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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반도 크로아티아 여행가10 (이경우)-- 아드리아해의 진주 두브로브닉

작성자(睦園) 박이환|작성시간16.04.28|조회수204 목록 댓글 0

                          

2011년8월 6일 금요일 맑음

 

     아침 일찍 눈이 떠진다. 벽에는 성화사진이 걸려있다. 오래된 흰색 가구가 방과 어울리지 않게 버티고 있다. 오래된 건물이라서 천장이 높다. 짐을 정리하고 아침 7시에 숙소에서 나왔다. 주인은 잠을 자는지, 아니 계시는지 조용하다. 

     버스 터미널이 있는 부두를 향해 내려간다. 막 도로변의 가게들이 문을 연다. 동문 옆에 있는 야채시장은 벌써 사람들로 붐빈다. 과일과 채소들이 싱싱하다. 복숭아를 샀다. 방학ㄷ이라서인지 학생 같은 아가씨들이 많이 물건을 팔고 있다. 분위기는 싱싱한 과일만큼 활기차 보인다. 부두가 벤치, 바다를 향해 있는 의자에 앉아서 아침식사를 한다. 메뉴는 삶은 달걀과 복숭아다. 밥을 먹어본지가 오래된 것 같다. 늘 먹던 밥과 김치도 맘으로 포기하고 보니 생각나지 않는구나. 작은 부양선이 한척 들어와 사람들을 엄청 내려놓는다. 왼쪽 부두에는 거대한 유람선이 도착하더니 차와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커다란 가방을 들고 사람들이 시내로 사라져간다. 참 많이 들어온다.  

     버스터미널로 갔다. 두브로브닉 행 버스는 8시에 출발한다. 12시에 도착예정이다. 한국인 아가씨 3명을 만났다. 어젯밤 기차로 새벽에 이곳에 도착했단다. 한국 사람을 만나니 반갑다. 버스는 예정시간에 정확히 출발한다. 스플릿을 서서히 빠져나가니 좀 아쉽다. 예상치 못한 편안함을 준 도시다. 살면서 많이 기억될 도시다. 바닷가의 낭만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건설장비가 보이는 삶의 현실적인 모습이 보이는 거리를 지난다. 사람 사는 곳에는 늘 교회가 보인다. 오른쪽에 바다를 품고 있지만 왼쪽에는 경사가 급한 거대한 회색 암벽 산이 삶의 환경을 고달프게 하는 거친 지형이다. 바다와 암벽 거대한 두 자연 환경 속에 비좁게 사람들이 살고 있다. 집들은 산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문과 창문을 만들었고 테라스도 만들었다. 줄지어 사진 찍듯이 겹겹이 집들이 이어져 있다. 거친 지형이라 나무도 드물다. 도로변에는 간간히 오래된 종려나무가 건강하게 단단히 서있다. 산을 보면 막혀 답답한데, 바다를 보면 너무 멋지고 시원하다.  

     Omis 라는 마을을 지난다. 작지만 멋진 마을이다. 거친 바위산 절벽위에 성터의 흔적이 있고 깊고 푸른 바다가 내륙으로 들어와 있다. 요트도 정박해 있고 슈퍼와 노천카페가 길 따라 펼쳐져 있다.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휴양지 느낌이다. 차는 더 달려가 Makarska 마을에 들어간다. 버스터미널에 선다. 내려서 화장실에 가려니 요금이 3kr이다. 내일 가려는 모스타르 행 버스 시간표가 눈에 들어온다.    

