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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여행기13 (이경우) -블라디보스토크 1

작성자睦園.박이환|작성시간18.08.22|조회수5,198 목록 댓글 0


   

*815일 화요일. 맑음


      하바롭스크에서 766km를 달려가면 우리의 목적지다. 기차에서 날이 밝았다. 불편하게 앉아서 자다가 날이 밝은 창밖을 보니 기분이 좋다. 어둔 밤을 긴 터널 지나듯이 빠져나온 기분이다. 들판이 보인다. 그저 풀들만 자라는 초원이다. 듬성듬성 고인물들이 보인다. 큰 비가 왔었나보다. 홍수의 흔적들이 보인다. 흙탕물에 잠겼었던 풀들이 누워있다. 철교도 지나간다. 멀리 마을도 보인다. 평원에 이어지는 산지, 거기에 습지다.


       우수리스크 역(Уссурийск)15분간 정차한다. 잠시 내려 땅을 밟아본다. 어디선가 많이 듣던 지명이다. 심심해서 찾아보았다. 우리 민족의 삶의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다. 특히 일제 시대 전 후에 우리 조상들이 살던 곳이다. 헤이그 밀사로 파견되셨던 이상설 선생 유허비도 지금 있단다. 선생은 이곳 한인들의 중심지 우스리스크에서 활동하셨는데, 돌아가시면서 유언을 하셨다고 한다. 나라 잃은 백성이니 제사를 지내지 말고, 시신은 화장을 해서 강에 띄워 바다 건너 고국 땅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화장한 유해는 옆에 있는 이 수이푼 강에 떠내려 보냈다고 한다. 우스리스크에는 발해고성이 있단다. 우스리스크는 발해의 5소경의 하나인 솔빈부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 솔빈부는 명마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대륙을 닮아 활달했을 발해인들과 저 넓은 초원을 뛰어다니는 명마들을 상상해 본다.


       연해주와 만주 독립 운동가들의 대부였던 최재형 선생의 생가도 있단다. 최재형은 어마어마한 재산을 모았던 사업가이기도 하다. 자신의 재산을 대부분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놓았고, 말년에는 조그마한 집에 사셨다고 한다. 최재형 선생은 1918년 이곳에 처들어 온 일본군에 의해 즉결처분 총살을 당했다. 아직도 그의 시신은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우스리스크 인구가 15만 명이라고 한다. 전로한족중앙총회가 열렸던 고려사범전문학교도 있는데 지금은 러시아 학교가 되어 있다.


       당시 조선인들은 19172월 혁명으로 차르 체제가 무너지자 전체 러시아에 사는 조선인 대표 100인이 모여서 이곳에서 총회를 열었다고 한다. 그것이 의회로 발전되고, 임시정부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전로한족중앙총회 결성 장소 기념 팻말이 있다. 연해주 고려인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우스리스크에 있는 고려인문화센터인데, 안중근 의사 기념비가 있단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때 최재형 선생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고 이곳에서 열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출발했다고 한다. 우스리스크라는 단어가 새롭게 느껴진다.


       이제 약 112km를 더 가면 우리의 목적지다. 긴 다리가 보인다. 강인지 바다인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내릴 준비를 한다. 우리도 허리를 펴며 내릴 준비를 했다. 정확히 919분에 블라디보스토크 역에 도착했다. 아내는 서둘러 역에 있는 화장실을 찾아간다. 속이 불편한가보다. 잠시 역 안에서 기다린다. 환한 얼굴로 나타난다. 배낭을 메고 9288km 기념비가 있는 곳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드디어 러시아 횡단을 마친 것이다. 참 길고 큰 나라다. 드디어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인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것이다.


       러시아 연방 프리모르스키 연해주의 주도이며, 시베리아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로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 극동지역의 가장 중요한 공업, 교통, 문화의 도시이며, 나폴리를 연상케하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극동 최대의 도시로 동쪽(보스톡)을 정복(블라디)한다는 뜻으로 19세기 제정 러시아의 적극적인 동방정책에 따라 건설되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군항, 산업항, 어항으로 서 뿐만 아니라 조선이나 수산가공 등 공업 중심지로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시내를 중심으로 개성적이며 예술적인 건물들과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많아서 산책하는 즐거움이 큰 곳 중 하나이다.


