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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자가 아닌 北 주민을 향한 對北정책 세워야

작성자睦園.박이환(고10회)|작성시간22.10.09|조회수65 목록 댓글 0
통치자가 아닌 北 주민을 향한 對北정책 세워야
30년차 탈북자의 시각…한반도 통일은 왜 되지 않을까/개방하면 죽는다는 통치자에게 뒷돈까지 대주며 매달렸으니 될 턱이 없다.
이민복(대북 풍선단장)     

  모스크바 남한 대사관에 들어선 지 꼭 30년 되었다(1992년). 중국으로 탈북, 체포 북송되었지만 기적적으로 재탈북, 중국에서 러시아로 흐르는 강을 따라 사흘간 강행군, 결과적으로 세 개 나라와 대륙을 횡단, 세 개 나라 감옥을 거친 사선의 끝이었다.
  
  하지만 철석같이 믿었던 남조선 대사관은 쌀쌀하기 그지 없었다. 탈 동독인을 무조건 받아들여 통일을 이룬 서독과는 정반대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도 북한 통치자에게만 관심을 두고 있었다.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에 몰두한 것이 그 증거이다. 북핵을 비롯한 모든 대북 문제를 북 통치자와 해결한다는 것이 30년 전부터 오늘에 이른 것이다.
  
  모스크바 남조선 대사관 안에는 벌목공 세 명이 있었는데 가차없이 내쫓는다. 그 중 한 명이 나가면 죽는다는 절망 끝에 칼로 자해를 하려 한다. 그러자 칼을 차버리며 안 나가면 경찰을 부르겠다며 떠밀어 내쫓는다. 온갖 꿀 발린 월남 환대 소리의 대북 삐라는 말짱 거짓말이었다.
  
  삭막한 세상 속에 그래도 탈북자를 보호했던 선교사의 소리가 이제야 들린다. 세상에 믿을 건 하나님밖에 없다고 역설하던 설교였다. 남한 정부는 탈북자를 안간힘을 다해 받으려 하지 않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그 입장을 1994년 4월 7일자 신문에 김영삼 대통령이 밝혔다. 북한 당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탈북자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심히 모순되어 북한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정보가치가 있는 탈북자는 암암리에 적극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문민을 주창하면서 문민에 해당하는 다수의 탈북자는 받지 않는 것이다. 이런 모순 덩어리와 망명 현지에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언론의 자유, 시민사회가 있는 세상이어서 참 다행이었다.
  
  월간조선 조갑제 편집장의 임무를 받은 황성준 레닌그라드 전임강사와 첫 인터뷰를 하면서(1994년) 암흑 속에 희망을 찾았다. 귀순자란 말이 군사적 용어이고 또 <귀신>같은 어미로 들려 탈북자로 첫 명기하자고 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인터뷰는 특종으로 터져 난리가 났다. 국내외 언론과 국회, 시민단체 인사들이 눈코 뜰 새 없이 찾아왔다. 당시 황석호 기자의 MBC 시사매거진 2580에 위험을 감수하고 출연하였고,
  국회외교통일위 강신조 의원, 경실련 사무총장 서경석 목사 등을 모스크바 현지에서 만났다. 또 미국 월스트리트 로젯트 여기자와 인터뷰 과정에 유엔난민 고등 판무국(UNHCR)을 알게 되어 첫 등록자로 되었다.
  
  한편 교회에 은거하고 있는 탈북자들을 규합하여 망명협회도 결성하였다. 이런 움직임과 UN까지 끌고 가 문제를 야기한다고 남한공관 안기부 책임자는 이민복만은 절대 받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 방법이 가장 좋다는 상부 지침이 내려지자 이제는 어서 오라고 모집하는 작태를 보며 그만큼 철학과 전략이 없어 보였다.
  
  드디어 UNHCR의 절차로 1995년 2월18일 남한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탈북자에 대한 태도는 여전하였다. 꽃다발 들고 환영한다는 뒷면에서는 조사란 명목으로 폭언, 폭행이 80%로 보고되었다. 정착금은 급락하여 1500만 원, 여권 무발급, 언론결사의 자유조차 없었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최초의 자율적인 탈북인 단체인 <자유북한인협회>를 결성하고(1998년12월13일) 시민단체와 함께 나설 수밖에 없었다. 물론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정보기관과의 싸움이어서 조직간부 대부분이 구금되었지만 기적은 일어났다. 폭언폭행 중단, 조사 위주가 아닌 정착 위주의 하나원 체계가 도입되었고(1999년) 여권발급, 언론결사의 자유가 보장, 정착금도 거의 3배로 증가되었다.
  
  한편 헐벗고 굶주린다고 귀가 닳도록 듣던 남조선에 실제 와보니 북한과 정반대였다. 말 그대로 지옥과 천국 차이이다. 하늘같이 높은 국력과 생활수준으로 얼마든지 통일하고도 남겠다.
  
