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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키즈스탄 여행기3 (이경우)--- 비쉬켁

작성자睦園.박이환|작성시간18.09.08|조회수127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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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6일 월요일 맑음

 

      

      삶은 환경에 적응하게 되어 있는 것 같다. 지저분한 침대에서도 단잠을 자고, 그렇게 냄새나고 더러워도 ***을 다 보고 양치질 하고 세면도 했다. 생각만 해도 뒷골이 땡긴다. 창문 밖으로는 체육관 같이 생긴 서커스 장 건물이 보인다. 아내 말에 의하면 우리 방 옆의 창고 같은 곳에서 널빤지 위에 두 명의 아가씨가 잠을 자고 있단다. 공장 여직원인 것 같다. 우리 잠자리는 그곳에 비하면 좀 낫다고 할 수 있다.

 

8시경에 숙소를 나섰다. 먼저 타직 대사관에 가서 타직 비자를 받아야 한다. 지도를 보며 시내를 걸어보니 대사관 가지는 좀 멀었다. 대사관(빠솔스트바)라는 단어를 말하며 지도를 보여주면서 태시를 잡았다. 150솜을 달란다.(3750원)바가지 요금이 아닐까 걱정하며 경계한 나 자신이 부끄러운ㄹ 정도로 순박한 기사다. 철길을 건너 왼편 마을에 있는 타직 대사관 앞에 8시 30분에 도착했다.

 

       대사관 앞은 조용하다. 일단 벨을 누르자 직원이 나와서 9시부터 업무를 본다고 알려준다. 담장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시간가기를 기다렸다. 대사관은 고급 2층 가정집 같이 생겼다. 옆집과 다른 것은 규모가 좀 크고 키르키즈 국기가 아닌 타직 국기가 펄럭인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타직 비자와 파미르 하이웨이를 넘어가는 허가증을 받아야한다. 다른 국경에 비해 파미르 하이웨이로 들어가려면 따로 허가증을 받아야 입국할 수 있다. 기다리는데 일본인 젊은 커플이 왔다. 9시가 되니 문을 열어준다. 조그만 창구를 통해 필요한 서류를 받고 작성한다. 파미르를 넘어갈 수 있는지 물으니 타직의 국내 사정(내전)으로 인해 국경이 폐쇄되어 들어갈 수 없단다. 언제 국경이 열릴지 자기들도 알 수 없단다. 고민하고 있는데 이스라엘 총각 둘이 더 와서 국경 넘어가는 것에 대해 정보를 알려 주었다. 다른 국경은 모두 닫혀 있고 타직 북쪽의 Isfara만 열려 있단다. 키르키즈의 오쉬에서 반트켄을 거쳐서 국경을 넘어가는 루트를 설명해 주었다. 귀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대사관에 걸려 있는 지도를 보면서 설명해 주었다. 키르키즈 땅에 우즈벡 영토가 섬처럼 차지하고 있어 단수비자나 비자 없는 사람은 우즈벡을 통과해서 가면 안 된단다. 우리는 우즈벡 단수 비자를 갖고 있기 때문에 우즈벡에 들어가면 안 되었다. 우리의 여정을 인도해 주는 천사들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것이다. 타직 비자는 3일 걸리는 것은 50$에 100솜, 내일 찾는 것은 65$에 100솜, 금일 발급은 100$에 100솜을 내란다. 일단 서류를 작성해서 내일 10시에 찾기로 하고 모든 절차를 끝냈다. 타직의 파미르 하이웨이를 통과 하는 것이 입전 여행의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데 포기할 수밖에 없어 정말 아쉬웠다. 여행에서 더 중요한 것은 무사히 집에 가는 것이다. 일단 일정을 수정하기로 마음먹으니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좀 더 많아진 것 같다.

 

       대사관에서 큰길로 나와 택시를 타고 사쿠라 게스트 하우스로 향했다. 골목 가게에서 빵 2개와 물을 샀다. 사쿠라 숙소는 일부분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다음 손님을 맞기 위해 청소중이다. 우리는 사무실 앞에서 좀 기다린 후 2층의 깨끗한 숙소를 받았다. 대문의 코드번호는 2.6을 누른 후 연다. wifi 코드는 oe11923이라고 알려준다. 역시 일본인답게 숙소는 깨끗하고 완벽했다. 공동화장실과 샤워장도 깨끗하다. 전기와 물 사정이 미흡해 보이지만 자가발전으로 해결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숙소는 간판도 없고 벽에 낡은 현수막이 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 시내 중심가의 뒷골목에 있어 감춰진 느낌이다. 숙박비는 2인실에 900솜(22,500원)이다. 두당 11,000원 정도다. 

