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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여성 지도자의 눈물은 역류해야 하는가

작성자예파 성백문|작성시간14.06.13|조회수84 목록 댓글 1
  • 여성 지도자의 눈물은 역류해야 하는가

  • 김행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 (전 청와대 대변인)
    E-mail : ginko0405@gmail.com
    30년 가까운 직장 생활. 그 세월동안 업 앤 다운(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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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6.11 07:26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여성 변호사 황산성. 그녀는 젊은 시절 필자의 우상이었다. 실제로 몇 차례 뵌 적도 있었는데, 냉철한 변호사 이미지라기보다는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와 소박한 외모 때문에 마치 동네 아주머니 같았다. 황 변호사는 11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는데 그 때부터 돈 없는 동료 정치인들의 선거판을 찾아다니며 말없이 밥값을 내주곤 했다는 일화를 여러 차례 들은 기억이 있다. 당시 필자는 중앙일보에서 전문기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역시 황산성!’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에서 초대 환경부장관으로 입각했다. 그런데 취임 첫날부터 사고(?)를 쳤다. 첫 기자간담회에서 조선일보 기자와 설전이 벌어졌다.

“왜 이혼하셨나요?”
“질문하신 기자는 어디 소속인가요?”
“조선일보입니다.”
“나는 이미 월간지에서도 다 말했어요. 월간지 사서 보세요.”

20여년전 일이니,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격세지감인 장면이다.
그날 황 장관은 눈물을 보였다. 이후 그녀에겐 ‘울보장관’이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황 변호사가 취임한 지 두 달 후인 4월. 이번에는 수돗물 관련 자료의 부실을 지적하는 기자들의 공세에 흥분한 나머지 또 한 차례 공개석상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후 “그리 나약해서 어떻게 장관직을 수행하겠느냐”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고, 울보 이미지를 벗지 못한 황 장관은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12월에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결국 ‘눈물 때문에’ 단명한 셈. 참, 안타까웠다.

여자의 눈물은 무기인가 급소인가? 솔직히 말해 울어도 탈, 울지 않아도 탈이다. ‘여성과 눈물’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이중 잣대 때문이다. 포스터 사진 한 장이 유독 가슴을 때린다. 이달 19일 개봉하는 영화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에서 그레이스 켈리 역을 맡은 니콜 키드만의 사진이다. 클로즈업 된 왼쪽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있다. 차마 눈물을 흘릴 수 없어 참고 참는데도 눈에 고였던 눈물이 스스르 흘러내린다. 화장한 얼굴에 옅은 눈물줄기가 그려졌다. 이 아름다운 여인은 왜 꺼억 꺼억 소리내 울지 못하고 눈물을 안으로만 집어삼켰을까?
영화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 포스터.
영화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 포스터.
1956년 4월 모나코의 레니에 3세와 ‘세기의 결혼식’을 올리면서 할리우드를 떠난 ‘할리우드의 여신’ 그레이스. 그러나 답답한 왕실 생활에 서서히 지쳐갈 무렵 히치콕 감독으로부터 영화계 복귀를 제안 받는다. 이 틈을 타, 모나코를 합병시키고 싶었던 프랑스는 할리우드 복귀를 고민하는 그녀를 이용해 모나코 왕실을 위기에 빠뜨린다.

그녀는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상실과 고독, 슬픔에 빠진다. 예의 포스터의 눈물 장면이 등장한다. 친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저예요”
“정말 돌아올 생각이 있는 건 아니지? 넌 더 이상 배우가 아니다.”
.
그녀는 프랑스에 합병될 위기에 처했던 모나코를 지켜내기 위해 차마 펑펑 울 수 없었을 것이다. 강인해 보여야만 했고, 속내를 감춰야 했기 때문이다. 미국인이자 평민신분으로 모나코 왕궁에 입성한 그녀는 모나코 귀족들 사이에서 영원한 이방인이었다. 프랑스가 모나코를 합병하려는 야심을 본격적으로 드러내자 왕실 내부 정보는 쥐도 새도 모르게 프랑스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화사한 드레스를 차려입고 모나코 군인들을 위한 간식 바구니를 챙겨 국경 지역으로 달려간다. 당시 보수적인 남성 정치가들은 그녀를 두고 ‘철없는 행동’이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그녀의 모습은 뉴스를 통해 전 세계로 타전됐다. 모나코의 국경은 흔들림이 없음을 전 세계에 천명한 것이다.

곧이어 그녀는 귀족 부인들과 함께 국경을 넘어 프랑스 파리로 달려가 각국 정상들을 초대하는 적십자 연례 연회 계획을 발표한다. 국내외 여론을 내 편, 즉 모나코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그녀는 그녀에게 이질감을 느끼는 모나코 귀족과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모나코의 역사, 문화, 정치, 언어를 집중 연구하는 것은 물론 시장 골목으로 나가 상인들을 돕고 자선사업을 본격화하는 등 직접 대국민 정치 행보를 개시한다. 지독한 외로움과 배신 그리고 헐리웃의 영광을 뒤로 하고, 눈물을 꾹 참으며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새 조국, 모나코 왕국에 대한 헌신이자 애국심 때문이었다고 본다. 달리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한가? 그녀는 이 모든 것을 혼자 했어야만 했다.

눈물 많은 필자는 신문 읽다가도 울고 드라마 보다가도 운다. 그래서 안다. “우는 것보다 울지 않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그리고 또 안다. “울지 않는 것보다 이미 고인 눈물을 눈에 담고 있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여성지도자는 울어선 안된다. 특히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정치세계의 공식이 그렇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침을 삼키면 목젖에서 비릿한 맛이 난다. 그게 피눈물이다. 그때면 심장이 아파온다.

필자는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소리 내어 울 수가 없었다. 그간의 불효가 너무도 죄스럽고 황망해서였다. 그래서 아버지의 죽음을 붕천이라 했나 보다.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 폭포수같이 쏟아낼 눈물이 안으로 역류해 저린 심장에 소금기를 뿌려댄다. 하물며 눈물을 참아내는 여성 정치지도자들의 속내를 어찌 짐작이나 하겠는가? 대한민국의 많은 여성 정치지도자들이 ‘눈물의 역류’ 속에 거친 행로를 이어가고 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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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지영(16회) | 작성시간 14.06.14 황산성 그분 참으로 정의로운 여성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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