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유가 바라보는 세상
링컨이 암살당한 결정적인 이유는?
- 조화유
- 재미(在美) 작가, 영어교재 저술가
- E-mail : johbooks@yahoo.com
- 경남 거창 출생. 부산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일보 ..
그날 링컨 대통령 경호원은 어디 있었나?
올해는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암살된 지 꼭 150년이 되는 해이다. 1865년 4월14일(미국시각)은 4년간 62만명의 사망자를 낸 남북전쟁 (The Civil War)이 끝난 지 겨우 5일이 지난 뒤였다. 그날 밤 백악관에서 멀지 않은 훠오즈 극장(Ford's Theatre)에서는 인기 희극 "우리 미국 사촌"이 공연되고 있었는데 링컨 대통령 부부는 그 연극을 보러 갔다.
올해는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암살된 지 꼭 150년이 되는 해이다. 1865년 4월14일(미국시각)은 4년간 62만명의 사망자를 낸 남북전쟁 (The Civil War)이 끝난 지 겨우 5일이 지난 뒤였다. 그날 밤 백악관에서 멀지 않은 훠오즈 극장(Ford's Theatre)에서는 인기 희극 "우리 미국 사촌"이 공연되고 있었는데 링컨 대통령 부부는 그 연극을 보러 갔다.
- 링컨이 말년에 찍은 사진.
남부 테너시주 출신인 앤드루 잔슨 부통령은 호텔에서 기거하고 있었고 그날 밤 암살조직의 공격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를 암살하기로 한 자가 겁을 먹고 포기하는 바람에 무사했고 다음 날 대통령직을 계승하게 된다. 스워드 국무장관도 자택에서 공격당했으나 목에 상처만 입고 암살은 모면했다.
링컨 대통령 경호원은 어디 있었나?
당시는 대통령 경호팀이 따로 없었고 경호원 한명만 대통령을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날 밤 대통령 부부는 극장 2층 밸코니의 귀빈석(작은 방처럼 꾸며짐)에 앉아서 연극을 보고 있었다. 경호원 잔 파아커는 귀빈실 문밖에서 계속 지키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연극 1부와 2부 사이의 휴식시간에 극장 바로 옆 술집에 들어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링컨을 암살하기 위해 극장에 나타난 잔 윌크스 붓스도 그 시간 그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쯤 되면 링컨의 경호인 파아커와 붓스가 공범일 수도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지만 아직 그런 증거는 없다고 한다. 단 한명 뿐인 대통령 경호원이 대통령 곁을 떠나 술집에 있었다는 건 요즘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이로니컬 한 것은 바로 그날 링컨 대통령은 백악관 경호팀 조직법에 서명했었다. 링컨은 대통령 취임 한 달쯤 전에도 저격을 당할 뻔 했었다. 그런데도 대통령 경호가 허술했던 것은 잘 이해가 안 된다. 미국 대통령 경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01년 제임스 가휠드 대통령이 암살된 후였다.
- 암살범 붓스.
암살범은 어떻게 되었나?
붓스는 경호원이 술집에 있는 사이 극장에 들어가 대통령 부부가 앉아있는 2층 귀빈실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가 연극의 웃기는 장면에서 관중이 폭소를 터트리는 순간을 이용하여 권총을 링컨 대통령 뒤통수에 겨누고 발사했다. 그리고 그는 귀빈실에서 도로 나오지 않고 무대로 뛰어내렸다. 그때 그는 라틴어로 Sic semper tyrannis!라고 외쳤다는데, 영어로 번역하면 Thus always to tyrants!(폭군들은 항상 이렇게)가 된다. 그것이 4월14일 밤 10시 13분경이었다.
- 암살 장면을 그린 당시 그림.
삔 다리 치료를 받은 붓스는 포터맥 강을 건너 이웃 버지니아 주로 들어가 한 농장에 숨어 있었다. 그러나 한 주민의 신고를 받고 나타난 수사관들이 농장 헛간에 불을 질렀고, 불을 피해 달아나던 그를 사살한다. 링컨 암살 후 12일 만이었다. 암살범의 마지막 말은 "Useless, useless!"(부질없고 부질없도다!)였다 한다.
한편 링컨은 머리에 치명상을 입고 극장 길 건너편 한 개인 저택으로 옮겨졌으나 9시간 동안 무의식 상태로 있다가 4월15일 아침 7시22분에 숨을 거둔다. 그 순간 스탠튼 국방장관은 Now he belongs to the ages.(그는 이제 역사 속에 영원히 사는 인물이 되었습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이 건물은 지금도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데, 훠오즈 극장과 함께 역사 유적으로 지정되어 있고 매일 수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있다. 필자도 오래전에 이 건물 안에 들어가 링컨이 운명한 방과 그가 누워 있던 침대, 그가 베고 있었다는 베개, 그리고 핏자국이라고 하는 희미한 흙색 얼룩을 구경한 적이 있다. 이 집 앞면 벽에는 "링컨 대통령이 돌아가신 집"이라고 쓴 안내판이 붙어 있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이 집안에 다시 들어가 보려고 지난 4월 6일 그곳에 다시 갔으나 사람이 너무 많아 들어가지 못하고 그 안내판 앞에서 증명사진(?)만 찍고 돌아왔다. 저격 장소인 극장도 초만원이라 이날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오래전 이미 극장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그것은 크지 않은 소규모 극장이었다. 링컨 대통령 부부가 앉았던 2층 귀빈석은 옛날 그대로 장식되어 있었고 링컨이 피격 당시 입고 있었던 양복과 모자 등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지금도 아마 대동소이할 것이다.
- 링컨이 운명한 집 앞에 선 필자 (머리 위에 House Where Lincoln Died라고 쓴 안내판이 보인다).
링컨 암살 150주기에
워싱턴에서
조화유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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