  하지만 왜 통일이 안될까. 최근에 온 탈북 동료는 북한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다. 굶어 죽어도 저렇게 뻗치는 것 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직접 30년 지내 본 바로는 남한이 무너지지 않게 하였다는 것이다. 뒷돈까지 주며 진행한 615 첫 정상회담이 그 근거이다. 서서히 무너지게 한다는 연착륙 정책이지만 말만 좋지 북한이 무너지는 것을 반대하는 꼴이 됐고 그 결과 북핵만 완성시켜 주었다.
  
  북한 붕괴를 싫어하는 대표적 근거가 공존공영을 보수정권까지 지금도 부르짖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이미 망해버린 공산시스템의 북한과 공존공영한다는 것은 물과 기름이 섞인다는 눈뜨고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이것이 30여 년 오늘까지 지속된 비결은 무엇일까. 그 비결은 통일비용 세뇌이다. 쉽게 말해 저 거지떼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세뇌에 책상머리 학자, 감상적인 교계 인사들이 지대한 역활을 감당했다. 결과 남한사회에서 통일을 본능적으로 기피하게 만들었다.
  
  개인주의 사회에서 통일도 개인에게 이익을 주어야 한다. 아무리 대의가 있다고 해도 손해를 준다니 누가 속으로 좋아하겠는가. 통일 찬성 70%이지만 통일비용 내라면 30%로 극감한 여론조사가 증명한다. 통일비용의 부정적 근거를 그럴 듯하게 독일통일로 삼기에 국민들은 세뇌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독일식 통일비용은 책상머리 상상일 뿐이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간단히 설명드린다.
  
  독일은 독일이다. 1,2차 세계대전 전범국으로서 누구도 통일을 반대한다. 이들에게 돈을 먹여야 하는 통일비용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 비용이 아무리 크다 해도 전쟁 비용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독일은 자기들 국내외 사정에서 통일이란 기적을 이루었다.
  
  한국은 어떤가. 독일과 정반대의 피해국으로서 누구도 통일을 대놓고 반대하지 못한다. 누구에게도 돈을 들이며 사정할 필요가 없다. 북한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공짜는 없다. 그러기에 통일비용이 아니라 투자이다. 북한에 투자하면 그 이익을 남북이 나누며 공존공영하다 통일하면 된다. 북한 사람에게 일 시키고 그 값만 주어도 북한 월급에 비하면 하늘같이 높은 부자 월급이다. 그러면 되는데 왜 공짜로 먹여 살린다고 선전하고 또 이에 겁내나. 정 공짜로 준다면 처리 곤란 잉여품만 주어도 만세를 부를 것이다.
  
  남북 교류는 그 자체가 통일 시작이다. 그리고 남북한의 대출로이다. 한강의 기적 이상의 효과가 날 것이다. 그런데 왜 통일비용으로 남한 국민이 손해난단 말인가. 그러기에 저는 한국에 들어선 해부터 통일 비용이 아니라 통일 투자라고 칼럼을 썼다(한국일보).
  
  이렇게 간단히 인식되는 통일 투자의 남북교류가 왜 안될까. 여기에 방점이 있는 것이다. 이 방점을 국민에게 설득해야 진정한 대북정책이 될 것이다. 남한은 우방 미일보다 중국, 베트남과 무역 교류가 더 높다. 공산정권이지만 이들에게 <통일비용>이 아니라 투자를 한다. 이게 가능한 것은 개혁 개방된 공산정권이기 때문이다. 바로 북한도 개혁 개방된 중국, 베트남처럼 되어야 한다.
  
  그런데 왜 북한은 개혁 개방을 못하는 유일 공산국가일까. 오류가 없다는 신정국가이기 때문이다. 이 신정은 새빨간 거짓말로 만들었기에 죽어도 개방을 못하는 것이다. 역설로 죽어야 개방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다른 공산정권과 다른 특징이고 본질인 것이다. 이 특징을 알았으니 이에 상응한 전략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개방을 시켜야 한다. 그런데 지금껏 누구와 상대를 하였나. 개방하면 죽는다는 통치자에게 매달렸으니 될 턱이 없다. 제 발로 찾아온 탈북자를 공관에서 내쫓고 최근년에는 판문점으로 북송시키는 만행까지 하고, 대북전단 금지법 제정, 대북 확성기를 중단해 봤자 삶은 소대가리, 특등 머저리 소리나 들었지 그 결과가 무엇인가. 상식적인 교류는 고사하고 북핵 완성이란 결과뿐이 아니란 말인가.
  
  이제 남은 대안은 북한 주민을 향해야 함이 뻔하지 않은가. 이것을 늦게나마 인정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면 전쟁하자는 것이냐는 선동도 설득해야 한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대북정책이기 때문이다. 폐쇄 속 신정의 노예 북한 주민을 향한 대북정책과 전략을 세우고
  동독 주민을 향한 서독처럼 시종일관 꾸준히 행해야 한다. 누구도 예상 못한 전범국 독일도 통일되었는데 왜 한반도 통일이 안된단 말인가.
[ 2022-10-08, 04: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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