    차는 또 달린다. 바다에 떠 있는 긴 섬, HVAR 섬이 보인다. 호수인지 바다인지 모르는 예쁜 호수들이 길가에 펼쳐진다. 절말 멋지다. 렌터카 여행을 하면 좋을 것 같다. POLCE 라는 마을에 잠시 선다. 주유소의 기름 값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것 같다. 넓은 벌판이 나온다. 답답한 돌산과 함께 달려오다 벌판을 만나니 좀 시원하다. 아드리아 해안의 독특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노르웨이 피요르드 해안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국경이 나온다. NEUM 국경 검문소다. 여권검사를 한다. 여기서 부터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다. 보스니아의 유일한 해안지역이다. 레스토랑에 잠시 멈췄다. 운전기사가 점심을 먹는다. 우리는 미리 산 말린 자두로 점심을 대신했다. 절벽위에서 내려다보는 해안 풍경은 정말 시원하고 멋지다. 태양 볕이 뜨겁다. 그늘이 찾아진다. 여기 식당의 화장실은 공짜다. 깨끗하다. 차는 또 출발한다. 또 국경이다. 차가 많이 밀려있다. 다시 크로아티아로 넘어간다. 소금생산지로 유명한 STON 을 지나간다. 해안가의 경치가 끝내준다. 리아스식 해안인가? 

     드디어 커다란 다리가 나온다. 이 지역은 참 특이하다. 크로아티아라고는 하지만 본국과 떨어진 DUBROVNIK 에 들어선다. 크로아티아는 아드리아 해안에 남북으로 길게 해안선을 갖고 있다. 해안선의 길이는 1778km 이며 섬까지 포함하면 5790km 에 이른다. 대부분의 해변은 모래보다는 커다란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바다의 섬들은 그리스 섬들처럼 예쁘다. 1185개의 섬들 가운데, 66개의 섬에만 사람이 산다.  

     드디어 두브로브닉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12시 도착 예정인데, 오후 1시 30분에 도착했다. 민박집 호객꾼들이, 숙소를 소개하는 삐끼 아주머니들이 몇 명 보인다. 들고 있는 종이에는 'sobe' 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는 호텔보다는 sobe(민박집)에서 묶는 게 운치가 있단다. 구시가지 밖 플로체지역 언덕 숙소에 묵으면 성곽과 아드리아해가 한눈에 담긴다. 숙소에 누우면 옥상에 걸려있는 흰 빨래들이 보이고 새소리와 종소리가 들리고 창 너머로 바다의 시원한 바람에 가슴이 먹먹해 진다고 ....... 

     한국 아가씨 3명이 호객꾼 아주머니를 따라간다. 숙소가 맘에 들면 데리러 온다고 했는데, 소식이 없다. 숙소가 맘에 들지 않나보다. 내일 아침에 출발하는 모스타르 행 버스표를 에매했다. 87.30 쿠나 다. 기다려도 아가씨들이 나타나질 않아 그냥 숙소를 찾기로 했다. 터미널에서 호객꾼 아저씨를 만났다. 가경을 물으니 좀 비싸다. 소문대로 숙박비가 장난이 아니다. 구시가지 성안의 작은 아파트가 160유로다 하룻밤에 25만 원 정도다(한국인 여러 명이 함께 묶고 있어 알게 됨) 구시가지 부근은 80유로, 외곽은 40유로다. 우리는 외곽을 선택했다. 아저시가 살고 있는 곳은 BABINKUK 지역이다. 낡은 미니밴을 타고 민박집으로 왔다. 방은 많이 있다. 골라서 2층 전망 좋은 곳을 택했다. 테라스에 나오면 바다와 다리와 터미널이 보인다. 약간 오래된 집이지만 포근한 느낌이 든다.    

     짐을 대충 풀어놓고 구시가지 구경을 하기로 했다. 주인장의 안내로 구시가지에 가는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돌아오는 길이 걱정되어 아내와 다시 한 번 걷던 길을 확인했다. 6번 버스를 타고 올드 시티로 향했다. 버스에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 옛날 우리나라 만원버스가 생각날 정도다. 승객들은 대부분 관광객이다. 버스비는 10 쿠나 다. 걸어가도 될 법한 거리다. 워낙 뜨겁고 지리를 몰라서........ 올드시티 입구에서 모두 내려 수월하다.

