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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 여행기1 (이경우)--예쁜 도시 류블라냐

작성자睦園.박이환|작성시간18.10.17|조회수71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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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일 일요일 아침 비, 오후 맑음. 

     새벽에 일어나 출발 준비를 한다. 모두 잔다. 주인은 거실 쇼파에서 잔다. 세면을 하고 짐을 싸고 아침 6시에 숙소를 나선다. 대문이 잠겨 있어 할 수 없이 주인을 깨웠다. 친절하게 문을 열어준다. 살며시 작별인사를 한다. 건물내부에 열린 하늘에서 비가 떨어진다. 잔뜩 흐리다. 강한 비는 아니라 그냥 걸을 만 했다.

 

     역으로 왔다. 세르비아 역은 2층 건물인데, 유럽풍의 오래된 건물이다. 역에 들어가 잠시 비를 피한다. 역 광장 앞의 대로에는 빨강색 예쁜 전차가 지나간다. 우리는 다시 역 옆에 있는 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버스터미널 승차장에 들어가려면 입구 통에 동전을 넣어야 문이 열린다. 어제 표를 살 때 받아두었다. 이런 일은 또 처음이다. 우리 버스가 출발하는 27번 홈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며 빵과 말린 자두로 아침을 해결했다. 말린 자두가 생각보다 맛있다. 바싹 말린 것이 아니라 먹기 참 좋다. 장소에 관계없이 아침에 먹으면 아침식사고 점심에 먹으면 점심이다.  

     벨그라드의 버스터미널은 제법 넓은데, 주변국으로 출발하는 버스가 많다. 우리는 슬로베니아의 수도 루블라냐 로 가는 버스를 탄다. 8시 출발이다. 버스는 우리나라 고속버스와 비슷하다. 드디어 터미널을 빠져나와 시내를 좀 달리다가 한가한 농촌으로 들어선다. 낡은 기차를 타고 보던 세르비아는 어둡고 정체된 느낌이었는데, 버스를 타고 가면서 바라본 세르비아는 밝고 생동감이 있어 보인다. 같은 세르비아인데, 느낌이 서로 다른 것이 재미있구나.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의 국경이다. 세르비아 출국장에서 차가 멈추더니 여권을 모두 걷어가 검사한 후 다시 여권을 돌려준다. 심사대에서 차가 또 멈추더니 모두 내려 여권을 갖고 개인별로 출국도장을 받게 한다. 9시 30분경이다. 우리 차는 출발하여 크로아티아 국경을 별 검사 없이 넘어간다. 이제는 크로아티아를 달린다. 이제 세르비아를 지나온 것이다. 크로아티아 풍경은 세르비아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좀 나무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휴게소에 선다. INIA라는 이니셜이 새겨 진 깔끔한 휴게소다. 음료수를 하나 사서 마셨다. 휴게소 주변도 잘 가꾸어져 있다. 잔디밭 위에 귀여운 통나무집도 만들어져 있고, 실제 모습과 크기가 비슷한 말과 꽃마차도 만들어 놓았다. 사진을 찍으며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린다. 우리 버스는 유로라인 마크도 그려져 있고, LAsta라는 글씨도 보인다. 버스는 다시 출발하여 달린다. 도로도 좋고 날씨도 맑게 개였다. 펼쳐진 벌판은 유럽과 같다. 

     크로아티아를 지나 슬로베니아 입국장에 들어섰다. 입국도장을 받고 다시 버스는 달린다. 이제는 슬로베니아다. 슬로베니아는 조금 낯선 나라다.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가장 먼저 독립을 선언하고 90년대 초에 유고연방에서 분리된 작은 나라다. 중부유럽의 남부에 위치한 슬로베니아는 서쪽으로 이탈리아와 202km, 북쪽으로 오스트리아와 324km, 헝가리와 88km, 크로아티아와 548km에 해당하는 국경을 나누며 이들 나라에 에워싸여 있다. 또 46km가 아드리아 해안에 접해져 있다. 영토의 크기로는 스위스 반에 해당되고 이스라엘이나 영국 웨일즈 크기와 비슷하다. 동유럽과 서유럽에 걸쳐있다. 국토의 90% 이상이 해발 300m가 넘는 현저하게 산이 많은 지형이다. 국토의 거의절반을 숲이 덮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녹지가 많은 나라가운데 하나이다. 경작지, 과수원, 포도밭 그리고 목장 등이 국토의 43% 이상을 이루는 농업국가다.  