 

      이제 비쉬켁 시내 투어다. 비쉬켁은 (옛날은 푸룬체라고 불림)키르키즈의 수도이자 산업의 중심지이다. 비쉬켁이란 말은 발효된 말 우유를 만들 기위해 사용되는 밑밥을 가리킨다. 론리에 의하면 낮에는 멋진 도시지만 밤에는 험악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비쉬켁은 중앙아시아의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주민 당 나무가 많은 곳이다. 아주 인상적인 것은 4800m 높이의 만년설로 뒤덮인 키르기 알라타우 산이 비쉬켁 뒤에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아들 친구 **이가 이곳에 유학 와서 공부하고 있다. 주변 스탄 국들 중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나라란다.

 

       영국의 경제학자 토마스 멜더스는 ‘인구론’에서 ‘키르키즈인의 불타는 듯한 자유 독립 정신은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일꾼으로 일하지 않는다.‘고 했다. 남에게 예속되지 않는 자유정신을 엿볼수 있다. 1991년 소련 해체 후 장기집권ㄹ하던 아카예프 대통령을 2005년 3월 권좌에서 축출한 시민혁명을 튤립혁명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2003년 그루지아의 장미 혁명, 2004년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에 이어 옛 소련지역에서 세 번째로 피 안 뿌리고 민중이 독재 정권에 승리한 곳이다. 그러나 민초의 도움으로 집권한 바키예프 대통령은 부패하고 무능해 제2의 튤립혁명을 겪게 되는데, 5년 전과는 달리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해 수 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번에는 꽃향기보다는 피비린내가 났다. 처음에는 레몬 혁명이라고 불리었는데 서방 언론에 의해 튤립혁명으로 바뀌었다.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튤립을 들고 나온 것에 빗대어 이름이 붙여졌다는 말도 있고 매년 봄에 이 나라의 산과 들에 야생 튤립이 만발해서 이를 시민에 빗대어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일단 숙소를 나서니 구수한 고기냄새가 난다. 그러고 보니 아침식사를 걸렀다. 케밥 가게가 가까이 있다. 케밥(샤오르마)를 하나 사서 먹으니 속이 든든하다. 건널목 앞에는 키르키즈의 전통 음료를 파는 사람이 앉아있다. 보리(또는 기장)발효음료인 막슴쇼르, 우류 발효 음료인 찰랍쇼르를 한 컵씩 사서 먹어보았다. 시큼털털한 것이 먹을 만했다. 여름에 아주 인기 있는 전통 음료수란다. 붉은색 통은 보리미수가루, 파란색 통은 우유나 말젖 발효유, 초록색 통은 새로 등장한 아이스티였다.

 

       처음 만난 건물이 사용하지 않고 있는 듯한 작스 국립 예식장이다. 거리는 고목의 가로수가 줄지어 있고 길가에는 계속 흐르는 물이 있어 시냇물 느낌이다. 물은 생각보다 깨끗하고 거리도 쾌적하다. 그 다음 만난 건물이 대리석 기둥 8개가 2줄로 세워져 있는 오페라 하우스다. 오페라와 발레 공연 등 클래식한 연주장이란다. 길을 건너 공원 쪽으로 간다. 동상이 하나 있는데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공원은 넓어 보인다. 조각들이 많다. 키르키즈의 자랑할 만한 조각가가 있는 것 같다. 작품에서 풍기는 냄새가 한사람의 작품 인 것 같다. 화강암에 나타내고자 하는 부분만 섬세하게 표현해 놓았고 나머지는 그냥 돌 모양 그대로 표현, 거칠게 처리해 놓았다. 쭉쭉 뻗은 나무들 사이에 많은 작품이 놓여있다. 주로 중앙아시아의 인물, 동물 등이 주제이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서 본 비겔란의 조각 공원이 생각나지만 이곳의 작품들은 주인공이 아니고 공원의 조연 같은 느낌이다.