 

     이런 상상을 한다. 바다위에 성이 떠 있고, 그 성벽 위를 걷는 상상. 두브로브닉 에 오면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된다. 두브로브닉 의 별칭이 ‘아드리아 해의 진주’ 다. 올드시티는 바다를 바라보고 튼튼한 성벽에 둘러싸인 채,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그 아름다움을 지키려고 유고 내전 당시에는 유럽의 지성들이 인간 방어벽을 만들어 성의 폭격을 막기도 했단다. 13세기 무렵부터 형성되었고, 17세기 무렵에는 지중해에서 그 위상을 떨쳤다. 철옹성 같은 두터운 성벽은 후손들 입장에서 보면 큰 보물이다. 옛것을 고스란히 보존하는 차단막이 되었고, 유럽인들이 동경하는 최고의 휴양지로 자리매김 했다. 버나드 쇼는 ‘진정한 낙원을 원한다면 두브로브닉 으로 가라’ 는 말을 남겼다. 돈 많은 부호들에게는 낙눤일런지 모르지만 가난한 여행객에게는 맛만 보고 발리 벗어나야 할 관광라는것이 아쉽다.  

     구시가지 전체는 1976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도시의 초기 계획은 1292년의 화재이후에 항구를 다시 지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1200년대에는 라구사의 라틴 섬과 두브로브닉 의 숲속 거주지를 나누어주는 습지대였던 계곡을 따라 이곳의 주 도로 인 스트라둔 이 쭉 뻗어있고, 그 양옆에는 후기 르네상스양식으로 지은 아름다운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두브로브닉 은 세르보크로아티아어 로 작은 숲(dubrava)을 뜻한다. 분쟁과 고난과 질곡의 역사 속에서도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던 발칸반도다. 종교와 민족 간의 끊임없는 갈등 속에서 살아남은 아드리아 해의 진주는 1991년 시작된 내전으로 30%가 파괴되었다. 유네스코의 지원으로 복구되었다. 거의 석회암이 드러나 보이는 스르지 산 아래쪽에서 바다로 튀어나온 곶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이 항구의 해안 성채가 바닷가에 우뚝 속아있으며 거대하고 둥근 탑이 육지 쪽에서 이 도시를 굽어보고 있다. 로브라예나체 요새가 보인다. 성벽 입구에 있다.  

     두브로브닉 여행의 핵심은 구시가지를 탐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구시가지를 들어가기 위해 14~16세기에 만들어진 팰레문으로 들어갔다. 팰레는 문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왔단다. 들어가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대리석으로 포장된 플라차 대로이고, 왼쪽에 돔 형태의 오노프리오 분수대이다. 분수대는 Oriofrio dela cava 라는 사람이 만들었단다. 1438년 수도 사업 완공기념으로 만든 것이다. 20km가 넘는 곳에서부터 수로를 통하여 공급받은 물을 나누어 주는 곳이다. 16개의 물구멍에선 여전히 물이 나온다. 지금은 관광객들의 쉼터가 되었지만 1991년부터 1994년 까지 벌어진 세르비아와의 전쟁당시 이 분수대는 두브로브닉 사람들에게 생명수를 공급했다. 분수대에는 아직도 적지 않은 총탄 자국이 남아있다.  

     대리석으로 포장된 약 200m 길게 뻗은 중앙 도로가 플라차 대로?또는 스트라둔이라 불린다. 양옆에는 은행, 카페, 여행사, 상점과 레스토랑 등이 가지런하게 늘어서있다. 한때 운하였다가 매립된 중앙로의 대리석 바닥은 오랜 흔적으로 반질반질 해져서 미끄러울 정도다. 분수대 반대편에는 프란시스코 수도원이 있고 그 안에 1391년 이래 운영되어온 약국이 있다. 대로를 걸어간다. 사람들이 아주 많다. 복장도 표정도 다르지만 백인으로 우리 눈엔 모두 같아 보인다. 유색인종은 보이질 않는다. 이 도로는 구시가지의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고 있다. 양쪽 끝에는 예쁜 건물이 있다. 천천히 걸어서 종탑 앞에 섰다.  

