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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탐방및 인물

이 상화 시비(달성공원 소재)

작성자隱穀 이상준|작성시간13.04.02|조회수45 목록 댓글 0

 상화시비(尙火詩碑). 이 시비는 1948년 동향인 김소운의 발의 및 그가 재직했던 대륜고등학교 동문의 후원으로 달성공원에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졌다고 합니다. 상화시비 전면. 상화의 대표시 "나의 침실로"가 새겨져 있습니다. 아래의 시비 후면 사진을 보면, 이 시의 글자는 당시 11세이던 상화의 셋째 아들 "태희"가 쓴 것을 나와 있네요. 상화시비 후면. 비문의 상세는 아래와 같습니다. 상화 시비의 글은 문인 김소운(金素雲)씨의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 "詩人(시인) 李相和(이상화)는 西紀(서기) 1901年 辛丑(신축) 4月 5日 又甫(우보) 李時雨公(이시우공)의 第2子로 태어나 西紀(서기) 1943年 癸末(계말) 3月 2日 43歲(세)로 세상을 떠나니 大邱는 그 出生地(출생지)요, 終焉地(종언지)이다. 그의 詩歷(시력)은 「白潮(백조)」 同人(동인) 시대에 시작되었으니 香氣(향기)롭고 분방한 그 詩風(시풍)은 초기의 조선시단에 있어서 淸新(청신)한 一魅力(일매력)이었다 대표작으로는 「나의 침실」을 비롯하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逆天(역천) 」,「離別(이별) 」등이 있으니 碑面(비면)에 새긴 詩句(시구)는 「나의 침실 」中(중)의 一節(일절)이다. 흘러간 물의 자취를 굳이 찾을 것 아니로되 詩人의 조찰한 생애를 追念(추념)하는 뜻과 아울러 뒤에 남은 者(자)의 허술하고 아쉬운 마음을 스스로 달래자는 생각으로 작은 돌을 새겨 여기 세우기로 한다. 戊子(무자) 正月(정월) 金素(금소) 雲識題簽葦昌(운식제첨위창) 吳世昌(오세창) 84歲書(세서) 詩句遺撚三子(시구유년삼자) 太熙(태희) 11歲書(세서) 背銘竹濃(배명죽농) 徐東均(서동균)" 해방 뒤인 1948년 백기만(白基萬), 김소운(金素雲)씨 등의 힘으로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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