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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링컨이 암살당한 결정적인 이유는?

작성자예파 성백문|작성시간15.04.14|조회수69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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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링컨이 암살당한 결정적인 이유는?

  • 조화유
    재미(在美) 작가, 영어교재 저술가
    E-mail : johbooks@yahoo.com
    경남 거창 출생. 부산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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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4.14 14:29 | 수정 : 2015.04.14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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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링컨 대통령 경호원은 어디 있었나?

올해는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암살된 지 꼭 150년이 되는 해이다. 1865년 4월14일(미국시각)은 4년간 62만명의 사망자를 낸 남북전쟁 (The Civil War)이 끝난 지 겨우 5일이 지난 뒤였다. 그날 밤 백악관에서 멀지 않은 훠오즈 극장(Ford's Theatre)에서는 인기 희극 "우리 미국 사촌"이 공연되고 있었는데 링컨 대통령 부부는 그 연극을 보러 갔다.
링컨이 말년에 찍은 사진.
링컨이 말년에 찍은 사진.
남북전쟁을 연방정부의 승리로 이끈 북군사령관 그랜트 장군 부부도 그날 밤 대통령 부부와 함께 극장에 간다고 신문에 보도되었으나, 장군은 부인과 함께 뉴저지주에 있는 일가친척들을 만나러 가기로 되어 있어서 극장 초대를 사양했다. 만일 그랜트 장군이 극장에 갔더라면 경호가 더 엄해서 링컨 암살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랜트 부부가 사양하자 링컨은 하원의장 콜홱스를 초청했으나 그도 다른 선약이 있다며 사양했다.

남부 테너시주 출신인 앤드루 잔슨 부통령은 호텔에서 기거하고 있었고 그날 밤 암살조직의 공격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를 암살하기로 한 자가 겁을 먹고 포기하는 바람에 무사했고 다음 날 대통령직을 계승하게 된다. 스워드 국무장관도 자택에서 공격당했으나 목에 상처만 입고 암살은 모면했다.

링컨 대통령 경호원은 어디 있었나?

당시는 대통령 경호팀이 따로 없었고 경호원 한명만 대통령을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날 밤 대통령 부부는 극장 2층 밸코니의 귀빈석(작은 방처럼 꾸며짐)에 앉아서 연극을 보고 있었다. 경호원 잔 파아커는 귀빈실 문밖에서 계속 지키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연극 1부와 2부 사이의 휴식시간에 극장 바로 옆 술집에 들어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링컨을 암살하기 위해 극장에 나타난 잔 윌크스 붓스도 그 시간 그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쯤 되면 링컨의 경호인 파아커와 붓스가 공범일 수도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지만 아직 그런 증거는 없다고 한다. 단 한명 뿐인 대통령 경호원이 대통령 곁을 떠나 술집에 있었다는 건 요즘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이로니컬 한 것은 바로 그날 링컨 대통령은 백악관 경호팀 조직법에 서명했었다. 링컨은 대통령 취임 한 달쯤 전에도 저격을 당할 뻔 했었다. 그런데도 대통령 경호가 허술했던 것은 잘 이해가 안 된다. 미국 대통령 경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01년 제임스 가휠드 대통령이 암살된 후였다.
암살범 붓스.
암살범 붓스.
링컨을 암살한 붓스(Booth)는 젊은 미남 인기 배우였다. 워싱턴과 붙어 있는 메릴랜드주 출신이지만 그는 흑인을 해방시킨 링컨을 증오했으며 남북전쟁 중에 남부의 첩자 노릇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전쟁 기간 중 남부 지지자들과 공모하여 링컨을 납치한 후 남부군 포로들과 교환하려고 했으나, 링컨이 해방된 흑인들에게 투표권까지 줄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링컨을 암살하기로 결정한다. 암살 음모자들은 대통령, 부통령, 그리고 국무장관을 하룻밤에 다 암살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은 4월14일 밤 실행되었으나 링컨만 암살되었던 것이다.

암살범은 어떻게 되었나?