     이곳이 루자 광장이다. 아름다운 이탈리아 바로크 풍의 성 블라이세 교회와 1441년에 세워진 고딕 양식의 수도원장의 관저가 있다. 관저는 지금 가구가 비치된 방들, 바로크 회화, 역사 전시물 등이 있는 박물관이 되었다. 올드시티의 상징이 시계탑이다. 도시의 수호성인인 성 블레이세 성당 입구에는 그의 조각상이 있다. 오른편 건물은 구 시청사이고 거리 맞은 편 막다른 건물은 스폰자 궁전-세관이다.

 

     일단 우리는 성탑에 오르기로 했다. 루자 광장 뒤편의 계단을 이용해서 성벽을 오른다. 대부분 팰레문 입구 옆에 있는 프란시스코 수도원 옆 성벽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간다. 입장료는 10유로다.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은 사각형으로 길이 2km, 폭 4~6m(실제 한사람이 걸어가면 될 만큼 좁다), 높이 25m 에 이른다. 성벽위의 길을 다라 한 바퀴 도는데 2~3 시간이면 충분하다. 두브로브닉은 한 주교가 자신의 거룩한 이상을 구현하기위해 의도적으로 계획하고 세운도시다. 이 유적도시는 아직도 사람들이 생업에 종사하며 조용히, 천년의 세월이 조금도 다름없이 살고 있다. 중세 시대대는 두브로브닉은 라구사 공화국의 한 도시로 베니스에 버금가는 부유한 도시였다. 그 당시 해상 무역으로 축적한 어마어마한 부와 뛰어난 외교정책이 이곳의 번영을 뒷받침 해 주었고 아드리아 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도시로 만들었다고 한다.  

     상당히 깔끔하고 잘 정돈된 느낌이 묻어나는 도시다. 16개의 탑이 각각의 모양으로 성의 중후감을 더해주고 있다. 유럽문명의 상징이며 진정한 낙원이라는 수많은 수식어가 붙어있는 도시다. 시가지 전체가 박물관처럼 보인다. 과거 군사들의 순찰로 로 이용했던 성벽 위 길이다. 작은 항구가 보이고 작은 배들이 많이 정박해 있다. 성내를 보면 온통 오렌지 색 지붕이다. 탁 트인 바다가 있는 성 밖의 경치와 대조적이다. 석회암이 드러나 보이는 스르지 산이 눈앞에 있는데, 산 정상까지 케이블카가 오르내린다. 산 정상에는 커다란 십자가가 보인다. 성 바로 밑에는 좁은 도로가 경사져 있는데, 작은 승용차들로 도로가 곽 막혀 차들이 움직이질 않는다.  

     이 성은 좁은 공간에 세워져 있다. 앞에는 바다, 뒤로는 산이다. 바다로 뻗어있는 바위위에 견고하게 세워져있는 성벽이 인상적이다. 성벽 위 걷기는 이곳만의 특별 선물이다. 성벽 위에서 성안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도르레를 이용한 빨래 줄이 공간 사이를 이어준다. 테라스에 심겨진 포도나무도 제법 굵게 자라고 있다. 창가에는 예쁜 꽃들이 한창이다. 성벽 위를 걸으며 바라보는 맑고 깨끗한 아드리안 해의 코발트빛 푸른 바다는 정말 인상적이다. 어디서 보아도 바다 깊숙한 곳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이곳 해안은 전 세계인이 사랑에 빠지기에 충분하다. 유럽에서 비교적 물가가사다고 알려진 크로아티아 임에도 불구하고 이곳 물가는 장난이 아니다. 특히 숙박비는 놀랍다. 이정도 아름다움을 감상하기에 흔쾌히 지불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성벽을 따라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반시계 방향으로 돈다는 것은 비슷하지만 걷는 모양은 가지가지다. 우리 앞에는 힘겹게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밀고, 들어올리고, 들어 내리며 쉬지 않고 움직이는 젊은 부부가 간다. 멈춰서 사진 찍고 또 간다. 반을 돌아 팰레문 앞에 도착하니 성과 외부를 이어주는 다리가 보인다. 성탑에는 크로아티아 깃발이 선명하게 휘날린다.  