  

       아들 친구가 다니고 있는 국제대학 건물이 오른쪽에 있다. American University Central Asia. 오래된 건물이 관공서 같다. 건너편에는 두 분의 품위 있는 영감님이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는 동상이 있다. 학자인지, 공산주의자인지, 구소련의 냄새가 난다. 대학 옆에 넓은 광장을 품은 국회의사당 건물이 보인다. 조용하고 사람도 별로 없다. 정치는 작고 조용히 경제는 활발하고 크게 돌아가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원 쪽에는 알 것 같은 동상 레닌이 오른 손을 번쩍 들고 뚱뚱하게 서 있다. 구소련의 대표적인 작품 같다. 골동품 이다. 계속 걸어가니 극장 같은 건물이 나타난다.

  

        놀이공원 판필로프가 분홍색 대문을 갖고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카작 알마티에서 방문했던 판필로프 장군이 여기와도 연관이 있나보다. 들어가 보니 예쁜 분수를 중심으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놀이시설들이 보인다. 사람들도 제법 보여 기분이 좋다. 작은 당나귀(노새?) 마차가 화려하게 장식하고 꼬마 손님을 기다린다. 사진 찍어주고 현상해 주는 사람이 제일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공원을 둘러보고 승리광장으로 갔다. 작은 조형물이 있고 특별히 지키는 사람도 없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다.

  

       커다란 건물을 향해 작은 길을 건너니 대통령궁이다. 국회의사당보다 대통령 궁이 더 커 보인다. 거리에는 흰색 대리석을 등지고 검은색 대리석을 밀고 있는 조형물이 보인다.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2005년 튤립혁명 중 사망자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위령비란다. 공원에 심어진 나무가 특이하다. 아래는 모두 흰색을 칠하고 중간이 뭉뚱한 혹처럼 보이는 나무들이 줄지어 있다. 꼭 타조 다리 같다. 숲을 지나니 커다란 광장이 나오고 3가지 형상이 눈에 들어온다. 대형 붉은색 국기와 마나스 장군의 기마상, 그 뒤에 박물관이다. 마나스 장군은 아주 유명한데 우리나라 단군신화와 같은 인물이란다. 정식 역사서에는 이름도 오르지 않은 사람인데. 키르키즈인의 심장 속에 심겨져 있는 태초의 인물이다.

 

       중앙아시아의 문학은 아킨 이라고 불리는 순회극단이 연출하는 노래, 시, 이야기 형태로 전통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그 중 마나스라고 불리는 영웅주의 영웅에 관한 전설이 있다. 이것은 오딧세이 보다 20배나 긴 내용이다. 구전 전통이 사라졌지만 마나스는 여전히 키르키즈 사람들에게 그들의 꿈을 이루어준 인물이다. 마나스 노래를 부르는 할아버지는 한국의 판소리 명창 같은 대접을 받는다. 마나스 이야기에는 그의 아내와 아들이 등장하고 그가 전장에서 펼친 화려한 액션들로 이루어져 있다. 제일 유명한 마나스의 서사시에 관한 이야기꾼은 500솜 화폐에 등장하는 사야크바이 카랄라에프(1849~1971)이다. 그는 할머니에게 ‘마나스’를 배우기 시작하여 전통적인 방식으로 공연했으나 30살부터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연했다고 한다. 삼부작 ‘마나스’ ‘세메테이’ ‘세이텍’ 을 완성했다. 그의 공연은 비극, 서사, 드라마 등 다양하였고 언제나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아주 능력 있는 이야기꾼이었다. 소련 핀란드 등 여러 나라에서 공연을 했고 많은 상도 받았다. 500솜짜리 화폐에 그의 얼굴이 있고 뒷면에는 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마나스 장군의 활약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장군 상 뒤의 흰색 건물이 박물관이다. 전에는 레닌을 중심으로 한 구소련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으나 이제는 농기구, 말 장식, 서적, 토기, 화살촉 등 역사적인 유물이 주를 이룬다. 국기 밑에 있는 유리 상자 속에 근위병 둘이 서 있는데 모자는 커 보이고 무척 더워 보인다. 교대식이 재미있다고 하는데....... 알라투 광장으로 건너가는데 낡은 러시아제 트럭이 큰 도로로 회전해 간다. 이곳의 경제사정을 보는 듯하다. 기다란 건물 두 개가 똑같은 모양으로 마주보고 사이에 분수대가 있는 곳이 알라투 광장이다. 밤에 야경이 멋지고 분수가 있어 젊은이들이 많이 모인다. 젊은이들의 장소답게 폼을 잡고 옷을 걸친 동상이 자신만만하게 분수대를 바라보고 있다. 그늘에 앉아서 잠시 쉬면서 광장을 본다. 분수대는 물이 나오지 않아 좀 초라해 보인다.

