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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여행기2 (이경우)-- 소피아의 러시아 흔적들

작성자睦園.박이환|작성시간18.11.17|조회수76 목록 댓글 0



   


8월 18일 수요일 맑음

 

     발칸반도 여행의 마지막 나라 불가리아에 들어와서 하루를 잤다. 발칸이라는 말은 서유럽에서 보았을 때 지역적으로 동방에 해당하는 말이다. 이 말은 터키어로 산맥이라는 말이다. 19세기 오스만 제국의 몰락으로 그 지역에 있던 군소 국가들의 해방이 일어나면서 벌어지는 복잡한 문제들을 일컫기 위하여 생겨난 말이다. 이 지역은 남쪽 그리스로부터 북쪽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 등을 포함하는 삼각형 반도지역을 말한다.  

    

     투르크 족(터키는 국가명, 투르크는 종족명)이 건설한 제국가운데 세계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국가가 오스만투르크 제국이다. 1299년에 세운 오스만 왕국에서부터 1923년 터키 공화국의 성립으로 소멸된 이제국은 6세기동안 존속하였다.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2세기 이상 유럽의 안보를 위협하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17세기 이후 수세에 몰렸다. 서유럽과 러시아의 발전은 오스만 제국과의 대결의 역사였으며, 특히 러시아는 12차례나 전쟁을 벌려 팽창하였다.

 

     오스만 제국은 17세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하다가 19세기에는 현저하게 약해졌다. 이것을 본 러시아가 개입하여 오스만 제국이 거느리던 열강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이때의 구실을, 같은 정교도인 그리스도교의 보호를 앞세웠다. 이 같은 러시아의 움직임에 영국이 긴장했다. 그 이유는 러시아가 그 세력을 남하하면 영국에서 터키, 인도를 거치는 영국의 교역, 통치 라인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각 민족 간의 해방운동이 겹쳐져 이때부터 발칸반도는 유럽의 화약고가 된 것이다. 결국 이러한 분쟁들이 세계 1차 대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 이후에도 이 발칸반도는 여전히 대립과 갈등의 요소를 해소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분쟁지역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아침 식사는 숙소에서 제공해 준다. 짐을 사들고 사무실로 왔다. 오늘부터 이곳 도미토리에서 묵기로 했다. 아직 침대가 비질 않아서 먼저 아침을 먹었다. 토스트와 계란 토마토 치즈 잼 등 풍성히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배낭을 숙소에 맡겨놓고 시내루어를 시작했다. 머무는 곳이 중심지라 시내를 둘러보기는 좋다. Alabin 거리, 법원 앞에서 출발한다. 소피아 시내를 둘러보는 구심점이 되는 곳이 스베타 네델리아 광장이다. 대부분의 트램 이나 버스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광장 중앙에 머리만 내밀고 있는 것이 성 페트카 지하 교회이다. 교회 주변의 지하도에는 기념품점과 카페가 늘어서 있어 하루 종일 활기를 띈다. 지하도는 지하철 승강장으로 이어져 있다. 맞은편에는 소피아에서 고급 백화점으로 손꼽히는 춤 백화점과 쉐라톤 호텔이 있다. 성 페트카 교회에 갔다. 지붕만 땅 위로 올라온 반지하식 교회다. 오스만 왕조의 지배를 받던 14세기에 세워졌다. 이슬람 전성시대였기에 기독교회는 이와 같은 형태를 취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춤 백화점 맞은편에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스크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외관은 창도 없고 소박하지만 내부 장식은 훌륭하다. 현대식 도시 모습 속에 옛 모습을 간직한 보석처럼 느껴진다.

