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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탐방및 인물

단테와 베아트리체

작성자睦園 박이환|작성시간16.02.24|조회수151 목록 댓글 0

단테와 베아트리체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아름답다.

특히 옛 고전 속에서 비극적인 사랑의 주인공들은

시간이 흘러도 사랑의 전형처럼 인구에 회자되는

커플들이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과 오필리아’, 그리고 단테와 베아트리체’...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련해지고,

아름답지만 아픈 기억들.

그때만큼은 그 사람이 인생의 전부였고

열병 같은 홍역을 청춘 시절 한 번 쯤은 겪었을 것이다.


Michael Parkes

'Dante and Beatrice'

  

  그 불후의 명작 <신곡>을 쓰게 만든 시성 단테의 첫 사랑...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신에 버금가는 신성하고 고귀한 존재로 격상시켰다.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의 연인 베아트리체(Beatrice; 1266~1290)

그들은 단지 2번을 그것도 우연히 만났을 뿐이지만

 단테의 가슴속에는 일생동안 지울 수 없는 문신처럼 가슴에 새겨졌다.

  

 BOTTICELLI, Sandro

Portrait of Dante
1495, Tempera on canvas, 54,7 x 47,5 cm
Private collection
 
단테는 르네상스의 요람이며 중세 유럽의 중심지였던 피렌체에서 귀족 출신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밑에서 자라 어린 시절이 그리 행복하진 못했다.
게다가 부친 대에 와서는 가문이 많이 기울어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했지만
장남인 단테만큼은 열성적으로 교육시켰다. 
하지만 부친의 극진한 사랑도 잠시 뿐이었다.
그의 나이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부친마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베아트리체 역시 피렌체의 폴코 포르티나리의 딸로 
시모네 디 발디의 아내가 되었으나 1290년, 24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Dante Gabriel Rossetti

 Beatrice, 1871
  
단테는 9세 때(1274) 그의 생애와 맞바꿀 운명을 만난다.
부친을 따라 간 귀족 파티에서 당시 한 살 어린그녀를 만나 첫 눈에 반하게 되고,
그의 서정 시집 <새로운 인생(La Vita Nuova, 1293)>에서
그녀와의 첫 만남의 순간을 '그때부터 내 사랑이 내 영혼을 완전히 압도했네'
라고 표현했을 만큼 큐피트의 황금화살이 그의 심장을 관통했던 것이다.

 Dante Gabriel Rossetti.

Beatrice Meeting Dante at a Marriage Feast, Denies Him Her Salutation.
1855. Watercolour on paper.
 Ashmolean Museum, Oxford
 
그 때부터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흠모했으며,
그들이 다시 만난 것은 9년 후...
 우연히 길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서부터 그 후로 죽을 때까지
영원한 여성으로 그의 마음 속에 살아남게 되었다.
그러나 끝내 그녀는 단지 먼 발치에서 밖에 바라볼 수 없는,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고야 만다.
당시 피렌체의 명문가 폴코 포르티나리의 딸이었던 그녀는
 집안에서 정해준 시모네 디 발디라는 남자와 결혼한다.
 그토록 절절이 갈구했던 단테의 첫 사랑 베아트리체는
 1290년 6월 8일, 24세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Henry Holiday(1839~1904)

Dante and Beatrice, 1883


19세기 영국 화가 헨리 홀레데이가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운명적인 만남을 그림으로 옮겼다.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한 베아트리체가 친구와 함께 아르노 강변을 산책한다.

청년 단테는 갈망이 가득 담긴 눈으로 베아트리체의 모습을 애타게 바라본다.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낯선 남자의 눈길을 의식하지 못한 채 앞만 보고 걷는다.

화면 배경에는 피렌체의 상징이요,

젖줄인 아르노 강이 유유히 흐른다.


Lord Frederick Leighton,

Dante in Exile, 1864


19세기 영국 아카데미 화가 로드 라이튼 경의 단테의 추방이라는 그림이다.

화가는 이 작품에서 마치 연극의 한 장면 같은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화면 가운데 유령처럼 창백한 표정의 단테가 서 있다.

단테의 얼굴은 돌처럼 굳었고 몸 전체에서 깊은 절망감이 풍겨 나온다.

화려하게 치장한 베아트리체가 길을 지나치다 문득 고개를 돌려 단테를 바라본다.

미덕을 지닌 우아한 여신이라는 찬사에 걸맞게 그녀는 눈부신 햇살처럼 아름답다.

그러나 단테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눈길조차 줄 수 없다.

연인의 곁을 떠나야만 하는 고통과 추방형을 선고받은 굴욕감이

바위처럼 가슴을 짓누르기 때문이다.

화가는 단테의 불행을 강조하고 보다 극적인 효과를 노리기 위해

베아트리체가 지켜보는 가운데 단테가

생이별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신곡>은 단테가 조국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후

망명지에서 19년에 걸쳐 완성한 신학적 장편 서사시이다.

1317년 이후로 그가 생을 마치기 직전까지 이방인으로 여생을 보냈다.

그는 말라리아에 걸려 1321913일 밤 56세로 마침내 파란만장한 일생을 라벤나에서 마쳤다.

필생의 대작 <신곡>은 죽기 직전 탈고 되었다.

 

Dante's Dream of the Time of the Death of Beatrice

"by Dante Gabriel Rossetti, 1871,

Walker Art Gallery


가슴속으로만 사랑했던 여인의 죽음에서

단테는 무엇을 느꼈을까?

그리고 그 심정은 어떠했을까?

눈인사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가슴 떨리도록 사랑했던 그녀 앞에

감히 나서지도 못해서 멀리서 바라 봐야 했던 그녀...

말 한 번 붙여보지도 못했어도,

손 한 번 잡아보지 않았어도,

단테에게 있어 그녀의 죽음은 일생일대의 가장 큰 고통이었고 슬픔이었다.


단테는 베아트리체가 죽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The love between them was wholly spiritual;

after her death Dante realised she was more alive than ever.”

우리의 숭고한 사랑은... 그녀가 내 곁을 떠난 후 이전의 어떤 때보다도 내 가슴에 살아있다.”


불후의 명작 <신곡>이 탄생하는 시발점이 되는 말이다.

내 시는 이전에 존재한 적 없고 앞으로도 나오지 못하리.

그것을 쓰기 전까지 그녀에 대해 아무 것도 쓰지 않으리.’

라고 죽은 베아트리체를

두고 했던 단테의 약속처럼

<신곡>은 연인에 대한 완전한 사랑이

인간의 뛰어난 상상력과 결합해 낳은 최고의 창작물 중의 하나이자,

인류 문학 역사상 불후의 금자탑으로 손꼽히고 있다.

 

Dutch Ary Scheffe

Dante and Beatrice, 1851

Museum of Fine Arts, Boston


단테의 경우에서 보면 사랑의 실패라는 경우는 없는 듯하다.

사랑이라는 것이,

꼭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사랑이라는 마음쏠림 자체가

이 처럼 의미 있는 일이 되는 것이다.

단테의 자신의 여인에 대한 사랑은 연인들의 하나의 아이콘으로 정립되어져 있다.

첫 사랑...

어떤 이는 첫 사랑의 기억을 일생동안 간직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새로운 만남으로써 풋사랑이 되어 훌훌 털어 버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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