       1860년 러시아 군사기지로 건설되면서 블라디보스토크라고 명명되었고, 러시아의 항구와 해군기지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1872년 러시아의 태평양 해군기지가 건설된 후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1880년에 시가 되었다. 만주를 가로질러 치타로 연결되는 철도가 개통되어 러시아의 여러 지역과 직접 연결되자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음악, 심포니 오케스트라, 박물관, 미술관, 식물원, 수족관, 콘서트 홀, 서커스 장이 있으며, 아무르 만에는 리조트 비치, 요트장, 캠프장 등이 있어 여행과 레저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도시다.


       특히 아름다운 러시아 미인들이 즐비한 곳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이란 타이틀로 요즘 떠오르는 핫한 여행지 블라디보스토크. 서울에서 블라디보스토크의 거리는 780km에 불과하다.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멋진 이 도시를 관광하다보면 때로는 역사적 아쉬움, 그리고 즐거운 러시아에서의 추억을 안겨주는 도시다. 이곳은 러시아 연해주 지방에 있는 항만도시로 러시아인들이 1856년에 처음 발견했다는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출발지이자 종착지이기도 하다.

 

       역을 나왔다. 광장에서 블라디보스토크 역을 바라보니 참 멋지다. 다른 역도 마찬가지지만 역사가 왕궁 같다. 이국적인 건축양식이 눈길을 끄는 이 역은 러시아의 상징인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출발지이자 종착점인 블라디보스토크의 기차역이다. 1912년에 지어진 블라디보스토크 역은 9288km를 달려 유라시안 대륙을 횡단하는 기차를 만날 수 있는 곳이자, 한인들이 강제 이주 당한 아픈 역사가 있는 역이기도 하다. 기차역 옆 육교를 따라가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를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동해국제여객항으로 가는 크루즈를 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항구에 정박된 형형색색의 선박들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기도 하다.


       기차역 앞 광장은 복잡하다.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레닌공원에는 러시아의 혁명가이자 정치가, 소련 최초의 원수 레닌 동상이 보인다. 다양한 버스들이 줄지어 도착하고 출발한다. 사람들도 많다. 한국 젊은이를 만나서 우리가 머물려는 호텔 이름과 주소를 보여주며 교통편을 물어보았다. 스마트폰을 검색하더니 가는 버스를 알려준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길 건너편으로 가려다가 우리가 탈 버스를 발견했다. T7번 버스다. 밤이면 택시를 타는데, 시간도 많고 여유가 있는 오전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먼저 숙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T7번 버스는 여기가 종점인 것 같다. 새로 손님들이 타고 곧 출발한다. 우리가 내릴 정류장(3-ya Rabochaya 3-я Рабочая)이름을 보니 9개 정류장을 가면 될 것 같다. 버스는 우리나라보다 좀 더 낡은 것 같지만 기사 아저씨는 참 친절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느낀 것이 블라디보스토크는 언덕위에 세워진 도시라는 것이다. 올라가고 내려가고를 반복하고 언덕에 아파트와 집들이 지어져 있다. 걷기에 조금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9개 정류장을 가니 원으로 돌아가는 로터리가 나온다. 기사가 알려줘서 우리는 내렸다.

 

       우리 숙소는 람파 호텔(Lampa Hotel 104А prospekt Krasnogo Znameni, Vladivostok, Russia)이다. 성수기라서 중심지로부터 좀 벗어난 곳에 숙소를 잡게 되었다. 여기에서 3일을 묶고 집으로 간다. 우리 기준에 블라디보스토크는 숙박비가 좀 비싼 편이다. 호텔은 작다. 찾기도 힘들다. 언덕에 있다. 조심스럽게 호텔을 찾아 간다. 교통신호등도 없는 넓은 도로를 눈치껏 무단횡단하며 걸어간다. 언덕을 조심스럽게 올라가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프런트의 아가씨가 친절하게 맞아준다. 체크인을 했지만 오후 1시가 되어야 방에 들어갈 수 있단다.


       짐을 맡겨놓고 아내와 나왔다.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해 볼까 해서 식당을 찾았다. 주변에는 상가가 형성되지 않아 가게들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차에서 내린 정류장 부근을 가니 작은 가게들이 보인다. 시장이라고 하기 에는 너무 작고, 아니라고 하기 에는 또 시장 같은 가게들이 모여 있다. 도로 밑에 마련된 지하상가도 있다. 중국집을 발견했다. 들어갔다. 이제 막 청소를 끝내고 장사를 시작할 시간인가보다. 11시가 조금 넘었다. 소고기 요리와 명태 국, 그리고 밥을 주문했다. 그런대로 먹을 만 했지만 맛이 별로였다. 분위기가 어둡다.