     크로아티아 국기는 붉은색, 흰색, 파랑색이다. 가운데 있는 문장은 크로아티아의 국장으로 은색과 붉은색의 체크 문장이다. 붉은색과 흰색의 체크 문양의 문장은 16세기 크로아티아 왕국의 상징이었다. 1500년대 최초로 사용되었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다가 2차세계대전중에 다시 사용되었다. 다섯 가지 문장은 크로아티아의 각 지방을 의미 하는데, 왼쪽부터 구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닉, 달마티아, 이스트리아, 슬라보니아 지방을 의미한다. 원형의 구멍이 뚫린 오노프리오 분수대를 보니 또 다른 맛이다. 길게 펼쳐진 플라차 대로에는 형형색색의 옷을입은 사람들이 거울같이 빛나는 대리석 바닥을 걷는데, 곡 얼음 위를 걷는 것 같이 빛난다. 이제 반을 돈 것 같다.     

줄 맞추어 앞사람을 따라간다. 내륙으로 들어온 작은 바다에는 카약을 타는 사람들이 많다. 바다를 보며 걷는다. 멀리 섬이 보이고 선으로 이어진 수평선 위에는 검은 먹구름이 보이고 사선으로 떨어지는 빗줄기가 보인다.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는데, 옷이 젖을 정도는 아니다. 바람도 시원하고 깨끗하다. 바람으로 인해 다시 하늘이 밝아진다. 성벽이 바다위에 수직으로 세워져 있어 내려다보니 바다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작은 파도가 성벽아래를 수없이 때리고 하얗게 부서진다. 약간 넓은 옥상 같은 곳이 나온다. 한국인 3명을 만났다. 서로 각각 와서 이곳에서 만나 성내에 160유로를 주고 아파트를 g하나 빌려 함께 묶고 있단다. 대단한 젊은이들이다. 바다로 향한 대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구석에는 젊은이들이 똑같은 모양으로 누워 있다. 대충 성벽 위 돌기가 끝났다.  

     다시 내려가 성 불라이세 교회가 있는 루자광장에 섰다. 블라이세는 아르메니아 출신의 주교다. 베네치아 침략계획을 사전에 알아채 침략을 막을수 있도록 하는 등 이 도시를 위해 애쓴 주교로 이 도시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성 블라이세의 약자인 SB 는 이곳 두브로브닉 공화국의 깃발에 새겨져 있다. 18세기 까지는 그의 모습이 동전에도 있었다고 한다. 성 블라이세 교회 정면에는 황금색 모자를 쓴 그의 모습이 올려다 보인다. 이곳에서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성 블라이세 동상이다. 이동상의 특징은 손에 두브로브닉의 모형을 들고 있다. 1706년 5월 대형화제로 교회에 있던 금속 물건들은 다 녹아버렸는데, 은으로 만들어진 그의 동상은 녹지 않았단다.     

종탑에는 시계가 있고 4시 20분을 가리키고 있다. 광장 중앙에는 롤랑의 기둥이 있다. 중세의 번영했던 도시라면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랜드마크 다. 중세 최고의 기사로 서사시(롤랑의 노래)의 주인공이다.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있고, 왼손에는 방패를 들고 있다. 동상 팔뚝길이를 잘 보면 밑에 팔뚝 길이 같은 표시를 해 놓았다. 길이의 단위인 1엘(ELL)과 같은 것으로 이곳에서 당시에 사용된 단위로 1엘은 51.1cm 였다고 한다. 성경에 나오는 1 규빗 과 비슷하다. 맞은편 건물이 스폰자 궁전으로 6개의 르네상스식 기둥이 인상적이다. 상인들의 무역 관세를 받던 곳이다. 

