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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알게 된 짝퉁 왕국의 뒷이야기

작성자睦園.박이환(고10회)|작성시간22.09.09|조회수15 목록 댓글 0
영어로 알게 된 짝퉁 왕국의 뒷이야기
여행 중 만난 사람들 88 – 체험을 통해 본 세계 속 영어의 실체(4) “중국제는 먹는 것은 물론 대부분이 가짜라는 걸 잊지 마세요.”
bestkorea(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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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version is below.)


*중국 여행 중 경험한 이야기: (유쾌한 경험)


1) 연변(延边)에서 북경행 기차를 타고 갈 때다(2003). 낮이었다. 나와 마주 앉은 젊은이에게 가벼운 중국말로 인사를 하고 곧 영어로 나는 한국인이며 중국을 여행 중이라 했다. 그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는 중국어와 영어를 섞어 말했다. 중국 기차에는 항상 사람이 많으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렇다며 중국은 인구가 너무 많다고 했다. 주변의 시선은 우리에게 쏠렸다. (중국 여행을 통해 안 것이지만 중국 어딜 가나 이들은 내가 영어로 중국인들과 얘기를 하면 금방 주위로 모여들었다.) 우리가 잠깐 대화를 멈추고 있는 사이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부인이 내게 말을 걸었다. 자기는 지금 딸과 함께 북경에 영어 인터뷰를 하러 간다며, 내가 자기 딸과 영어 대화를 좀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좋다고 했더니 금방 이분이 자기 딸이 앉은 자리 맞은편을 비우고 나를 앉혔다. 그녀의 딸에게 물었다. 무슨 인터뷰를 하는데 영어로 하느냐고. 그녀는 미국 유학을 가기 위해 북경의 어느 유학 전문 기관에 등록하러 간단다. 그런데 영어 인터뷰는 필수라고 했다. 나름대로 유학과 미국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며 질문도 하는 등 한동안 함께했다. 그 어머니의 열성이 더 대단해 보였다.


2) 계림(桂林) ‘양수오’에서 있었던 일이다(1996). 이곳은 주로 배낭 여행자들이 머무는 곳이다. 숙소를 잡고 해 질 무렵 거리로 나왔다. 방콕 ‘카오산로드’를 연상케 했다. 거리에서 만난 서양인 친구들과 잠깐 이곳의 분위기와 볼거리에 관해 얘기를 나눈 뒤(*난 보통 현지에 도착하면 먼저 온 자들에게 이곳의 기본 정보를 묻는다. 특히 서구인들은 이에 매우 적극적으로 응해 줌. 당시엔 배낭족의 바이블로 통한 ‘세계를 간다’가 필수. 난 예외였다. 무거운 책 대신 가벼운 입으로 더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 나는 어느 가게 앞에 놓인 파라솔 테이블에 앉았다. 간단한 식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갑자기 4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자기 집에 꼬맹이 아들이 있는데 데리고 올 테니 영어로 말을 좀 해달라는 것이다. 좋다고 했더니 오토바이를 끌고 와 타면서 한 10분만 기다려달라며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다. 10분이 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거의 20분이 지나서야 오토바이에 꼬맹이를 태우고 내 앞에 나타났다. 일곱 살짜리 꼬맹이었다. 애 엄마가 나에게 자기 아들이 영어로 말하도록 뭔가 질문을 하라고 재촉하듯 했다. 아이의 나이와 이름 그리고 장래 무엇이 되고 싶냐는 쉬운 질문을 하며 아이의 말문을 열었다. 이 광경을 보고 기뻐하는 아이 엄마를 보고 ‘세상의 엄마들은 한결같음’을 느꼈다. 오토바이로 왕복 20분 거리면 적어도 서울역에서 동대문까지, 아니 이보다 먼 거리다. 양수오 배낭여행자 거리만 벗어나면 무한질주(無限疾走)가 가능한 허허벌판이었으니까.


