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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탐방및 인물

파스칼(Blaise Pascal,1623~1662)과 팡세

작성자睦園 박이환|작성시간12.03.22|조회수98 목록 댓글 0

 


파스칼의 팡세

 

1623 년에 태어난 파스칼은 1648년 진공에 관한 새 실험을 하여 "진공은 틀림없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토리첼리가 수은을 사용하여 우리 교과서에 나오는 지속적인 진공상태를 처음으로 만든 것은 1643 년이다. 파스칼의 이 새로운 실험이 대기압에 관한 것이었음은 확실하나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다.)

1653 년에 수리학 책에 나오는 "파스칼의 원리"를 발견하여 유럽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완전히 밀폐된 용기 중에서 정지하고 있는 유체의 한 부분에 압력을 가하면 그 압력은 유체 내의 모든 부분에 똑같이 전달된다."

1662년 3월 파스칼의 아이디어로 최초의 승합마차를 만들었다. 그 전에는 부자들이 타는 마차만 있었을 뿐, 서민들이 탈 수 있는 승합마차가 없었다. 이 아이디어에 대한 선금(先金) 천 프랑은 추위에 고생하는 블로이스 마을의 빈민에게 주었고, 그 후 나오는 이익금은 파리와 클레몽의 병원에도 주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셨다. 이것이 내가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이유다. 내가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궁핍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편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마차와 말, 좋은 가구와 은장식, 개인 도서관까지 팔아 가난한 이웃을 도왔다. 그가 39 살에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그에게 남은 것은 단지 성경과 성 어거스틴의 책, 그리고 몇 권의 경건 서적뿐이었다.

 

"인간에게는 두 부류만이 존재한다. 하나는 자기를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의로운 사람이며,

다른 하나는 자기를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죄인이다." -팡세-

삼성출판사, 세계 사상전집 12, 홍순민 역, 1986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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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Blaise Pascal 브리태니커회사, 1999

1623. 6. 19 프랑스 클레르몽페랑~1662. 8. 19 파리.

프랑스의 수학자·물리학자·종교철학자·작가.

근대 확률이론을 창시했고, 압력에 관한 원리(파스칼의 원리)를 체계화했으며, 신의 존재는 이성이 아니라 심성을 통해 체험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종교적 독단론을 설파했다. 직관론에 바탕을 둔 그의 사상은 장 자크 루소와 앙리 베르그송 및 실존주의자 등 후세의 철학자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포르루아얄 시절

아버지 에티엔 파스칼은 클레르몽페랑에 있는 세무 법원 판사였다. 1626년 어머니가 죽고 1631년 파스칼의 가족은 파리로 이사했다. 존경받는 수학자였던 에티엔은 파리로 옮겨온 뒤에는 자식 교육에만 전념했다. 2세 아래인 누이 자클린이 문단에서 신동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동안, 파스칼은 수학분야에서 그에 못지않은 천재성을 발휘했다. 1640년 그는 종합 사영(射影) 기하학에 관한 지라르 데자르그의 저서를 연구하여, 그 결과를 가지고 〈원뿔곡선론 Essai pour les coniques〉을 썼다. 이 책은 수학계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프랑스의 위대한 합리주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르네 데카르트 같은 사람조차도 시샘할 정도였다. 1642~44년 파스칼은 아버지(1639년에 루앙 시 행정관으로 임명되었음)의 세금 계산을 도우려고 계산기를 착안하여 발명했다. 파스칼의 동시대인들은 이 기계만으로도 파스칼이 명성을 누릴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그렇게 생각한 것은 당연했다. 어떤 의미에서 이 기계는 최초의 디지털 계산기였기 때문이다.

