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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케스탄 여행기5 (이경우)-- 뜨거운 부하라

작성자睦園.박이환|작성시간18.09.29|조회수2,556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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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4일 화요일 맑음.

 

     아침 식사는 숙소에서 준다. 빵 포도 후라이 잼 홍차로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오늘은 천천히 부하라를 돌아볼 것이다. 이곳의 집들은 모두 지붕이 평평하고 봉긋봉긋하다. 우리 숙소는 2층인데, 천장이 나무로 가로질러 마감되어 있어 정겹다. 거리는 대부분 황토로 빚어진 벽돌로 세워진 집이다. 도시 전체는 박물관이다. 모양도 다르고 세워진 시기도 다른 건축물들이 140여개나 되는 그러나 어찌 보면 흐름이 모두 같은 건축물이다. 이 지역의 더위와 건조함에 어울리게 만들어진 것 같다. 또 이슬람 도시다. 10여개의 이슬람 학교와 크고 작은 모스크가 50여개가 있을 정도로 이슬람이 진한 곳이다. 진정한 우즈벡을 보려면 부하라를 가라는 말이 있듯이 진정 우즈벡 다운 도시다. 배낭에 물과 카메라를 넣고 모자를 쓰고 썬 크림 바르고 숙소를 나섰다. 짧은 골목을 지나니 바로 사각형의 호수 나비 하우스이다. 해가 뜨면 날씨가 뜨거워 사람이 별로 없다.

 

     나비 하우즈 옆, 왼편에 있는 것이 DIVAN-BEGHI KHANAKA 이다. 수피교도들이 기도하고 공부하는 곳인데 내부는 박물관이다. 하나카는 숙소와 예배장소다. 걷는 길은 타일로 잘 깔려있어 걷기 좋다. 허술하고 지면보다 낮은 모스크가 보인다. 가가이 가보니 마코키 아타리 모스크다. 부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모스크로 9세기경에 세워졌다. 비록 낡았지만 카라-하니드 시대의 뛰어난 건축양식이라는데, 무엇이 뛰어난지 모르겠다. 이 모스크는 부하라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종교적 유적이란다. 이곳이 불교, 조로아스터교, 이슬람의 유적이 같은 장소의 각각 다른 지층에서 발굴된 곳으로 유명하다. 주변에 발굴 흔적이 가득하다.(입구 간판에는 12~14세기의 건축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채색이 모두 벗겨져 버린 흙 벽돌의 모습이 속살같이 모두 보인다.

 

     나와서 아시아 호텔로 가서 성미양을 기다렸다. 8시에 만나기로 했다. 아침인데도 벌써 덥다. 이곳 부하라는 키질룸 사막 한가운데 있는 도시란다. 키질룸 사막은 약 30만 ㎢의 넓이로 우즈벡 땅을 거의 차지하고 있다. 키질룸이란 붉은 모래란 뜻이다. 북서쪽의 아랄해, 북동쪽의 샤르다리 강, 남서쪽의 아무다리야 강을 이용해 관계수로 공사로 목화 재배와 채소 과일 생산을 하고 있다. 목화를 딸 때에는 일손이 부족해 학교도 목화 방학을 해서 아이들도 돕는단다. 강수량이 1년 내내 100mm 내외로 아주 건조한 땅이다. 빨래를 해 놓으면 2시간이면 바짝 마른다. 빨래방 사업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전세계 빨래를 갖다가 세탁하여 배달해 주면....... 고추를 말려 전 세계로......... 상상을 하는데 성미양이 왔다. 시내를 돌아보기로 했다.

 

     통로는 주로 굼바스로 이루어져 있다. 옛날에 세워진 고전적인 상가 건물을 가리키는 용어로 이슬람 양식의 둥근 돔들로 이어진 낮은 건물을 말한다. 멀쩡한 겉모습과 함께 작은 바자르(시장) 역할을 지금도 하고 있다. 예전에는 상업시설의 중심이었고 다양한 국적의 상인드링 모여들기에 환전소 역할 뿐 아니라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가게들이 길게 이어지는데 양탄자, 약국, 먹거리 등 다양하다.

