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영국 여행기11 (이경우)-- 자이언트 코즈웨이

작성자睦園.박이환|작성시간19.01.10|조회수69 목록 댓글 0


   

# 87일 금요일 맑음


       편하게 잤다. 오전 730분 아침 식사를 1층 주방에 내려와서 먹었다. 주인 할머니가 요리를 하고 주인 할아버지가 품위 있게 서빙을 해준다. 영국 저택에 사는 주인이 누리는 식사 분위기다. 깔끔하고 정돈된 테이블에 잘 갖추어진 식사는 그림부터 좋았다. 약간 짠 느낌이 있지만 제공되는 요리도 풍성했다. 베이컨 구이에 콩 수프, 소세지에 계란 후라이, 토마토와 오렌지 주스, 그리고 빵과 치즈와 여러 가지 잼이 눈도 즐겁고 입도 즐겁게 해주었다. 여기서 하루 더 묵어가면 좋으련만 빈 방이 없다니 너무 아쉬웠다.


       짐을 챙겨서 투어 사무실로 걸어갔다. 벨파스트 유스 호스텔에 오전 850분 까지 도착해야한다고 할머니가 단단히 일러주셨다. 자이언트 코즈웨이 1일 투어다. 유스호스텔 건물 안에 사무실이 있었다. 투어비는 1인당 25파운드이다. 인터넷에서 예약을 해 온 젊은이들은 17파운드에 예약을 해 왔다. 약가 배가 아팠다. 우리가 이용하는 투어는 McComb’s tour이다. 길 건너편에 있는 Allens Tour18파운드라고 적혀있다. 예약해 준 할머니가 5파운드를 남겨 먹는 것 같다. 생각하면 배가 아프니 빨리 잊어버리고 즐겁게 펼쳐질 일정에 마음을 쓰기로 했다. 정보가 돈이다.


       9시가 좀 넘어서 투어버스는 출발했다. 제법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 아주머니 두 분도 있었다. 먼저 도착한 곳은 해안가에 있는 고성이다. Carrickfergus Castle 이다. 캐릭퍼거스 성은 벨파스트의 북부 해안 카운티 Antrim에 위치한 노먼 성이다. 900년의 역사를 가진 고성으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영국 그리고 프랑스어에 의해 차례차례로 주인이 바뀌었던 성이다. 1928 년까지 중요 한 군사 역할을 했고 북 아 일랜드에서 가장 잘 보존 된 중세에 만들어진 성이다. 1/3은 물로 둘러싸인 성이다. 1177년에 John de Courcy에 의해 세워졌다. 대문에는 흰색 사자가 그려진 커다란 천이 걸려있다. 들어가려니 입장료가 있단다. 그냥 외부만 둘러보았다. 성 앞에는 1690614일 아일랜드에 첫 발을 디딘 윌리암 3세의 동상이 있다.


       윌리암 3세는 아내인 메리 2(1694 죽음)와 공동으로 영국을 통치했다. 윌리엄 3세는 프랑스 왕 루이 14세의 야심에 맞서는 유럽 세력을 이끌었으며 대영제국 내에서는 프로테스탄트의 승리를 다지고 의회정치의 기초를 닦았다. 오라녜 공 빌렘 2세와 영국 왕 찰스 1세의 딸 메리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인 빌렘 2세는 네덜란드 북부 7개주 중 5개주의 총독이었다. 많은 갈등 끝에 아버지에 이어 네덜란드의 총독이 된 그는 유럽을 휩쓴 루이 14세의 프랑스에 맞서 네덜란드의 독립을 지켰다. 167711월 윌리엄은 요크 공 제임스(나중에 영국 왕 제임스 2세가 됨)의 딸이며 자신의 사촌인 메리와 결혼했다. 왕위계승 서열 1위인 메리와 결혼함으로써 그도 영국왕위 계승서열 4위가 되었으며 영국에서 가일층 중요한 존재로 떠올랐다. 16891월에 소집된 이른바 컨벤션 의회는 제임스 2세의 폐위를 선포하고 윌리엄과 메리가 권리선언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공동 국왕으로 선포되었고 421일 대관식을 거행했다. 같은 달 그들에게 스코틀랜드의 왕위도 제공되었다. 그의 치세는 영국의 헌정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시대였다. 왕권을 행사하는 데 절제와 성실을 앞세움으로써 왕권을 유지할 수 있었고 아울러 대영제국의 저력인 안정성과 연속성을 확립할 수 있었다.