1646년까지만 해도 파스칼 일가는 겸손을 신앙으로 여기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가톨릭 교리를 엄격하게 지키는 독실한 신자였다. 그러나 우연한 사건으로 파스칼은 보다 심오한 종교 세계와 만나게 되었다. 아버지가 아플 때 두 사도를 만난 것이 그 계기였다. 포르루아얄 수도원 원장이었던 생시랑 신부의 수도원 생활과 사상에 얀센이 창시한 얀센주의의 엄격한 도덕과 신앙을 도입했다. 얀센주의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17세기 형태의 성 아우구스티누스주의였다. 얀센주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거부하고 신의 예정설을 채택했으며, 구원의 열쇠는 인간의 선행이 아니라 신의 은총이라고 가르쳤다. 포르루아얄 수도원은 얀센주의 종파의 본산이 되었다. 속세에서 신에게로 완전히 전향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첫번째 사람은 파스칼 자신이었으며, 그는 1646년 가족들까지 설득하여 얀센주의적 신앙생활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그의 편지들을 보면 그가 오랫동안 가족의 정신적 조언자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세계와 금욕 생활 사이에서 겪는 내적 갈등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다시금 과학적 흥미에 빠져든 파스칼은 갈릴레오와 에반젤리스타 토리첼리(기압계 원리를 발견한 이탈리아의 물리학자)의 이론을 검증했다.

(가) 그러던 중에 그는 수은 기압계를 만들어 파리와 클레르몽페랑이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에서 기압을 측정하여 대기압에 관한 실험을 검증하고 확대시켰다. 이 실험결과는 유체동역학과 유체정역학에서 좀더 진전된 연구가 이루어지는 데 길잡이가 되었다. 또한 실험 과정에서 파스칼은 주사기를 발명했으며, 파스칼의 원리(밀폐된 유체에 주어진 압력은 그 압력이 주어진 범위에 관계없이 모든 방향에 같게 전달됨)를 바탕으로 유압 프레스를 고안해냈다. 1647~48년 진공문제에 관한 논문을 잇달아 발표하여 더욱 명성을 얻었다. 그는 과로로 병이 났고, 의사들은 더 이상 연구에 몰두하지 말고 기분을 전환하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파스칼은 여전히 과학 연구에 몰두함으로써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이 기간(1651~54)에 그는 액체평형에 관해서, 공기의 무게와 밀도에 관해서 또 산술 3각형에 관해서 논문을 썼다. 특히 산술 3각형에서는 확률 계산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1653년말에 종교적 가책을 느끼기 시작한 파스칼은 1654년 11월 23일 밤에 '은총의 불'을 경험하고, 이것이야말로 새 삶의 시작을 알리는 신의 계시라고 믿었다. 이듬해 1월 포르루아얄 수도원에 들어간 그는 비록 은둔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요구에 응하는 글을 쓰면서 여생을 보냈고, 저서를 발표할 때도 자기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그가 〈시골친구에게 쓴 편지 Les Provinciales〉와 〈명상록 Pensees〉이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두 저서를 집필한 것은 그가 포르루아얄 수도원에 입문한 것과 거의 같은 시기이다. [백과사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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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sees 본문

 

제 1 장 정신과 문체(文體)에 관한 사고

 

2. 극히 소수의 원리에서 좋은 결론을 내리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판단력이 정확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많은 원리를 가진 사물에서 올바른 결론을 끌어낸다.

[임성삼의 주(註); 두 가지 모두 매우 어려운 일이다.]

 

10. 사람이란 보통 남의 생각으로 이루어진 이유보다는

자기 자신이 발견해 낸 이유에 의해서 더욱 확신을 굳히는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그러므로 스스로의 관찰과 생각이 필요하다.]

35.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저 사람은 수학자이다>라든가, 설교자라든가, 웅변가라고 불리지 말고

<저 사람은 교양인이다>라는 말로 불려야 한다. 이 일반적인 자격만이 내 마음에 든다.

[임성삼의 주(註); 그 시기에는 어떠했는지 모르겠으나, 현대에 전문가는 많아도 교양인은 드문 것 같다.]

46. 엉성한 지식으로 아는 체하는 사람은 성격적으로 나쁜 사람이다.

[임성삼의 주(註); 이 범주에서 벗어나기가 참으로 어렵다.]

 

제 2 장 신이 없는 사람의 비참

 

66. 인간은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진리를 발견하는데 설사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자기 생활의 질서를 잡는데는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일 이상으로 훌륭한 일은 없는 것이다.