   

     14세기에 지어졌다는 Telpak Furushow 와 Abdulloxon 을 들어가 본다. 카페트 전시장으로 변해있다. 크기와 모양, 문양이 다른 카페트들이 건물 내부에 가득하다. 한 쪽 구석에는 식당도 있다. 좀더 걸어가니 1652년에 지어진 Abdul Azizxon 마드레세(신학교)가 1417년에 지어진 Ulugbek 마드레세가 마주 보고 있다. 이곳도 외형만 옛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신학교나 하나카(숙소와 예배처소)로 사용되지 않고 장사하는 곳으로 내부가 이용되고 있다. 14세기에 지어진 Zargaron 도 마찬가지다. 옛 건물들을 들어가 보는 것 보다 길가에 펼쳐놓은 상인들의 물건이 더욱 흥미롭다. 여러 가지 종을 만들어 파는 사람도 있고, 먹는 빵을 굽기 전에 찍는 문양을 만드는 나무 도장의 종류도 다양하다. 커다란 신학교가 마주하고 있고 높은 첨탑이 있는 광장에 왔다. 오른편에 세워진 Miri-Arab Madrasasi(1530~36)는 현재에노 신학생이 공부하고 있는 유명한 신학교란다. 문이 열려있어 들어가 보니 지키는 사람이 통제를 한다. 미르 아랍이라는 말에서 미르는 왕, 지도자라는 뜻 이란다.

 

     칼란(Kalyan) 메드레세에 들어가는 넓은 마당에 나무 한 그루만 덩그라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깨끗하고 견고한 느낌을 준다. Minorai Kolon은 타직어로 큰 탑이라는 뜻이다. 입구가 땅에 없고 칼론 모스크와 이어진 탑 중간에 있다. 모스크는 한꺼번에 일 만 명 이상이 기도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라고 하지만 실제는 3~4천명도 버거울 것 같은 규모다. 광장까지 계산하면 가능할 것 같다. 우리의 눈을 머물게 한 곳은 칼란 미나렛(첨탑)이다. 카라하니드 왕조(990~1138)의 이슬람 지도자가 1127년에 세운 첨탑으로 “높은 탑”이라는뜻을 가지고 있다. 부하라의 상징인 건축물로 높이 46m 가량의 견고하고 큰, 높은 첨탑인데 사기 타일로 꾸며져 있어 질서 있는 아름다움도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첨탑이다. 숱한 외침과 붕괴 속에서도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종교적인 의미 외에 이 탑의 또 다른 기능 덕분이다. 꼭대기에서 불을 지피면 탑은 사막의 등대 역할을 한다. 실크로드의 행상들은 이 불빛만 보고도 오아시스인 부하라를 찾을 수 있다. 몽골의 징기스칸이 부하라를 침공해 수많은 이슬람 유적을 파괴했는데 이 탑에는 칼을 대지 못하게 한 것도 이러한 이유뿐만 아니라 아주 잘 만들어진 진가를 알아봤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탑은 한때 죽음의 탑이라고 물려졌다. 부하라의 왕이 죄수를 자루에 담아 던져 죽이는 처형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섬뜩한 이야기가 아름다운 모습 속에 감추어져 있다.

 

     날씨가 무척 덥다. 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한 것이 사막 기후의 특징이다. 잠깐 쉬려고 미르 아랍 모스크 정문 계단에 걸터앉았다. 한국 영감님 세분이 오셨다. 퇴임 후 친구들이 모여 여행을 왔는데 어제 히바에서 택시를 타고 고생하며 건너온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세분이 다니니 겁날 것이 없을 것 같다. 퇴임 후의 아름다운 모습이 거울로 다가와 반가웠다. 꼬마들 둘이 사진엽서를 들고서 사라고 그림자 같이 따라 다닌다. 다시 구경을 하러 나선다. 엄청 뜨거워 걸을 엄두가 안 난다. 아내의 양산에 함께 껴보니 좀 살 것 같다. 카페트 시장이 많이 보인다. 작은 상가들도 보이는데 손님이 없다.

 

     아르크 성채(Ark)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별로 높지않은 성채지만 잘 복원해 놓았다. 부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란다. 5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부하라 지도자가 거주하던 성이다. 780여 m 나 이어지는 사암으로 된 흙벽이 인상적이다. 5세기에 처음 축성하여 몽골, 투르크 족 등의 숱한 침략으로 붕괴와 재건을 반복해 왔다. 그늘이 없어서 좀 걷기 힘들다. 성채를 돌아 정문으로 들어서면 전시 공간이 있고 기념품 가게도 있다. 정문 통로 양 옆에는 기념품 가게가 있다. 전시실에는 흙 도자기, 녹슨 철검들, 유물들, 도자기, 전통악기, 활, 창, 도끼, 대포, 대포알, 그리고 코란이 있는데 크기도 천차만별이다.

