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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대한 중국인들의 못된 버릇은 태극 마크(?) 때문이다

작성자睦園.박이환(고10회)|작성시간22.09.19|조회수49 목록 댓글 0
한국에 대한 중국인들의 못된 버릇은 태극 마크(?) 때문이다
여행 중 만난 사람들 92 – 대화를 통해 본 세계 속 영어의 실체 8
bestkorea(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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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는 세계를 보는 창인 동시에 대화의 창구이다.
  
  *중국 여행 이야기:
  
  (*여행 중 확인한 영어의 실체’란 주제로 각국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간단히 소개하고자 했던 것이 길어졌습니다. 중국 여행이 많았던 만큼 만났던 사람도 많았고 대화 또한 많았는데, 대부분 韓中간 역사관과 국가관이 깊게 개입된 얘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암튼, 이에 관한 얘기는 아직 많지만, 오늘로 중국 얘긴 일단 마치고 다른 나라로 가려고 합니다.)
  
  7) 나는 윈난성(雲南省)의 리장(丽江)을 두 번 갔다(2002, 2003). 한번은 중국의 모소족(摩梭族=모계족)이 사는 곳을 가기 위한 경유지로(리장에서 버스로 200km, 거의 10시간 소요, 험한 산지의 협곡도로임. <이곳은 인도의 다질링과 히말라야 협곡을 거쳐 네팔로 들어갈 때를 연상시킴.> 모소족 마을에서 2박 3일 지내며 체험했던 독특한 경험 중 하나는 남녀 혼탕으로 개방된 노천탕에서 현지 여인들과 함께 목욕한 것. 그 외, 청정淸淨호수인 루구호(胡)에서 여인들이 젓는 배를 탄 것, 돼지를 통째 훈제燻製해 천장에 걸어놓고 조금씩 쓸어 먹는 것. 여인들만 사는 집에서 방을 빌려 숙소로 이용한 것…등).
  
  두 번째 리장에 다시 간 건, 첫 번째 갔을 때 못 본 것이 너무 많아서였다. 이곳은 나씨족(納西族) 이외에도 라후족, 푸미족, 바이족, 이족 등, 마치 중국의 55개나 되는 소수민족이 이곳에 다 모여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 그래서 볼 것 또한 많았다. 특히 저녁에 펼치는 다채로운 전통복장의 소수민족 공연 등이 그랬다. 낮에도 공연이 있었는데, 특히 백발(白髮)이 성성(星星)한 노인들이 한 팀을 이뤄 그들 특유의 옛 현악기, 관악기 등 목관악기(木管樂器)를 총동원해 오묘한 음을 내며 연주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이는 세계 여행 중 서구와 남미에서도 더러 볼 수 있는 장면인데 왜 한국엔 전혀 없는지 모르겠다.)
  
  문제는 이 공연 후에 일어났다. 내가 공연이 끝난 뒤 내 주변에 있던 50대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영어가 통했다. 그는 중국인이었다. 물론 항상 그러하듯 십상팔구(十常八九) 내가 먼저 내 소개를 했다. 그런데 이 양반이 내가 서울에서 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내 말을 끊고 자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작년에 서울에 갔었다. 그런데 인천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서울 거리와 건물에 걸려있는 태극기를 보고 이곳이 중국인가 서울인가 혼동했다. 왜냐면 태극기 모양이 내가 어릴 적부터 책에서도 그림에서도 교과서에도 사원에서도 너무 많이 보았던 것이기 때문이다. 내 말이 의심스러우면 책을 보든지 아니면 사원에 직접 가보면 된다. 여기서 걸어가도 얼마 되지 않으니 꼭 가서 보는 것이 좋을 것같다.” 그는 내게 냉소적(冷笑的)으로 이 말을 남기고 나를, 아니 한국인을 마치 예속국(隷屬國) 사람 대하듯 하고 사라졌다.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매우 언짢았다.
  
  *난 이런 상황에 놓일 때마다 저들이 한국인을 대하는 안중무인(眼中無人) 행태(行態)가 어디서 비롯된 걸까를 생각하곤 했다. 혹시 먼 옛날부터 우리를 조공국(朝貢國)이니, 번국(藩國)이니, 동이족(東夷族)이니 하며 노예 부리듯 얕잡아본 못된 인습(因習)내지 습성(習性)에서 야기(惹起)된 건 아닐까 등. 사실, 일본을 포함 세계 수많은 사람을 대해봤지만, 중국인처럼 한국인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멸시하는 언동을 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가령, 항상 그러하듯이, 내가 먼저 내 국적을 밝히고 대화를 시도하면 중국인을 빼곤 최소한의 예의로 인사를 받아주고 얘길 나눴다. 반면에 중국인은 내가 한국인임을 밝힌 순간 십중팔구(十中八九) 거만하고 무뢰한 태도와 눈빛을 보내는 게 다였다.
  