  

     왔던 길을 되돌아 비토샤 거리를 먼저 가기로 했다. 이 거리는 카페와 레스토랑을 비롯해 유행의 첨단을 걷는 부티크, 환전상들이 많은 경제와 관련된 메인 도로다. 작은 광장에는 앞발을 든 말 탄 기병의 동상이 있다. 고함치듯 입을 벌리고 칼을 든 모습이 매우 역동적인, 힘이 느껴지는 동상이다. 매우 작아 원기둥위에 만들어져있다. 조금 더 걸어가니 벤치에 앉아있는 두 영감님 동상이 있다. 중절모를 쓰고 지팡이를 든 점잖은 외모다. 마침 지나가던 할머니 두 분이 옆에 장난치듯 앉는다. 남자친구라고 할까? 아니면 부부라고 할까 모습이 다정해 보인다. 동상들도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길가에 서점이 많다. 거리에 노점상들도 많다. 비록 아침이지만 수박을 사서 먹어보기로 했다. 여행 기간 내내 수박을 사먹고 싶었지만 적당한 기회를 얻지 못했었다. 수박 1/4을 잘라서 팔고 있는 과일 노점상을 찾악 먹기 쉽게 잘 잘라달라고 부탁해서 뒤에 있는 작은 공원에 가서 벤치에 앉아 소원풀이를 했다. 달고 맛있었다. 무더운 대낮이면 더욱 좋았을 텐데........그래도 기분이 좋다. 공원에는 제법 오래된 불가리아 정교회의 Sedmochisleritsi 교회가 있다. 술 취한 영감님도 있고, 공원을 청소하는 아주머니도 보인다. 아침부터 수박 먹는 우리의 모습이 더 이상해 보였나보다. 이름 모를 수염이 긴 영감님 동상이 있다. 코너마다 동상이 있어 심심하지 않다.

 

     계속 걸어가니 국립문화궁전(엔테카)이 보인다. 제법 넓은 공원에 현대식 건물로 세워져 있다. 궁전 앞에는 광장이 있고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분수대도 있다. 궁전에는 콘서트 홀, 카페, 영화관 등이 모여 있는 문화중심지라고 하지만 막상 들어서니 몇 개의 의류점포만 쓸쓸히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문화궁전의 통칭은 엔테카(NDK)다. 1981년 건립된 종합문화 센터로 총 만 명을 수용한다. 건국 1300년을 기념하여 건설한 것으로 소피아 3대 공원중하나인 유젠 공원 안에 있다. 현대적, 미래적인 건물이다. 1700㎡의 부지 내에는 극장과 회의장으로 이용하는 크고 작은 14개의 홀부터 TV와 라디오 스튜디오, 은행, 우체국, 여행사, 카페, 레스토랑, 디스코 클럽, 영화관 같은 오락시설까지 꽉 차 있는데.......영화관 등 모든 시설이 개점 휴업 상태다. 규모는 큰데 사람들이 오지 않으니 폐허 같은 느낌이다. 시원해서 더위를 피하기는 좋지만 주변에 치안이 좀 불안해 보인다. 궁전을 나와 잔디밭을 걸으니 목재로 만든 작은 야외 음악당을 만난다. 꽃으로 장식해 예쁘다. 공원 내에 있는 Comunist Times Monument 는 규모가 제법 큰데, 수리한다고 커다란 천막으로 가려놓았다.

     Lover's Bridge 로 향했다. 점심때가 되었다. 길가에서 팔고 있는 고등어 캐밥을 사 먹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맛있게 먹던 것이라, 그때를 기대하며 먹었는데, 빵도 딱딱하고 고등어도 굳어서 먹느라 고생했다. 사랑의 다리는 아치형의 작은 다리인데, 이름같이 낭만이 있는 다리는 아니다. 그냥 육교라고 해야할 것 같다. 육교 위는 매우 뜨겁다. 초등학생들의 그림을 전시해 놓아서 심심치는 않았다. 다리위의 맥도날드 간판이 더욱 눈에 들어온다.