69. 두 개의 무한, 중간

너무 빨리 읽거나 지나치게 천천히 읽어도 아무것도 이해를 못한다.

[임성삼의 주(註); 이 사람의 글은 조금 천천히 읽어야 한다.]

83. 상상력 - 이것이야말로 인간에 있어서 기만(欺瞞)적인 부분이며, 오산(誤算)과 허위의 여왕이다.

[임성삼의 주(註); 현대 사람들은 상상력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상상력이란 것에 인간의 정신적인 능력의 착실한 발전을 가로 막는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84. 상상력은 환상적인 감정에 의해서 작은 사물을 확대하여 우리의 혼을 가득 차게 만든다.

또한 큰 것을 자기의 척도에 맞도록 작게 한다. 가령 신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도 그렇다.

[임성삼의 주(註); 인간이 자신의 완전하지 않은 상상력으로 신에 대해 생각할 때, 신을 축소할 위험성이 있다. 즉 신의 계시에 의하지 않은 "신에 대한 개인의 생각"이 가질 수 있는 오류에 대해 정확하게 표현하였다.]

87. 자신의 상상력에 의해 지배를 받는 인간처럼 불행한 자가 또 있을까?(플리니우스)

103. 알렉산더는 그 주벽(酒癖) 때문에 많은 무절제자를 만들어 냈지만

그가 순결한 모범을 보였을 때는 그렇게 많은 절제자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임성삼의 주(註); 알렉산더는 폭음을 많이 하였다. 그를 따라 폭음하는 사람은 많았다. 그러나 그 처럼 일에 몰두하는 것, 또 그의 용감성 그리고 일을 끝까지 이루려는 의지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125. 모순 -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믿기도 쉽고, 믿기 어렵기도 하며, 겁이 많으면서 또한 대담하다.

127. 인간의 조건 - 안정하지 못하는 고뇌와 불안

134. 실물(實物)에는 아무도 감탄하지 않는데, 그림으로 그렸을 때에는 비슷하다고 모두 감탄한다. 그림이란 이렇게 공허한 것일까!

141. 인간은 하나의 공, 한 마리의 토끼를 쫓는데 열중한다. 왕도 그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일이 있다.

[임성삼의 주(註); 지금 진행되고 있는 올림픽이란 무엇인가?]

173. 일식과 월식을 재난의 전조(前兆)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재난은 너무 자주 일어나는 것이므로 이 이론은 자주 들어맞는다.

[임성삼의 주(註); 확률에 대한 이론에 기여한 사람 답다.]

176. 크롬웰은 바야흐로 전 그리스도교 국가를 황폐하게 하고 있었다.

왕가(王家)는 멸망하고 그들 일가족만이 영원히 번영할 듯 했다.

작은 모래알이 그의 수뇨관(輸尿管)에 들어가지만 않았더라면 로마 교황청까지도 그의 위세 앞에서 떨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그마한 신장결석이 거기에 들어박혔기 때문에 그는 죽고, 그 일가는 몰락하고, 세상은 평화를 되찾았고, 왕은 복위(復位)하였다.

183. 우리는 벼랑이 보이지 않도록 어떤 물건으로 눈을 가리고 천연스럽게 벼랑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역사적으로 이런 시기가 간혹 있었다. 2 차 대전 전의 영국과 프랑스가 그러했다.]

제 3 장 노름의 필요성에 대하여

 

185. 모든 것을 자애롭게 처리하시는 신의 행위는

이성에 의해 신앙을 정신 속에 끌어들이고,

은총에 의해 마음속으로 끌어들이게 하는 데 있다.

그러나 신앙을 정신이나 마음속에 강제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은 신앙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공포를 갖게 한다.

[임성삼의 주(註); 전도를 하기 원하는 사람이 잘 생각해 보아야 하는 구절이다.]

187. 순서

사람들은 종교를 경멸한다. 그들은 종교를 혐오하고, 종교가 진실한 것임을 무서워한다.

