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일 월요일 비, 흐림, 맑음
오늘의 일정이 좀 빡빡하고 무리일 것 같다. 데카포에 마운트 쿡까지 가서 퀸즈타운에 도착해야한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준비를 했다. 아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지진이 일어났다. 짐을 정리하는데 갑자기 바닥이 공중에 뜬것같이 흔들려 중심을 겨우 잡아 벽에 기대어 섰다. 옆에 있는 가구들도 흔들린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생각이 든다. 몇 초간의 흔들림이지만 50여년을 살아온 삶에서 처음 겪는 일이라 놀랍다. 신기하고 두렵다. 아내도 놀라서 들어왔다. 이런 것이 지진이구나.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진한 체험이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태연하다. 소세지와 밥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 6시 40분에 숙소를 나섰다.
①번 도로에 차를 얹어 달려간다. 신년이라서 인지 차들이 별로 없다. 비가 내린다. 구름이 잔뜩 껴서 앞에만 보이고 주변이 흐릿하다. 내륙으로 한 시간 정도를 달려가니 산과 들만 보이는데 그래도 시야가 답답하다. 이름 모를 꽃들이 길가에 잔득 피어있다. 날씨가 좋아지니 꽃들도 예쁘다. 이름 모를 꽃들은 종류는 한가지인데, 색상은 다양하다. 연보라색이 제일 많고, 분홍색, 노란색, 흰색 등 다양하다. 잠시 차를 세워 사진을 찍었다.
우리의 처음 목적지는 타우포다. 거의 3시간이 걸려 타우포 호수에 도착하였다. 언덕을 넘어 내리막길에서 눈 아래 펼쳐진 호수를 보니 정말 보석같이 아름다웠다. 마운트 쿡 기슭에 펼쳐진 고원지대를 매켄지 컨트리 라고 한다. 그 중심이 되는 곳이 인구 1000명도 안 되는 작은 마을 데카포다. 여름에는 수상스키나 윈드서핑, 겨울에는 스케이트나 스키 등의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빈다.
이 호수는 뉴질랜드 남 섬에 흩어져 있는 많은 다른 호수들과 마찬가지로 빙하기의 자취라고 한다. 그 물빛은 밀키 블루라고 형용하는 것처럼 매우 독특하다. 빙하에서 흘러나온 물에 주변의 암석 성분이 녹아들고 그 물이 호수로 흘러들어 태양 빛과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낸 환상적인 색깔이다. 이 일대는 매켄지 하이드로 파크 하고 불리는 뉴질랜드 최대의 수력 발전 지대이다. 데카포 호수를 비롯하여 모두 6개의 호수(그중 2개는 인공호수)는 수로로 연결되며 각 호수 사이의 낙차를 이용하여 수력발전을 하고 있다. 서던 알프스에 둘러싸인 이 호수 풍경은 뉴질랜드의 대표적인 경관의 하나로 그냥 지나쳐 버리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아름답다. 우리는 바운더리 개 동상이 보이는 곳에 차를 세웠다.
이 개는 개척시대에 바운더리 개라고 불리는 이름 그대로 방목지의 경계선(Boundary)을 지키는 역할을 했다. 그 당시 산간의 방목지에서는 충분히 울타리를 칠 수 없었고, 울타리가 없는 부분은 이 개들이 지켰던 것이다. 개에게 작은 오두막을 주어서 그곳에서 한 마리씩 지내면서 길 잃은 양을 데리고 오거나, 목장주가 가지 않은 곳을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또한 상처를 입은 양치기를 도와주고 밤에는 그 위에 엎드려서 따듯하게 해 주는 등 양치기를 보살피며 친구 같은 충성스러운 역할을 한 것은 전설적이기도 하다. 이 동상은 그들의 헌신적인 활약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것이란다. 맥켄지 컨츄리에 사는 한 농부의 아내가 은퇴 후 런던에서 주문을 하여 만들었으며 동상에는 '개가 없었다면 목장을 운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개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한다'라고 새겨져 있다. 기념촬영은 필수다. 사진을 찍고 호수로 내려갔다. 물 색깔이 정말 멋진 파랑이다. 하늘 보다 조금 여린 색인데 느낌이 하늘과 호수가 같다. 그러나 가가이가서 보면 뿌옇다. 맑은 물이 아니라 실망스럽다. 멀리서 보면 환상적인 미인인데 가가이서 보면 말고 깨끗지 않은 할머니 같은 호수다. 머리통 보다 큰 돌들이 호숫가에 가득하다. 예쁜 돌을 찾다가 큰 바위위에 앉아서 폼을 잡아본다. 시원하게 펼쳐진 호수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호수에서 놀다가 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돌 사과나무가 탐스러운 열매와 함께 늘어져 있다. 사과 하나를 다서 씹어보니 신맛이 입안 가득하다.
