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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여행기1 (이경우)-모스크바 1

작성자睦園.박이환|작성시간18.07.23|조회수160 목록 댓글 0


          

*84일 금요일 맑음.


       아침을 기차에서 맞이한다. 창가로 보이는 풍경이 평화로워 보인다. 들판이다. 흰색과 분홍색 꽃이 보인다. 안개가 멀리 깔려있다. 평원이 이어진다. 자작나무 숲도 나타난다. 원시림 같다. 떠오르는 태양에 눈이 부시다. 마을이 나타난다. 낡은 아파트도 있다. 굴뚝이 있는 집들이 그림처럼 모여 있다. 구름이 하얗게 펼쳐진 파란 하늘이 예쁘다. 풍요롭고 평화로워 보인다. 기차는 쉬지 않고 잘도 달려간다. 아내는 아직도 움직임이 없다. 잘 잔다. 기차 움직이는 소리만 귀에 들려온다.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난다. 사람들이 많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정리한다. 화장실이 바쁘다. 우리는 이미 벨라루스를 벗어나 러시아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국경에서 여권검사도 없이 그냥 들어간 것 같다.


       아침 647분에 정확히 러시아 모스크바의 벨라루스 역에 도착했다. 리투아니아나 폴란드, 벨라루스에서 오면 벨라루스 역에, 우크라이나와 동유럽에서 오면 키예프 역에 도착한다. 헬싱키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오면 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 역에 도착한다. 카잔이나 시베리아에서 오면 주로 카잔 역에 도착한다. 중앙아시아나 시베리아로 가는 사람들은 야로슬라블 역에서 타야한다. 러시아에서 기차역 이름은 출발지가 아니라 도착지 기준으로 결정된다. 역이 많아 기차를 이용할 때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한다.


       환전을 했다. 1달러에 약 60루블, 1루블에 20원을 곱하기로 했다. 역에서 100달러에 6037이라고 적혀있는데 5850을 준다. 나머지는 수수료란다. 죽일 놈들! 입에서 욕이 나온다. 역에서 나오니 어제 민스크 승리공원에서 보았던 총 맨 군인과 여인의 동상이 여기도 있다. 1914, 1941년 이라는 숫자가 보인다. 1.2차 세계대전의 기념물인 것 같다. 역 광장은 공사 중이라 길을 막아놔서 답답하다. 아마도 2018년 올림픽을 준비하는 것 같다. 이동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저마다 크고 작은 가방을 들고 있다.


       옆에 붙어있는 지하철역을 찾았다. 벨라루스까야 역이다. 지하철 1회 요금은 55루블(1100)이다. 모스크바 시내를 원으로 도는 5호선(고동색)을 탄다. 우리의 목적지는 콤소몰스카야역이다. 창구에 가서 1회권 표를 사서 개찰구에 넣고 들어갔다. 모스크바의 명소 중 하나가 지하철역들이다. 이를 모스크바 지하궁전이라고 한다. 벨라루스까야 지하철역도 아름답다. 둥근 천장에 섬세한 모자이크 작품이 화려하게 장식되어있다. 궁전 천장 같다. 거기에 멋진 실내등과 어울려 나름대로 예술성까지 겸비하고 있다. 지하철 건설을 위해 20종 이상의 대리석이 사용되었고, 그 외에도 조회장석, 화강석, 장미휘석 등이 사용되었단다. 화려하고 성대한 느낌의 이 지하 건축물들은 조각, 부조, 웅대한 장식 미술품과 같은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장식되어있다.


       우리는 콤소몰스카야역에서 내렸다. 이 지하철역도 아름답다. 일단 밖으로 나왔다. 광장에는 말을 타고 창으로 용을 찌르는 천사상이 조각되어있다. 사람들이 많다. 표정들이 없다. 아침출근시간이라 붐비는 것 같다. 이 메트로 근처에 있는 카잔 역을 찾아간다. 우리가 오후에 탈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출발지가 이곳 카잔 역(카잔스키 바그잘)이다. 지하철은 메트로라 표시되고 기차역은 바그잘이라 표시된다. Hilton Moscow Leningradskaya 호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구 소련스타일의 높은 건물이다. 역 옆에는 TsDKZh라는 콘서트홀 건물도 있다. 카잔 역으로 들어가 우리가 갖고 있는 예약서를 보여주고 표를 받았다. 기차역 안에 있는 Luggage Office를 찾아서 우리 짐을 맡겼다. 번호표를 준다. 53번이다. 짐을 맡기는 요금은 450루블(9000)이다. 좀 비싸다는 느낌이 든다. 손이 가벼워졌다.