        우리는 버스를 다시 타고 달려간다. 해안을 따라 만들어진 도로인데 대형 버스가 다니기에는 좀 좁아 보인다. 그러나 아일랜드의 전원 풍경이 무척 평화로워 보였다. 2시간 정도를 달려서 Carrick-a-Rede Rope Bridge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주차장에는 작은 승용차들이 많이 보인다. 이 다리는 350 여 년 전부터 연어를 잡는 어부들이 만들어 이용하던 다리이지만 지금은 관광객들만 이용하고 있다. 날이 좋으면 건너편 스코틀랜드도 보인단다. 이름처럼 나무판자와 밧줄로 만들어진 이 다리의 길이는 20m, 높이가 30m 정도란다. 북아일랜드의 National Trust에 들어있는 이 다리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10개의 다리 중 하나이지만 가장 실망한 여행지 중 하나란다 그 이유는 아마도 생각보다는 다리의 길이가 짧아서 입장료 값(5파운드)을 톡톡히 못한 탓일 것이다. 온통 하얀 바위절벽이다. 그래서 Whiterocks 이리라. Whiterocks와 녹색의 풀이 좋은 조화를 이루어 더 신비감을 준다.


         우리는 교회가 있는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대자연이 드넓게 펼쳐진 풍경이 너무 좋았다. 사진은 아무리 잘 담아내려고 해도 실제 그 어마어마함과 눈으로 보여지는 풍경을 담기엔 한계가 있다. 탁 트인 해안절벽 아래로 부딪히는 파도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고민들도 파도와 함께 쓸려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산책길은 걷기에 참 좋았다. 절벽을 바라보며 바람에 실려 가는 바다의 냄새와 파도는 머리를 맑게 해준다. 얼스터 길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돌아본 오래된 교회는 묘지가 더 커 보인다. 교회 이름은 Ballintoy이다. 목사님 같이 생기신 분이 페인트를 들고 교회를 단장하고 계셨다. 위험해 보인다. 주변을 둘러보면 참 평화로워 보인다. 주차장 부근에 있는 화장실을 다녀와서 작은 카페가 있는 곳으로 갔다. 정원에 펼쳐진 의자에 앉아 사과와 과자 부스러기를 먹는다. 이것이 점심이다.

 

         차는 다시 출발한다. 가까이에 우리의 목적지인 자이언트 코즈웨이가 있는데 차는 더 벗어나 작은 마을에 들어선다. Bushmills 라는 술 공장이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워준다. 오후 2시 경이다. 전통의 위스키 공장 및 판매처인 부시밀이다. 아일랜드 위스키는 유명하단다. 위스키가 탄생한 곳이 아일랜드란다. 1172년 영국왕 헨리 2세가 아일랜드를 정복했을 때 이곳 주민들이 증류한 매우 독한 술을 마시고 있더라는 기록이 남아 전해지면서 바다를 건너 스카치 위스키가 탄생했단다. 아이리쉬 위스키는 3번을 증류하는데 전통적으로 원형 통으로 생긴 포트 스틸이나 기둥 형으로 만들어진 컬럼 스틸로 증류하며, 오늘날에는 블렌딩을 위한 그레인 위스키를 생산하는데 있어서도 동일한 증류기를 사용한다고 한다. 법에 따르면 아이리쉬 위스키로 불리기 위해서는 역시 아일랜드에서 생산된 것이어야 하며 나무통에서 3년이상 숙성시켜야 한단다.