     유고 연방의 독재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슬로베니아는 사라져버린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슬로베니아는 풍부한 자원과 천연의 아름다운 자연, 영속적인 평화 덕택으로 번영을 누리고 있다. 유럽의 복잡함과 고 물가를 피하려는 관광객들은 적어도 당분간 이곳을 그 대안의 비밀 장소로 여길 것이라 하지만 가난한 나에게는 그래도 비싼 나라다. 많은 도시와 마을에는 합스부르그 제국과 베네치아 공화국의 흔적이 남아있다. 인구 200만의 슬로베니아 사람들은 과거 유고연방 시절 경제적으로 가장 부요했으며, 지금도 ‘햇볕이 가장 잘 드는 알프스’에 위치한 이 나라의 상대적 풍요는 금방 비교된다. 유고슬라비아가 그들 연방에서 가장 작은 공화국이 붕괴의 현장을 떠나려는 것을 저지하려고 했던, 1991년 6월과 7월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슬로베니아에서는 일체 분쟁, 전쟁, 테러가 없었다고 한다. 수도인 류블라냐 에는 33만 명이 살고 있다. 동방정교회보다 로마 카톨릭(80%)이 많은 나라다. 

     이 나라에 들어서 처음 눈에 띄는 것이 교통 표지판이다. 마을에서는 시속 50km, 시내에서는 90km, 고속국도에서는 100km, 고속도로에서는 자동차 전용으로 시속 130km라고 표시되어 있다. 산이 많고 평화로운 나라답게 언덕에 집들이 예쁜 지붕을 이고 있고 마을 중앙 높은 곳에는 교회가 있다. 흐르는 강도 깨끗하고 초록색 언덕은 잘 정리되어 있어, 나라의 경제 사정을 짐작케 한다. 원래 도착 예정시간은 오후 4시인데, 1시간 연착되어 오후 5시경에 류블라냐의 버스터미널에 내렸다. 터미널이라기보다는 역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버스는 역 광장을 잠시 들렀다. 떠난다.  

     숙소를 찾으러 간다. 역에서 가까운 첼시카 호스텔을 찾아갔다. 분위기는 좋은데, 생각보다 비싸다. 감옥을 개조해서 만든 숙소로 인기가 있는 숙소다. 역 내의 ⓘ에서 소개해 준 숙소로 향했다. Dijaski Domtabor Hostel이다. 여름에만 여는 호스텔인데, 대학 기숙사다. 숙소는 넓고 방도 많다. 사람들도 친절하다. 177호인데, 3인실인데 아내와 둘이 사용하니 편리하다. 유럽식 건물에 나무 바닥이다. 샤워장과 화장실은 복도 건너편에 있지만 불편함이 없다. 이침 식사도 제공해 준다. 복도에서 한국 학생을 만났다. 한국외대 스페인어과 재학 중인데, 이미 여기서 4일 정도를 보냈단다. 블레드 호수에 가는 방법과 버스 시간표를 준다. 반갑고 고맙다.  

     짐을 정리해 놓고 시내 구경을 나섰다. 숙소와 시내가 가까워 좋다. 성을 중심으로 해자처럼, 운하처럼 흐르는 류블라니카 강을 만나러 발걸음을 옮기니, 이 도시의 상징인 용 다리가 나온다. 반갑다. 지는 태양빛이 강해 눈이 부시다. 1848년~1888년 이라는 표시를 갖고 있는 이 다리는 예전에 ‘푸주간의 다리’란 이름으로 건설된 목조 다리였으나 이후 아르누보 양식으로 다시 건축되었단다. 푸른 용 4마리가 이 다리를 장식하고 있다. 류블라냐 시의 문장으로 사용되는 용이다. 용의 특징이 머리만 크고 몸통과 날개가 동양의 용보다도 짧아 새끼 용 같다.  

     유럽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해 가는 류블라냐는 슬로베니아어로 ‘사랑받는 도시’ 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름처럼 류블라냐의 첫인상은 밝고 활기차며 개방적이고 귀족적이다. 에모나(Emona)라는 로마제국의 작은 도시로 출발한 이 시 전체에 로마시대의 문화유산이 남아있었고, 합스부르크 왕조가 15세기에 통치한 후로는 흰색조의 교회와 저택을 많이 지었단다. 그래서 이 도시는 ‘화이트 류블라냐’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1809년부터 1814년까지 류블라냐는 동부 아드리아 해로 진출하려는 나폴레옹이 일시적인 도약의 발판으로 건설한 일리안주의 수도였다. 현재는 문화가 생활자체로 녹아있어 분위기가 활기차다.  