       우리의 목적지는 붉은 광장이다. 역과 메트로가 붙어있다. 지하철로 들어가 붉은 광장을 갈 수 있는 지하철을 탔다. 붉은색 1호선을 타고 가다가 내려서 역 이름을 보니 바라비쯔까야역(Borovitskaya Боровицкая)이다. 러시아 국립도서관(Российская государственная библиотека) 건물로 이어진다. 도서관 건물도 예술이다. 옥상 난간에는 14명의 인물상이 조각되어있다. 도서관 앞에는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ikhaylovich) Dostoyevsky)의 동상이 있다. 초상화로 그려진 그의 모습이 이제는 조각상으로 만들어져있다. 인간 심성의 가장 깊은 곳까지 꿰뚫어보는 심리적 통찰력으로, 특히 영혼의 어두운 부분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20세기 소설 문학 전반에 심오한 영향을 준 작가다. 특히 죄와 벌·백치·악령·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등 그의 장편소설들은 삶의 지혜와 영혼의 울림을 전달하는 데 예술이 매체로 이용된 뛰어난 본보기이며, 그는 세계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가의 한 사람이라는 명성을 갖고 있다.


       비블리아쩨까 이메니 레니나 역(Biblioteka im. Lenina.Библиотека им. Ленина)출입구도 가까이에 있다. 이 메트로를 이용해 길을 건너간다. 크렘린의 매표소가 있는 삼위일체 망루가 보인다. 높이 솟아있는 별과 붉은 벽돌담이 반갑다. 삼위일체 탑은 크렘린 입구로 사용하고 있다. 1495~1499년에 건립되었다. 삼위일체라 부르는 이유는 크렘린의 위에서 볼 경우에 삼각형으로 생겼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탑의 높이는 20여개 탑 중에서 80M로 가장 높다. 16~17세기에 지하는 감방으로 쓰였던 과거를 가지고 있다. 나폴레옹전쟁 때 나폴레옹이 이곳으로 입성을 한 아픈 추억을 가지고 있다. 꼭대기에 있는 별은 지름이 3.75m이며, 1,500kg으로 금도금하여 강한 눈보라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되었다.


       드디어 모스크바에 들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크렘린이란 원래 방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성벽을 뜻한다. 보통 강가의 전략적 주요지점에 있었으며, 성벽·해자·망루·흉벽과 함께 목책(나중에는 석벽과 벽돌 벽)을 둘러쳐 도시의 나머지 부분과 구분했다. 모스크바·프스코프·노브고로트·스몰렌스크 등 몇몇 공국 수도는 대성당, 궁전과 주교관, 정부 청사 및 군수품 창고가 있는 구()크렘린 주위에 건설되었다. 모스크바 크렘린은 1620년대에 들어서 요새로서의 중요성을 상실했으나 1712년까지, 그리고 1918년 이후 러시아 및 소련 정부의 중심지 구실을 했다.


       원래 나무로 건설되었으나, 14세기에 이탈리아 건축가들이 벽돌로 다시 만들었고 그 뒤 여러 차례 보수·개축했다. 그리하여 모스크바 크렘린 자체에는 오랜 역사가 반영되어 있으며 비잔틴, 러시아 바로크, 고전주의 양식 등 다양한 양식이 섞여 있다. 구조는 3각형 모양으로, 동쪽은 붉은 광장에 접해 있으며 4개의 출입구와 모스크바 강으로 난 비밀통로가 감추어진 뒷문 1개가 있다. 191710월 볼셰비키가 권력을 장악한 이후 모스크바 크렘린은 레닌의 소비에트 정부 본거지이자 공산주의 독재를 상징하게 되었다.


       ‘크렘린(Kremlin)’의 안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는 서쪽 성벽 중앙에 있는 트로이츠카야 탑이다. 15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초빙해 온 건축가가 설계했다. 이후 여러 차례 이름을 바꿔 오다가 1658년 크렘린 안에 있는 성삼위 수도원 이름을 따 트로이츠키야(트리니티)’라고 부르게 됐다고 전해진다. 첨탑 위에는 소비에트의 상징인 왕별 '루비 스타'가 올라서 있다. 이 탑 아래로 난 문이 해자를 건너 크렘린으로 들어가는 출입구 구실을 하고 있다.