이것을 고치려면 우선 종교가 이성에 어긋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어야 한다. ...

다음엔 종교를 좋아하게 하고, 그것이 진실하다는 것을 선량한 사람으로하여금 알게 해야 한다.

그 다음 종교가 진실하다는 것을 표시해 주어야 한다.

[임성삼의 주(註); 대부분의 종교는 이성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종교를 전도 하는 열광적인 신도가 보통 사람들의 눈에 이성적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전도에 가장 크게 방해가 될 수 있다. 파스칼이 말한 첫번째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190. 진리를 찾으려는 무신론자를 동정하라. 왜냐하면 그들은 불행할 테니까.

196. 저 사람들은 성심성의란 기분이 없다. 저런 사람들을 친구로 삼을 수는 없다.

[임성삼의 주(註); 친구는 심심할 때 우리를 즐겁게 해 주는 존재가 아니다. 적어도 성심(誠心)이 있는 사람을 친구로 삼아야 한다.]

203. 정념(情念)의 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 일주일간밖에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자.

[임성삼의 주(註); 약간은 다르지만 공자의 "아침에 도를 듣는다면, 저녁에 죽어도 꺼릴 것이 없다(논어 8 이인편)"와 비슷한 면이 있다. 이런 확고한 면이 없이 진리를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朝聞道면 夕死라도 可矣니라 (論.里仁八)]

 

204. 생애의 한 주일간을 헌신할 수가 있다면 일백 년간이라도 헌신할 수 있다.

[임성삼의 주(註); 공자님은 "하루를 어질게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206.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 자신에게는 무섭다.

[임성삼의 주(註); 이분은 과학자라기보다 시인이다.]

208. 어째서 나의 인식은 제한되어 있을까? 또 나의 키도 제한되어 있는 것일까? 나의 일생은 천년이 아니고, 백년으로 제한되어 있는 것일까? 어떠한 이유가 있기에 자연은 나에게 이러한 수명을 부여해준 것일까?

[임성삼의 주(註); 아니 오히려 철학자이다.]

211. 우리는 우리와 흡사한 사람들과 교제할 때, 마음놓을 수 있음을 기뻐한다.

하지만, 우리와 같이 비참하고 무능한 그들은 결코 우리의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사람이 죽을 때는 혼자일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혼자인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때 가서 당당한 큰 저택을 건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슴지 않고 진리를 탐구할 것이 틀림없다.

[임성삼의 주(註);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 설 수 있는 정신의 소유자라야 당당히 행동할 수 있다.]

213. 우리들과 지옥, 혹은 천국 사이에는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생명이란 것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제 4 장 신앙의 방법에 대하여

 

249. 형식에 희망을 거는 것은 미신이다. 그러나 그 형식에 따르려고 하지 않는 것은 오만이다.

[임성삼의 주(註); 잘 생각해보자.]

254. 너무 지나치게 순종한다는 이유로써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으면 안될 경우도 종종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불신앙과 같은 것이어서 자연의 악덕이고, 또한 해로운 것이다. 미신.

255. 신앙은 미신과는 다르다.

신앙을 미신이 되기까지 고수하는 것은 신앙을 파괴하는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대단한 자신감이다.]

258. 사람은 모두 제 각기의 신을 만든다. - 구약 외전 솔로몬의 지혜 -

혐오.

260. 그들은 군중 속에 몰래 숨어서 다수의 힘에 의지한다. 소란.

271. 지혜는 우리로하여금 유년시절로 돌아가게 한다.

278. 신을 직감하는 것은 심정이지 이성이 아니다. 신앙이란 이런 것이다. 이성이 아니고 이 심정에 직감되는 것이 신이다.

279. 신앙은 신의 선물이다. 우리는 그것을 추리의 선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280. 신을 안다는 것에서부터 신을 사랑하는 데까지, 얼마나 먼 거리가 놓여 있는 것일까!

제 5 장 정의와 여러 결과의 이유

 

296. 올바른 자를 따라가는 것은 바른 일이며, 제일 강한 자를 따라 가는 것은 부득이한 일이다.

