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感時漫語 (3)
省齋 李始榮 著 /大韓民國 初代 副統領
(1) 箕子의 封國(봉국)
箕子는 周나라(BC 1050~256) 武王이 殷나라를 征伐하는 소용돌이를 避하여 武王의 臣僕(신복)이 되는 恥辱(치욕)을 받지 않으려고 5,000名(명)의 부하를 이끌고 동쪽(조선)으로 찾아 왔다.
檀君朝鮮(단군조선)의 扶餘王(부여왕)은 廣闊(광활)한 땅을 割愛(할애)하여 주니 箕子(기자)는 本局의 賢人인 王受兢(왕수긍)을 招聘(초빙)해서 士師로 삼아 「八條의 法規」를 施行하여 仁化를 廣播(광파)하고 平壤에 都邑을 建設하고 國號를 亦是 「朝鮮」이라 하였다(「平壤」이란 音의 뜻은 首都를 意味하는데 「平壤」이라고 稱하는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周나라 漢史에 箕子를 王으로 封하기는 했지만 臣下의 關係는 아니었다고 하나 이 記錄과 다르게 적은 것은 없이 모두를 같게 적고 있다. 그러나 事實을 推察(추찰)해 보건대 箕子가 武王이 封하는 位置를 受諾(수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武王은 自己管轄 밖에 있는 땅에다가 어떤 사람을 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具眼之士(구안지사)는 스스로 理解(이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原文]
(一)[箕子之封國]
箕子避周武之征服. 罔爲臣僕之恥辱. 率五千膚敏. 尋到東方. 檀朝扶餘王. 劃讓閒曠. 且聘本地賢人王受兢作士師. 得施八條之規. 廣播仁化. 建都平壤. 國號亦朝鮮. (平壤譯音. 首都之義也. 稱平壤之處. 非止二三也) 周書漢史. 幷稱封而不臣. 無復提異於此者. 然以事理參推. 在箕子不肖受武王之封. 在武王不能封人於管轄之外. 具眼人. 自應解之也.
(2) 韓民族(한민족)文化의 由來(유래)
檀君(단군)의 神聖(신성)한 가르치심은 4,400年이 흘러간 지금에도 달라진 것이 없다. 비록 經典과 遺籍(유적)이 어려차례 厄禍(액화)를 만나 自取 없이 存在하지 않고 있지만 그 固有의 美德은 流傳되어 온 善俗과 함께 지금까지 連延(연연)히 存在해 오고 있다. 敦倫(돈륜:도타운 인륜)⋅報本(보본:조상의 은덕에보답함)⋅忠孝(충효:충성과 효도)⋅愛敬(애경:사랑과 공경)은 五戒(오계)에 和合(화합)되고 祭品三白(제품삼백:제사음식의 3가지 흰밥, 무나물, 백탕:맹뭉을 끓인 물)⋅虔供三神(건공삼신:흰 옷을 숭상하고 삼신을 경건하게 받들다)⋅十月祭天(십월제천:십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냄 )⋅饁畝呼矢(엽묘호시:음식을 먹을 때에 음식을 땅에 던지며 高矢禮하는 풍속) 등과 같은 것이다. 女子는 貞信하고 남자는 謹厚하며 고사에서 氣仁之國이라고도 하고 君子之邦이라고도 稱하였으니 이 어찌 檀君으로부터 傳해져서 由來된 것이 아니겠는가?
黃君의 글에 論斷한 것을 보면 根源을 硏究하지 않고 祭天白衣에 對해서도 도리어 箕子遺風에서 비롯된 것처럼 當惑하게 만들며, 또한 文化의 由來를 論及함에 있어서도 上古時代의 先進文明애 追及하지 못하고 世界文化史上 匹敵할 것이 없는 國仙⋅仙郞⋅皂衣(조의)⋅花郞 等의 깊고 굳은 뿌리가 三國時代 以來로 있는 줄을 알지 못하고 漠然히 韓族의 一切進化는 漢四郡 以後부터 發源된 것처럼 一筆로 論斷하고 있다. 이는 檢討가 비록 周密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滅失主妄의 失策을 犯했다는 酷評(혹평)을 免하지 못할 것이다.
辰韓 때의 사람 「文朴」이 阿斯達山에 들어가 「檀君倧道(하느님을 섬기면서 심신을 닦는 기르침)」를 修得하고 그 後 永郞⋅述郞⋅南石行⋅安詳과 같은 四仙의 道가 神敎와 異蹟에 關한 글을 써서 世上에 크게 傳播(전파)시켰다.
神敎(신교)의 範圍(범위)는 無限하고 理致의 五妙(오묘)함은 無窮(무궁)하여 全體를 擧論하기 어려우나 그 宗旨의 表現은 鸞郞碑文(난랑비문)에 나타나 있다.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設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且如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국유현묘지도 왈풍류 설교지원 비상선사 실내포함삼교 접화군생차여입칙효어가 출칙충어국)
魯司寇之旨也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노사구지지야 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주주사지종야 제악막작 제선봉행 축건태자지화야.)
卽 나라에 현묘한 길이 있으니 實은 三敎가 이에 包含되어 있다. 뭇 百姓이 이에 接하여 感化됨은 다음과 같다.
집에 들어가면 兩親에 孝하고 집을 나서서는 임금에 忠하게 함은 孔子의 敎와 近接한 것이며 하염없는 일에 處하여 있고 말없이 가르침을 行하는 것은 道敎와 가까운 바가 있으며 諸惡을 짓지 말고 모든 善을 奉行함은 佛敎의 가르침과 가까운 지라.......
이것은 新羅의 崔致遠(839~?)이가 쓴 글인데 崔致遠은 저 有名한 黃巢(황소)의 亂에 對한 檄文(격문)을 쓴 사람으로 有名하다.
[原文]
(2) 韓族文化之由
檀君神聖之化. 歷四千四百年而不替. 雖經典遺籍. 屢遭厄禍. 蕩然無存. 然其固有之美德. 流傳之善俗. 至於今而尙存, 敦倫, 報本, 忠孝, 愛敬, 合於五戒. 如祭品三白. 衣服尙白. 虔供三神. 十月祭天. 饁畝呼矢. 女貞信而男謹厚. 古史所稱氣仁之國. 君子之邦. 何莫不由乎檀君而傳之也. 黃君綴摛論斷, 不究根源. 對於祭天衣白. 反致惑於是否箕子遺風. 且論及文化之由. 不追上古先進之文明. 幷不知三國時代. 有國仙. 仙郞. 皂衣. 花郞等之固蒂深根. 在世界文化史上. 無可匹儔者. 以漠然一筆斷之曰. 韓族一切進化. 基發於四郡以後云. 雖檢討不周. 而滅實主妄之失. 固難免焉. 辰韓時文朴入阿斯達山. 修得檀君倧道. 其後四仙如永郞. 述郞, 南石行, 安詳之徒. 大著神敎異蹟於世. 夫神敎範圍無限. 理妙無窮. 難於擧論全體. 而其宗旨表現於鸞郞碑文. 如曰國有玄竗之道. 實包含三敎. 접化羣生. 若入而孝於親. 出而忠於君. 孔敎近之. 處乎無爲之事. 行乎言之敎. 道敎勤之. 諸惡莫作. 衆善奉行. 佛敎近之. 此新羅崔致遠(作黃巢檄書之人)所撰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