차를 몰고 아래에 보이는 착한 양치기 교회 앞 주차장에 세웠다. 데카포의 풍경으로서 너무나도 유명한 것이 호반에 세워진 교회다. 이 교회는 성서에도 나오는 선한 목자(The Good Shepherd)와 이름이 같다. 개척 시대 양치기들의 삶을 기념하려는 개척민의 손에 의해서 1935년에 세워진 것이다. 교회 내부의 제단위에 있는 창으로 보면 호수와 뒤편에 펼쳐지는 서든 알프스 산맥이 만드는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고 하지만 재단 뒤에 있는 창문 앞의 작은 십자가가 더욱 인상적이다. 미국 그랜드 티톤 국립공원에 있는 작은 통나무 교회(Chapel of the transfiguration)의 제단 뒤, 창에 있는 십자가와 같은 느낌이다. 또 창으로 보이는 티톤 산맥과 모습이 너무 흡사하다.
교회와 주변을 둘러본다. 돌로 단단히 지어진 작지만 튼튼해 보이는 교회다. 작은 종을 품은 종탑도 견고해 보인다. 주차장 건너편에는 댐이 있어 호수의 물의 진입을 조절하고 있다. 정말 멋진 장면들이다. 데카포 호수 일대는 메켄지 컨트리라고 불리는 평지와 산지를 고루 갖춘 지역이다. 이 메켄지의 이름은 개척시대의 양 도둑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남자는 스코틀랜드에서 건너온 목부로 1854년 무렵에 켄터베리의 오타고 지방에 정착해 살게 되었다. 이 일대에는 마타고우리 라고 하는 사람의 키 정도 되는 가시나무가 무성해서 걷기에도 매우 곤란 했다고 한다. 메켄지는 그 나무들을 개간하여 양을 기르기 시작했고 그 수효가 점점 늘어 갔다. 주변의 목장 주들은 자신들의 양이 점점 줄어드는 것에 의심을 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메켄지가 양을 훔치는 현장을 잡았던 것이다. 그에게는 프라이디 라는 이름을 지닌 우수한 목양견이 있었는데, 짓지 못하도록 혀를 잘랐다고 한다. 메켄지는 투옥된 후에도 탈주를 반복했고, 마침내 뉴질랜드를 떠나 호주로 갔다고 전해진다. 메켄지는 양을 키우면서 이 지역에 대한 상세한 기후환경과 토질, 목초지 등의 상세내역과 양의 종류와 키우는 방법 등을 기록했다고 한다. 훗날 이 기록이 세상에 알려지고, 그 기록을 다라서 초지조성, 양의 번식으로 마을이 번성하고 잘 살게 되었단다. 지금까지도 그 기록에 의해 양을 치고 있어 그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명명했다고 한다.
데카포 관광의 기점이 되는 버스 정류장 앞으로 차를 몰아서 다음 목적지 푸카키 호수로 향했다. 초원의 길을 달리는데 날이 맑아져 햇살이 비친다. 초원이 빛이 난다. 11시 정도에 푸카키 호수에 도착했다.
푸카키 호수는 댐을 만들어 물을 저장한 인공호수다. 마운트 쿡을 중심으로 한 서든 알프스에서 흘러 내려오는 빙하 녹은 물을 저장한 거대한 호수다. 호수 면적은 여의도의 111배인 178.7㎢, 수면의 해발 532m에 위치한다. 호수와 평행하게 위치하는 3개의 고산 호수(테카포 호수와 오하우 호수) 중에서 두 번째로 큰데 3개의 호수는 모두 빙하 호수로 후퇴하는 빙하가 각각의 골짜기를 터미널 모렌으로 막는 것에 의해 건축된 모렌 댐 호수다.(모렌=빙하가 밀어낸 바위와 모래의 퇴적물) 빙하에서 공급된 강물은 이 호수에 빙하 분말(빙하에서 극도로 잘게 부서진 암석 가루)에 의해 생성된 독특한 청색을 보여준다. 이 호수는 아오라키 마운트 쿡(3755m)에서 발원하는 타스만 빙하와 후커 빙하를 거쳐 타스 강, 후커 강에 의해 북단에서 물이 공급되고 있다. 호수 끝에 펼쳐지는 우뚝 솟은 설산의 경관은 끝내준다.
