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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이야기들

남자는 항상 부족하고 불안한 존재더라./ 김지미

작성자박이환|작성시간10.12.29|조회수509 목록 댓글 0

     

    나이 많은 사람과도 어린 남자랑도  살아보니,

           남자는 항상 부족하고 불안한 존재더라.




 
이 글은 한국 영화의 전성기에 모든 이의 숭앙을 받으며

정점에 서 있던 여배우 김지미의 인터뷰
.
숱한 스캔들과  연애사건으로 세상을 뒤흔들었던
.
 남성 편력 부분만을

그대로 잘라 온 것임을 밝힌다
.
.
'김지미는 겉만 여자이지 속은 남자로 통한다'는 옛 기사가 있던데,
실제로 김지미씨는 해서는 안 될 말은 아예 하지 않고,
말을 하면 솔직하게 했습니다.
.
말을 아끼는 부분은 주로 남의 얘기였습니다.
자기 얘길 할 땐, 어떤 배우와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솔직해 보였습니다..
.
.
미국 생활은 어떤가.

" 8 남매 형제자매중 4명이 미국에 살고
 그리고 딸 둘(홍경임, 최영숙)과 손주들, 가족들에 둘러싸여 산다.
.
거의 평생 처음으로 가족이 이런 거다 느낀다.
 그리고 세상이 나를 몰라주는 고마움.
.
내 것 갖고, 내가 살면서도 눈치 보는 일이 너무 많았다.
신경 안 쓰고 사니, 이게 아주 좋다.".
.






(어떤 이들에게 김지미  ( 70·본명 김명자) 는
남성을 파멸시키는 '팜므파탈' 의 상징이었고, 

어떤 이들에겐 관습을 훌훌 벗어던진,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였다.)
 
―1957년 덕성여고 재학 중,  
 명동에서  김기영 감독에게 '길거리 캐스팅' 되어 
곧바로
영화 '황혼 열차' 의 주연으로 데뷔했다.

이듬 해  '별아 내 가슴에' 로 스타 반열에 오르고, 
영화를 연출했던 홍성기 (1928~2001) 감독과
결혼했다.
18 세에 결혼이라…. 너무 이른 거 아니었나


(김지미의 아버지는 서울서 인쇄기계공장 및
인쇄소를 운영했고,
 
8 남매 중엔 서울대 문리대,   서울음대 등
명문고·명문대 출신이 많다).
 

"홍 감독이 나보다 12 살 많은 늙은 총각이긴 했지만, 
당시 유명한 감독이었다. 
사실 영화를 찍는 건지, 

사실인지도 모를 정도로 어수선하고 정신없이
몰아치는 와중에 결혼식을 치렀다."
 






 
― 전성기 감독과 신인 여배우의 만남.
마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가 주연한 영화 
'스타 탄생' 이  생각난다.
영화에서 아내는 가수로 승승장구하지만, 
스타  남편은 슬럼프에 빠져 파경을 맞는다.






 
 
"결혼 후, 
국제극장에 속한 당대 최고 영화사에 
최무룡씨와  내가 전속배우가 됐다.

일주일에 한두 번 집에 들어갈까 말까 하는 상황이었다.
그 나이에 가정이나 남편이 중요하게 보였겠나.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 보니,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 채 이혼이 되더라.
 

( 두 사람은 결혼 4년 만인, 
1962년 9월 4일 이혼을 발표했다.
홍 감독은
"하룻벌이를 하는 지게꾼의 신세가 부럽다"고 했고, 

김지미는 "어차피 맞을 소나기" 라고 했다.
당시 편당 30 만원의 출연료를 받던 김지미는 
집 두 채 ( 600만원) 값을 남편 영화 제작비용으로 댔다.
두 사람이 이혼할 무렵, 
영화배우 최무룡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  최무룡씨와는 어떻게 간통 사건으로 얽히게 됐나.

" 당시 최무룡씨와 거의 온종일 붙어 다니며 영화를 찍었다.
현장에 앉아 
서로 자기 속상한 얘기 같은 거 털어놓게 되지 않나.

그러다 정이 들었는데, 
  이게 '빵'하고 터져버리더라.
수습해야 하니까,   안 살 수가 없게 된 거다."




















 
( 62년 9월 말,  
 최씨의 부인인 영화배우 강효실씨는

"개복 수술로 아이 (영화배우 최민수)를 낳은 지 열흘 만에 
남편과 김지미의 간통 사실을 확인했다"고
폭로하고,   다음 달 두 사람을 간통죄로 고소했다.
.





.
노능걸,  강효실,   최무룡







두 배우는 구속됐고,   
김지미씨는 자신의 집을 팔아
위자료  230 만원,   채무 변제  78 만원 등 약 300 만원을
강씨 측에 주기로 합의하고,   11월 7일 석방됐다.)













 
 
―  위자료를 왜 최무룡이 아닌  김지미가 물어줬나.