       참고로 크렘린(Kremlin)은 모스크바의 중심에 위치한 건축 예술의 기념비로서, 러시아의 심장이자 러시아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배들이 운행하는 두 개의 강, 즉 모스크바 강과 네글린나야 강이 서로 만나는 지점인 보로비쯔끼 언덕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모스크바에서 가장 역사 깊은 지역으로 11세기에 벌써 이곳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크렘린은 수도인 모스크바가 성장해 감에 따라,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로서 발전해 가게 된다. 17세기에 대폭적으로 진행된 건축 활동에 힘입어 크렘린은 형태가 변했는데, 바로 오늘날 우리가 보아 눈에 익은 그 모습을 띠게 된다.


       크렘린에 들어가려고 벌써 많은 사람들이 매표소가 있는 쿠타피야 타워(Kutafiya (Predmostnaya) Tower) 앞에 줄을 서고 있다. 알렉산드르 1세 동상 동상이 있다. 이곳이 알렉산드롭스키 정원이다. 알렉산드르 1(러시아어: Александр I, 17771223~1825121)는 러시아 제국의 황제이다. 본명은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 로마노프(러시아어: Александр Павлович Романов)이다. 로마노프 왕조의 10번째 군주다. 파벨 1세와 뷔르텐베르크의 소피 도로테아(러시아 이름은 마리아 표도로브나)의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할머니인 예카테리나 2세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왔다. 예카테리나 2세는 외아들 파벨을 싫어하여 그가 제위의 적합한 후계자가 아니라고 생각하였고, 손자인 알렉산드르에게 제위를 물려주기 위해 자유주의 교육을 시키며 자신이 직접 데려다가 길렀다. 알렉산드르는 그런 그녀의 뜻을 거절하였으나, 예카테리나 2세에 뒤이어 황제가 된 파벨 1세가 그에게 불만을 품은 신하들에 의해 살해되자 반란군의 추대를 받아 황제가 되었다. 동상 옆에는 1812년 나폴레옹 전쟁 승리기념비가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곡 ‘1812’의 대포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우리는 공원 벤치에 앉아서 잠시 지나가는 사람들과 주변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참 많다. 역시 세계적인 명소임에 틀림없다. 공원은 다양한 색상의 꽃들과 잔디로 잘 가꾸어져 있고 고목들도 질서 있게 자라고 있다. 작은 오벨리스크(Romanovsky obelisk)가 보인다. 이 로마노프 오벨리스크는 1913년 로마노프 왕조 3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란다. 승승장구하며 유럽을 휩쓸던 나폴레옹은 결국 러시아 전쟁에서 패퇴하면서 결국 몰락의 길을 걸었고, 로마노프 왕조는 오벨리스크를 건립한 4년 뒤인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마지막 황제가 처형되고 말았다. 뒤에는 중앙 병기고 망루(Srednyaya Arsenalnaya bashnya)가 보인다. 속살 벽돌이 드러난 모습이다. 흰색 사자상이 양 옆에 올라 앉아있다. 이 망루 앞의 폐허를 쌓아올린 신전 모양의 기념물은 1812년 나폴레옹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사용된 돌은 모스크바 성벽의 잔재이다.


       전에 비자가 필요할 때는 그렇게 사람들이 많아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엄청 사람들이 많다. 특히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많아 북경의 자금성 앞에 있는 느낌이다. 한국 관광객도 많이 보인다. 전에 보지 못했던 커다란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폴란드와의 전쟁당시 삼일단식을 주도하며 러시아군을 집결시켜 전쟁 승리를 이끌었던 에르모겐 상이다. 2013년에 건립되었다. 오른손에는 정교회 십자가를 들고 있고 왼손에는 지팡이를 잡고 있다. 좌대가 높아 금방 눈에 띄는데 17세기 초 모스크바의 총주교(總主敎)였던 에르모겐(1530~1612)16세기 말부터 볼가 강 지역에서 이민족에게 정교회 전도 활동을 펴다 1606년 모스크바 총주교가 됐다.


