뭇 달라보이지만 피카소의 그림에서 세쟌의 다초점 표현기법을 알아챌수 있습니다.
여인은 정면의 표정과 옆면의 표정을 동시에 모두 표현해 놓았습니다.(모자도 마찬가지로)
뒷면의 배경도 벽을 여러각도에서 본 시점을 동시에 화면에 배치해 놓았습니다.
세쟌이 한화면에 여러가지의 사물들을 각각 독립적인 시선으로 각각의 사물을 완벽한 존재로 표현했다고 한다면
피카소는 한화면에 하나의 사물을 여러가지 시점으로 표현하여 새로운 존재를 통합하여 만들어냈다는 점입니다.
세쟌이 입체파에 영향을 주엇다는것은 바로 이러한점 때문입니다.
원통,,원추,,구
모든 사물은 사실 이러한 기본적 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액체나 공기가 아닌이상 모든 사물은 특유의 구조성과 질량과 임체성을 지니게 됩니다.
이전의 고전주의(대부분의 화파) 또는 인상파화가들까지 세련되어지고 기교화될수록 이러한 기본적
구조성은 뒷전으로 물러나기 일쑤였습니다. 보다 화려하고 감동적인 그림이 되기 위해선 극적인 내용과
화려한 색채와 현란한 명암의 대비등이 작가들에겐 더욱 필요한 미덕이었던 거죠.
심지어 동시대인 인상파 화가들조차도 순간적인 빛과 색의 변화를 쫓다보니 사물의 구조보다는 외형의 추구에
몰두하는 경향이 컸었습니다.
세쟌이 이들 인상파화가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는 그리고 후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기본적인 구조성에 집착하였다는 겁니다.
그의 정물 그림을 보면 하나하나의 사물이 정학히 단단한 구조로 표현된걸 느끼실 겁니다.
동시대인 고흐나 고갱이 심정적인(감정적인) 긂의 선구자로 후의 야수파 또는 표현주의에 영향을 끼쳤다면
구조성에 충실했던 세쟌이 입체파등에 영향을 미친 것은 자연히 이해가 되실 겁니다.
<19세기에 시작된 낭만주의는 사실주의로 넘어가서 후기에는 인상주의로 변화됨. 그중에서도 세잔느 같은 인물은 피카소 같은 입체파(큐비즘)에게 영향을 주게 되고 또한 원통,원추,구 같은 표현 기법은 몬드리안 같은 화가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침. 일견 차갑게 보일 수도 있는 표현 기법은 사물의 가장 단순한 면을 포착해 내려는 집념을 버리지 않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