"  내 행동이 범법이라면 달게 감옥에 가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가족들이 난리가 났다.
게다가 나를 캐스팅한 영화가 30 편 정도에 달했던 때였다.
내가 안 나가면 영화계가 풍비박산 나게 생겼었다.
최무룡씨는 돈이 없었다."
 
 
― 사건 당시,  
 복혜숙  영화 배우 협회장은 검찰 심문에서
'검찰 수사와는 별개로 협회 측에서 두 사람의 영화출연을
정지할 방침' 이라고 밝혔고, 
실제로 협회가 1년 출연 정지를 결정했다. 기분이 어땠나.
 
" 처음 듣는 얘기다.

그때는 내가 영화 출연 안 하면 영화계가 안 돌아갔는데….

난 아무 통보를 받은 적이 없다.
아마 사회 분위기가 엄했으니까 그렇게 얘기했을 거다."
 
 
―  간통 사건에도 불구, 
여전히 최고 배우였고, 
  70년에는 일일 세관원으로

휴대품을 검사하는 등' 국책 이벤트'에도 동원됐다.
그 시대 어떻게 가능했나.
 
"  사람들이 참 희한한 것 같다. 
나를 욕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또 한 편에서는 
'내가 못한 거 실컷 해서 통쾌하다'
'당당하게 잘 했다'는 얘기를 
편지로,   전화로 전해왔다."
 

( 두 사람의 7 년 결혼 생활은 69 년 6월 10일 끝났다.
'사랑에 파탄이 가서가 아니라
지미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혼한다' 는
 최씨의 말이 화제가 됐다.

최씨는 영화 제작으로 약  3000 만원을 빚을 지고,   부도를 냈다.




김지미는 이후 76 년부터  82 년까지,  
 


7 살 연하의 가수 나훈아와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다.)







―  나훈아 (63) 씨 한테도 돈이 많이 들었나.

"그렇지 않았다."
 
 
―  나훈아 씨와는 어떻게 만났나.

" 나훈아가 노래를 잘해 
우리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와서

 노래를 몇번 해줬다.
형제지간처럼 지내다 
군대 다녀오고 일이 없어 더 친해졌다.






오빠가 내 자금으로 신탄진에서 운영하는 공장에
자주 내려갔는데,  
 그 사람이 여러 번 따라왔다.
.
남녀 관계니까 (육체적) 문제가 좀 있긴 있었지.
그러니 아니라고 할 수가 있나.
                         그래서 또 공개하게 됐다."
.


 
.

― 유명인들은 발뺌 잘하지 않나.
 
"  난 거짓말 안 하려고 한다.
뭔 사고가 난 게 사실인데 그걸 어떻게 아니라고 하나.
내가 이러니,   내 스캔들은 세상이 다 안다.
                               
 더는 뭣도 없다."
.
하지만 결별 후에도 
김지미는 사석에서 나훈아를 한번도 나쁘게 얘기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김지미는  "나훈아만큼 남자다운 사람도 없었다. 
나이 차이가 꽤 났지만 남편으로서 의지할만한 남자였다"고 술회했다.
 

당시 나훈아는 6년간 같이 살면서 김지미의 재산도 함께 관리했지만
 이혼 당시 재산 분할에 대한 아무런 요구 없이 
맨 몸으로 나왔다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
 이유를 묻는 지인들에게 "남자는 돈이 없어도 살지만 
여자가 돈이 없으면 살기 힘들다"고 대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
 그를 접했던 후배들이 한결같이
 "그만큼 카리스마로 상대를 압도하는 선배가 없었다"고 말한 데서도 
'남자다움'은  쉽게 느낄 수 있다.
 
 ― 2년 전,    
나훈아씨가 세간의 흉한 소문을 불식시키려 기자 회견을 열고는
 지퍼를 내리며
'바지를 내려 5분간 보여주겠다' 하며 흥분하는 걸 보니,   
그 양반 성격도 매우 격하더라.
두 사람이 살면서도 굉장했겠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
 격해질 일이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   자기 얘길 하지 왜 남의 얘길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
 
― 91년 결혼한 이종구 (78) 박사랑은 좀 오래 사시지.
"나는 마누라가 필요하지 남편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 박사가 어머니 치료해준 의사다.
어머니가 의사 사위 얻으면 천년만년 사실 줄 알았는지, 
둘이 합치라고 그렇게 그렇게 몸살을 내시더라.

외국 생활 많이 한 한국 남자는 한국식도, 
미국식도 아니어서 맞추며 살기 어렵더라."
 





.
.
.
.
.
 
― 남편들한테 사업 자금도,   돈도 정말 많이 쏟아 부었다.
간통죄로 구속되며 험한 꼴도 당했다.
남자가 그렇게 소중한 존재인가.
 

"그런 생각은 안 들지.
솔직히 말해서 (그들이) 나보다 잘난 게 없었으니까.
나는 과감하고,   대담하고,   용기 있고, 
옳다 믿으면 양보를 절대 안 하는 성격이다.
그런데 살아보니 그렇게 대단한 남자는 없더라.
.

나이 많은 사람과도,   어린 남자랑도 살아보니, 
.
남자는 항상 부족하고 불안한 존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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