[임성삼의 주(註); 동양의 사상에서 두 번째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힘이 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힘이 없는 정의는 반항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언제나 악인이 있기 때문이다. 정의를 수반하지 못한 힘은 공격을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의와 힘은 함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올바른 자를 강하게 만들고, 강한 자를 올바르게 만들어야 한다.

300. 강한 사람이 무장하고, 자기 재산을 지키는 한, 그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안전하다.

[임성삼의 주(註); 현재의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다.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누가복음 11:21]

"When a strong man, fully armed, guards his own house, his possessions are safe.]

301. 어째서 사람은 다수에 복종하는가? 그쪽에 올바른 사람이 많이 있기 때문인가?

그렇지도 않다. 힘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임성삼의 주(註); 다수결의 원칙의 근거를 생각해 보았는가? 과연 이 말이 옳은가?]

305. 스위스 사람은 귀족이란 말을 들으면 기분 나빠한다.

중직(重職)을 맡을 자격을 인정받기 위해 순수한 평민임을 표방하고 싶어한다.

309. 유행에 의해 매력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정의도 또한 유행에 의해 만들어진다.

[임성삼의 주(註); 정의가 세월의 변화에 의해 바뀌는 것에 대한 한탄이라고 생각한다.]

317. 존경이라는 것은 <불쾌함을 참는 것>을 말한다.

[임성삼의 주(註); 존경을 그저 이런 정도라고 생각해도 좋다.]

320. 배(船)의 지휘를 맡을 사람으로서 선객 중에 제일 집안이 좋은 자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임성삼의 주(註); 1588 년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지휘하던 사람은 가장 가문이 훌륭하지만, 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 결과 바다의 지배권은 스페인에서 영국으로 넘어갔다.]

320-2 세상에서 가장 불합리한 것이 인간의 무질서로 인해서 합리적인 것이 되었다.

도대체 한 나라의 통치자로서 왕비의 맏아들을 택하는 것처럼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

그러나, 가장 덕망이 높고 유능한 인물을 선택하려고 하면 누구든지 자기만이 보다 덕망이 높고 유능한 인물이라고 자랑할 것이다. 그러면 완력사태가 벌어진다.

그러므로 누구도 이론을 제기한 여지도 없는 자에게 이 자격을 부여해 주는 것이 좋다. 즉 왕의 맏아들이다. 이성(理性)도 이 이상 더 잘 처리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내란은 최대의 재난이기 때문이다.

[임성삼의 주(註); 나는 역사에서 왕비의 맏아들-왕의 맏아들이 아님-을 다음의 통치자로 택하는 이유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배우지 못하였다. 그러나 동, 서양을 막론하고 대단히 많은 나라가 오랜동안 이 제도를 택하였었다.

현재처럼 각 사람이 한 표의 투표를 하여 통치자를 뽑는 제도는 과연 최상의 방법인가? 이 제도는 오래 계속될 것인가? 로마의 공화정은 왜 황제 정치로 바뀌었는가? 그리스의 민주정치는 어떻게 소멸되었는가? 민주주의가 지속될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그 지속 기간은 전 역사를 통하여 왜 그렇게 짧았는가? 민주주의를 지속시키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330. 왕의 권력은 민중의 이성과 우매함에서 시작하여 성립되고 있다. 차라리 어느 쪽인가 하면 우매함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파스칼은 왕의 권력의 근거에 대해 생각한다. 이 개념으로 다음의 "연습문제"를 생각해보자.

현재 우리나라의 입법권과 행정권은 국민이 선출한 사람들에 의존한다. 그러나 국민을 감옥에 넣고 사형시킬 수 있는 사법권은 어디에 근거하는가? 우리 국민이 사법부에 대한 권한이 있는가? 대통령을 선출하면서 국민은 대통령에게 사법부까지 위임한 것인가? 그러면 사법부는 대통령의 권한 아래에 있는 것인가?

