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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여기부터는 혼자 가야 해` `슬퍼하지 마, 난 그냥 건너는 거야`

작성자예파 성백문|작성시간14.06.18|조회수75 목록 댓글 0
  • 2년간 한번도 죽음을 내비치지 않은 암환자

  • 김여환
    대구의료원 완화의료 센터장
    E-mail : dodoyun@hanmail.net
    대구의료원 평온관에서 암환자의 고통을 함께하는 호스피스, 완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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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6.1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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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한 살의 배광환씨는 K대학 병원에서 말기 대장암을 치료하고 있었다. 그 나이의 환자들이 흔히 그렇듯 그 역시 호스피스 입원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배광환씨는 암을 진단받고 치료하는 지난 2년 동안 ‘죽음’이라는 말을 한 번도 내비치지 않을 만큼 삶의 의지가 강했다. 그 누구도 이제는 말기라서 호스피스로 가야 한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배광환씨는 원인 불명의 파종성 혈관내 응고증(온몸의 모세혈관 내에 광범위하게 소혈전이 발생하는 상태)이라는 심각한 병에 걸렸다. 6개월은 남았다고 생각했던 그가 삼사일도 못 버틸 정도로 위독해졌다. 일이 이렇게 되자 배광한씨는 막무가내로 K대학 병원을 떠나 내가 근무하는 대구의료원 호스피스로 옮겨달라고 했다.

사실 그의 아들은 처음부터 그 제안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다. K대학 병원 주치의가 환자상태가 위급해서 전원하자마자 사망하실 것 같다고 했고, 이왕 병원을 옮길 것 같으면 지인(知人)이 하고 있는 병원으로 옮겨서 그쪽 장례식장까지 이용하면 좋을 것 같았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상담하러 온 아들의 말에 동의했다. 임종실을 사용하기 위해서 호스피스병동으로 오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생판 모르는 배광환씨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 드리고도 싶었다. 다시 한 번 여쭤보시고 그래도 굳이 오시겠다고 고집하시면 주저 말고 빨리 오시라고 했다. 배광환씨는 위험했던 주말을 무사히 넘기고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 전원 해왔다.

그는 언젠가 TV에 나왔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가 하도 인상에 남아 마지막은 이곳으로 오리라고 투병생활 내내 혼자서 염두에 두고 있었단다. 아들은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한 것은 처음이라고 깜작 놀랐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예상대로 입원 그 다음날 벌써 임종실로 옮겨야만 했다.
의식이 없는 배광환씨 옆에서 그의 부인이 가슴을 조아리면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다가선 나는 임종실에서 ‘혼자 가야 해’라는 얇은 동화책을 읽었다.

어느 날 강아지 한 마리가 눈을 감아요.
깊은 숲 속 조그만 화분에 꽃봉오리가 피어나요.
“누군가 임종실의 주인공이 되면 그 사람 인생의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검은 개는 손님 맞을 준비를 하지요.
작은 배를 만들고, 피리를 손질하고, 등불을 밝힙니다.
“죽음은 단 한사람을 위해 쪽배를 만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젠가 나도 임종실의 죽인공이 되어 동화책의 그림처럼 작은 쪽배를 타고 가야 할 때 나는 과연 이 배에 무엇을 싣고 갈까?/느림보 출판사, 조원희 글·그림
언젠가 나도 임종실의 죽인공이 되어 동화책의 그림처럼 작은 쪽배를 타고 가야 할 때 나는 과연 이 배에 무엇을 싣고 갈까?/느림보 출판사, 조원희 글·그림
강아지는 친구와 뛰놀던 공원을 혼자 걸어가요.
오늘은 기차도 혼자 탔어요.
“환자는 자신이 살아 온 인생을 떠올리며 걸어갑니다. 기차도 혼자 타고 가야 합니다.”

푸른 안개를 따라온 강아지가 검은 개를 만납니다.
어린 강아지, 떠돌이 강아지, 아픈 강아지, 할아버지 개
모두 푸른 안개를 따라왔지요.
“혼자서 따로 따로 죽음과 만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긴 인류역사와 비교해보면 1년 먼저 가는 것이나 30년 먼저 가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지요.” 

검은 개가 피리를 붑니다.
아름다운 피리 소리에 꽃들이 활짝 피어나요.
맑고 향기로운 영혼들
강아지는 검은 개를 따라갑니다.
“죽음이 피리를 불면 각자의 인생의 꽃이 향기를 뿜으며 활짝 피어납니다. 대통령으로 살았든지 노숙자로 살았든지 우리의 인생은 아름다운거지요.”

강가에 작은 배가 기다리고 있지요.
‘여기부터는 혼자 가야해.’
“이제까지는 혼자 가는 길 함께였어요. 하지만 임종실에서는 그 누구도 혼자 가야 합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따라 갈수도 없고 데려 갈수 없어요. 여기서부터는 혼자가야 합니다.” 

‘슬퍼하지 마. 난 그냥 강을 건너는 거야.’
“죽음은 말합니다. 슬퍼하지 마. 나는 그냥 강을 건너는 거야라고
남편의 얼굴을 보세요. 주름이 다 펴지셨고 고통이 없어 보이세요. 담담하게 혼자서 잘 가고 계시니까 너무 오래 슬퍼하지는 마세요.“

책을 다 읽자 뒤에서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배광환씨의 동생이었다.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어요” 라는 동생의 말에 부인은 “아이쿠 큰일 날 소리”라며 함께 울었다.
“그전 병원에서는 이제 죽어도 좋으니까 제발 적당한 약을 써서 죽여 달라고만 했는데 여기 와서는 그런 소리가 없었어요. 잠깐이었지만 참 고마웠어요. 그리고 동화책을 보니 어쩐지 가슴이 편안해지네요. 나의 죽음도 생각하게 돼요”라며 배광환씨 부인이 울컥해 있는 나를 도로 위로해줬다.

그의 인생에서 불과 4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순간만은 내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나도 그들의 등 뒤에 서서 편안한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지난 7년 동안 정신없이 ‘죽음’을 돌보면서 나는 여러가지 일로 지쳐 있었다. 자원봉사자의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서 총무과와 담판을 지어야 했고, 환자의 종교생활을 위해 성직자를 섭외하러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바람에 의사가 쓸데없는 일을 한다고 나쁜 소문에 휘말리기도 했다. 호스피스가 병원의 적자라고 매달 진료 실적을 보고 받았고 월급도 상당수 삭감됐다. 가족의 죽음이라는 극한상황 덕분에 술에 취한 보호자가 난동부리는 것은 예사였으며, 힘들다보니 간호사들도 자주 그만뒀다. 그러면서 나는 아름다웠던 호스피스의 초심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배광환씨의 임종실을 나오면서 스스로에게 다시 물었다.
언젠가 나도 임종실의 주인공이 되어 동화책의 그림처럼 작은 쪽배를 타고 가야 할 때 나는 과연 이 배에 무엇을 싣고 갈까? 역시 호스피스였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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