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8년 9월 3일 '철기군'을 앞세워 왕권을 무너뜨리고 독제정치를 하던 '올리버 크롬웰' 이죽자 그의 아들이
권력을 이어 받았으나 무능하여 3개월만에 권자에서 물러나고 '크롬웰'이 처형한 '찰스' 1세 의 아들인 '찰스'
2세가 영국의 왕으로 즉위하여 그동안 '크롬웰'의 청교도의 엄격한 규률에 불만이 많았던 국민들은 왕정복귀
를 크게 환영하였으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의회를 무시한 왕의 독선은 날로 심하여져 갔다. 특히 왕은 방탕하
고 사치를 좋아하여 그동안 .엘리자벹'여왕때 비축된 왕실의 재정도 바닥이 날 지경에 도달 하였으며, '찰스'
2세가 저지른 일 중에서 가장 나빳던 것은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1670년에 맺은 '도바 밀약' 이었다. 이 밀
약은 '찰스' 2세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영국 번영의 기초인 상공업 분야의 이권을 적국인 프랑스에 몰래 팔
아 넘긴 것이다.
1685년 '찰스' 2세에 이어 '제임스' 2세가 즉위하였는데, 그는 카톨릭교도을 문무 관리로 등용하면서 1687년
에 선왕과 같이 신앙 자유선언을 발표하였다. 그도 선왕과 같이 카톨릭교에 대한 친근감을 갖는 한편 왕당파
와 한 통속이 되어 지난날의 국왕들 처럼 독재를 하며 청교도를 탄압하였다. 이같은 폭정에 대해 국민들의
반감이 고조되던 중 의회의 지도자들은 1688년 6월 말 네델란드의 총독 '윌리암'과 왕녀인 '메리'부처 에게
영국의 자유와 권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군대를 이끌고 귀환토록 초청장을 보냈다.그해11월 윌리암.메리 부
처는 1만 5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영국 남서부에 상륙하여 런던으로 진격하게 되는데,국내귀족과 지방호족
들 뿐 아니라 왕의 둘째딸 '엔'도 '윌리암' 군에 가담하게 되자 왕은 국외로 망명할것을 결심하고 왕비와 왕자
를 프랑스로 도피시킨 다음 자신은 '윌리암'부처의 묵인하에 그해 12월 드디어 망명에 성공하였다.
1689년 2월 런던에 입성한 '윌리암' 부처에게 의회에서는 '권리선언'을 제출하여 승인을 요구하였다. 이들
부처는 그것을 인정한 다음, '윌리암' 3세.'메리'는 공동으로 왕위에 올랐다. 이것을 "명예혁명"이라고 하는데,
영국 에서는 "명예혁명" 이후 국왕이 실제로 나라를 다스리지는 않고 의회가 나라를 다스리게 되어 오늘날
까지 '의회정치'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권리선언'은 뒤에 '권리장전'으로서 재차 승인을 받았다. 이 장전
의 원칙에 나타나 있듯이, 이혁명은 17세기의 왕권과 의회의 항쟁에 종지부를 찍게하였고 종래의 권리를
수호함과 동시에 왕위계승까지도 의회가 결정할 수 있게 하였다.)
윌리암 3세가 런던 으로 진군하는 모습(1688년 명예혁명때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