미국이나 영국과 같이 최종 판단을 일반 시민의 집단인 배심원단에게 위임하는 것, 혹은 검사나 판사를 국민의 선거에 의해 선출하는 과정이 있다면 국민의 위임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절차가 없는 나라에서는 사람의 신체를 구속하고 사형을 언도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논리적으로 확립해 놓아야 할 주제라고 생각한다.]

제 6 장 철학자들

 

340. 계산기는 동물의 여러 가지 행위보다도 더 사고(思考)에 가까운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동물처럼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행동이란 전혀 할 수가 없다.

[임성삼의 주(註); 처음으로 계산기를 발명한 사람의 말이다. 현재까지는 옳다. 앞으로는 잘 모르겠으나.]

345. 이성(理性)은 주인보다도 더 억압하는 어조로 우리에게 명령을 내린다.

[임성삼의 주(註); 여기서 주인은 신(神)이다.]

주인의 말에 복종하지 않는 자는 불행하지만, 이성에 따르지 않는 자는 바보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347. 인간은 한 개의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 가운데 가장 약한 갈대이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그를 부수는 데는 전 우주가 무장하지 않아도 된다. 한 줄기의 증기, 한 방울의 물을 가지고도 그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부순다고 해도, 인간은 자기를 죽이는 자보다 존귀할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사실과 우주가 자기보다 힘이 세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나, 우주는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존엄성은 사고 속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일어서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공간이나 시간에서 채우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잘 사고하도록 힘써야 한다. 여기에 바로 도덕의 원리가 있는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이 책 중 가장 유명한 부분이다. 마지막 부분의 사고와 도덕의 관계를 생각해보기 바란다. 공자의 개념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348. 사고에 의해 나는 우주를 이해한다.

354. 인간의 본성은 언제나 전진하는 것은 아니다. 전진도 하거니와 후퇴하기도 한다.

[임성삼의 주(註); 현대의 사람들은 우리의 정신 중에 후퇴하는 것이 상당히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358. 인간은 천사도, 짐승도 아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천사의 흉내를 내려는 자가 짐승의 흉내를 내곤 하는 것이다.

364. 잘 모르는 가운데 단정하는 것처럼 부끄러운 일은 없다. - 키케로

나는 자기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고백하는 것을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키케로

[임성삼의 주(註);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하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 - 공자

知之爲知之오 不知爲不知이 是知也니라 (論.爲政十七 논어 17 위정편)]

365. 인간의 모든 존엄성은 사고(思考)에 있다. 하지만 이 사고는 무엇일까? 사고란 얼마나 바보스러운 것일까! ...

본질적으로 따져보면 사고는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그 결점을 따져보면 사고는 또 얼마나 비천한 것인가!

[임성삼의 주(註); 파스칼처럼 사고의 가치를 존중한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러나 그는 사고의 단점을 잘 알고 있다.]

366. 세계에서도 제일 훌륭한 재판관의 정신도 그의 주위에서 소음(騷音)이 일어났을 때, 곧 혼란되지 않을 정도로 초연하게 자기를 지키지는 못한다. 그의 사고를 방해하려면 대포의 소리가 필요치 않다. 풍향기나 도르래의 [작은] 소리만 있어도 된다.

지금, 그가 좀처럼 좋은 논리를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은 별로 놀랄 일이 못된다. 그의 귀 밑에서 한 마리의 파리가 윙윙 소리를 내며 날고 있다. 그에게 뛰어난 생각이 떠오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만일 그에게 참된 진리를 발견하게 하려면 그의 이성을 방해하고, 또 많은 도시에 모든 왕국을 뜻대로 다스리는 그의 뛰어난 지성을 혼란시키고 있는, 저 동물들을 내쫓도록 하라.

이것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임성삼의 주(註); 소음을 전공하려는 사람은 이 구절을 정리해 둘 것.

그리고 내가 강의하는 것을 방해하려면 단지 한 사람이 옆의 사람에게 소근거리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결정적인 논리를 파스칼이 팡세에서 말했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할 것.]

369. 이성이 모든 활동을 하려면 기억력을 필요로 한다.