       그는 폴란드가 모스크바를 점령하자 국민해방군을 결성해 폴란드 군을 쫓아내자는 국민봉기 서한을 낸다. 이를 계기로 포자르스키 공작과 푸줏간 주인 미닌이 이끄는 국민군이 폴란드 군이 있는 크렘린을 포위하게 되었고, 이에 폴란드군은 크렘린에 가둬놓고 있던 에르모겐에게 국민군 해산을 촉구하는 성명서에 서명하라고 강요하지만 에르모겐은 끝내 거부했고 폴란드군은 그를 죽여 버린다. 1612년 폴란드군이 모스크바에서 쫓겨났음은 물론이다. 에르모겐은 순교당하기 앞서 다음 러시아 차르(황제)로 로마노프 가문의 미하일을 천거했다. 그때부터 러시아혁명까지 300년 넘게 러시아를 통치한 로마노프 왕조가 출발하게 된다. 에로모겐의 국민적 영향력과 그에 대한 존경이 그만큼 컸다는 증거일 것이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마네쥐 광장이다. 나치오날 호텔과 모스크바 대학 구관, 그리고 크렘린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광장이다. 옛날에는 10월 혁명 50주년 광장이라고 불렸단다. 15세기 말부터 이곳을 흐르던 네글리나 강(현재 알렉산드롭스키 정원)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15세기부터 상인들과 장인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자신들이 만든 물건을 팔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공간이다. ‘마네쥐라는 말은 말을 훈련, 사육시키는 곳을 뜻하며 이곳에는 과거 말 사육장이 있어 지금과 같은 이름을 갖게 되었다.


     분수와 함께 4마리의 말이 역동적인 모습으로 만들어져 있다. 러시아 예술아카데미 원장을 지낸 그루지아 계 조각가 주라브 체레텔리의 작품사계. 네 마리 말로 각기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어느 말이 봄인지, 가을인지 잘 모르겠다. 말들의 동상 뒤편에 마네쥐 중앙전시장이 있는데 이는 황제의 마구간이었단다. 1812년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 지어진 건물이다. 이 건물은 반원기둥에 둘러싸인 내부가 넓은 건물로 궁정의 마술 연습이 행해졌던 곳이다. 넓은 공간을 이용하여 때때로 전시회나 집회가 열리기도 한다.


       무명전사의 무덤으로 갔다. 알렉산드롭스키 정원에서 마네쥐 광장으로 가는 길에 있다. 무명용사 무덤 앞의 초병 교대식을 구경했다. 장교가 3명의 초병을 이끌고 와 2명을 교대하고 데려가는데 절도 있는 걸음걸이가 볼만하다. 다리를 굽히지 않고 90도로 올려 군화소리 내며 걷는 폼이 로봇 같다. 나라마다 보초 교대 시 걸음걸이가 독특하다. 이 무덤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을 기리기 위해 196612월에 만들어 졌다. 공원 초입에는 무명용사의 묘()’가 있다. '고국을 위해 쓰러지다'라는 문구를 가운데에 두고양 옆에 19411945가 나란히 적혀 있다. ‘2차 세계대전의 시작과 종전 연도일 것이다.이 묘는 2차 대전 때 모스크바 외곽에서 나치 군을 물리친 지 25년 된 196612월에 맞춰 완공했다고 한다.


       가운데 대리석 묘엔 모스크바 외곽에 있던 전몰장병 묘지에서 이름 모를 병사의 시신 한 구를 옮겨왔는데, 위에 철모와 월계수 가지를 얹은 군기를 조각해 장식했다. 또한 앞쪽 바닥 별 모양 부조의 가운데에선 '꺼지지 않는 불'이 타오른다. 1957년 이래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르스광장에서 타고 있는 불에서 채화해 온 것이란다. 이렇게 무명용사 시신과 꺼지지 않는 불을 모시는 묘는 1921년 파리 개선문 아래에 ‘1차 대전 무명용사 묘를 처음 만든 이래 여러 나라에서 본뜨고 있다고 한다. 묘의 양 옆은 위병들이 지키고 있다. 교대식은 한 시간마다 한 번 한다. 발을 일자로 쭉 뻗어 들어 올리는 러시아군 특유의 '구스(오리) 스텝'이 볼만하다. 모스크바의 많은 신혼부부들은 혼인신고 후 가장먼저 이 무명용사의 묘를 찾기 때문에 주말에는 갓 결혼했음을 알리는 빨강, 파랑, 흰색(국기의 3)의 리본을 단 고급차들이 줄을 선단다.