 

     대충 둘러보고 성채 옆에 있는 볼로 하우즈라는 사원으로 갔다. 사원에는 아담한 첨탑과 연못과 함께 호화스럽게 꾸며진 아이반 이 있다. 아니반은 여름에 사용하는 사원 건물로 주로 기둥이 있는 테라스 모양이다. 1712년~1713년에 세워졌는데, 원목을 조각해 세운 16개의 길쭉한 기둥이 인상적이다. 아주 정교한 조각이 맘에 든다. 볼로 하우즈에 설치된 디지털 온도계가 39℃를 가리킨다. 나무 그늘에 사람들이 앉아서 설명을 듣는 모습이 시원해 보인다.

 

     용의 샘물이 있다는 곳에 가다가 양고기를 삶는 아저씨를 발견했다. 흙벽돌을 이용해 커다란 가마솥을 걸쳐놓고 불을 지펴 고기를 삶는다. 긴 쇠 꼬쟁이로 삶는 고기를 건져 보여준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함께 웃는다. 정겨워 보여 좋다. 걸어서 Chashma-Ayub-Maqbaras(12세기~14세기)에 갔다. 차쉬마 욥, 욥의 샘이라는 뜻이다. 욥은 구약 성서에 나오는 인물이다. 부하라 주민들이 물이 없어서 고생하고 있을 때 욥이 나타나 지팡이로 땅을 내려치자 이곳에 샘이 터졌단다. 욥이 살던 우스 땅은 팔레스타인인데 여기부터 수 천 킬로 떨어진 곳이다. 욥이라는 인물은 유대교, 기독교 뿐 아니라 이슬람 경전인 코란에도 등장한다. 이슬람 정부 시기에 만들어진 얘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12세기에 샘 위에 지어진 영묘가 있다. 이 영묘는 누구도 안장되지 않았지만 영묘라고 불린다. 관광객들은 샘물을 직접 마셔볼 수 있으며 건물 안에는 부하라의 “물”에 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도 들어가 물을 마셨다. 물 꼭지가 4개 있다. 뒤에는 석관이 있는데 누구도 안장되지 않았다니 이상하다. 욥 모스크 광장 맞은편에는 기념관인지 박물관인지 예쁜 아담한 건물이 있다.

 

     그다음 찾아간 곳이 이스마일 샤마니드 마우솔레움(샤마니드 영묘)이다. 중앙아시아 고전 건축의 걸작품이라 칭송받는 샤마니드 영묘는 공원에 위치한다. 이 영묘는 부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영묘로 905년에 만들어졌다. 영묘에는 샤마니드 왕조(879~999년)중 샤마니 왕조를 세운 이스마일 샤마니와 그의 아버지, 아들들이 안장되었다. 샤마니드 영묘는 세계에서 유일한 기술로 건축되어 하루 중 태양의 위치에 따라 벽의 무늬가 변한다. 묘에 사용된 벽돌은 수천년을 견딜 수 있도록 낙타 젖을 섞어 흙과 반죽한 벽돌이란다. 단단한 비스켓 느낌이다. 위쪽 부분에 10개의 창문이 있고, 창문 옆에 2개의 기둥이 있는데, 기둥 디자인이 모두 다르다. 벽돌로 이렇게 예쁜 모양을 한 건축물의 영묘는 단 하나밖에 없단다. 징기스칸의 몽골군이 침략해 왔을 때 파괴되지 않은 것은 이 영묘가 당시 땅 속에 묻혀있었단다. 지금의 모습은 20세기 초 구소련의 고고학자가 발굴하여 현재 모습이 드러났다. 너비 10m인 정육면체의 영묘를 숨을 참고 두 바퀴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있는데........ 작은 연못을 갖고 있는 영묘 광장 앞에는 아주 오래된 포도나무가 있다. 그늘이라 더위를 피해 들어가니 청포도가 주렁주렁 열려있다. 한 알을 따 먹어보니 맛이 꿀맛이다. 커다란 한 송이를 따서 가방에 넣었다.