 

      태양은 무척 뜨겁다. 건너편 건물로 돌아가니 작은 슈퍼가 있다. 유명하다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샀다. 아이스크림은 뚜껑이 없고 상표가 위에 붙어있다. 상표를 떼 내고 먹어보니 아주 맛있다. 키르키즈는 목축업이 발달한 나라라 다양한 유제품이 있다. 우유는 말라코라고 하는데 조금 신맛이 나는 경우가 많다. 치즈, 버터는 흔하게 구할 수 있다. 우유 외에 말 젖도 팔고 있다. 그리고 거리에는 많은 종류의 아이스크림 장수를 볼 수 있다. 말리 새끼를 낳는 봄 여름에 만 마실 수 있는 부드러운 알코올 음료 인 발효된 말 우유인 쿠미를 마실 수 있고 발효된 기장으로 만든 걸쭉한 발효음료인 보조는 일 년 내내 마실 수 있다.

 

     길을 건너가니전통 의상을 입고 모자와 스카프를 두른 여자 동상이 있다. 이 여인은 키르키즈의 최조 여성 정치가인 쿠르만샨 다트카(1811~1907)이다. 18세에 나이든 사람과 결혼하는 풍습을 깨고 알라이 지방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다카트(장군)라는 칭호를 받고 알라이 지배자가 되었다. 알라이 지방이 러시아에 병합되자 러시아에 저항하다가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추방되고 만다. 키르키즈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인물로 50솜 화폐에 그의 얼굴이 있다. 키리키즈 화폐에 등장하는 인물 중 여성이 둘인데 그중 다른 하나는 부부사라 베이쉐날리에바(1926~1973)이다. 키르키즈 최초의 세계적인 발레리나다. 그년는 러시아의 모스크바에 있는 볼쇼이 극장에서도 활동하고 국내 무대에서 프리마돈나로, 또는 대학 교수로 활동한 여성으로 5솜 지폐에 그의 얼굴이 있다.

  

       좀 돌아다녔더니 다리가 아프다. 조각공원 그늘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한다. 10여 미터 떨어져 있는 분수 급수대에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간다. 풍선을 든 꼬마가 물을 먹는 모습이 그림 같다. 두보비 공원으로 간다. 알마티에도 두보비 공원이 있다. 이상하게 같은 이름을 쓴다. 두보비는 상수리나무라는 뜻이란다. 이 지역은 쭉 뻗은 상수리나무가 많다. 여기에는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져 있다. 길 건너편에는 방송국 건물이 보인다. 길을 건너니 악기든 동상이 있다. 톡토굴 사틸가노프(1864~1933)의 동상 같다. 이 나라의 시인이자 민주주의자인데 전통악기 코무즈 연주에 능했단다. 가난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시와 연주를 들려주곤 했단다. 그의 시는 국민들을 선동하여 러시아에 대항케 했다는 이유로 체포되고 결국 사망했다. 키르키즈의 민주적인 사고는 그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평한다. 국민적 영웅으로 100솜짜리 지폐에 그의 얼굴이 있다. 지폐에 등장하는 인물을 알아보는 것도 그 나라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1솜짜리 지폐에 등장하는 압딜라스 말디바예프는 작곡가로 국가를 작곡한 사람이다. 전통음악과 유럽풍의 작곡 비법을 접목시켜 새롭게 전통음악을 발전시키고 대중화 시킨 인물이다.  전통악기 코무즈와 킬키악도 잘 다루었단다. 10솜에 나와 있는 카심 티니스타노프(1901~1938)는 작가이자 정치가인데 최초로 자국문자를 사용해서 신문, 교과서, 시를 발표했고 소련 지배 하에서 반체제 정치활동을 했다. 1000솜 지폐에는 유수프 발라사긴(11세기)은 시인이자 사상가인데 중세에 활동하던 사상가로 ‘행복을 가져다주는 지식’으로 유명하지만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단다. 20솜 지폐에는 토고록 몰도(1860~1942)의 얼굴이 있다. 작가이자 시인이고 민요작가로 서사시인 ‘마나스’를 독창한 인물로 유명했다. 토고록은 둥근 얼굴이라는 뜻이고 몰도는 교육 받은 사람이라는 뜻이란다. 전통 모자를 쓴 동양적인 모습의 얼굴이다.