 

     조금 더 걸어가니 박물관이 있다. Earth and Man Museum 이다. 2층의 건물위에 국기가 펄럭이는 수수한 건물이다. 사람도 없다. 건너편에는 City Center Sofia Mall 건물이 새로 지어져 있다. 다시 사랑의 다리를 건너 Vitosha 거리로 왔다. 환전 가게가 많이 보인다. 알바니아에서부터 마케도니아, 그리스를 거치며 바꿔보려고 했던 크로아티아 돈을 환전했다. 큰돈은 아니지만 환전이 되어서 아내는 기분좋아했다. 바꾸지 못하면 그냥 집에서 굴러다닐 텐데.......

 

     Solunska 거리를 통과해서 숙소로 왔다. 오존 수업이 끝났다. 짐을 찾아서 배정해 주는 빈 침대로 올라갔다. 룸에는 2층 침대 5개가 있다. 다행히도 룸 안에는 작은 샤워장이 있어서 편리했다. 시트를 새로 깔아준다. 아내는 2층, 나는 아래층이다. 짐을 정리해 놓고 오후 미션을 나섰다. 춤(TZUM) 백화점에 들어갔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굼 백화점과 느낌이 거의 같으나 규모가 조금 작다. 중심가에서 가장 중요한 곳에 있는 백화점이지만 경직된, 고전틱 한 실내 분위기는 좀 답답해 보인다. 실내가 시원해서 돌아다니기는 좋다. 패션 빌딩처럼 내부가 화려하면 뭐하냐? 손님이 있어야지........

 

     러시아 냄새가 나는 구 공산당 건물 Party Head Quarter 을 보고 지하도로 내려가니 세르디카 유적이 있다. 고대 성채 도시 세르디카의 유적이다. 지하철 공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된 곳으로 2~14세기의 성채와 문 일부가 남아있고, 로마시대의 항아리 등도 전시 하고 있다. 로마제국 치세 하에 있던 2세기에 도시 중심부를 둘러싸듯이 사방으로 약 400m에 걸쳐서 높이 12m의 방벽을 쌓았다. 네 곳의 성문 부조에는 망을 보기위해 오각형 탑이 있었다고 한다. 유적의 일부에는 기념품 가게와 골동품 가게가 자리 잡고 있다.

 

     반대편으로 올라오니 광장이 나온다. 시원한 분수가 우리를 반겨준다. 오른쪽에 폼 없이 직선으로 만들어진 건물이 대통령 궁이다. 근위병이 없었다면 알 수 없는 평범한 건물이다. 근위병은 흰색 바탕에 붉은색 줄무늬로 장식한 상의와 곤색 바지와 검은색 구두를 신고 있다. 움직임이 없이 마네킹 처럼 서 있는 모습이 코믹스럽다.

 

     대통령궁 바로 옆으로 들어가니 ㄷ 자 모양속에 숨겨진 교회가 있다. 성 게오르기 교회다. 쉐라톤 호텔 뒤편이다. 로마제국이 건설한 4세기부터 현재까지의 긴 역사를 전해주는 귀중한 건물이란다. 내부의 벽과 천장에는 10~14세기에 그린 종교화를 볼 수 있다. 우리가 들어간 방향에서 먼저 만난 것은 로마시대 목욕탕 터이다. 숨겨져 있으니 더욱 소중해 보인다. 교회를 한 바퀴 돈다. 사람들이 별로 없다. 입구 앞에 구걸하는 노인이 한 분 있을 뿐이다. 다시 나와 광장 오른쪽에 있는 고고학 박물관 앞에 걸터앉아 잠시 쉰다. 근위병의 교대식도 보고 분수 앞에 부지런히 왔다가는 사람들도 보고 있으니 시간이 잘 간다.