     이제는 좁은 골목길을 구경해 보기로 했다. 골목길도 재미있다. 구석구석 숨겨진 작은 재미가 있다. 향수를 파는 광장이 나온다. 꿀과 레이스도 판다. 광장에는 이름 모를 동상이 서 있다. 이탈리아 로마의 스페인 광장 같은 계단이 보인다. 포도주 종류도 다양하고 아로마 향수도 있다. 주로 고객이 이탈리아 사람인가보다. 렉터 궁전으로 갔다. 스폰자 궁전 앞쪽 길로 올라가면 고딕-르네상스 양식 건물이 있는데, 이것이 렉터 궁전이다. 궁전 같지도 않은데....... 기둥이나 건물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들이 15세기 것으로 특히 기둥의 조각들은 뛰어난 돌 세공 기술을 보여준다. 고 해서 쳐다보니 그런 것 같다. 궁전안의 동상은 미호 프라켓으로 재산을 공화국에 기증한, 일반인에게 존경받는 인물이란다.     

     대성당으로 갔다. 1713년 대지진 이후 심하게 파괴되어 그 후 다시 복구된 성당이다. 복구하는 기간에 새롭게 발견된 기초의 역사를 보면 중세 이전에 세워졌던 성당의 터가 발견되었다. 7세기에 비잔틴 양식이, 12세기에는 로마네스크, 18세기에는 바로크 양식으로 복원되어 현재에 이른다. 이 성당은 영국의 유명한 ‘사자의 왕 리처드’와 인연이 있단다.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오는 길에 왕은 풍랑을 만나서 두브로브닉 근처의 로크룸섬에 표류하여 목숨을 건진다. 왕은 신에게 감사의 표시로 원래 비잔틴 양식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다시 지었다. 이 이야기는 세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곡 ‘7야’에도 영감을 주었다. 희곡의 여주인공 비올라는 바다에서 난파된 뒤 ‘일리리아’에 머물게 되는데, 이곳이 현재 두브로브닉 이란다.

 

     대성당의 보물실에는 성 블레이세와 관련된 유품과 금으로 만든 138개의 보석, 라파엘로의 마돈나, 각종 은 세공품, 이탈리아의 유명한 화가 티치아노가 그린 ‘성모 마리아 승천’이 있다.     

골목길을 걸어가다가 작은 피자 가게를 만났다. 배가 고프다. 속이 비니 살짝 짜증도 나고, 다리도 아프다. 피자 2조각을 사서 아내와 함께 마주보고 먹으니, 이 또한 우리만의 즐거움이다. 구경도 좋지만 먹는 것도 양념같이 여행에서 중요하다. 골목길을 둘러보다가 작은 노천카페에서, 스플릿에서 함께 타고 온 아가씨 3명을 만났다. 버스 터미널에서 숙소를 구하러 간 후 소식이 없어 궁금했는데, 이곳에서 다시 만나니 기쁘다. 안면 있는 한국인을 만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 더욱 반갑다. 빈자리에 함께 앉아 얘기를 나눈다. 숙소를 보러 갔는데, 방이 맘에 들지 않아 무거운 가방을 끌고 다시 나와 구시가지 옆에서 숙소를 구했단다. 우리와 연락 할 방법이 없어서........ 보스니아의 모스타르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하니, 가이드북에서 모스타르 편을 뜯어 준다. 고맙다. 음식을 주문하길 레 서로 인사를 나누고 우리 갈 길을 재촉했다.

 

     골목이 많고 복잡했지만 골목은 골목으로 느낌이 색다르다. 오래 된 건물에 이어지는 빨래 줄, 작은 계단에 예쁜 창문 앞 테라스에 작은 꽃들, 가끔 고양이가 누워있고, 작은 노천카페와 실생활의 가게들이 눈과 코와 입을 즐겁게 한다. 사람 구경은 뭐니 뭐니 해도 중앙 도로인 플라차 대로다. 오고가는 다양한 사람들 틈에 서면 행복감이 든다.

 

     여행은 돈이 많다고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돈이 없다고 떠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건강이 있다고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건강이 없다고 떠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많다고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시간이 없다고 떠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좋은 곳이 있다 한들, 아무리 시간과 건강과 돈이 넘쳐난다 한들, 내가 내키지 않으면, 내가 가고자 하지 않으면 갈 수 없다. 세상에 태어나 어딘가를 여행할 수 있음이 미치도록 감사하다.  