       주코프 장군 동상을 다시 만났다. 반가웠다. 아직도 칼을 손에 쥔 채 말을 타고 있다. 주코프 원수(1896~1974)1939년 만주 노몬한에서 몽골군을 도와 일본군 2만 명을 괴멸시켰으며, 1941년 모스크바 방어전에서 활약하였다. 42년 말 스몰렌스크 인근 르제프 전투에서 심대한 패전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스탈린 공방전 이후 베를린으로 진격하는 데에 많은 공을 세웠다. 1943년에 원수로 승진하면서 소련군의 중추로 활약하며 4558일에는 소련군 최고 총사령관의 이름으로 베를린에서 독일군에게 항복을 받아내고, 624일에는 붉은 광장에서 개선행진을 거행했다. 전후 독일 주둔 총사령관이 되었고, 1946년 소련 지상군 최고 사령관이자 국방부 차관을 지냈다. 한때 스탈린의 신임을 잃어 좌천되었으나 스탈린 사후 정계로 복귀하여 55년 국방부 장관, 그리고 당 중앙 위원회 간부를 지냈다. 1974년에 죽어 유해는 크렘린 성벽에 묻혀있다.


       붉은 광장으로 간다. 국립역사 박물관 건물과 부활의 문, 그리고 작은 교회가 눈앞에 있다. 부활의 문 앞 보도에 박힌 동판에서 사람들은 동전을 던진다. 가운데 서서, 어깨 뒤로 동전을 던져 가장자리에 있는 동판에 들어가면 행운이 온다는 것이다. 바닥에 새겨진 12가지 동물상을 향해 뒤 돌아서서 동전을 던져 무슨 행운을 기대하듯 놀이를 한다. 그러나 동전을 던지는 사람은 별로 없고 그저 사진만 찍고 간다. 행운을 잡으려면 투자를 해야 하는 데 공짜로 행운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미워 보인다. 국립역사 박물관 건물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정말 아름답다. 1875년에서 1881년 사이에 세르비트와 세묘노프가 지었다. 1755년 처음 지었을 때만 해도 모스크바대학교의 학과건물이었다. 앞에서 보고 뒤에서 보고 자꾸 보아도 정말 신기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된 것은 혁명 후의 일이란다. 전시 내용은 혁명 이후를 제외한 러시아의 전 역사에 관련된 것으로 석기시대부터 혁명 전 까지 러시아의 역사에 관련된 주화, 메달, 장신구, 가구용품, 사본 등 다양한 전시품들이 많이 있다.


        부활의 문은 1680년에 지어진 유서 깊은 건물이다. 1931년에 무너졌다가 1996년에 다시 지어진 건물이다. 모스크바 대학교의 인쇄소로 사용되어왔단다. 부활의 문 앞에 붙어 있는 작은 교회가 귀엽다. 기적이 나타난다는 성모의 이콘이 보인다. 작은 교회당에 사람이 붐빈다. 하늘색 지붕에는 천사상이 만들어져 있고 교회당에는 황금색으로 두 성인이 부조되어있다. 왼편에 있는 전쟁박물관(Muzey Otechestvennoy voyny) 건물도 멋지다. 그 맞은편에 고고학 박물관(Moscow Museum of Archaeology)이 있다.


       부활의 문을 통해 붉은 광장으로 들어섰다. 참 반가운 광장이다. 러시아 모스크바를 다시 방문해 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올해 러시아 횡단 열차를 타보려고 생각하는 중에 꼭 다시 한 번 모스크바를 방문해서 붉은 광장에 서 보고 싶었다. 2006년도 여름에 방문을 했으니 꼭 10년이 넘어서 방문한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별로 변한 것이 없다. 그 모습 그대로 눈앞에 펼쳐져 있다. 우리만 나이를 더 먹어 늙어가지만 마음만은 그때와 같은 것 같다.


