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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세월이 가는 데...

작성자예파 성백문|작성시간16.12.28|조회수154 목록 댓글 0

친구에게


어제 한아름 식당에서 우연히 셀폰을 들여다 보며 전화할 생각에 마침 메세지가 온 것을 봤는 데, 먼 길도 멀다 않고 와 줘서 만난 것은 뜻밖의 반가움이었다.
전화를 하면서 두리번 거리는 자네의 모습과 얼굴에서 세월이 스쳐 간 것을 읽었네.

정말로 세월이 가네.  
지금까지 세월이 흘렀듯이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세상을 떠나네.
나는 자네의 관심과 재미 가득한 매일을 사는 의식을 아네.
세상사에 갖는 관심, 보는 것, 듣는 것, 현재에서 할 수 있는 그다양한 것으로 잠도 미루며 갖는 재미.

나도 심각한 여러 가지 신학서적들을 뒤지고 철학가들의 사상을 이해해 가며 인류 역사중에서 특히 서구의 정신사상이 기독교와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아 왔으며 과연 이런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이해하며 또 인간의 근본적 문제, 죽음을 넘는 욕망과 기대를 얼마나 대답해 주는 것인가를 생각한다. 또 종종 피아노앞에 앉아서 내가 기억하는 많은 노래나 멜로디를 쳐 보고 식사하면서 미국뿐만 아니라 모스코에서 보내는 러시아 방송, 빠리에서 보내는 불란서 방송, 토오꼬에서 보내는 일본방송 (모두 영어로 세계에 보냄)들을 통해서 지상에서 벌어 지는 정치, 군사, 사회, 문화를 통하여 인간들의 몸부림을 보고 듣고 생각하네. 
또 인터넷을 통해서 이스라엘에서 보내는 소식도 듣고 보고...또 한국 인터넷을 통해서 중, 고, 대학 카페를 통해서 동기들의 얘기도 읽고 또 한국의 혼돈된 정치, 사회, 문화들을 들여다 보고, 또 유튭에 들어 가면 파바로티, 안드레아 보첼리, 부라이트만, 셀론 디온, ..들의 오페라, 클래식 음악을 즐거워 하고...이러다 보면 자정을 쉽게 넘기는 매일이어서 아직도 일찍 자지 못하는 내버릇과 싸우네. 
아직도 인간의 모든 것에 관심하며, 계절따라 산보를 하며 자연을 즐기는 것으로 카메라로 아름다움을 잡으려 노력하는 등등 그러면서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그럼에도 저녁이 오듯이 인생의 끝이 온다는 엄연한 현실이지.

우리주위에 많은 사람들은 이미 건강의 한계를 경험하는 데, 소위 노인병-고혈압, 당뇨등을 비롯해서 시력이 약해지고 근육이 약해지고 몸의 이기저기가 약해지고 무능 해지고 기력이 줄고 뷸면증으로 고생하고 그래서 서서히 세상에 대한 관심이 줄어 지거나 식욕이 줄어 들고 기억력이 줄면서 망각증이 생기고, 의욕이 줄고... 이현상은 내가 10년이 넘도록 지도해온 미국인들도 예외가 아니네.

우리가 정기적으로 신체검사를 통해서 대체적인 건강확인을 하지만 세월이 육체에 잠식하는 흔적은 부인할 수 없네. 
서서히 기우는 체력, 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육체의 기능의 제한을 경험하는 그때 그많은 바깥을 향한 관심이 몸을 제한하는 어떤 고통이나 불편함으로 촛점할 때, 그때 새롭게 당면하는 죽음이라는 현실. 그때는 전화, 이메일도 끊어 지네.
신앙문제는 우리가 사회나, 남에 대한 관심할 수 있을 때 관심하고 탐구하지 않으면 생각이 흩어지고 의식이 분명치 않게 될 때는 이미 늦어 지네. 