 

     고고학 박물관의 건물은 본래 대사원을 의미하는 뷰우크 자미야로 1494년에 건립한 이슬람 사원이었단다. 19세기부터 고고학 박물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1층 홀은 주로 로마시대 발굴품을 전시하며, 콘서트가 열릴 때도 있단다. 2층은 진행 중 인 역사연구에 대한 전시와 그 관련서적을 판매하고 있다. 짜르 오스보보디테르 거리를 따라가니 길 건너편에 황록색 건물이 보인다. 지붕위에 오선지 음표가 있는 것이 특이하다. 책에서 찾아보니 국립민속 박물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예전에는 왕궁으로 사용했단다. 불가리아의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의 외관은 장엄하고 화려하다. 내부 장식도 예쁘다. 관내에는 주로 불가리아의 예술가의 작품인 회화, 판화, 조각 등이 있고, 절반은 국립민속박물관이다. 민속의상과 공예품, 생활용품 등 생활모습을 엿볼 수 있다. 상점에는 민예품, 장미 향유를 기념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맞은편이 시티 가든이다. 사각형의 정원에 고목들이 있고 쉴 수 있는 벤치도 보인다. 직사각형 분수가 있는 정면에는 불가리아 홀이라 불리는 국립극장‘ Ivan Vazov' 건물이 있다. 깨끗하고 예쁜 건물인데, 클래식 음악이 연주되는 곳이란다. 분수대 속에 있는 발랄한 모습의 동상이 더욱 눈길을 끈다. 계속 대로를 다라 내려간다.

 

     그늘로 가려고 길을 건너니 성 니콜라이 러시아 교회다. 1913년에 러시아 외교관 세몬토프스키 크리로의 명으로 건립한 교회로 성 니콜라이를 기념해서 지었다. 러시아와 불가리아는 같은 정교이지만 종파가 다르기 때문에 자신의 종교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건립했다는 에피소드도 남아있다. 기도를 드리기 위해 찾는 신자들의 모습이 간간히 보인다. 이들은 러시아인일까? 아니면 불가리아 사람일까? 햇빛을 받아 빛을 반사하는 5개의 금색 돔과 에메랄드 그린의 첨탑이 아름답다. 좀더 걸어가니 센트럴 밀러트리 클럽의 건물이 깔끔하게 세워져 있다.

 

     Synod Palau를 끼고 언덕을 약간 오르니 작은 공원이 나온다. 공원의 나무와 잔디 그리고 동상 보다는 옛날 골동품과 그림 등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사람들이 더욱 시선을 끈다. 일조의 벼룩시장이다. 관광객을 위한노점인데, 연일 프리마켓 같은 분위기다. 뭐든지 파는 곳으로 유명하다.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물건들과 군수품들이 가득하고, 악기종류도 많다. 재봉틀도 있다. 의복과 자수종류도 많다. 우리는 성 소피아 교회로 먼저 갔다. 붉은 벽돌로 단순하게 지어진 교회이지만 품위가 느껴지는 분위기다. 6세기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지은 교회다.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의 초기 기독교 교회당이다. 수도 소피아의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오스만 왕조 시대에는 이슬람 사원으로 이용되었고, 불가리아의 흥망성쇄를 지켜본 듬직한 교회다. 그 후 지진으로 건물이 파괴되었지만 1900년 이후에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안에 들어서니 특이하게 이콘이 없다. 교회의 소리 울림이 좋다. 초기 기독교에는 이콘, 성화, 조각 등이 없는데 언제부터 그림이 들어왔을까?이곳이 맘에든다. 찬양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보니흰수염의 성직자 한 분이 평신도 3명과 함께 찬양을 하는데 그 울림이 찬양대 40명의 목소리보다 크고 아름답다. 남성 4명이 교회를 가득 채우는 찬양소리에 매료되어 한참을 구경했다. 교회 내부는 전체적으로 어둡다.

 

     교회를 나와 오른쪽으로 걸어가니 커다란 사자상이 있는 무명용사 추모비가 있다. 꺼지지 않는 불만 혼자타고 있는 모습이 약간 쓸쓸해 보인다. 드디어 불가리아의 상징, 소피아의 대표적인 자랑거리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사원 광장에 들어섰다. 한 눈에 들어오는 멋진 교회가 감동적이다. 5000명을 수용하는 발칸 최대의 사원이자 가장 아름다운 사원이다. 높이 60m의 금색돔을 비롯해 12개의 돔으로 이루어진 네오 비잔틴 양식의 호화로운 건물로 1882년 착공하여 40년이 걸려 완성했다. 불가리아 독립의 계기가 된 러시아-투르크 전쟁에서 전사한 20만명의 러시아 병사를 위령할 목적으로 건립하였다.