     플라차 대로를 걷다가 입구 쪽에 있는 오노프리오 분수대에 앉아서 쉰다. 맞은편 성 프란시스 사원 옆에 성 시비오르 교회가 소박한 모습으로 서 있다. 1520년 지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운 교회인데, 1667년 지진에 이 교회는 피해가 없었단다. 감사에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보호하셨단다. 이런 연유로 주민들은 이 교회를 무척 사랑한단다. 앉아서 쳐다보니 모든 것이 감사하다. 이곳에 앉아 있음에 감사하고, 옆에서 기타를 치는 노익장의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 감사하고, 푸른 하늘에 순수한 여행자들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으니 감사하고, 말없이 동무가 되어준 아내가 있으니 더욱 감사하다. 오가는 사람들이 나를 더욱 깨끗하고 순수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이제는 숙소로 돌아가야겠다. 드럼을 치는 두 명의 중세 복장을 한 젊은이와 창을 들고 3명이 호위해서 걸어간다. 팰레문을 지키는 수문장들이다. 날이 어두워지니 교대를 한다. 구시가지를 나왔다. 다시 6번 버스를 타려고 줄을 섰다. 몇 번이고 성을 봐도 지겹지 않다. 네온사인 불이 들어온다. 숙소를 찾아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버스를 타고, 몇 번이고 기억을 더듬어 마을 모습을 찾아내려한다. 긴장된다. 좀 틀릴려고 맘먹으니 편하다.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리고 말았다. 동네 슈퍼에서 과일과 쥬스, 물 등을 샀다. 숙소를 찾기 쉬운데 구해야지 잘못하면 숙소로 돌아오는데, 헤매다가 고생하겠다. 겨우 기억을 더듬어 숙소에 오니 어둡다. 쥬스를 한잔 마시고 샤워를 하니 할 일이 없다. 아내와 후레쉬를 들고 바닷가로 내려가 보았다. 숙소에서 계단 20여개만 내려가면 바다다. 동네 바다는 조용하다. 해안을 따라 길이 나 있지만 가로등이 없어 어둡다. 후레쉬로 물을 비춰보니 참 맑다. 좀더 걸어가면 해변이 나온다는데, 피곤해서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여행자가 정해진 시간안에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숙소로 다시와서 테라스에 앉았다. 아내와 쥬스를 탁자위에 올려놓고 의자에 앉아서 밤 바다를 내려다본다. 시원하고 기분이 좋아 피곤이 싹 풀리는 것 같다. 멀리 큰 다리가 보이고 가로등 불이 줄지어 밤 풍경을 만들어 준다. 거의 모든 집들이 바다를 향해서 테라스(베란다)를 갖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다. 하늘에 별은 보이지 않지만 참 시원하고 편안한 밤이다. 이렇게 두브로브닉을 추억 속에 예쁘게 간직해 둔다.

 

     기대했던 것보다 좀 멋지진 않다. 너무 좁고 단조로워 답답했고, 숙박비와 교통비가 비싸서 빨리 벗어나고픈 도시였다. 뜨거운 태양과 짠 바다는 나이가 드니 좀 기피하게 된다. 그래도 두브로브닉에 설 수 있었던 뿌듯함이 감사와 기쁨으로 기분 좋게 한다. 아래층에서 젊은이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이야기 하며 웃는데, 멈출 것 같지 않다. 생각보다 모기가 없어 다행이다.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로 가야한다. 벌써 마음은 보스니아로 향해가고, 두브로브닉은 깊숙이 저장된 과거가 되었다.

 

     크로아티아라는 나라가 좋다. 구경거리도 많고 다양한 모습이 좋다. 날씨도, 사람들도, 교통도 여행하기에 참 좋은 나라다. 요르단 럼 사막에서 만났던 여자 선생님과 그 아들이 기억나는 나라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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