       시장을 둘러보았다. MARANGO라는 한국 식당 간판이 보인다. 가게에서 토마토와 계란 10개를 샀다. 계란이 싸다. 우리나라는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가격이 엄청 비싸졌다. 러시아는 괜찮은가? 모르는 게 약이다. 숙소 뒤편으로 올라가 보았다. 큰 도로(Shilkinskaya 거리)가 고개를 넘어간다. 고개 정상에는 초록색 공원(Park Nagornyy)이 있는데 관리가 되어있지 않아 숲이 엉망이다. 길 건너편에는 쇼핑몰이 있다. 언덕을 살짝 넘어가려니 눈 아래 항구가 펼쳐진다. 배들이 눈에 들어온다. 금각만이다. 건너편에 아파트와 산이 펼쳐진다. 운하 같은 바다에는 공장 굴뚝이 솟아있다. 경사가 제법 급하다.


       대충 숙소의 위치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어디쯤인지 파악이 된다. 경사진 길가에는 커피 머신이라는 작은 카페가 있다. 자동차를 타고 와서 주문해 가는 작은 부스다. 귀엽다. 숙소로 돌아왔다. 체크인을 했다. 카드로 결제(3, 6600루블, 127,861)를 했다. 여기서 3일을 묶고 간다. 우리는 2층의 7호실이다. 깔끔하고 깨끗하다. 빨래를 해서 펼쳐놓고 사워를 했다. 오후 4시다. 시내 구경하기로 했다.


       작은 가방을 매고 나왔다. 로터리로 가서 버스를 탄다. 7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역 앞에서 내렸다. 레닌 공원을 옆에 끼고 언덕을 올라간다. Morskaya 거리다. 사쿠라 라는 음식점(Restaurant Sakura)이 보인다. 일식집인 것 같다. 건물은 한국 기와집 같다. 더 올라가니 언덕 끝이고 정면에는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왼편에는 하이야트 호텔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오른쪽에는 커다란 회전관람차가 보이는 해양공원이다. 바닷가에는 수영하는 이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인다. 비치파라솔이 예쁘게 설치되어있다. 해변가는 길고 좁게 보이는데 잘 가꾸어져 있다. 위험해 보이는 폐허 위에서 다이빙을 하며 수영을 즐기는 모습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걸어간다. 전망대(Rotonda)가 있다. 좀 더 걸어가니 길 건너편에 공원이 있고 동상(Admirala Makarova)이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스테판 마카로바 제독(1849~1904)의 동상이다.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의 가장 유능한 해군 사령관으로 동아시아 함대 사령관이기도 했다. 유능한 해군 전술가이자 최초로 어뢰를 이용해 함대 공격을 한 군인이기도 했단다. 하지만 러일전쟁 당시 타고 있던 페트로파블로스크 호가 일본군의 기뢰에 걸려 폭발하면서 전사했다고 한다. 오른손에 망원경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더 내려가니 호랑이 동상도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사람들이 호랑이의 날을 기념하는 축제(매년 9월 마지막 주)가 있을 정도로 호랑이가 이곳의 상징물이다. 올해가 18번째 축제란다. 호랑이 축제는 작가이자 생물학자인 블라디미르 트로닌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단다. 호랑이에 대한 멸종 위협과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1995년 소규모로 호랑이 행사를 개최했는데, 이것이 호랑이 축제의 시작이란다. 호랑이 동상 뒤편에는 둥근 건물 아이맥스 영화관(Океан)이 있다.



       해양공원으로 걸어간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러시아는 해양자원이 풍부하다. 흔한 게 바다인 러시아가 블라디보스토크를 특별하게 여기는 이유는 러시아의 위치가 북반구에서도 위쪽에 있기 때문이다.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는 바다를 꽁꽁 얼어붙게 만든다. 얼어붙은 바다 때문에 고립될 위기에 처한 러시아는 부동한, 즉 겨울에도 얼지 않는 항구에 집착한다. 바다를 주제로 한 해양공원은 러시아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테마파크다. 처음 러시아가 눈독을 들인 항구는 유럽 쪽이었다. 그러나 부동항을 얻기 위해 일으킨 크림전쟁에서 패배한 러시아는 별 수 없이 아시아 쪽으로 눈을 돌린다.

