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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다가 올 때

작성자예파 성백문|작성시간17.01.12|조회수65 목록 댓글 0

"깜깜한 깊은밤 사방을 둘러봐도 창밖의 희미한 가로등 불빛과 적막감 밖엔, 가끔식 낙엽 떨어지는 소리,

몇달째 투병생활중이라 운동부족인지 잠은 오지않고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지난 날들,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경북중학교동기중의 하나인 이친구. 고향은 경북 청도군.

어제 그에게 전화로 그의 근황을 묻는다.

잠은 잘 자는가? 식사는 제대로 하는가? 요새 꿈은 꾸는가? 그내용이 무엇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지나는가?

추수감사절이 멀지않은 이제, 그가 어떻게 그명절을 맞을건가고 묻는다.

아무 준비가 없다고 한다.

나는 추수감사절에 자녀들이 모이고 손자손녀들이 모여서

일년을 잘 지난 것을 감사하는 날에 대한 기대를 하라고 권한다.

 

서너주전에 전화에서 그는 모처럼 샀던 개인주택을 팔고 작은 아파트로 옮겼다고 했다.

이번에는 몇달전에 보여준 그좋은 독일차, 아우디 (Audi)를 팔고 싼 혼다를 샀다고 했다.

 

내가 그를 방문했던 때는 지난 4월이었다.

그는 당시에 그차를 우리에게 보여 주었고, 그는 새로 이사한

조용한 주택가에 있는 집으로 우리를 초대했었다. 

그는 취미로 키우는 특이한 새 여러마리가 여러개의 새장을 붙여 만든 새장을 보여 주며 즐거워 했었다.   

 

지난 6월쯤인가, 딴 중학교동기가 함께 찍은 사진에서 같이 나이가 들면서 몸이 말랐다는 표현을 한 후,

9월초에 한 전화에서 건강상태가 않 좋다는 말을 했었고

정밀검사를 9월말에 하기로한 것과 함께 칼리포니아에 여행한다는 말을 했었다.

그의 말대로 9월말에 전화했을 때, 그는 췌장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과

치료를 포기했다는 말로 병이 많이 진전되었다고 암시했었다.

 

이삼주전에 뉴져지에 있는 한국 식료품점에 들리는 길에 들리면 어떤가고 전화했으나 

그는 이미 약속이 있어서 만날 기회를 못 가졌다.

성실한 이친구는 원래 캐톨릭 교인이었으나 뉴져지 한인 밀집지에 옮겨온 후, 큰 한인교회에 출석한 이래,

제나이 구릅에서 총무가 되고 금년초에 드디어 회장이 되어 장년회를 인도해 오고 있었다.

방황하던 아들이 이교회에 출석한이래 신앙을 갖게 되고 지난 봄에 결혼까지 하였던 것이다.

 

 이제 그는 출석하던 한인교회의 기도제목이 되었고 일주일에도 여러번 방문을 받는다고 했었다.

 

나는 버릇처럼 나이가 많은 환자들에게 잠을 잘 자는가와 꿈을 꾸는가, 어떤 꿈을 꾸는가를 묻는다.

병원방문시 초면인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서 그들이 병실에서 흰벽을 보면서 지나는 삶의 내용이

궁금했던 것이고, 그들의 지루한 상념을 깨우는 것이 목적이기도 하고 또 자신들의 삶의 내요을 생각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육체가 병들고 몸이 불편해지고 생각이 흩어지는 사람들을 방문하거나 상담하면

나는 그들의 내적 상태, 곧 정신적 심리적 상태가 가장 궁금한 때문이다.

또 병세가 이미 말기인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가, 해줄 수가 있겠는가?

 

그는 내질문에 수많은 생각들이 지나간다고 했다.

엊그제, 바로 나와 대화한 그날 저녁에 그가 중고등학교 동문카페에 올린 그짧은 글을 올린 것이다.

 

며칠전에 콜로라도에 살던 내 사촌 여동생이 암과 투쟁하다가 떠났다.

끝까지 병원에서 가능한 모든 치료와 수술을 시도하였고 마지막 날이 오기까지 근무를 나가기를 

거의 4년간해 온 그녀는 집에 있으면 죽을 것같아서 근무간다고 말했었다. 

정말로 하루씩을 산다고 고백하였다.

누워 있으면 죽을 것같애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이를 악물고 교회예배에 참석하였다.

나는 그녀가 쉬면서 죽음을 정말로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을 확인하라고 제안하고도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아마도 보험이 끊어질 경우를 생각해서 마지막까지 버티지 않았는가고 생각해 본다.

 

죽음을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만은

방사선치료, 약물치료, 또 전통적으로 아는 모든 시도를 하면서도

죽음을 맞을 준비를 제대로 하기를 나는 바랬다.

여러달전에 요한복음이나 요한 계시록을 읽으라고 말해주기는 했었다.

거기서 위로와 소망의 이유를 찾게 되기 바라면서.

 

나는 사람들이 암과 싸우면서도 육체가 회복되지 않는 것을 볼때,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을 확실히 하는 것이 

절대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말이 오히려 생명회복에의 기적에 전부를 걸고 있는 경우

오히려 실망케할 가능성을 생각하고 침묵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저고독한 영혼의 모습.

두달밖에는 못 살 것이라고 말했는 데, 그날이 넘었다는 사실에 주치의가 놀란다지만

자신의 극적으로 건강상태가 바뀌는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살 날이 많지 않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잠못이루는 밤. 적막한 밤. 모두가 잠든 시간에 깨어 있어서 흐미한 가로등을 의식하면서

얼마나 많은 과거의 기억과 추억이 마음과 생각을 채우는 그긴 밤을 의식하는 영혼.

그불확실한 순간에의 기다림인가?

 

다행히 그는 신앙인이다.

얼마나 그가 하나님의 약속이 주는 신앙으로 모든 염려를 극복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직을 정신이 온전해서 가능한 모든 가사를 정리하고 있음은 다행한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약했으나 인생을 한탄하는 말은 하지 않았고 동정을 구하는 기미도 없다.

 

죽음을 앞둔 영혼이 유지해야할 평안과 감사와 위로감과 영생에의 소망이 현실, 곧 포기해야할

인생을 뒤돌아보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나는 그의 영혼의 깊은 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약속에 근거한 확신을 매일 매순간 확인하며 

영생의 약속이 주는 평안함과 기쁨을 경험하기를 바라고 기도한다. 

 

Baber /  Adagio for Strings O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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