    옆에 여전히 카잔성당(Kazan Cathedral)이 있다. 동일한 이름의 또 다른 카잔성당은 여러 곳에 있다. 러시아를 여행하면 자주 듣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이콘(ikon)'이라는 것이다. 이는 러시아 정교회에서 발달한 예배용 화상(畵像)을 의미하는데, 대부분이 성모 마리아상이거나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상이다. 이콘은 성스러운 하나의 상징을 의미하므로 영미권에서는 '아이콘(icon)'의 기원이 된다. 이 카잔성당의 내부에는 유명한 성모 이콘이 있다. 물론 보호를 위해 복제본을 걸어 둔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면 성당의 이름은 왜 카잔이며 성모 이콘은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이 이콘은 13세기 콘스탄티노플에서 제작돼 러시아로 건너온 것이다.


        모스크바 북동쪽으로 500마일 떨어진 볼가강 유역의 카잔이라는 도시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1438년 타타르가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이 아이콘은 사라져 한 세기 이상 그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그 후 1579년 카잔에 살고 있던 마트로나라는 8살 난 소녀에게 성모 마리아가 여러 차례 나타나 한 장소를 알려 주며 성화상이 묻혀 있을 것이니 교회에 알리라고 하였다. 소녀는 그 사실을 교회에 알렸으나 아무도 이 소녀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도 믿으려 하지도 않자 마침내 그 소녀는 어머니와 함께 성모 마리아가 말한 그 장소를 파내어 천으로 감싸여진 대단히 오래된 성화를 발견했다. 이 소식을 듣고서야 비로소 교회 당국도 나서게 되어 장엄한 행렬을 지어 카잔의 대성당으로 성화를 옮겨 모셨다고 한다.


       1612년 폴란드가 러시아를 침공했을 때 이 성모 이콘을 앞에 들고 나아가 크게 승리할 수 있었고, 1709년 스웨덴이 침입했을 때, 그리고 1812년 나폴레옹의 군대가 모스크바를 점령했을 때도 카잔의 성모께 보호해 주심을 청하면서 이 이콘을 앞세우고 전투에 나아가 승리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이 카잔의 성모 성화는 러시아의 수호자로 크나 큰 공경을 받고 있다. 특히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물론 러시아 각 도시에 이 카잔의 성모께 봉헌한 성당들을 건립하고, 이 성화의 사본들을 모셔 자신들의 감사하는 마음을 나타내 보였으니, 성당의 이름이 카잔인 것은 그러한 연유이다.


    우리도 붉은 광장에 섰다. 붉은 광장은 15세기부터 상인들이 물건을 사고팔던 장소였다. 또 전쟁을 떠나는 군사들이 행진을 하던 곳이자 때때로 정치범이나 흉악범을 시민들 앞에서 처형하던 곳이기도 했다. 직사각형의 광장 중앙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러시아 최초의 백화점 굼을 비롯해 크렘린 성벽과 대로를 따라 늘어선 다양한 건물들을 볼 수 있다. 성곽 아래에 블라디미르 레닌의 미라가 보존되어 있는 레닌 묘가 있고, 그 반대편에는 국영 백화점인 ’GUM‘, 광장의 북단에는 국립 역사박물관이 있으며, 그 반대편 즉 남단에는 러시아 정교회의 성당인 성 바실리 성당과 처형장이었던 로브노예자리가 있다.


       참고로 붉은 광장(Krasnaya Ploshchad)‘'Krasnaya(크라스나야)'는 현대 러시아에서 붉은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광장의 이름이 붉은 광장으로 번역되지만 원래는 모든 아름다운 것을 나타내던 슬라브어에서 비롯된 단어이다. 원래의 이름은 아름다운 광장이었다는 얘기이다. 사회주의 혁명 이후 붉은 바탕에 낫과 망치가 그려진 소련의 깃발은 공산혁명의 상징처럼 되었고붉은 색의 이미지는 공산주의 혹은 '빨갱이'의 상징이었다. 그 공산주의 국가의 심장에 있는 광장이 붉은 광장이라니 얼마나 섬뜩한 느낌을 주겠는가. 막상 와 보니 주변이 온통 붉은색이 많아 자연스럽게 붉은 광장이라고 여겨진다.