377. 겸손에 관해 논해도 오만한 사람에게는 오만한 기회가 되고, 겸손한 사람에게는 겸손한 기회가 된다.

384. 모순은 진리의 척도로 그렇게 좋지는 않다.

확실한 진리에도 모순이 많이 있을 수 있으며, 틀린 것에도 모순이 없다고 인정되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모순은 허위의 증거도 아니고, 모순이 없다는 것이 진리의 증거가 아니다.

[임성삼의 주(註); 이 말은 우리의 가치 척도에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

간혹 다른 종교의 논리에 모순이 있다고하여 그 종교가 옳지 않다는 증명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방법은 옳지 않다.]

393. 신과 자연의 모든 법칙을 포기하고 나서, 스스로 법률을 만들어 거기에 엄격히 복종해 나가는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묘한 일이다. 이를테면 마호멧의 병사, 도적, 이단자 등이 그것이다. 논리학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임성삼의 주(註); 읽는 사람의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도적, 이단자를 함께 놓고, 논리학자와 마호멧의 병사를 함께 놓아야 한다.]

제 7 장 도덕과 교훈

 

492. 참다운 종교는 우리의 의무와 무력함과 오만과 욕정을 지적하고 그에 대한 구제책으로, 즉 겸손과 금욕을 가르쳐준다.

510. 인간은 신(神)에 적합한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신에게 어울리지 못하는 존재도 또한 아니다.

[임성삼의 주(註); 참으로 옳은 말이다.]

521. 은총은 항상 이 세상에 존재할 것이다.

534. 세상에는 오직 두 가지 종류의 인간밖에 없다.

그 하나는 자기를 죄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의인,

또 다른 하나는 자기를 의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죄인.

[임성삼의 주(註); 여러분의 나이에는 내 주위에 스스로 의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하였었다. 그러나 그후 오랜 기간 스스로 의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되어 매우 즐거웠었는데, 이 구절을 보게 되니 내가 잘 못 생각했던 것 같다.]

 

제 8 장 그리스도교의 기초

제 9 장 불후성

제 10 장 상징

제 11 장 예언

[임성삼의 주(註); 내가 신앙심이 깊지 못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 생략하였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읽어보기 권한다.]

제 12 장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737. 여기서 나는 다른 모든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임성삼의 주(註); 요즈음은 달라졌으나 20 세기 초반까지도 유럽의 학자들이 쓴 책에는 모든 사람이 기독교인인 것을 전제로 하는 문장이 많다. 그리고 심한 경우는 기독교인이 아니면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 수도 많다. 인격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대의 풍조였다고 생각한다.]

746. 유대인은 크고 눈부신 기적에 습관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홍해나 가나안 땅에서의 일대 변사(變事)가 다가올 구세주의 대업의 축도(縮圖)라고 생각했으므로 그들은 좀더 눈부신 기적을 기대했던 것이다.

모세의 기적도 그 표본에 지나지 않을 더 큰 기적을 기대했다.

[임성삼의 주(註); 유대인처럼 신을 믿으면서 신에게 여러가지를 요구한 사람들은 없다.(출애급기 참조)]

제 13 장 기적

제 14 장 논쟁적 단장

 

911. 악인을 없애기 위해서는 죽여야 하는 것일까?

- 그것은 악 위에 악을 더하는 것이 된다.

<선을 가지고 악을 이겨라> 성 아우구스티누스

[임성삼의 주(註); 파스칼도 이 주제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다.]

912. 도덕과 언어는 개별적인 학문이면서, 또한 보편적인 것이기도 하다.

924. 약속을 지키지 않고, 성실함도 없고, 명예를 중히 알지 않고, 진실을 모르고, 두 마음으로, 표리부동하고, 우화 속에 나오는 양서동물처럼 물고기와 새의 중간에 애매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 ...

왕이나 제후는 신앙이 두터운 사람으로, 존경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므로 그 때문에 당신들에게 고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임성삼의 주(註); 924항의 전부이다. 약간은 모호하나 앞 부분은 성직자들을 욕한 것이다.

이 항목이 팡세의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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