커다란 바위들로 만들어진 댐 위에 차를 세워두고 내려서 호수를 바라보니 엄청 넓다. 하늘색 호수는 너무 환상적인 색상이다. 그 크기에도 입이 벌어진다. 아쉬운 것은 호수 끝에 보이는 서든 알프스의 눈 덮힌 만년설을 갖고 있는 산이 보이지 않았다. 흰 구름이 낮게 깔려 가리고 있다. ⓘ도 있지만 문이 닫혀 있고 옆에 예쁜 화장실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사진을 찍고 소중하게 풍경을 마음속에 담았다.
12시가 좀 넘었다. 마운트 쿡을 향해 달려간다. 여기서부터 56km라고 이정표가 보인다. 호수를 오른쪽으로 끼고 하얀 설산을 향해 달려간다. 가는 길이 시원하게 잘 뚫려있다. 멋진 경치가 정면과 좌우에 펼쳐진다. 특히 정면에 영화처럼 이어지는 설산의 산맥들이 감동적이다. 초원을 달리는 앞 차도 멋지다. 해발 3755m 라는 최고의 높이로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봉우리가 마운트 쿡이다. 이 산을 중심으로 하여3000m 가 넘는 18개의 봉우리와 골짜기를 메우는 수많은 빙하에 의해서 형성되는 서던 알프스 산맥은 실제로 남반구의 알프스라는 별명이 무척 어울린다. 그러나 산악지대 특유의 불안정한 기상 때문에 그 웅대한 모습을 확실하게 보려면 이에 따른 행운이 필요하다는데, 맑은 날로 인해 우리는 행운아가 되었다.
차를 ⓘ건물 뒤편에 주차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의 동상이 마운트 쿡 산을 바라보고 있다. 함께 사진을 찍었다. ⓘ에는 눈 위를 다니는 차도 전시되어있고 등산장비들도 있다. 흑백 사진과 칼라 사진이 등산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식당도 있고 기념품 가게도 있어 제법 넓다. 지도 한 장을 받아들었다. 후크벨리 트레킹과 타즈만 빙하를 둘러보는 주차장을 안내받고 나왔다. 날씨가 맑아 올려다보는 하얗게 솟아있는 봉우리는 감동적이고 우리를 오라고 초대한다. 불행히도 마운트 쿡의 정상 부근에서는 1991년 12월에 대규모 눈사태가 발행했다. 그 결과 산봉우리의 고도가 11m나 낮아져 버렸다. 지금도 일부 지도 등에 해발 3764m 라고 표기가 남아있는 것은 그 때문이란다. 영화 파라마운트사가 제작한 영화 시작 장면에 나오는 하얀 설산에 별들이 빙글 돌아가는 멋진 장면의 산이 바로 쿡 산이다. 우리는 후커 벨리 트랙을 걷기로 했다. 차를 타고 출발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일단 차 안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침식사와 같이 소세지, 짠지로 잔뜩 식사를 했다. 목적지는 Hooker Glacier Lake 까지 갔다 오는 것이다. 길은 잘 만들어져 있어 걷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 뜨거운 태양이 좀 부담스럽지만 이렇게 맑은 날,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복이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많다. 출발하니 오른쪽에 버티고 있는 Mt. Wakefield 에 의해 쿡 산의 모습이 가려져있고, 왼편에 하얗게 만년설을 이고 있는 Mt Sefton이 우리를 반겨 준다. 이 산에서 흘러내리는 빙하에 의해 만들어진 호수가 Mueller Glacier 호수다. 회색빛 호수가 외계에 온 기분이다. 전망대에 올라보니 우리가 건너야 할 첫 번째 다리가 눈 아래 보인다. 뒤를 돌아보면 U자형 평원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다리를 향해서 걸어간다. 지리산 계곡 물 같이 격류가 흐르는 냇가 위에 설치되어 있는 쇠줄 다리다. 별로 흔들림이 없이 건너간다. 산기슭을 걷다가 보니 또 다리가 보인다. 계곡을 이어서 2번째 다리는 더욱 스릴이 있게 암벽에 붙여 만들어져 제법 흔들린다. 물이 거칠게 흘러 두려움이 생긴다. 두 번째 다리를 건너니 드디어 쿡 산의 정상이 보인다. 정말 멋지다. 산 정상부근에 쌓여 있는 눈의 모습이 사람의 얼굴같다. “산 할아버지 구름모자 썼네” 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세 번째 작은 다리를 건너 사람들은 멈추기도 한다. 우리는 더 걸어가기로 했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길에 판자로 곱고 길게 걷는 길을 만들어 놓았다. 주변에는 거칠고 험악한 지형과 기후에 견디는 강한 풀들만이 자라고 있다. 예쁜 꽃들도 작게 피어있어 아름답다. 드디어 후커 빙하 호수에 도착했다. 회색빛 호수 끝에 빙하의 모습이 검은 흙을 뒤집어쓰고 있다. 더 가고 싶지만 참았다. 타즈만 빙하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초록 벌판에 계곡이 험하고 바위와 어우러진 험한 산이 별천지를 만들어 놓고 있다. 힘들게 찾아 온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선물 같다. 걷기를 참 잘했다.