  

       광장의 남단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의 성당인 성 바실리우스 대성당(Saint Basil's Cathedral)‘이다. 독특하고 웅장한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이 대성당은 모스크바 대공국의 황제였던 이반 4가 러시아에서 카잔과 아스트라한에 있던 타타르족(몽골족)들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며 승리의 중재자인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한 성당이다. 하나로 통일된 러시아의 가치를 드높이고 몽고 타타르와 용감하게 싸우다 희생된 민족 영웅들의 넋을 기리며 러시아 정교로 국민들을 통합시키고 애국심을 북돋기 위해 건축 된 정치적, 종교적 상징물이다. 참고로 이반 4는 러시아를 통일시키고 최초로 짜르(황제)에 오른 인물이지만 폭군으로도 악명이 높다.


        하늘로 치솟은 양파모양의 작은 돔들은 그 생김새와 색깔이 독특하다. 한마디로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대성당을 장식한 색깔들은 아무렇게나 정한 것이 아니고 신약성경 제일 마지막에 등장하는 요한계시록(또는 묵시록)에서 묘사한 천국문과 성벽의 색깔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1555년 건축을 시작하여 1560년 완공한 대성당은 러시아의 전통적 목조 건축술과 더불어 비잔틴과 서유럽에서 유입된 석조 건축술이 절묘하게 결합된 가장 러시아적이면서 세계적인 건축물이다. 47m짜리 팔각형의 첨탑을 중앙으로 하여 주변에 8개의 양파 모양의 지붕들이 배열되어 있으며 예배당을 형성하는 4개의 다각탑과 그 사이 4개의 원형 탑이 솟아 있어 총 9개의 탑이 있다.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양파모양의 지붕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눈에 담아도 하나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자태이다. 하긴 이반 4가 완공된 대성당의 모습에 반해 이런 아름다운 건물을 두 번 다시는 못 짓게끔 건축을 담당했던 '바르마''보스토니크'의 눈을 멀게 해버렸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올 정도이니 더 말하면 뭐하겠는가. ’이반 그로즈니이름답게 그의 포악하고 잔인한 일면을 드러낸 유명한 일화다.


        안으로 들어가 보기 위해서는 250루블짜리 입장권을 사야한다. 현재는 내부를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당의 내부 역시 외관에 못지않게 화려하기 짝이 없다. 정교회의 성당에 들어가 볼 때마다 느낀 점이지만 러시아정교회 성당들은 다른 종파의 성당들에 비해 유독 화려한 색상으로 치장되어 있지 않나 싶다. 아무튼 러시아 정교의 오랜 세월에 쌓여온 수많은 흔적들이 건물 내부에 빼곡히 전시되어 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전시물 하나하나는 종교의 기록이다. 하지만 예술품으로서의 가치도 대단해 보인다. 시간에 조금 여유가 있다면 이 건물이 지어지기까지의 전 과정과 실제 사용되었던 건축양식, 자제, 그리고 이곳이 성당으로 운영되던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러시아정교회 관련 물품들까지 다양하게 둘러볼 수도 있다.


       이 사원이 처음부터 성 바실리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1588년 탁발 수도사인 바실리가 이곳에 묻히게 되면서 그 이름을 따서 성 바실리 사원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수도사 바실리는 기이한 기적을 많이 행한 예언자로 덕망이 높아 당시 러시아 민중들의 추앙을 받았던 인물로 모스크바 화재 및 이반4세의 앞날을 예언한 것으로도 유명하고 이반4세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는데 그의 죽음을 슬퍼한 이반4세가 사원의 이름에 수도사의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아무튼 성 바실리성당9개의 첨탑이 각기 다른 높이, 다른 모양, 다른 색깔로 이루어져 있어서 철저하게 비대칭형 구조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직선과 곡선이 아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500년도 훨씬 전에 이런 천재적인 기하학을 건축에 도입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울 뿐이다. 또한 늘 규칙적인 종교 건축물만 보아 오던 나에게 불균형 속의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해준다. 궁금증도 풀어볼 겸해서 성당을 한 바퀴 돌아본다. 여러 다른 각도에서 올려다보기 위해서이다. 성당은 보는 자리마다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가 오고 있었다. 이래서 16세기 러시아의 집중 식 성당 건축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지는 모양이다.