       아일랜드에는 단지 4개의 증류소가 있단다. 뉴 미들턴 증류소(제임스 미들턴 생산), 부시밀 증류소(부시밀 생산), 쿨리 증류소(코네마라 생산), 그리고 2007년 다시 문을 연 킬베건 증류소가 있단다. 아이리쉬 위스키는 12세기 중엽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유럽에서 가장 일찍 생산된 증류주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으며 1608년 제임스 1세로부터 양조 면허를 취득한 이후 올드 부시밀 증류소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증류소란다. 위스키를 만드는 방법도 다양하고 그에 따른 술 종류도 많다는데 술과 거리가 먼 나에게는 도무지 다른 나라 이야기였다.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따라 들어가니 먼저 위스키 나무통이 저장된 창고가 보인다. 더 들어가니 구리 빛 증류기가 있고 커다란 홀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여기에서 점심을 먹던지 동네에 나가서 점심을 먹으란다. 술은 그냥 공짜로 준단다. 밥을 공짜로 주면 좋으련만 함께 만난 한국 아주머니 두 분과 자리를 잡고 잠시얘기를 나누었다. 술이 있으니 사람들의 표정도 밝아지는 것 같다. 오래된 느낌이 드는 홀이다. 술도 팔고 기념품도 파는 곳이 있다. 대충 둘러보고 나왔다.


         차는 이제 마지막 목적지인 자이언트 코즈웨이를 향해 달려간다. 가다가 바다가 보이는 곳에 무너져 페허로 보이는 고성이 눈에 들어온다. 운전사가 잠시 차를 세워준다. 나가서 사진을 찍었다. Dunluce Castle, 던루스 캐슬이다. 멀리서 봐라보는 것이 아쉬웠다. 거의 허물어져 뼈대와 토대만 남은 듯 한 느낌이다. 여기가 드랴큘라 성의 모델이란다. 드라큘라 하면 루마니아를 떠올린다. 그러나 드라큘라의 작가인 브람 스토커는 아일랜드 출신이란다. 이 성은 바이킹족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캘트 족이 지은 성이란다.


        우리는 드디어 목적지 자이언트 코즈웨이에 도착했다. 340분이다. 540분까지 돌아오기를 약속하고 각자 차에서 내려 걸어간다. 입장료는 투어 비에 포함되어 있단다. 북아일랜드의 북단 해안에 길에 이어진 거대한 석도로 6천 년 전의 화산활동으로 흘러내린 용암이 식어서 37천개의 육각형 돌기둥을 만들게 되었다. 그 돌기둥들은 무리를 지어 마치 포장도로를 갈아 놓은 것처럼 8km 이상 늘어져 있다. 오르간 거인(12m), 할머니 거인 등으로 이름 붙여진 거대한 돌기둥들이 많다. 소규모의 것들은 스코틀랜드의 핀걸 동굴에도 있다. 자이언츠 커즈웨이는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며, 북아일랜드 지역에서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유일한 문화유산이라고 한다. 화산활동을 통해 분출된 마그마가 기둥모양으로 굳어지면서 주상절리가 형성되었다.