 

       숙소로 걸어간다. 일단 빨래를 해서 널었다. 아내와 가까운 재래시장을 찾아가기로 했다. 장기 투숙하는 일본 총각에게 물으니 친절하게 알려준다. 아라메딘스키 바자르인데 걸어서 30분 정도 걸린단다. 방향을 잡고 걸어가다가 중국 식당이 보여 저녁식사를 해결하기위해 들어갔다. 다행히도 메뉴판에는 영어도 보였다. 그러나 중국집이라고 해서 다 맛있는 것은 아니었다. 중국음식이 중앙아시아의 환경에 적응된 듯 한 느낌이다. 밥과 돼지고기, 수프를 주문했다. 주 메뉴인 돼지고기는 모두 기름덩어리였다. 살코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지역의 돼지고기 양고기, 볶음밥, 만두 등은 너무 기름이 많아 사먹기가 두렵다. 그나마 치킨이 제일 마음이 놓인다. 음식에 적응하는데 좀 시간이 걸리겠다. 결국 스프에 밥을 말아서 먹고, 돼지고기 요리에서 야채만 골라먹다가 숟가락을 놓았다. 여행을 하다가 중국집을 방문하면 우리를 실망 시킨 적이 없는데 예외도 있음을 인정하는 날이었다. 식당 내에는 중국인 7~8명이 모여 올림픽경기를 관람하며 장사에는 별로 흥미도 없는 분위기다.

 

       키르키즈 인들은 리뾰시카(둥근 빵)와 차이를 우리가 김치와 밥을 먹는 것처럼 주식으로 먹는다. 빵은 거리나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생각보다 종류가 많다. 또 주요 산업이 양고기 등을 이용한 축산, 유목이므로 고기를 이용한 샤슬락 이라고 불리는 꼬치구이가 많다. 양고기는 만두에도 들어간다. 키르키즈는 여름에 무척 덥기 때문에 과일이 달고 풍성하다. 수박과 참외가 많이 보인다. 수박은 우리와 비슷한데 참외는 크기가 거의 5배는 되는 것 같다.

 

     뜨거운 햇빛을 피해가며 힘들게 걸어 시장에 도착했는데 막 청소를 하며 시장 문을 닫고 있었다. 시장의 규모도 엄청 커 보이는데 오후 6시 30분경이고 아직도 날이 훤한데 시장 문을 닫다니 알 수 없는 일이다. 밤이 되면 전기사정이 좋지 않은 까닭인 것 같다. 대로변 바닥에 펼쳐놓은 과일 파는 아주머니에게서 포도와 사과를 사서 배낭에 넣었다. 가게들은 문이 닫히고 주변청소를 하고 있는 시장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서둘러 나가야 했다. 잘못하면 출구도 없어질 것 같았다. 사방에 있던 철문들이 하나둘 닫히고 있었다. 숙소를 향해 걸었다. 슈퍼를 만나 물과 건포도, 호두를 사고 수박 1/4 덩어리를 샀다. 한 덩어리를 사면 다 먹지 못할 만큼 크다. 숙소는 입구에 작은 모스크가 있어서 찾아가기 쉽다.

  

       저녁 시간은 여유가 있다. 수박은 시원하고 꿀맛이다. 사과도 포도도 당도가 높아 맛있다. 이곳 과일들은 우리의 입맛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숙소는 뜨거운 물이 잘 나온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조용하고 깨끗해서 좋다. 전기 사정도 이곳만은 별천지다. 여기를 많이 찾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러나 겨울에는 찾는 이가 적어 쓸쓸하단다. 멀리 일본을 떠나 이곳에 정착하여 숙박업을 하는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낼까? 만약 입장을 바꿔서 내가 이곳에 산다면 무슨 낙이 있을까? 답이 금방 나오지 않는다. 살아보지 않고 어지 이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내일은 오쉬를 향해서 가야한다. 준비된 아무 교통편도 숙소도 없다. 아는 것은 오쉬에 가야한다는 목적지뿐이다. 무슨 일이 어떻게 전개될까? 걱정을 주님께 맡기고 오늘의 행복을 생각하며 자리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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