3) 상해(上海)에서 만난 35세의 중국인 이야기이다(2005). 이 친구와의 만남은 정말 특별했다. 2박 3일을 함께 여행했다. 만난 장소도 동기(動機)도 특이했다. 나는 상해에 5일 머무는 동안 상해 임시 정부 청사를 두 번 방문했다. 첫날은 한국 단체 관광객들로 붐벼서 제대로 보지 못했다. 두 번째 갔을 땐 텅 비어 있었다. 잘 됐다 싶어 전시된 사진 자료와 문헌 등 기록물을 꼼꼼히 보고 있는데 젊은 남자 한 명이 들어 와 벽에 걸린 사진 자료들 앞에 섰다. 생김새도 그렇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은 으레 한국인이라 생각해 반가운 마음에 “안녕하세요?” 했더니 이 친구는 영어로, “아임 낫 코리언. 아임 차이니스.”라고 하지 않는가. 의외였지만 반갑기도 했다. 내가 영어로 날 소개했더니 이 친구는 아주 반가워하며 유창한 영어로 자기 소개도 하며 함께 식사라도 하자고 제안을 했다. 이 친구는 미국 유학파였다. 다렌(大連)의 한 무역회사에서 10년 근무를 한 뒤 자립을 위해 퇴사했다. 며칠간 짬을 내 국내 여행 중이었다. 서울도 와 본 적 있다. 여러 모로 좋은 친구라 생각해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 친구 덕에 중국에 대해 많은 걸 알았다. 생전 처음 버섯 전문 식당도 경험했다. 엄청난 규모의 뷔페식 레스토랑이었다. 내놓은 버섯 종류만 100가지가 넘었다. 이름을 다 붙여 놓았지만, 나로선 눈에 익숙한 몇 가지 외엔 전혀 알 수 없는 종류의 버섯류였다. 외국 관광객들에겐 알려지지 않은 지방 명소도 구경하고, 항저우(杭州) 근교에서는 지역 사람들과 대화도 가졌다. 물론 이 친구의 통역으로 가능했다. 하루는 민박 비슷한 집에서 자고, 또 하루는 3성급 호텔을 이용했다. 이 친구가 나에게 헤어질 때 한 말은 진짜 의외였다. “중국제는 먹는 것은 물론 대부분이 가짜라는 걸 잊지 마세요.” 이 말은 내가 그에게 중국의 석청(石淸=산 속의 나무나 돌 사이에 석벌이 모아 놓은, 질이 좋은 꿀)에 관해 물었을 때 한 말이다. 난 이 친구가 나에게 아무런 죄의식 없이 ‘중국 제품은 다 가짜’란 말을 당당히 할 때 무척 놀랐다. 그러나 곧 의문이 풀렸다.


송대(宋代) 이후 특히 문혁(文革)을 거치면서 아사자(餓死者)가 속출할 때 나타난 현상이란 것. 즉, 살기 위한 수단은 그것이 좋든 나쁘든 모든 것이 허용됐고 합리화됐으며 나아가 장려됐다는 것. 죄의식이 있을 리 없었다. 마치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람과 그가 속한 집단에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 하면 준비된 답이 있는 것과 같다. 먹고 살기 위해 불가피했다고. 약속은 안 지켰지만, 거짓말은 한 적이 없다고, 양심과 도덕성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그 결정판은 북경 시내에 있는 공인(公認)된 짝퉁 쇼핑몰(대형백화점)에 있었다. 가짜를 진짜라고 속여 파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은 당당하게 가짜(짝퉁)를 가짜라고 판다는 것. 과연 대국(大國)다웠다. 암튼, 입이 쩍 벌어졌다. 눈이 의심스러웠다. 중국판 실용주의를 한눈에 보는 듯했다. 삼성, 마이크로소프트, 소니, 나이키, 롤렉스 등 세계적 기업의 제품도 너무나 꼭 같은 모습으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미 한국에도 보도된 중국의 가짜 식품들 즉, 식용유, 고춧가루, 참기름, 김치는 물론 그들이 맨발로 혹은 알몸으로 김치를 만드는 과정도 한국 언론에 나와 큰 충격을 줬다. 하지만 정작 그들에겐 우리가 이상하게 보일 뿐이다. 다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 합리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들에겐 수백 년 내려온 일종의 전통문화와 같을 테니까.


암튼, 내가 중국 여행 시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한국에선 흔치 않은 석청(石淸)이었다. 중국의 큰 도시는 물론 지방, 아니 더 외진 곳, 가령 리장(丽江)이나 청두(成都)에서 수십 킬로 떨어진 재래시장에도 흔히 볼 수 있었기에 그랬다. 난 이걸 볼 때마다 신기한 눈으로 보곤 했다. 눈곱만큼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결론적으로 난 이 친구로 인해 이 문제도 풀었고 나아가 중국이 짝퉁 왕국이 된 것은 불가피한 역사적 배경이 있음도 알았다. 다 이 친구를 만난 덕택이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미.중 패권 경쟁에서 중국은 이미 짝퉁 산업에서 미국을 이겼다는 것이다. <계속>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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