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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200년경에 일어났다는 트로이전쟁은 엉뚱하게도 그리스 여신들의 질투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한,혼래식에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라고 적힌 황금사과가 던져졌다. 그러자 제우스의 왕비 헤라,지혜를 관장하는 아테나,미의 여신인 비너스는 서로 자기의 것이라 우겼다.세 여신의 싸움에 누구의 편을 들수없었 던 제우스는 양치기였던 미소년 파리스에게 판정을 위임했다.파리스는 실제로 트로이왕(프리아모스)의 둘째 왕자였다.파리스는 황금사과를 비너스에게 주었고 그녀는 인간중에서 최고의 미녀를 주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의 최고 미녀가 이미 스팔타의 왕(메넬라오스)과 결혼한 왕비 헬레나 라는 점이었다. 헬레나는 제우스 신과 레다 공주 사이에 태어난 미녀로 숱한 왕자들의 구혼을 받은 끝에 스팔타의 왕과 결혼을 했지만 내심 불만이 많았었다. 이에, 비너스의 도움으로 파리스는 헬레나를 유혹해 트로이로 도망을 갔고, 화가난 메넬라오스는 형인 아가멤논(미케네의 왕이자 그리스 총사령관)에게 도움을 청했다.아가멤논 은 헬레나에게 거절당했던 과거의 구혼자들을 포함해 90척의 그리스 연합 선단을 이끌고 트로이를 공격한다.
트로이군은 그리스 연합군의 위세에 밀려 처음은 성으로 후퇴했지만 그리스군의 공격은 생각되로 되지 않았다. 바닷가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었던 트로이는 두꺼운 성벽과 높은 방어탑에 강력한 수비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더구나 트로이는 소아시아의 다른 도시들과 동맹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지원 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스인들 은 두 곳에 자신들을 보호할 성벽을 쌓고 간간이 공격에 나섰지만 10년 동안 트로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트로이에서 무슨 일인가 일어 났고, 트로이는 함락 되었다.그리스인들이 원정에 나선지 10년째 되 던 해였다.그리스인들은 커다란 木馬를 만들어 그안에 무장한 장병들을 숨겨 두고 거짓으로 퇴각했다.트로이인들 은 목마를 신의 선물로 알고 성 안으로 끌고 들어왔는데, 그 날 밤 목마 안에 숨어 있던 장병들이 나와 트로이를 점 령해버린 것이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남긴 황금 사과를 두고 헤라와 아프로디테(로마신화의 비너스), 아테나가 서로 다투다가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심판을 내려 아프로디테가 주인이 되었다. 그 대가로 파리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해 주겠다고 약속한 아프로디테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의 사랑을 얻게 해 주었다.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는 형 아가멤논과 함께 트로이 원정길에 나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리스군의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 트로이군의 헥토르와 아이네아스 등 숱한 영웅들과 신들이 얽혀 10년 동안이나 계속된 이 전쟁은 오디세우스의 계책으로 그리스군의 승리로 끝났다. 그리스군은 거대한 목마를 남기고 철수하는 위장 전술을 폈는데, 여기에 속아 넘어간 트로이군은 목마를 성 안으로 들여 놓고 승리의 기쁨에 취하였다. 새벽이 되어 목마 안에 숨어 있던 오디세우스 등이 빠져 나와 성문을 열어 주었고 그리스군이 쳐들어와 트로이성은 함락되었다. 여기서 비롯된 ‘트로이의 목마’는 외부에서 들어온 요인에 의하여 내부가 무너지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게 되었다. 이 전쟁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는 고대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수많은 영웅 서사시가 만들어졌으나 그 중에서 뛰어난 문학성을 인정받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만이 후세에 전해졌으며, 이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수많은 예술 작품이 탄생하였다. 한편 고대에는 이 전쟁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았으나, 19세기의 비판적 역사 연구에서는 허구적인 신화로 취급하는 풍조가 강하였다. 그러나 하인리히 슐리만이 1870년부터 트로이 유적지를 발굴함으로써 두 나라 사이에 충돌이 있었다는 역사적인 근거를 얻게 되었다. 1930년대에 미국의 블레겐이 트로이 유적에 대한 과학적인 재조사를 시행한 결과, 트로이전쟁이 사실성을 갖는다면 9층으로 이루어진 유적 가운데 BC 1250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제7층 A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트로이목마(Trojan horse)
그리스의 설화에 따르면, 트로이전쟁은 기원전 1200년경 고대도시 트로이에서 10년간 진행되었다. 시인 호메로스는 일리아드라는 서사시를 통해 트로이 전쟁을 연대기별로 묘사했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미케네인들은 아가멤논 왕의 지휘 아래 헬레스폰트 해협 남서쪽의 터키 해안에 위치한 트로이를 공격했다. 오늘날 다르다넬스 해협으로 불리는 헬레스폰트 해협과 보스포루스 해협은 흑해와 에게 해를 잇는 좁은 해협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요충지로서 흑해 무역의 요소라는 이점을 겸비하고 있었다. 아가멤논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 지역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터라 이 전쟁을 통해 이곳을 무역의 요충지로 확보하고자 했다. 헬레네를 두고 쓰인 신화 속 전쟁 또한 기원전 1200년경을 기점으로 한다. 그리스의 서사 시인 호메로스 덕분에 트로이 목마는 겉으론 해를 끼치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위험인자를 포함한 모든 것을 일컫는 단어가 되었다. 일리아드에 나와 있는 트로이 전쟁을 살펴보면 10여 년의 전쟁 끝에 미케네인들(그리스인)은 바퀴가 달린 커다란 목마를 만들어 놓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트로이에서는 이들이 남기고 간 목마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카산드라 공주를 비롯해 일부에서 목마를 받지 않을 것을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트로이인들은 목마를 성안에 들이기로 결정한다. 트로이인들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전쟁을 패전의 길로 인도했다. 그날 저녁 목마 안에숨어 있던 미케네군은 몰래 빠져 나와 성문을 열었고, 10여 년간 이어졌던 트로이 전쟁은 삽시간에 미케네군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된다.