 

     조금 더 걸어가니 커다란 연못, 저수지가 있다. 이렇게 메마른 사막에 저수지가 있다니 꿈만 같다. 이렇게 뜨거운 날이 계속되면 금방 말라버릴 것 같은데, 어디서 물이 계속 유입되나보다. 저수지에는 보트를 타고 노는 3개의 작은 배가 보인다. 연인들이고 가족들인 것 같다. 시장 방향으로 걸어가니 마을을 보호 했던 성곽의 일부가 보인다. 흙을 이용해 통나무를 중간 중간 박아 쌓아 올린 성채다. 넓은 공터를 지나니 시장이다. 시장에는 타직 사람이 많다는데, 내 눈으로는 구별하기 힘들다. 과일이 풍부하다. 견과류도 많다. 설탕 덩어리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전통 과자도 보이고 향료도 종류가 많다. 시장 규모가 워낙 넓어 과일, 견과류, 공산품, 의류, 육류 등으로 따로따로 구분되어 있다. 한국말을 잘하는 아저씨도 만났다. 한국에서 5년 동안 일했단다.

 

     아내와 성미양은 빵을 산다고 멈췄다. 논(Non)이라 부르는 둥근 빵은 우즈벡에서는 생명과도 같은 주식이다. 러시아어로는 레뾰쉬카라고 부른다. 방부제나 다른 첨가물을 넣지 않는 논은 오랜 시간 보관해도 쉽게 상하지 않는다. 우즈벡 민족에게 논은 주식이자 성스러운 것이다. 스푸나 오쉬(볶음밥), 만띠(만두) 등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항상 논을 곁들여 먹는다. 길을 가다 바닥에 떨어진 빵조각을 발견하면 반드시 주워 바닥이 아닌 다른 곳에 올려 둔다. 

오랫동안 집을 떠나게 되면 온전한 논의 작은 조각을 떼어 입에 문다. 후에 이사람이 집에 돌아올 때까지 남은 논을 보관한다. 집들이나 명절, 혹은 길을 떠날 때에는 먹을 논을 여러 개 준비해서 들고 간다. 둥근 논에도 여러 가지 종류와 모양이 있다. 얇고 납작한 논이 있는 반면 빠뜨르라는 페스트리처럼 겹겹이 된 논도 있다. 그리고 지방에 따라 논을 만드는 방법이 약간씩 다르다. 특히 다른 지방의 납작한 모양과는 달리 힘있고 두툼한 사마르칸트 논은 다른 지역에서 만들 수 없는 사마르칸트 특산품이다. 사마르칸트 논이 얼마나 유명했던지 이와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부하라의 왕은 사마르칸트 논과 같은 빵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사마르칸트의 제일 유명한 아부딜라티프라는 기술자를 부하라에 데려와 빵을 만들게 했다. 그러나 사마르칸트 논의 맛을 내지는 못하였다. 기술자는 사마르칸트에서 탄드르(화덕)를 가져와야한다고 해서 가져다가 만들었지만 그래도 그 맛을 내지 못했다. 심지어 사마르칸트에서 밀가루와 물마저 공수하여 빵을 만들었지만 빵맛은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부하라왕은 사마르칸트 논은 사마르칸트 공기로만 만들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사마르칸트 논은 속이 가득차고 찰진 질감이 느껴진다. 다른 지역에서는 무슨 수를 써도 이런 논을 만들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사마르칸트의 공기와 물만이 이런 논을 만들 수 있다고들 한다. 다른 지방 친지들을 방문할 때 사마르칸트 논을 선물하면 굉장히 기뻐한다.