       바실리 성당 앞에는 커다란 동상이 하나 서있다. 걸작으로 손꼽히는 미닌포자르스키 기념비인데 한 사람은 일어서서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앉아서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두 사람은 1612년 폴란드 군으로 부터 모스크바를 해방시켰다고 해서 영웅으로 불린다. ’쿠즈마 미닌은 니지니 노브고로트의 상인이었고, ’드미트리 포자르스키는 수즈달의 대공(大公)이다. 두 사람은 애국심을 발휘하여 인민 의용군을 조직, 폴란드 군을 격퇴 시켰다고 한다. 그들의 영웅적 행동을 기리기 위해 이반 마르토스에 의해 1818년에 완성되었는데, 건립 당시에는 붉은 광장의 중앙에 세워졌으나 열병 및 시위를 위한 공간 확보를 위해 이곳으로 옮겨 놓았단다. 기념비의 앞면에 러시아어로 새겨 넣은 문장이 보인다. '시민 미닌과 포자르스키에게 러시아가 감사의 마음을 전하다.'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단다.


       바실리 대성당의 맞은편 크렘린(Kremlin)‘ 성벽에는 스파스카야 탑(구세주 탑)‘이 우뚝 솟아있다. 이 시계탑의 꼭대기의 별은 크렘린 입구의 트로이츠까야 탑과 마찬가지로 시간에 따라 회전을 한다. 오전 105분 전이다. 특히 이 탑의 시계는 모스크바의 표준시가 되는데,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과 전투시기, 그리고 크렘린 안에 있는 모든 초소에서 보초들의 교대시간에도 울린다고 한다. 특히 매년 1231일이 되면 15분에 한번 씩 시계가 울린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듣기 위해 많은 모스크바 시민들이 붉은 광장으로 모여든다니 우리나라 보신각 타종 때의 진풍경을 이곳에서도 볼 수 있겠다.


       대성당의 앞에는 로브노에 메스토라는 원형의 연단(演壇)이 있다. 이 연단은 황제가 전국에 반포하는 포고령을 읽으며 중죄인에 대해 판결을 이곳에서 내렸으며 형을 집행하던 장소라고 한다. 대 농민 반란의 주모자 스테판 라진도 여기에서 처형 되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죽은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동전을 던지는 등 숨은 관광명소가 되었다. 과거의 무시무시했던 곳이 지금은 여행자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며 구경할 수 있는 구경거리가 되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irony )라고 할 수 밖에 없다.


       크렘린(Kremlin) 성벽의 앞 한가운데, 아니 붉은 광장의 가운데쯤이라고 해도 되겠다. 그러니까 광장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흡사 피라미드(pyramid)를 연상시키는 레닌 묘(Lenin's Tomb)‘가 들어서 있다. 검붉은 화강암으로 지어진 저 우람한 건축물 안에 방부 처리된 레닌의 시신이 모셔져 있단다. 유리관 속에 넣어 참배객들에게 공개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곳도 직접 들어가 보는 것은 생략하기로 한다. 죽은 시체를 보는 게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아서이다. 아무튼 레닌 묘의 영향을 받아 일부 사회주의국가 등에서 지도자의 시신을 영구보존 처리하여 안치하는 무덤이 만들어지고 있다.


       번쩍번쩍 광을 낸 이 무덤은 어떤 이들에게는 잊고 싶은 과거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또 다른 이들에게는 빛나는 역사와 국가 지도자에게 바치는 불멸의 기념비이다. 그 당사자인 레닌은 러시아 공산당을 창설하여 혁명을 지도했고 소련 최초의 국가원수가 되었다. 3인터내셔널(코민테른)을 창설했으며, 마르크스 이후 가장 위대한 혁명사상가인 동시에 역사상 가장 뛰어난 혁명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17세부터 마르크스의 자본론등 혁명서적을 탐독, 18891월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곧 사회민주노동당을 이끄는 주역이 되었고,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열린 러시아 소비에트 대회에서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레닌은 1924121일 저녁 고리키에서 뇌동맥경화증으로 사망했다. 자유민주주의를 믿는 우리들에게는 거부감이 들지만 공산주의자들에게 그가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러시아 혁명으로 차르와 소수 귀족계급에 의해 대다수의 민중들이 탄압을 받던 러시아에 평화와 평등을 주었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을 처음 실현시켰다는 것과 전 세계 약소국 식민 국가들과 유럽 각 국가들에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국가 지도자 입장에서 최초로 약소국의 완전한 해방을 주장했고, 적극적으로 민족해방세력을 지원했다는 것은 20세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영향과 의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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