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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기생들 칼럼

[스크랩] 주인 잘 못 만난 가방 이야기-17년 사용했던 가방을 보내며

작성자桐谷 이방노|작성시간13.11.23|조회수116 목록 댓글 4

 

             내 나이 50이 다 되었을때 회사는 나이든 내가 거추장 스러웠는지 나를 강퇴 시켰다. 아니 강퇴 당했다.            

             그후 이 가방과 함께 온 세계를 17년 함께 다니고 나니 나도 이 업계에서 조금은 알아 주더라. 한 우물을 파면 된다.

             상처뿐인 이 가방 같이 나도 은퇴 할 때가 된것 같다.

 

 

가방, 너는 주인을 정말 잘 못 만난것 같다.

17년을 나와 같이 여행하며 내 짐들을 너의 가슴속에 안고 다닌 너를 오늘 보낼려니 무한한 감회에 젖어 드는구나.

5대양 6대주를 번잡스럽게 뛰어다닌 너의 주인 덕에 너도 한때는 세계 구경을 꽤나 한다며 신나게 따라 다녔지.

짐을 더 많이 넣을려고 너의 위에 올라타고 누르며 고문도 했었는데 넌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잘도 견뎌 주었다.

혹시나 짐이 많아 가방이 터질세라 걱정하여 또 별도의 밴드로 묶고 다니기도 했는데 너는 용케도 견뎌왔다.

 

1995년, 초가을에 너를 만났지. 그 당시만 해도 삼소나이트 같은 가방들은 국산화되지 않아 엄청 고가였는데

너는 한국산인데도 가격도 헐했고, 또 튼튼하여 언제나 나와 같이 비행기에 동승하여 다녔지.

한동안은 나는 너를 짐짝으로 부치지 않고 언제나 나와 함께 기내로 같이 데리고 들어와 널 선반위에 정좌시켰지.

그때만 해도 내가 젊어서 너를 끌고 다닐 힘도, 또 기내 선반위로 들어 오릴수 있는 힘이 있었을 때였다.

참 너와 함께했던 그때가 그립다.

비행기 기다리는 시간에 의자에 비스듬이 앉아 두발을 너의 꼭지에 얹어두고 있노라면 그게 세계에서 가장 편했던 자세였어.

아마 그때 읽었던 책들이 무슨 책인지는 기억에 없으나 그래도 편안한 자세로 책 꽤나 많이 읽었지.

 

 

 

 

 

어느 날이었던가, 인천에서 방콕 도착하여 카라치행 비행기로 갈아타는 시간이 2시간 30분이면 넉넉하다고 생각했는데

비행기 고장으로 인해 출발 시간이 늦어져서 방콕에서 카라치행 비행기 갈아타는 시간 20분 남겨두고 도착했을때는

정말 하늘이 노란색이었다.

시간이 넉넉한 보통때 같으면 너를 카트에 태워 카라치 가는 게이트로 천천히 면세점도 구경하며 여유스럽게 걸어갔는데

이날만은 카트에 태우지도 않고 너를 끌고 우사인 볼트 100m 단거리 달리듯이 달렸으니 난 그때 너가 내손에 매달려

끌려 오고 있는지 조차 잊고 무의식으로 달렸다.

그런데 게이트에 도착해 보니 카라치행 비행기가 1시간 늦게 출발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허망했던 사건은 정말 코메디야....

그때만 해도 나도 너도 젊었을때 였으니....

 

그래도 잊을수 없는 큰 사건은 너를 잃어버렸을때다.

카라치에서 밤 11시 55분 비행기를 타고 방콕에 내리면 아침 6시 30분이라  난 그때 방콕에서 낮시간에 손님을 만날 약속을 해 두었기에

너를 인천으로 보내고 난 방콕에 내려 볼일 보고 저녁 비행기로 다음날 인천 공항에 도착했는데 화물 벨트가 멈춰 설때 까지 너가 보이지 않는거야.

너와 함께 다닌지도 10년 가까이 되었을때였으니 내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는지 너는 알거야.

그래도 짐이 도착되지 않았다고 신고하여, 항공사에서 다음날 찾아서 대구에 있는 내 집으로 정중하게 모셔왔을때 내가 너를 끌어안고 싶었다.

넌 혹시나 역마살 낀 주인 떠나 다른 주인 한테로 가고 싶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그래 내옆을 떠나 보니 어땠었나? 내가 좋았지?

 

 

바퀴가 닳아서 만든 회사로 보내어 A/S를 받었는데 그래도 오래쓰니 바퀴의 고무가 날가 떨어져 나갔다.

스티카들, 긁힌 자국들...상처뿐인 몰골이다.

 

 

다니는 동안 체크인 할때 너의 얼굴이나 몸에 아무렇게나 덕지덕지 스티카를 부쳐대고, 화물 취급하는 사람들은 자기 가방 아니라고

아무렇게 마구 던지며 콘베어벨트로 옮길때는 넌 무척 마음이 아팠을거다. 그래도 넌 전혀 내색하지 않었지.

군데군데 찌그러지고, 다친 자국들을 볼때면 처음에는 마음이 안타까웠는데 세월이 흐르니 그것도 무관심해 지드라.