![]() 트로이의 목마 모형 - 터키 트로이 주변에서 발굴된 동전과 도자기를 근거로 트로이 목마 모형을 만들었다고 한다. 1996년 터키 역사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1998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출처: doopedia.co.kr
트로이(Troy) 터키 서쪽에 있는 기원전 4,000년전의 고대도시 유적, 트로야·트로이아라고도 한다. 호메로스 《일리아스》 《오디세이아》에서는 ‘일리오스’라고 불렸다. 스카만드로스강과 시모이스강이 흐르는 평야에 있는 나지막한 언덕(근대에 와서는 히살리크라고 불렀다)에 있다. 바다에서 6km 정도 떨어져 있어 바다로부터의 습격을 받을 위험은 적었다. 그러나 바다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에게해(海)와 흑해(黑海)를 잇는 헬레스폰투스(다르다넬스 해협)의 입구에 해당하는 중요한 곳에 있어, 예로부터 번영을 누려왔다. 독일 고고학자 슐리만이 1870년부터 이곳을 발굴하면서 유적이 밝혀졌다. 유적은 9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최하층은 BC 4000년 말기의 것으로, 성벽으로 에워싸여 있었다. 제2층에는 메가론식의 왕궁으로 짐작되는 건물이 있고, 이 층에서 많은 금·은 제품을 발견하였으며, 이 층을 호메로스 시대의 것으로 생각하였다. 슐리만은 이때 발굴한 유물들을 독일로 밀반출, 1881년 베를린박물관에서 처음으로 공개함으로써 찬란했던 트로이문화가 세상에 알려졌다. 1945년 베를린을 점령한 소련은 이를 탈취, 금·은 보물은 모스크바 푸시킨미술관에, 도자기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슈미술관에 소장하다가 1995년 4월 푸시킨미술관에서 다시 전시되었다. 그러나 그후 슐리만을 도운 독일의 고고학자 되르프펠트는 아래에서 제6층에 해당하는 곳이 호메로스 시대의 것이라고 하였다(BC 15∼BC 12). 1930년대에 와서 미국의 블레겐이 다시 조직적으로 발굴하여 한 층 위인 제7층 A를 호메로스 시대의 것이라고 수정하였다. 제7층 B는 철기시대 초기, 제8층은 그리스인이 이민(移民)한 아르카이크시대의 것이며, 맨 위층인 제9층은 헬레니즘시대 및 로마시대의 유적으로 이 무렵 도시는 ‘일리움’이라고 불리었다. 이 시대에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원정 도중에 일부러 이곳을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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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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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睦園 박이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03.13 나는 역사를 말할때 쯤은 항상 마음의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왜냐 하면 역사 그 자체가 몹씨도 흥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또 다시 서양의 역사를 다시 익혀 볼 작정이다. 6년전 우리의 카페가
처음 개설 할 당시 한때 역사공부에 흥미를 느껴 서양사를 거의 섭렵했던 일이
생각든다. 이번에도 또 다시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사실을 되 쉽으며 나름데로
한번 훌터 볼 생각 이랍니다. -
작성자서관수 작성시간 14.03.13 6년후인 지금 다시한번 검토 한다니 기대가 됩니다. 역사를 보는 눈은 자꾸 발전이 되겠지요. 부지런히 읽어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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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睦園 박이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03.13 서회장 님은 몇년전에 부부가 터키에 여행을 다녀오신걸로 알고 있어요.. 트로이 유적의 중심지대가 바로 터키에 있고 보면
아마 누구보다도 관심을 갖이시고 서양역사의 근원이 되는 트로이 에 대한 이야기를 실감나게 인지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
작성자서관수 작성시간 14.03.13 내가 터키에 갔을때는 불행하게도 트로이 유적을 보지못했습니다. 연관해서 이기회에 새로운것들을 구경하게 될것 같네요. 아무턴 터키는 매우 인상적이었고 역사적으로도 흥미로운 나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