 

      빵 굽는 사람들은 수세기 동안 탄드르라는 흙으로 만든 화덕에서 논을 구웠다. 화덕은 벽돌로 1m 정도 쌓은 지지대 위에 말의 털과 흙을 섞어 만든 골격을 놓고 흙과 짚을 섞어 주위에 이겨 바른다. 이렇게 만들면 높은 온도에서도 견딜 수 있는 단단한 탄드르가 완성된다. 논을 만드는 공방에서는 몇 명이 돌아가면서 일을 한다. 사람들은 밀가루, 이스트, 소금, 물, 기름 등을 반죽하여 몇 십 분 정도 놔두어 숙성시킨 다음 둥근 논 모양을 형성한다. 몇 명은 그동안 탄드르에 불을 넣어 온도를 올려둔다. 가장 경력이 많은 사람만이 논을 굽는 일을 할 수 있다. 논을 구울 때에는 일단 불을 낮추고 논 반죽의 뒷면에 물을 발라주며 탄드르 안쪽 벽에 붙인다. 이후 20분 정도 구우면서 논 겉면이 타지 않도록 가끔 물을 뿌려준다. 이렇게 정성을 다해 논을 구우면 황금빛 빛나는 맛있는 논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빠뜨르라는 논을 샀다.(그런데 별로 맛이 없어 결국 한국까지 오고 말았다.) 그리고 요리할 때 사용한다고 월계수 잎도 샀다. 시장을 나와 왔던 길을 천천히 되돌아간다. 마지막으로 초르 미노르 모스크를 찾아보고 끝을 내기로 했다. 지도를 보며 찾아가는데 쉽지 않다. 길을 찾는 것 보다 뜨거운 날씨 때문에 더욱 힘들다. 청년들을 만나서 길을 물으니 친절하게 알려준다. 힘들게 찾았다. 첨탑이 4개있는 Chor Minor Darvozasi이다.(1806~1807). 이 이름도 타직어란다. 초르는 타직어로 4, 즉 탑이 4개라는 뜻이다. 좀 특이한 모양이다. 우리가 나타나니 그때야 입장료를 받으러 사람들이 나타난다. 성미양만 들어갔다. 맞은편 그늘에서 물을 빌려 포도를 씻어서 먹었다. 꿀맛이다. 이 모스크는 안에서 보는 것 보다 밖에서 그냥 보는 것이 더욱 멋지다고 성미양이 알려준다.

 

      숙소로 천천히 걸어왔다. 성미양은 5시에 히바 행 버스가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갖고 버스를 타러 시장 앞으로 서둘러 갔다. 이렇게 성미양과 헤어졌다. 히바는 택시로 8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100$ 정도를 요구한다. 흥정하기 나름이지만 거리와 기후가 만만치 않다. 잘 여행하고 무사히 돌아가기를......... 숙소에 들어와 에어컨을 키고 벌렁 누우니 살 것 같다. 입이 궁금하다. 시원한 메론을 사러 나왔다. 메론은 우즈벡 말로는 코분이고 러시아 말로는 듸냐라고 한다는데 메론의 종류도 엄청 많다. 짜증나도록 더운 날이다. 겨우 작은 채소 가게를 찾았다. 메론을 하나 샀다. 깎아서 먹으니 꿀맛이다. 기후 탓에 여기서 생산되는 과일은 어느 과일이라도 맛있다. 끝도 없이 먹겠다. 잠시 쉰 후에 해질 무렵 다시 산책을 나왔다. 해 가 길게 누우니 그림자도 길게 눕는다. 그림자놀이도 재미있다. 흙벽돌에 검은 그림자가 선명하게 나타나는데 예술적이다. 아내와 둘이서 칼란 미나렛 있는 곳 까지 갔다. 탑을 올라가는데 흥정해 보니 15000숨을 내란다. 별로 내키지 않아 돌아섰다. 저녁 해가 질 무렵 돌아다니니 또 다른 맛이다. 성채까지 걸어가는데 어두워진다. 해가 없으니 시원해 지는 것 같지만 거리의 분위기도 썰렁해 진다.

 

     대장장이 박물관에도 불이 들어온다. 기념품 가게에 유난히 많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도자기로 만든 영감님이다. 전통 모자에 흰 수염을 한 웃는 얼굴이 전감이 가고 느낌이 좋다. 저녁 식사로 또 나비하우즈 건너편 식당으로 갔다. 항아리 곰탕(보쉬) 2개를 주문해 먹었다. 물과 쥬스를 사가지고 숙소로 왔다. 힘든 날이다. 유적을 둘러보는 것보다 태양의 강렬함이 더욱 마음깊이 각인된 부하라다. 숙소에서 거주지 등록을 미리 확인 받았다. 출국할 때 필요하다고 들었다.(실제로는 검사가 없었다). 내일 일찍 일어나 타쉬켄트로 간다. 빨래가 잘 말라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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