내가 힘있고 젊었을때는 너를 함부로 짐짝 취급하지 않고 내가 직접 너를 데리고 기내 까지 같이 다녔는데, 내가 힘이 모자라니

하는수 없이 너를 다른 가방과 함께 짐칸에 태우게 되고, 나도 다른 사람 같이 짐칸으로 보내는 너를 외면하게 되드라.

아마, 넌 나에게 크나큰 배신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이드니 인생사 다 그런거지 하며 얼굴에 철판깔고 순간 잊게 되드라.

 

그런데 나도 늙어가고, 너도 자꾸 나이가 들어가니 서서히 너의 몸도 늙어가는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지.

상처나고 찌그러진 너의 몸도 그렇커니와 잠금장치가 고장나고 부터는 나도 걱정이 되어 너의 몸통을 밴드로 묶고, 또 비닐테이프로

너를 칭칭 감고 다니니 너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내가 기술자라 그 고장난 잠금장치를 내 자식 다루듯이 고쳐서 전혀 지금 까지 아무런 사고없이 너와 함께 다녔지.

손잡이가 부러졌을때는 임기응변으로 비닐테이프로 감아 지금 까지 사용하고 있으나 큰 불편이 없었다.

그러나 칠순의 내가  너무 늙은 너를 데리고 다니기에는 걱정도 걱정이고, 내가 너무 힘이 들어 이제 너와 헤어질려고 한다.

아니 헤어져야겠다. 

 

나를 너무 야속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인생은 다 그런거니까. 너의 인생도, 내 인생도....

내가 20여년 강한 집념 갖고 사랑했던 직장에서 50 나이가 되니 물어보지도 않고 나가라고 강퇴 시키드라.

요즘 명퇴가 40대라 한다하니 넌 그래도 정상적인 정년을 맞이한거다.

너를 아끼는 마음에 정말 고이 보내 드리마.

그동안 내 옆에서 내 짐을 안아주고, 품고 다니고, 냄새나는 내 발을 얹어도 아무런 불평없이 견뎌주었던 너,

너를 사랑했다.

너를 사랑한다.

 

 

 

찍히고, 할퀴고, 덕지덕지 발린 스티가들...그 몰골이 가엽다.

짐꾼들이 던져 손잡이가 부러졌을때 비닐테이프로 감고 다닌 흔적...

 

 

가방아!  잘 가거라.

다음 세상에 태어나거던 나같은 주인은 만나지 말아라.

너를 보내며 오늘 내 마음이 엄청 울적하다.

 

오늘 새로운 너를 닮지않은 새로운 가방을 하나 얻었다.

앞으로 이 친구와 함께 다닐거다.

월요일(11/25), 새로온 가방을 들고 파키스탄, 인도로 출장간다.

섭섭히 생각하지 말고 새로온 친구의 장도를 빌어주라.

 

그동안 수고했다.

잘 가거라.

 

 

 

                                                    새 가방이다.

                                                    아들넘이 사용하던 삼소나이트 가방인데 몇번 들고 다니고 나니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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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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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秋思 박웅근 | 작성시간 13.11.23 여행가방과의 인연(?), 아름다운 한편의 수필이
    방로형의 맑은 가슴속을 비춰주네요.
    한 때 일년에 10 만 마일 이상 날아다녀야 했던 시절
    동반해주던 가방이 생각 닙니다.
    중요한 계약서류가 담긴 가방이 시카고 공항에 도착하니 없고
    이틀 후에 마이애미에서 찾았다는 연락이 왔는데 덕분에 큰 계약을 잃어버릴뻔 했던 사건....
    가방은 우리의 애끓는 심정을 알기라도 하듯 표정을 짓습디다. 공감하지요?
  • 작성자桐谷 이방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11.23 웅근형,
    내일 저녁에 파키스탄, 인도로 출장 갑니다.
    그 동안 함께했던 가방을 버리고 새 가방에 짐을 쌀려니 마음이 좀 아릿해요.
    요즘 우째 지네시오?
    함 보기는 봐야겠는데 ...요즘 같으면 짬이 없어요.
    돌아와 소식이나 봅시다.
  • 작성자황해신 | 작성시간 13.11.25 니도 어쩔 수 없이 전형적인 한국형 아버지로다.
    지는 '상처' 투성이 가방을 갖고 아니면서
    아들은 말끔한 가방을 쓰고
    그것도 모자라
    아들은 멀쩡한 쓰던 가방을 애비한테 물려주고
    지는 새가방을 사서 쓴다는 건데.

    나도 똑같은 짓을 하지만
    내가 왜 이러지 하는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 작성자알밤 (慰智) | 작성시간 13.11.25 여행자에게는 [가방]이 자기 가방이
    제일 애착이 가고
    특히 여지분들은 브랜드 있는 [가방]을 얼마나 선호 하는지....
    나의 아파트 창고에는 빈 여행가방을 버리지 못하고 잔뜩 쌓아 놓고 있읍니다.
    언젠가 여행 용도대로 쓰이지 않을까하여
    차마 버리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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