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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탐방및 인물

Pushkin(푸시킨)

작성자睦園 박이환|작성시간15.01.07|조회수41 목록 댓글 0

Pushkin(푸시킨)

“Try to be forgotten. Go live in the country.

Stay in mourning for two years, then remarry.

But marry somebody decent,“

“잊도록 노력하시오. 시골에 가서 사시오.

2년의 상중(喪中) 기간을 보낸 후 재혼하시오.

그러나 존경할만한 사람과 결혼하시오.“

 

이 말은 푸시킨(1799 - 1837) 이 임종 전에 부인 나탈랴에게 한 마지막 말입니다.

13년 연하의 아름다운 아내를 두고 떠나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며 토해내는 그의 마지막 유언입니다.

푸시킨은 모계로 에티오피아 흑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는데 이는 그의 어머니가 18세기 표트르 대제

의 총애를 받은 아브람 간니발 장군의 손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간니발은 에티오피아 출신의 노예

였었으나 표토르 대제가 노예의 신분을 자유인의 신분으로 바꾸어 주면서 그는 혁혁한 공을 세워 장

군이 되었고 표토르 대제는 푸시킨 세례의 대부이기도 하였습니다.

 

곱슬머리와 검은 피부를 가진 푸시킨은 자신의 몸속에 에티오피아 흑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자랑

스럽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그는 프랑스인 가정교사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유모로부터

러시아어 읽기와 쓰기를 배웠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민담과 민요를 들었습니다. 또한 그는 유모를

통해서 러시아 민중의 삶에 대해 깊이 동정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정교사로부터 배운 외

국어 가운데 프랑스어에 가장 뛰어나 10세경에 이미 프랑스어로 시를 썼습니다.

 

18살에 학습원을 졸업하고 외무성에 들어갑니다. 그는 자유주의적 정신으로 농노 제도 및 전제정치

를 공격하는 시 《자유》(1817), 《마을》(1819) 등을 발표했는데, 이 때문에 1820년 남러시아로 추

방당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3년 동안 유형생활을 보냈고 그동안 황실의 감시의 대상으로 행동의 부

자유를 느낍니다. 1825년의 데카브리스트 반란 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거주는 허용되었으

나 위험인물로 취급되어 황제의 직접 검열을 받아야 하는 우울한 몇 해를 보내야 했습니다.

 

생애 후반인 1831년 32세 때 미모로 소문난 나탈리야 곤차로바와 결혼하였습니다. 나탈리야는 그보

다 13년 연하의 여성으로 첫 남편과 사별한 상태였습니다. 1831년 푸시킨은 격렬한 구애 끝에 나탈리

야 곤차로바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탈리야 곤차로바와 결혼했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집을 마

련하고 정착했습니다. 나탈리야는 그의 시작에는 관심이 없고 밤마다 궁정에서 열리는 파티에 열정

적이었습다. 그는 다시 시종보로 등용되었는데 이는 표토르 대제가 나탈리야를 자주 불러 미안하니

까 그에게 별 볼일 없는 한직을 준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심지어 대제와 나탈이야가 간통한다

는 소문이 나 돌 정도 였습니다. 1837년 그의 반역정신을 적대시하는 귀족들이 나탈리야가 황제와 부

정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리는 것에 대해 푸시킨은 대범하게 넘겼으나 자기의 손아래 동

서 단테스(나탈리야 동생의 남편)가 나탈리야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소문에는 견딜 수가 없

었습니다.

 

그러던 차 그는 푸시킨의 아내와 푸시킨의 동서가 밀회를 즐긴다는 익명의 편지를 받기도 한데다 소

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단테스 에게 결투를 신청합니다. 시인과 군인간의 결투는 하지 않아도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푸시킨이 가슴에 두 발의 탄환을 맞고 이틀 후에 절명했습니다. 나이가 겨우 38세였

습니다. 그는 러시아 근대 문학의 창설자로 시, 소설 등 모든 장르에서 아름다운 유산을 남겼습니다

. 영국에 섹스피어가 있으면 러시아에는 푸시킨이 있다고 자부하고 아끼던 푸시킨이 갔습니다.

그의 문학은 모든 예술사조의 시작이며 끝이라고 러시아인들은 격찬합니다.

 

그러나 러시아의 국민 문학의 아버지는 참으로 애석하게 타계하였습니다,

한편 미망인 나탈리야는 그가 죽고 7년 후 표토르 란스코이 장군과 재혼하였고

그를 죽인 단테스는 프랑스로 돌아갔다 합니다. 지금도 시베리아의 어느 조그만 역에서는 푸쉬킨의

 시 두 절만 외우면 무료 승차시킨다고 합니다. 푸쉬킨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 혹한의 시베리아를 녹

이는 것 같은 대목입니다.

 

다음은 그의 유명한 시 ‘삶’입니다.

 

Should this life sometime deceive you,

Don't be sad or mad at it!

On a gloomy day, submit:

Trust -- fair day will come, why grieve you?

 

이 삶이 때때로 당신을 속인다면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마세요!

우울한 날에도 참고 견디세요.

믿으세요 -- 좋은 날이 올 터인데 왜 슬퍼하세요?

 

Heart lives in the future, so What if gloom pervades the present?

All is fleeting, all will go;

What is gone will then be pleasant

 

마음은 미래에 산답니다, 그런데 우울증이

지금 스며들면 어떻게 합니까?

모든 것은 잠깐, 모든 것은 가기 마련입니다.

지나가 버린 것은 (무엇이고) 나중에는 기쁨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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