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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탐방및 인물

'소크라테스'의 죽음

작성자睦園 박이환|작성시간13.05.18|조회수61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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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태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기원전 399년 4월 7일 독배를 마시고 70세로 숨을 거두었다. 그리스 사람들의 신을 믿지 않았다는 불경죄와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것이 그에게 쉬여진 혐의였다. '소크라테스'는 첫 배심에서 500명의 아태네 배심원들 가운데 280명이 그의 유죄를 인정하는 바람에 유죄판결을 받았다. 아태네 재판 방식에는 유죄가 인정된 사람에게 항변의 기회를 준 후 다시 형벌을 정하게 되어 있는 데 이 제도가 '소크라테스'에게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했다.

 

"자신은 죄가 없다"며  "배심원들이 자신의 공을 인정해 광장에서 향연을 베풀어줘야한다"는 그의 공격적인 항변이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킨 것이다. 유죄라고 인정한 280명에 다시 80명이 보태진 360명이 사형 지지자로 돌아섰다. 한 달 뒤인 이날 '소크라테스'는 아태네 국외로 도망치라는 친구와 제자 '푸라톤'의 수차례 설득도 거절한 채 독배를 마셨다.'소크라태스'의 비극은 역사적이고 개인적인 요인들의 우연적인 결합에서 비롯됐다.

 

당시 아태네는 30년간에 걸친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스파르타에 패배해 사회전체가 어스선한 데다가 인구이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고간 두 차례의 전염병과 시칠리아 침공 실패 등으로 사회 분위기는 극도로 침울해 있었다. 더구나 아태네 시민들이 극도로 불만스러워 했던 몇몇 사람과 적국인 스파르타에 전쟁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 사람이 '소크라태스'의 제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전쟁과 폭정에 대한 쓰라린 기억이 들 때마다 '소크라태스'를 원망했다.

 

이때 우연히 찾아온 그에 대한 고발은 희생양을 찾고 있던 사회 분위기와 정확히 맞아떨어졌고 '소크라태스'는 친구와 제자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독약을 마시고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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