 

       당시 제2 아편전쟁으로 혼란에 빠진 중국 청나라를 설득하여 베이징 조약을 맺었다. 그로인해 1860년 이후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다. 사실 부동항으로 알려진 블라디보스토크는 1월 평균 기온이 12도로 한겨울에는 바다가 얼어붙는다. 다만 러시아의 다른 지역보다 얼음 두께가 얇기 때문에 쇄빙선을 이용해 얼음을 깨고 항구로 이용한다. 해양공원에는 소박한 놀이기구들이 있고 바다에는 오리보트가 귀엽다. 태평양이 바라다 보이는 이곳에서는 바캉스를 즐기고 잔디 위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해변은 모래가 아니고 작은 자갈로 이루어져 있다.


       수영하는 이들도 제법 있다. 거리에는 이구아나를 들고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도 보인다. 새끼 사자상과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해양공원 끝에는 왕 게(King crab)와 새우를 판매하는 가게가 있다. 해양공원에서 왕 게(King crab)를 먹었다는 사람들은 다들 여기서 먹은 것이다. 두 사람이라 왕 게(King crab)를 먹기에는 양이 많다고 생각되었지만 내일 도전해 보려고 한다. 싼 가격은 아니지만 한국보다는 훨씬 싸다고 한다. 여기가 끝이다. 다시 돌아 나간다. 계단과 분수가 이어지는 보행자 거리를 걸어간다. 아르바트 거리라고도 하는 길(Admirala Fokina 거리)이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옛 신한촌 터에 있는 공원도 있다. 해양공원에서 아르바트 거리로 가는 중간에 있는 언덕이 조선인들이 처음 블라디보스토크에 정착했던 신한촌이다. 당시 조선인들은 블라디보스토크의 어업과 상권을 모두 장악했었다고 한다. 모스크바의 명동 아르바트 거리가 블라디보스토크에도 있다는 것이 이해가 간다. 곳곳에 설치된 벤치와 분수대가 평화로움을 상징하는 이곳은 예술의 거리, 젊음의 거리로도 불릴 만큼 많은 아티스트들이 영감을 받고 간다고 한다. 유명 쇼핑 상가와 카페,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다. 부산치킨이라는 식당도 눈에 들어온다. 구소련 깃발과 하얀 흉상이 창문에 보인다. 이르쿠츠크 보행자 거리에서 보았던 힌두교 춤 행렬이 여기도 왔다. 화려한 의상과 살랑살랑 늘어지는 춤 새가 인상적이다.


       국립연해주 지방 박물관이 있다. 아르세니예프 향토박물관(ARSENYEV PRIMORSKY KRAI MUSEUM이)라고도 한다. 블라디보스토크 혁명광장 건너편에 위치한 아르셰니예프 향토 박물관은 연합 박물관이다. 알류산 거리에 있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을 말한다. 찾아가는 방법은 혁명광장에서 커다란 하얀색 건물인 주 청사를 지나서 조금만 더 가면 여기서부터 보행자 거리가 나오는데 바로 그 거리의 왼쪽 첫 번째 건물이다.

       1890년에 개관한 이곳은 2000년에 110주년을 맞이했을 정도로 오랜 전통을 자랑하며 전시품 수준도 뛰어나 지금까지 세 차례나 국제 박람회에서 수상을 했을 정도다. 유명한 여행 탐험가였던 아르세니예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해요. 민족지질학, 고고학, 역사뿐만 아니라 박제 동물, 식물 표본집 등을 포함해 20만 점 이상의 전시품이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의 로켓과 화폐 컬렉션, 선물가게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와 관련된 진열품이 눈에 들어온다. 블라디보스토크 도시의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어 볼 만 하단다.