붓스는 경호원이 술집에 있는 사이 극장에 들어가 대통령 부부가 앉아있는 2층 귀빈실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가 연극의 웃기는 장면에서 관중이 폭소를 터트리는 순간을 이용하여 권총을 링컨 대통령 뒤통수에 겨누고 발사했다. 그리고 그는 귀빈실에서 도로 나오지 않고 무대로 뛰어내렸다. 그때 그는 라틴어로 Sic semper tyrannis!라고 외쳤다는데, 영어로 번역하면 Thus always to tyrants!(폭군들은 항상 이렇게)가 된다. 그것이 4월14일 밤 10시 13분경이었다.
암살 장면을 그린 당시 그림.
암살 장면을 그린 당시 그림.
붓스는 무대로 뛰어내릴 때 왼쪽 발목을 삐었으나 극장 밖에 대기시켜 놓았던 말을 타고 메릴랜드주로 도주, 의사 쌔뮤얼 마드로부터 치료를 받았는데, 이 때문에 그 의사도 공범으로 몰려 감옥살이를 하고 나왔다. 이 의사의 증손자 Roger Mudd는 약 100년 후인 1970년대 CBS TV의 주말 뉴스 진행자로 활약한다. 그러나 그는 주중 앵커 월터 크론카이트 후임으로 댄 래더가 임명되자 홧김에 NBC로 자리를 옮긴다. 거기서 탐 브로코와 저녁뉴스 공동 진행자가 되었으나 브로코가 단독 앵커가 되자 이번엔 케이블 TV로 옮겼다. 올해 87세인 그는 지금도 가끔 방송에 나온다. 그는 자기 할아버지가 붓스의 정체를 모르고 그를 치료해주었을 것 같지는 않다고 솔직히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다른 후손들은 의사 마드가문의 명예회복을 위해 아직도 법정투쟁을 벌이고 있다.

삔 다리 치료를 받은 붓스는 포터맥 강을 건너 이웃 버지니아 주로 들어가 한 농장에 숨어 있었다. 그러나 한 주민의 신고를 받고 나타난 수사관들이 농장 헛간에 불을 질렀고, 불을 피해 달아나던 그를 사살한다. 링컨 암살 후 12일 만이었다. 암살범의 마지막 말은 "Useless, useless!"(부질없고 부질없도다!)였다 한다.

한편 링컨은 머리에 치명상을 입고 극장 길 건너편 한 개인 저택으로 옮겨졌으나 9시간 동안 무의식 상태로 있다가 4월15일 아침 7시22분에 숨을 거둔다. 그 순간 스탠튼 국방장관은 Now he belongs to the ages.(그는 이제 역사 속에 영원히 사는 인물이 되었습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이 건물은 지금도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데, 훠오즈 극장과 함께 역사 유적으로 지정되어 있고 매일 수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있다. 필자도 오래전에 이 건물 안에 들어가 링컨이 운명한 방과 그가 누워 있던 침대, 그가 베고 있었다는 베개, 그리고 핏자국이라고 하는 희미한 흙색 얼룩을 구경한 적이 있다. 이 집 앞면 벽에는 "링컨 대통령이 돌아가신 집"이라고 쓴 안내판이 붙어 있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이 집안에 다시 들어가 보려고 지난 4월 6일 그곳에 다시 갔으나 사람이 너무 많아 들어가지 못하고 그 안내판 앞에서 증명사진(?)만 찍고 돌아왔다. 저격 장소인 극장도 초만원이라 이날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오래전 이미 극장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그것은 크지 않은 소규모 극장이었다. 링컨 대통령 부부가 앉았던 2층 귀빈석은 옛날 그대로 장식되어 있었고 링컨이 피격 당시 입고 있었던 양복과 모자 등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지금도 아마 대동소이할 것이다.
링컨이 운명한 집 앞에 선 필자 (머리 위에 House Where Lincoln Died라고 쓴 안내판이 보인다).
링컨이 운명한 집 앞에 선 필자 (머리 위에 House Where Lincoln Died라고 쓴 안내판이 보인다).
워싱턴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대개 엄청나게 큰 링컨기념관과 그 앞의 한국참전용사 추모공원은 꼭 찾아가 보지만 링컨 피격장소(Ford's Theatre)와 그가 숨을 거둔 장소(Petersen House)는 몰라서 가보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꼭 이 두 곳도 가보기를 권한다.

링컨 암살 150주기에

워싱턴에서

조화유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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