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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의 기자회견 솜씨

작성자睦園.박이환(고10회)|작성시간22.03.14|조회수164 목록 댓글 0

이승만 대통령의 기자회견 솜씨

金衡均

능숙한 이 대통령의 기자회견 솜씨


▼ 필자: 김형균(金衡均)
1916년 2월 서울 출생
1943년 일본 메이지대 법학부 졸업
1936~1948년 한성일보 정경, 사회부 취재부장
1948~1949년 고려통신 기자
1951~1955년 시사통신, 국제뉴스 편집국장, 주일특파원
1957~1959년 자유신문 편집국장
1959~1961년 세계통신 편집국장
1964~1971년 중도일보 편집국장, 주필
1976년 7월 집필



매주 금요일은 대통령 기자회견 날이다. 이때는 사전에 질문사항을 공보처 당국에 제출하는 일은 없었고 대통령회견 날이면 바로 질문했고 또 이승만 대통령은 즉석에서 답변하는 등 잘 받아넘겼다.

지금도 생각나지만 대개 10시에 중앙청회의실에서 회견이 시작되는데 경무대 경찰서원이 대통령께서 곧 들어오신다고 미리 알려주곤 하였다. 이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퍽 조촐했고 간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보처 당국자와 국무위원 몇 사람 그리고 비서들이 배석했는데 노(老) 대통령의 ‘유머러스’한 답변에 웃음이 터지기가 일쑤였다. 질문할 때 대통령 각하라고 부른 기자는 없었고 대개 '대통령께서'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 때마다 아침에 만나서 뭐라고 인사를 했으면 좋을지 기자들이 연구해 보라고 했고 적당한 인사말이 선정되면 상금을 후하게 내리겠다고도 했다. ‘안녕히 주무셨소. 아침 자셨소’ 또 ‘굿모닝’ 등도 우리에겐 맞지 않으니 차라리 ‘어떠시오’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넌지시 우리에게 물어보기도 하였다. 일인(日人)도 그럴싸한 아침 인사말이 있는데 적당한 인사말이 우리에게 없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나 끝내 적당한 아침 인사말이 만들어지지 않은 채 老 대통령은 사라져 간 것이다.

경무대에서의 기자회견 날이면 ‘프란체스카’ 여사가 손수 만든 차와 과자 또는 시제(試製) 담배가 나왔다. 같은 탁자에 앉아 노(老) 대통령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버르장머리 없이 느껴져 때로는 안 피우고 있노라면 원래 버르장머리 없는 게 기자이니 체면 차리지 말고 피우라고 권하는가 하면 우리 안사람이 차 끓이는 솜씨가 없어 맛이 없어 안 먹는 것 같다고 프 여사에게 다시 끓여오라고 해 프 여사와 기자들을 당황하게도 했고 또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기도 하였다.

또 어느 때인가 기자회견 때는 기자 질문에 김장흥(金長興) 경무대서장이 뭔가 입을 열었다가 “한 나라의 대통령인 내가 기자 선생님들 앞에서 잘 뵈려고 쩔쩔매는 판인데 자네가 뭘 안다고 입을 여나, 자네도 출세하려면 기자들한테 잘 보여야 돼…”하고 나무라 한바탕 웃음보가 터지기도 하였다.

또 그 당시의 일이다. 경무대에서의 회견날인데 허정(許政) 교통부장관이 군용기 헌납기금을 대통령에게 전달하고자 온 일이 있었는데 李 대통령은 서슴지 않고 “이게 교통부에서 자발적으로 모은 돈이냐 아니면 강제로 모은 돈이냐”하고 물었다. 허정 씨가 자발적이라고 말하자 “나한테 잘 보이려고 강제로 모은 돈이지 뭐야. 내가 다 아는데. 기자들이 이 사실 좀 신문에 써요” 해서 온통 기자회견이 웃음바다가 된 일도 있었다.

이 대통령은 역시 능숙한 솜씨로 내외 기자회견에 임했고 회견의 분위기는 늘 부드러웠다. 회견이 끝나면 회견 석상에 놓았던 담배를 한 주먹씩 집어 기자 호주머니에 넣어주는 등 자상스러운 일면도 보여 주었다. 중앙청 출입 시절엔 좌우익의 기자가 출입했지만 재치있는 기자도 많이 있었고 민완하고도 정의에 찬 기자도 많이 있었다. 중앙청 기자실엔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없었지만 그야말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취재 경쟁에 열을 올렸다. 통신사는 통신사대로 신문사는 신문사대로 특종을 잡으려고 ‘소스’를 캐고 또 뛰었다.


수복 후 첫 회견… 무책임한 피난 따져

나는 합동통신사에 입사했고 중앙청 출입을 담당했다. 11월 중순경이라고 기억한다. 수복 후 첫 번째의 대통령 기자회견 때였다. 老 대통령의 모습을 보니 무엇보다도 반갑기도 했다. 한편 원망스럽기도 했다. 아무튼 이루 말할 수 없는 벅찬 감격 때문에 老 대통령도 기자도 한동안 멍하니 바라다볼 뿐 할 말을 잊은 채 차분한 공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老 대통령은 기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 사람들이 그때 그 사람들이냐”고 첫마디를 물었다. 공보당국자는 “좀 변동이 있은 것 같다”고 대답했다. 또 침묵이 흘렀다. 내가 일어나 첫 번째의 질문자로서 입을 열었다. “전란을 겪으시느라고 여러 가지로 수고가 많으셨을 줄로 생각합니다. 다시 이렇게 뵙게 되니 참으로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먼저 老 대통령에게 수인사(修人事)를 한 다음 “대통령께서는 수도 서울을 사수한다고 발표하셨고 국민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힘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정부는 의정부(議政府)를 탈환했다고 발표함으로써 서울 시민들을 비롯한 숱한 국민들의 도강(渡江)피난을 못 하게 해놓고 정부 자체는 대전으로 부산으로 피난했습니다. 이 때문에 서울 시민의 인명 재산의 피해가 엄청나게 늘어난 게 사실이었습니다. 국민들은 대통령과 정부가 이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이 같은 여론이 높아가고 있는데 대통령께선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말씀해 주십시오”하고 물었다.

나의 이러한 질문에 이 대통령은 몹시 당황한 표정이었고 약 2~3분 동안 답변을 않은 채 안면 근육이 크게 경련을 일으켰다. 한참 동안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이 조용했다.
“그러면 이 사람들아! 대통령인 내가 가만히 앉아 있다 공산당한테 잡혀갔어야만 속이 시원했겠나?”하고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역습에 나섰다. 한참 있다 다소 누그러진 듯 이 대통령은 “내가 말한 것과 김 기자의 질문은 ‘오프 더 레코드’로 해 달라”고 영어로 부탁했다.

이렇게 해서 수복 후 첫 번째의 대통령 기자회견은 몇 가지 질문과 더불어 끝났는데 공보국장이었던 우청(雨聽) 이건혁(李健赫) 씨는 “왜 하필이면 그런 질문을 하나, 딴 중요한 질문도 많았을 텐데”하고 못 마땅해하는 표정이었으나 “나나 딴 기자들도 역시 이 말을 묻고 싶을 게고 국민의 여론도 바로 이것으로 가장 듣고 싶어 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대답했다. 나는 기자회견의 분위기로 보아서 아무래도 무사할 것 같지 않아서 통신사엔 전화로 송고만 해 주고 들어가지 않았으나 끝내 별일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老 대통령의 기자회견 솜씨는 능숙했고 통쾌한 질문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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