이번 여행에서 아마 최고의 감동이 될 것 같다. 뉴질랜드 여행의 제일 감동이다. 마운트 쿡을 그 자리에 놓고 등지며 헤어져 내려오기가 정말 아쉬웠다. 돌아서 오는 발걸음은 무척 가볍다. 산의 정기를 가득 받은 탓이겠다. 사진을 찍으며 여유 있게 돌아온다. 다리 3개를 건너고 오가는 사람들과 인사도 하고 , 가끔 쿡 산을 뒤돌아보기도 하며 걷는다. 사진을 찍으러 풀밭으로 조금만 들어가도 가시에 찔려 비명을 지른다. 주차장 가까이에 와서 Alpine Monument에 잠시 올라가 마지막으로 쿡 산을 보며 작별을 고했다. 참 멋진 장면이다. 왕복 3시간이 걸렸다.
주차장에서 다시 차를 몰고 Tasman Valley로 향했다. 자갈길이 시작된다(Gravel Road). 먼지가 펄펄 나는 비포장도로다. 차가 고장 날 까 걱정이 되었지만 가는데 까지 가기로 했다. 산허리를 넘어가는 길이 꾸불꾸불하고 좁아 좀 불안했다. 주차장 까지 거의 4km 되는 것 같다. Tasman Glacier View 까지 15분, 블루 호수까지는 10분, 호수와 강까지는 25분이 걸린다고 써 있다. 생각보다 시간이 적게 걸린다. 차를 세워두고 길을 따라 돌산을 올라간다.
먼저 블루 호수로 방향을 잡았다. 왼편에 호수가 초록색으로 3개 이어져 있다. 작지만 보석처럼 빛이 난다. 처음에는 하나만 보이지만 돌산을 오르면 3개가 보인다. 계속 오르니 눈앞에 예상치 못한 낯선 세계가 펼쳐진다. 회색빛 호수에 빙하 덩어리가 몇 개 더 있다. 호수 끝에는 설산에 검은 흙들이 잔뜩 쌓여있다. 생명체라고는 보이지 않는, 살 것 같지도 않는 좀 두려운 모습이다. 마운트 쿡 주변에 몇 개의 빙하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은 이곳 테즈만 빙하란다. 이 빙하를 무대로 행해지는 빙하스키 타기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유명하다. 해발 2400m의 테즈먼 산을 출발하여 도중에 풍경을 즐기며 10km, rm 이상을 내려가는 ‘스키소풍’이라는 멋진 스키 할강은 각 나라 스키어들의 꿈이란다.
커다란 바위 위에 앉아서 회색빛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묘한 감정이 생긴다. 참 특이한 장면이다.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처음 보는 자연 환경이다. 잠시 후에 아쉽지만 바위산을 내려온다. 조심스럽게 내려오며 고개를 들고 쳐다보는 경치도 멋지다. 펼쳐진 벌판 끝에는 푸카키 호수가 보이고 양 옆에는 높고 험한 산들이 U자를 만들고 이어진다. 참 시원한 풍경이다. 주차장에 금방 도착했다.
다양한 트래킹이 있지만 이것으로 마무리하고 숙소가 있는 퀸즈타운을 향해 달려가기로 했다. 엄청 먼 길을 달려 가야한다. 마음이 흡족하다. 비포장 길을 달려가려니 좀 걱정이다. 멀리 흙먼지를 날리며 차 2대가 달려가고 있다. 우리도 출발이다. 다행히도 마주 오는 차가 없어서 흙먼지를 뒤집어쓰진 않았다. 그래도 차가 흙으로 덮여버리고 말았다. 마운트 쿡을 뒤로하고 이제 남쪽으로, 남쪽으로 달린다.