       혁명광장으로 간다. 혁명광장의 기념탑이 보인다. 중앙대로인 스베틀란스카야 거리(Svetlanskaya st.)의 중심에 위치한 광장으로 영화 태풍의 촬영지인 혁명광장이다. 정식으로는 소비에트정권을 위해 싸운 병사의 중앙광장이다. 영웅 광장이라고도 한다. 중앙에 깃발과 나팔을 든 병사의 거대한 동상이 서있고 광장 왼쪽에는 White House, 벨르이 돔이라 불리는 흰색건물의 연해주 주정부청사가 있다. 신년축제를 비롯하여 매년 59일 전승기념일에는 퍼레이드 및 불꽃놀이가 펼쳐지며 그 밖의 각종행사가 열리는 이곳 중앙광장은 시민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대형 야외 공간이다. 연해주(프리모르스키, Примо́рский кра)청사 건물을 비롯해 역과 항구 주변의 건축물들은 20세기 스탈린 집권 후 집단적 경향의 러시아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의해 건축된 스케일이 크고 기념비적 성격이 강한 건물들이다.


       올해로 러시아 10월 혁명 100주년입니다. 191710월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나는데, 사회주의 혁명의 확산을 두려워했던 서방국가들은 동맹을 맺고 러시아와 전쟁을 치른다. 극동지역도 마찬가지여서 황제를 따르는 백군과 일본군이 연합해서 볼세비키 혁명군을 시베리아로 몰아낸다. 그러다가 1922년 볼세비키가 이곳 블라디보스토크를 다시 되찾으면서 러시아 혁명이 완성된다. 저 기념탑을 보면 왼쪽 작은 상들이 1917년의 혁명을, 오른쪽 작은 상들이 1922년 블라디보스토크를 되찾고 혁명을 완수한 것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을 하다보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지나치게 될 곳, 바로 혁명광장이다. 혁명이 시작될 무렵 이 광장에서는 시의회가 열리고 집회와 데모가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구소련을 위해 싸웠던 병사들을 기념한 곳이지만, 1937년 강제 이주를 위해 고려인들을 집합시켰던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광장에 서서 사진도 찍고 주변도 살펴본다. 러시아 전통인형 마트로시카를 판매하는 대형 기념품 가게도 있다. 아내와 들어가 구경을 한다. 3층으로 세워진 가게는 인형들과 각종 기념품으로 화려하다. 종류도 많고 가격도 다양한데 좀 비싸 보인다.


       광장 건너편에 있는 굼백화점(Vladivostok GUM, Большой ГУМ)으로 간다. 국영 백화점 건물()1906년에 건설된 고색창연한 건물로 과거에는 쿤스트 & 알베르스 상점 건물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가운데 하나다. 정면은 벽돌을 붙여 화려한 바로크 건축 양식의 음영을 만들었다. 혁명광장에서 하얀색 주 청사 반대편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 5층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상품이 다양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데 적당하다.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고전 틱 한 분위기다. 층계를 오르는 부분이 재미있다. 아름다운 거울이 달려있다. 아내와 나란히 서서 사진기를 누르면 자연스럽게 셀카가 된다. 분위기가 은은하다. 둘러보고 나와서 건물 뒤편으로 걸어가니 예쁜 골목이 이어진다. 산뜻한 벽화와 여러 개의 벤치가 있다. 젊은이들이 모여 있다.



      현대 호텔을 찾아간다. 현대그룹에서 세운 현대호텔은 블라디보스토크의 중심가에 자리 잡은 현대호텔은 서울 계동의 현대 사옥의 모양을 모방하여 건축한 호텔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화려하고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155개의 방과 사우나, 헬스클럽, 스카이라운지, 사우나, 수영장 등의 편의 시설이 있다. 2017년 올해로 롯데그룹이 인수를 했다고 한다. 이제 롯데 호텔인가보다. 호텔을 쳐다보고 있으니 왠지 기분이 좋다.


        아께안스키(Okeanskiy 도로)거리로 나왔다. 사람들도 많고 쇼핑센터도 많다. 카페, 은행, 관공서 건물도 있다. 약간 언덕진 길이다. 도보 끝에는 히치하이킹을 하는 모습으로 만들어진 동상이 있다. 재미있는 동상이다. 다시 역 방향으로 걸어간다. 선착장 부두도 있는데 역 주변은 엄청 복잡하다. 사람도 많다. 여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7번 버스다. 차를 타고 창밖으로 바라보니 도시 모습이 낯익어 보인다. 포근하고 활기찬 모습이다. 숙소에 와서 라면에 토마토와 계란 2개를 넣고 끓여서 먹는다.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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