     국립미술관은 1918년, 대학은 1919년, 예술 및 과학원은 1938년에 세워졌다. 인구 규모로 볼 때 류블라냐는 유럽 평균에 비해 높은 수준의 박물관(15개), 미술관(45개), 극장(11개) 및 4개의 전문 오케스트라 단을 갖고 있으며 대부분 도심지역에 몰려있다. 또 이 도시에는 슬로베니아 예술 및 과학원, 조세프 스테판 물리학 연구소, 유네스코 화학연구센터 등 136개의 연구 기관이 있다. 도시의 문화, 예술, 회의활동을 가능케 한 힘은 1980년에 문을 연 다목적 센터인 칸카르예브 돔이 있기 때문이란다. 또 류블라냐 대학교에는 5만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며, 여기에 3개의 예술대학이 있어 길거리 극장이나 포스트 모더니스트 예술 갤러리부터, 퓨전 재즈, 빈티지 펑크와 테크노 등의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문화와 공연 등이 가능 하단다. 길을 걷다보면 심심치 않게 이들을 만나 도시 구경이 한결 흥미롭다. 류블라냐는 연간 1만회 정도의 문화행사가 개최되며, 그 중에 10개의 국제 행사도 있다. 특히 여름철에는 거리 곳곳에서 각종 축제 행사를 만나게 된다.  

     지리적으로도 류블라냐는 중앙 유럽의 알프스와 아드리아 해 사이에 있으며 평균 해발고도는 298m에 달한다. 천연적인 통로 위에 있어서 오래전부터 이 도시는 ‘류블라냐 게이트’라고도 불렸다. 정치 경제 산업 교통 및 통신 건축 관광 상업 교육 문화의 중심지다. 인구 200만 정도의 작은 국가이지만 자기들만의 언어를 갖고 있을 정도로 매우 독립심이 강한 민족이다.  

     강을 따라 걸어간다.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는 깨끗한 거리에는 노천 카페가 줄지어 있다. 고급스러운 건물이 이어지고 거리에는 가족단위의 여행객이 많이 보인다. 동양인이 없어서 우리가 구경거리가 된 기분이다. 프레스노브 광장에 들어섰다. 프란츠 프레세렌(PRESEREN 1800~1849) 동상이 있다.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사랑 받는 시인이란다. 그가 쓴 ‘축배’라는 시는 슬로베니아 국가의 가사로 사용되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그를 국민의 아버지로 추앙하고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시절 빈 대학교에서 법률공부를 한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 변호사와 시인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했다 우리나라 윤동주 시인과 비슷한가 보다. 그는 성당에서 부유한 상인의 딸 유리아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신분의 차이로 다시는 그녀를 만날 수 없었는데, 49세에 병으로 짧은 생을 마감할 때 까지 그녀를 향한 수십 편의 로맨스 시를 썼다고 한다. 그의 동상은 애틋한 눈으로 한 곳을 바라본다고 하는데, 그이 시선을 따라가면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된 유리아를 만날 수 있다. 유리아를 찾아 교회골목길로 걸어갔지만 찾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다. 정보가 부족하다. 

     광장 주변에는 예쁜 건물들이 많이 보인다. 특히 핑크빛 프란체스카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1646~1660년에 만들어진 바로크 양식의 교회다. 광장 바닥에서 스프레이로 환상적인 그림을 그리는 거리화가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면 볼 수록 예쁘고 정이가는 도시다.  

     유명한 세 쌍 다리를 건넜다. 재미있는 다리다. 이 다리를 만든 사람은 조제 플레츠니크다. 그는 제1차 및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 오늘날의 류블라냐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다. 그는 류블라냐에 대한 사랑과 대단한 재능으로 류블라냐의 영혼을 사로잡는 불멸의 건축물을 남겼다. 그의 개인적인 영향이 너무 커, 때때로 이 도시는 플레츠니크의 류블라냐라고 불리기도 했다. 다리위에서 사진을 찍고 시청방향으로 걸어가니 거리에서 전지크기에 새긴 판화를 찍고 있다. 누르는 것은 아스팔트 누름 작업용 롤러차량을 이용하고 있다. 문화도시답게 여러 가지를 보여주고 있다.  