아직도 아쉬움이 있어 푸카키 호수에 다시 들어가 차를 세웠다. 오전에 구름에 가려 보지 못했던 호수 끝의 마운트 쿡이 선명하게 보인다. 정말 멋진 모습이다. 이제 퀸즈타운으로 달려갈 일만 남았다. 오후 4시 30분이다. ⑧번 도로를 달린다. 호수가 또 보인다. 송어 양식장이 있다. 통행하는 차량이 별로 없다. 차를 만나면 반가울 정도다. Twiz 마을을 지나 Omarama까지는 도로가 좋다. 굴곡 없이 거의 직선도로이다. 앞에 현대차가 한 대 달려간다. 기분 좋게 따라갔는데 Omaramadptj 다른 길로 가버린다. 아쉬웠지만 우리는 대신 산길을 만났다. Lindis Pass라는 해발 934m 높은 산길을 넘어간다. 나무가 거의 없는 민둥산이다. 연료가 부족할 것 같아 마음 졸이며 산을 넘어간다. 드디어 연료 게이지에 바닥이 났다. 마을을 기대하고 달려보지만 좀처럼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 힘들게 산을 넘어가니 Tarras라는 작은 마을이 나오는데 주유소가 없다.
지도를 살펴보니 Cromwell이라는 마을이 다음인데, 연료게이지에 경고들이 들어왔다. 일반적으로 경고등이 들어오면 평균 40km는 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걱정하며 달려간다. 오른쪽에 강이 보이고 멀리 다리가 보인다. 자세히 바라보니 다리 건너에 주유소 표시가 보인다. Cromwell이다. 저기까지만 가다오!!!!! 기도하는 마음으로 차를 몰아 우회전하여 다리를 건너고 마을에 들어서 좌회전! 드디어 주유소다. 다른 곳에 비해 가격이 좀 비싸지만 가격을 논할 처지가 아니다. 아내는 비싸다고 조금만 넣자고 한다. 그냥 듬뿍 풀로 넣고 아내와 사소한 분쟁이 시작되었다. 운전을 하지 않는 아내가 어찌 속 타는 운전자의 마음을 알랴. 전에는 얌전히 잘 따라 다니 던 아내가 요즘은 제법 테클을 건다. 역시 돈을 쥐고 있으니 파워가 생기나보다.
가까이 있을 것 같은 퀸즈타운이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험한 산을 넘어간다. 오래되고 굴곡이 심한 좁은 길이라 속도를 낼 수 없다. 멋진 계곡을 만나 잠시 차를 세웠다. 경사 급한 산으로부터 떨어지는 폭포를 보고, 암벽 계곡 사이로 급하게 흐르는 급류를 구경한다. 시퍼런 물이 하얗게 부서진다. 차를 다시 몰고 간다.
험한 계곡을 넘어가니 퀸즈타운으로 들어선다. 옆에 커다란 호수를 끼고 산허리 경사면을 달려간다. 퀸즈타운의 첫인상은 이름은 멋진데 살기 불편한 경사면에 자리 잡은 답답함이 느껴지는 도시다. 평지라고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앞에는 큰 호수가 뒤에는 험한 산이 버티고 있어 소통이 어려워 보인다. 차를 몰고 시내로 쑥 들어가 한가한 곳에 일단 차를 세웠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우리 같은 관광객 차림이다. 길을 물으니 아가씨가 친절하게 알려준다. 실수함 없이 차를 몰아 숙소 앞에 차를 세웠다. 체크인을 하고 하루 더 묵을 수 없냐고 알아보니 방이 없단다.
그때 나타난 한국 청년, 초등생 20여명을 데리고 이곳에 머물고 있단다. 뉴질랜드로 어학연수를 온 아이들을 안내하는 도우미 아르바이트생이다. 우리의 사정을 듣고 숙소를 찾아주려고 현지인을 데리고 와서 컴퓨터를 검색하며 도와주려고 했으나 결과는 방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짐을 풀어 놓고 모레 숙소를 인터넷을 통해 다시 이곳을 예약했다. 내일 숙소는 내일 진행되는 곳에서 구해보기로 했다. 최악의 상태는 또 차에서 자면 된다.
숙소에서 간단히 밥을 해서 먹었다. 방은 따로 인데 주방은 함께 쓰는 집 구조다. 밥 두 개자리 콘도 스타일이다. 오늘은 정말 진하게, 길게 여행을 했다. 체험도 많이 했고, 들린 곳도 많고, 일어난 사건도 여러 가지고 이동도 많이 했다. 고마운 것은 낮의 길이가 생각보다 길다는 것이다. 지진체험에, 빙하체험, 연료 부족으로 인한 애태움이 기억난다. 설산의 정경과 보석 같은 호수에 회색빛 빙하 호수 등 모두가 신기하고 멋진 구경거리다.
열심히 따라준 아내가 고맙다. 여행도 함께 건강해야 다닐 수 있다는 것을 깊이 느끼게 한 날이다. 잘 걷고 잘 먹고 잘 자는 아내가 있어 든든한 힘이 된다. 가끔 오버하는 곳에서 제동을 걸어 다툼이 일어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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