 

     안으로 들어갔다. 외관에 못지않게 내부 장식도 화려하다. 대리석을 아낌없이 사용하며 벽을 뒤덮은 정교한 모자이크 벽화는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든다. 대리석은 브라질, 그리스, 이집트, 이탈리아 등지로부터 운반해 왔다고 한다. 돔 꼭대기에서 늘어져 있는 거대한 샹들리에도 압권이다. 앞에 제단은 3개로 되어있다. 가운데가 러시아, 마주보고 오른쪽이 불가리아, 왼쪽이 여타 슬라브 제국에 바치는 것이다. 러시아 제단이 가장 크고 화려 하지만 자주 예배 드리는 곳은 불가리아 제단이다. 지하실은 불가리아 내에서 수집한 이콘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다. 실내는 약간 어둡다.

 

     밖으로 나왔다. 태양 볕이 뜨겁다. 많은 관광객이 몰려온다. 좀 떨어진 나무 그늘에 앉아 여유를 갖고 사원을 본다. 정말 멋진 건축물이다. 이 성당 주변에는 해외 아트 갤러리, 불가리아 과학 아카데미, 국립 도서관, 국회의사당 등이 모여 있다. 새하얀 궁전 같은 건물이 미술관이다. 외국에 살고 있는 부유한 불가리아 인들이 기금을 모아 개관하였다. 인디애나의 공예품과 일본의 우키요에 등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미술품을 볼 수 있다는 해외 아트 갤러리이다. 국회의사당 앞으로 해서 다시 짜르 오스보보디테르 거리로 나왔다.

 

     당당하게 서 있는 기마상을 만났다. 해방자 기념상이란다. 레디슨 사스 호텔 뒤, 국회의사당 고아장 중앙에 있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1818~1881)의 기마상이다. 아렉산드르 2세는 러시아-투르크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오스만 왕조의 지배에서 불가리아를 해방시킨 영웅이다. 그래서 이 동상을 해방자의 동상이라고 한다.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사원과 마찬가지로 해방전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동상으로 높이 14m, 오른쪽에는 오스만 왕조에 대한 선전 포고서를 들고 있는 상이다. 대좌에는 -우리 형제, 해방자를 위하여- 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둥근 로타리 중앙에 있다.

 

     하루의 일정이 막바지다. 소피아 대학이 성채같이 둥글게 버티고 있다. 대학 앞에는 넓은 지하도가 있고 지하철역도 있다. 젊은이 들이 많이 보여 힘이 넘치는 거리다. 왔던 길을 다시 걸어간다. 오늘 공부를 마치고 복습하는 맘으로 걸어간다. 숙소를 향해 간다. 시민공원을 가로질러 시티 아트 갤러리에 들렀다. 홀 안에는 그림들이 걸려있고, 홀 밖에는 조각품들이 건물 주변에 정원수와 함께 어우러져 있다. 불가리아인 예술가를 중심으로 한 회화와 조각을 전시하고 있다. 현대 미술에서 고전까지 폭 넓게 전시하는데, 시민들이 쉽게 찾아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친근한 미술관이다.

 

     저녁 식사를 중국집에서 오리고기를 주 메뉴로 해서 먹었다. 중국집이 있어 참 반갑다. 숙소에 들어오니 사람들이 없다. 짐은 있는데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간단한 옷가지와 양말을 세탁했다. 침대는 낡지는 않았지만 삐그덕 소리가 난다. 정말 피곤한 날이다. 카운터에 가서 내일 릴라 수도원 투어를 신청했다. 하루 투어인데 릴라 수도원까지 택시로 다녀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왠 짐이 이렇게 많고 큰지 놀랄 정도다. 아내는 윗 층에서 나는 아래에서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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