          아일랜드 사람에게는 MacCool이라는 용맹스런 거인을 기리던 곳이었기 때문에 Giant's (거인의) 라고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외부로 발견된 것은 18세기 중반 영국인들에 의해서였고, 발견 당시에는 빅토리아 여왕을 기리기 위해 빅토리아 코즈웨이(Victoria Causeway)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곳에 살던 거인 핀 맥쿨(Finn McCool)이란 사람이 바다 건너 스코틀랜드의 거인 핀갈(Fingal)을 물리치기 위해 이 주상절리를 뽑아 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길게 해안으로 이어진 산책길이 보인다. 노약자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 또는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순환 버스(얼스터 버스)도 있다. 먼저 주변을 보니 작은 종탑이 있는 Nook라는 교회 같은 집이 있다. 사람들이 걷는 길을 따라 우리도 걸어간다. 해변에는 검은색 현무암 언덕과 바위들이 보이는데 낙타를 닮은 바위도 눈에 들어온다. 해변 길의 코너를 돌자 눈앞에 펼쳐진 주상절리들이 우리를 반긴다. 먼저 온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동안 들어왔던 모습보다는 규모도 작고 높이도 낮다. 다른 나라에서 보던 놀라움이 부족하다. 그래도 워낙 유명한 곳이라 흥미를 주려고 애를 썼다. 넓은 바다와 맞대어 있어서 더욱 좋은 것 같다. 몇 일전 아이슬란드에서 본 주상절리들과 몇 년 전 아르메니아에서 본 주상절리와 비교되어 놀라움이 반감된다고 아내는 말한다.


           그래도 함께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다. 사람들이 많아서 좋다. 거인이 신었다는 Giant’s boot도 찾아서 사진 속에 담았다. 멀리 절벽에 있는 산책길을 따라 가기로 했다. 모이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서둘렀다. 파이프 오르간 같이 절벽에 형성된 주상절리 밑에까지 가서 사진을 찍고 돌아섰다. 시게를 보니 10분 정도 남았다. 서둘러 걸었다. 급하면 뛰기도 했다. 서둘러 걷다보니 우리 차에 함께 탔던 젊은 커플이 느긋하게 걸어가고 있다. 우리도 여유를 갖고 걸었다. 전시관 쪽으로 걸어가니 막는다. 단체객은 들어갈 수 없단다. 따로 입장료를 내는 것 같다. 전시관 앞 주차장 옆에는 젖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스쿨과 박물관이라고 쓰인 집이 있다. 특별한 전시물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작은 기념관 정도이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나고 다시 벨파스트로 향해 간다. 고속도로를 따라간다. 중국 사람들을 중간에 내려준다. 배를 탈 수 있는 선착장 가까이다. 저녁 배를 타고 영국으로 가는 것 같다. 1시간 30분 정도 걸려서 벨파스트 원 위치로 돌아왔다. 날이 저물어 간다. 이제 숙소를 찾아야 한다. 한국 아주머니들의 도움으로 유스호스텔에 들어가서 우리 숙소 위치를 물어보니 우리가 갖고 있는 지도 밖이란다. 여기서 걷기에는 아주 멀단다. 한국 아주머니들은 여기서 묶는데 거의 3개월 전에 숙소를 에약해 두었단다. 영국이나 아이슬랜드, 아일랜드를 여행하려면 3개월 전에 숙소를 예해 두면 좋을 것 같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타기로 했다. 우리는 air B and B를 통해 숙소를 예약했다. 민박집이다. 주소는 Cosy double room in upper lisburn road 40, belfast. BE100AB이다. 택시기사에게 주소를 보여주니 끝에 있는 BE100AB를 차 네비에 집어넣으니 숙소가 바로 찍힌다. 영국, 아이슬란드, 아일랜드는 모두 숙소 주소 끝에 이런 표시가 있다. 인공위성으로 찾는 숙소의 좌표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표시였다. 인터넷 강국이라는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편리한 제도가 없다니 아쉬웠다. 정말 숙소는 생각보다 멀었다. 택시비는 6파운드가 나왔다. 2층 민박집이다. 젊은 주인아주머니가 친절하게 숙소를 안내해 준다. 아주머니는 주방 사용법과 화장실을 안내해 주고 시내로 가는 버스 번호를 친절하게 종이에 적어주셨다. 좀 오래된 집이다. 주방을 이용해 라면을 끓여 먹었다. 내일 도착할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의 숙소를 예약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워낙 성수기라 숙소구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가격도 엄청 비싸다. 밤이 늦도록 검색하고 알아보다가 잠이 들었다. 아일랜드에서 유학중인 O 양의 도움으로 겨우 숙소를 결정할 수 있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