     시청빌딩은 1484년에 건설되었다. 1511년의 지진으로 일부 무너졌는데, 다시 1718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개축했다. 광장에 있는 소박한 분수는 이탈리아 조각가 프란체스코 롭바 가 1718년에 디자인한 작품인데, Carniolan 강물의 원천이란다. 시청 앞을 보고나와 강을 따라 걸어갔다. Congress 광장 앞에 있는 슬로베니아 필하모니 건물을 지나 Cobbler's 다리를 건너 올드 타운 좁은 골목길을 간다. 정말 좁다. 성을 향해 올라간다. 골목이 많다. 등산하는 마음으로 힘겹게 올라가 드디어 류블라냐 성에 도착했다. 성탑위에 국기가 올려다 보이는 성은 견고하고 단순한 그리고 깔끔한 느낌이 든다. 진한 초코색 지붕을 길게 갖고 있는 성이다.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 성은 11세기에 지어진 후 15세기 오스만 투르크의 공격에 대비해 증축되었고 17세기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거의 10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성이다. 요새, 감옥, 병원 등 다양한 시설을 갖고 있다. 1905년 시에서 사들여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다. 지하 예배당을 결혼식장으로 인기가 높다. 성탑으로 올라간다. 국기가 펄럭인다. 붉은색 쇠기둥으로 만들어진 철계단은 디자인이 예쁘다. 깔끔한 도시의 모습이 첨탑에 오른 자들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보상으로 보인다. 초록색 숲과 고풍스러운 건물, 교회의 첨탑들이 보이고 붉은색 지붕들이 물결치듯 이어진다.  

     특히 성 제임스 교회의 첨탑이 눈부시게 빛난다. 류블라냐에서 처음세운 고등학교와 음악학교였던 성당이다. 1895년 대 지진 이후 2개의 종루가 무너졌고, 나중에 종루 하나만 재건했다. 류블라냐에서 제일 높다. 반대편에는 멀리 겹겹이 험한 산이 병풍처럼보인다. 북서쪽에 보이는 산이 트리글라바 산인가 보다. 슬로베니아에서 제일 높은 2864m의 3개의 봉우리가 있는 산이다. 옛날 슬라브인들은 이 산에 3개의 머리가 달린 신이 살고 있으며 이 신이 하늘, 땅, 지하를 지배하고 있다고 믿었단다. 합스부르크 시대 이후에 트리글라바 산의 ‘순례여행’은 슬로베니아인의 동질성을 확인한다고 해서 주말이면 전사들이 찾는다. 오늘날 트리글라바는 국기에 잘 나타나 있다.  

     한가롭게 성탑에 걸터앉아 여유를 갖노라니 날이 어두워진다. 성탑을 내려왔다. 성 광장에는 영화 상영 준비로 바쁘다. 흰색의자들이 줄지어 놓여있어 손님을 기다린다. 흰색 천막들이 예쁘게 펼쳐져 있다. 정원에는 무궁화나무가 잘 가꾸어져 있다. 슬로베니아 역사를 알려주는 박물관이 바로 옆에 있다. 성 입구로 빠져나왔다. 올라오는 케이블카도 있다. 성문 앞에는 DOTTO Trains 이라는 관광열차도 있다. 흰색으로 귀엽다.

 

     성 니콜라스 교회 방향으로 성을 내려왔다. 성 니콜라스 교회는 뱃사공과 어부의 수호성인인 니콜라스를 기념하여 13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목조건물이었다. 18세기 초 예수교의 한 신자인 안드레아 푸조가 지금 모습으로 개축하였다고 한다. 대 성당 청동문은 1996년 교황 바오로 2세의 방문을 기념하여 만들었다. 성당 발전에 기여한 6명의 주교가 누워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모습이 청동 문에 조각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성당 앞 광장에는 노천시장이 있는데, 모두 철수해서 썰렁했다. 

     드래곤 다리를 건너기 바로 전 오른편에서 중국집을 발견했다. 저녁 식사를 해결하려고 들어갔다. 숙소에서 만난 총각이 알려준 식당이다. 학생 세트 메뉴가 싸다고 들었지만 우리는 너무 늙은 학생이라........ 메뉴판을 보고 죽 하나와 돼지고기 야채 볶음, 볶음밥 2개를 시켰다. 작은 중국아가시가 작은 미소로 친절하게 맞이해준다. 접시와 포크를 더 부탁해서 둘이 먹어도 남아서 싸가지고 나왔다. 숙소와 가까워 좋다. 날은 이제 껌껌하고 희미한 가로등과 네온사인이 거리를 비춘다. 짧은 시간에 류블라냐를 모두 본 것 같다.

 

     하루 종일 움직이니 피곤하다. 내일 일정을 아내와 얘기하고 하루를 끝낸다. 둘만의 공간이라 편하다. 잠자리가 편하니 아내는 류블라냐가 맘에 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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