  암튼, 그가 말한 사원은 도교사원(道敎寺院)이었고, 물론 나는 그곳을 찾아갔다. 그의 말이 맞았다. 사원 본당에 제법 큰 태극 문양의 기(旗)가 걸려있었다(난 그걸 보는 순간 태극기, 곧 한국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또 다른 곳을 보니 팔괘(八卦)가 그려진 문양의 크고 작은 물건들도 있었다. 그 후로 난 사천성(四川省) 청두(成都)의 사원에 가서 대형 태극 문양과 팔괘가 사원 건물에도 바닥에도 그려져 있거나 조각돼 있는 것도 보았다. 난 그때 중국에서 중국인을 고용해 사업을 하는 지인을 만나 그의 직원에게 직접 물어봤다. 한국 태극기와 각종 태극 문양을 보면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오르느냐고. 그의 답은 예상대로였다. 태극과 팔괘는 2500년 전부터 내려온 중국 민족 종교의 상징이라고. 다른 중국인들에게 같은 질문을 해도 대동소이(大同小異)했다.
  
  그 이후 나는 왜 중국인(漢族)들이, 늙으나 젊으나 한국을 마치 지금도 중국의 종속국(從屬國)으로 생각하고 실제로 주인처럼 거만(倨慢)하게 말하고 행동했는지 알게 됐다. 마침내 오랫동안 풀지 못한 숙제를 하나 푼 기분이었다. 약간의 디자인을 달리할 뿐 부채, 옷, 모자, 식당, 관공서, 광화문(이승만)광장 등 한국에는 어딜 가나 그들 눈에 익숙한 태극 마크가 있었다. 이런 현상은 그들이 마치 자기 나라에 와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만큼 친근감과 익숙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남의 나라에 왔다는 생소함이나 긴장감 없는 상태에서 자국의 우월감과 함께 역사적 지식을 조금 보태면 한국은 틀림없는 자기 나라 중국의 속국이었음을 확신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을 마치 자기 집 안방처럼 휘젓고 다니며, 식당 등에서 한국인 종업원을 예사로 대하고, 폭행도 서슴지 않는 행동을 포함, 다들 기억하겠지만, 2008 베이징올림픽 성화봉송 중 중국인들은 떼를 지어 서울시청 앞에서 우리 시민과 경찰에게 주먹을 휘두른 사태(事態)도 있었다. 이뿐만 아니다. 2017.12.15. 문통의 중국 순방 행사 때, 공식 수행단으로 간 한국 기자들이 중국 경호원 10여 명으로부터 주먹질·발길질로 맞아 넘어진 뒤에도 계속 발로 얼굴을 짓밟혀 안면 골절상을 입었다. 청와대 행정관도 뒷덜미를 잡혀 내팽개쳐졌다. 수십 명의 한국 측 경호원도 그 현장에 있었지만 무용지물(無用之物)(문통은 당시 뭘 했는지). 당시 이 뉴스는 대서특필로 전 세계로 타전됐다. 하지만, 중국 측으로부터 그 어떤 사과를 받았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만약 이런 사태가 미국이나 일본에서 일어났다면? 과연, 중국에 국치(國恥)에 버금가는 수모(受侮)와 굴욕(國辱)을 당하고도 찍소리 못하고 유야무야(有耶無耶) 그냥 넘어갔듯이, 미·일에도 그런 비열하고 비굴한 모습을 보였을까? 마침 오늘 신문에 의하면, 어제 9.16. 윤석열 대통령과 김진표 국회의장을 방문한 중국 서열 3위라는 리잔수 중국 상무위원장이란 자가 “미국이 중국을 협박해 중국의 전략 안보 이익을 훼손하는 불순한 의도”라는 말로 한국의 사드 배치는 안 된다는 노골적인 한국의 주권 침해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상하리만큼, 이미 저들의 상습화(常習化)된 자국 우월주의와 난폭성은 유난히 한국에서만 기승(氣勝)을 부린다. 한국이 만만한 것이다. 감히 베트남은 말할 것도 없지만 저들이 다른 나라에서도 한국에서처럼 못된 주인 행세하며 폭행을 자행했다는 말을 적어도 난 들어 본 적이 없다.
  
  불행하지만 이 같은 치욕적 현상은 그들이 2500년 동안 봐 왔다는 민족신앙, 도교의 상징인 태극 문양이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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