우리에게 익숙한 유교는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에서 평안과 조화를 주로 관심하는 범위에서 삼강오륜을 강조하는 것으로 인간의 삶과 죽음의 문제는 다루고 있지 않다. 결과는 경직된 사회가 되지. 
불교는 석가모니가 인간의 현실을 관찰하며서 인간의 고통과 불행의 원인이, 태어 나고, 늙어 죽고, 병들고, 죽어 가는 현상임을 보고 이에 대한 부단한 사색과 명상과 긴 고민끝에 결국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종교이네.
기독교는 이들과 다른 데, 곧 전능한 신이 우주를 창조하고 인간을 창조해서 그들로 그창조신과 함께 영원히 전능자의 영광안에 거하는 것이 창조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죄라는 문제가 생기는 데, 이는 인간이 전능자외 딴 신, 곧 창조신이 아닌 딴 신,  가짜 신에게 현혹됨으로서 그결과가 바로 그후에 전개되어 온, 현재도 진행하는, 우리가 경험하고 목도하는 모순과 부조리와 오해와 부조화된 비참한 인류 역사이다.
전능자 하나님의 인류를 향한 목적와 의도와 방법은 특이하게 이스라엘족으로통해서 인류에게 게시되었는 데, 유대민족을 통해서 창조자의 뜻이 펴진 것은 그전능신의 선택임으로 토론의 여지가 없다. 그의 구원의 방법이 선지자, 예언자들을 통해서 부분적으로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선포되는 것이 바로 구약성경의 내용이다. 그기록에는 장래에 전능자의 뜻을 완성하기 위하여 완전한 자가 올 것이 예언 되어 왔는 데, 곧 메시야, 또는 그리스도가 인간역사에 등장한다는 것이고 유대인들은 그를 수십세기동안 기다려 왔지.       

그 메시아, 또는 신이 보낸 인류를 위한 구원자가 유대인 역사에 등장하는 예수의 등장과 그의 가르침, 그의 초인적인 기적과 역사, 그의 삶과 그의 죽음, 그리고 궁극적으로 죽음을 초월해서 부활한 사건, 그후 무덤에 머물거나 우리과 같은 인생을 수십년 산 것이 아니라, 승천함으로 그는 과연 전능자의 뜻을 펴보이기 위해서만 온, 특이하고 유일한 것들이 바로 신약성경의 기록이고 그내용은 당시 그를 추종한 제자들의 역사와 초기교회의 모습을 포함하고 있다.
 
과거 이천년동안 서양의 역사는 그들의 전통적인 신(들)을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후, 기독교적인 사상을 그들의 세계관으로 이해하고 체질화고 세계관, 인생관으로 문화를 피워 온 기록이다. 인간의 평등, 자유, 민주사상, 사회정의등이 그결과들이다.

내가 고1때 내어머니의 갑작한 죽음은 나로 인간의 죽음과 이별의 고통을 경험하게 하였고 공대 시절과 그후 내가 살아 온 동안, 내 전관심은 철학적인 질문, "진리가 무엇이냐?"와 예수의 "내가 진리이다"는 주장이 일치하는가는가였다. 그후 지금까지 철저하게 신학적으로 성경을 공부하고 철학적 질문과 문학적 표현으로 인간현상과 영원한 생명에의 열정에 관심해 왔다.

자네가 일상생활을 다양한 재미로 사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고 경제적인 여유가 그런 것을 자유하게 한 것은 축복이네. 
그러나 인생의 끝은 서서히 오는 경우도 있으나 갑작하게 오는 경우도 많네.
자네의 마음이 움직이기까지 기다린다는 것이 그렇게 지혜롭지는 않네.
마자믹 순간이 언제 오더라도 미리 준비하는 자네이기 바라네. 
이것은 자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경우들을 보면서 선택적 의지로 미리 지혜롭게 예비하는 것일세.

기독교는 크고 작은 선행의 축적으로 미래를 정하지 않네. 
예수 그리스도가 과연 그의 주장대로 과연 전능자 하나님이 보낸 그 메시아인가, 무엇이 그의 가르침이며 약속인가등을 알고 그의 약속을 믿는 것이네. 
세상적으로 생각이 많은 자네같은 사람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이해하고 신앙하는 데는 자연히 많은 의문과 토론들이 따르네. 
그래서 정신이 아직 멀쩡할 때, 집중력이 있을 때, 지구력이 있을 동안에 예수에 대해서 배우고 의심해 보고, 토론해 보고, 연구해 볼 시간이 있네.

일가중에, 조카중에 헌신한 목회자가 있다는 것은 특혜다. 그들이 가족중에 있다는 것자체는 별의미가 없지.
자네는 교회가기 전에 미리 그들을 통해서 기독교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질문하고 생각하고 관심하고 그들과 진지하게 대화해 보게. 
시간이 많지 않을 수도 있네. 그들의 지식과 그들의 이해와 신앙을 알아 보고,  토의해 보고, 예수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 보게.

만들어 준 cd를 들으며 운전도 쉽게 잘 하고 왔지.

자, 새해에는 또다른 의미와 차원으로 영원한 세계에 대해서 탐구를 시작하게.
자네가 동서양 음모론에 탐익하고 바둑, 골프, 각종 악기 배우기에 몰두했듯이.

자네의 우의에 항상 감사하며,

예파


제1곡 : Kyrie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 Carlo Maria Giulini, C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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