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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문재인의 아버지는 이승만, 박정희를 반대했을까?

작성자睦園.박이환(고10회)|작성시간23.01.06|조회수64 목록 댓글 0
왜 문재인의 아버지는 이승만, 박정희를 반대했을까?
趙甲濟     


문재인의 아버지는 북한노동당 정권에 복무한 관료였다. 흥남시 농업계장과 과장을 지냈다고 한다. 북한정권의 엘리트였던 이가 미군 철수선을 타고 한국에 왔으면 미국에 감사하고 자유를 누리면서 성공적 삶을 이어가야 할 터인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 자본주의 체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경우이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문재인은 어떤 교육을 받았을까? 그의 회고록이나 대담록에 편린(片鱗)이 드러나 있다.
  
   “말이 없으셨던 아버진데, 세상이나 시국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아주 어릴 때 한일회담에 대해 반대하시던 말씀, 그 이후에 자유당 독재나 박정희 시절 독재와 민정이양 약속 위반에 대한 비판들, 그런 말씀들이었어요.” <대한민국이 묻는다>
   -그런데 아버지가 비판해야 할 첫째 대상은 김일성일 것 같은데 그런 비판은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한일회담 반대는 한미일 동맹의 정상적인 작동을 반대하는 것으로 본질이 반미적(反美的)이다.
  
   “이웃집에 대학생이 있었는데, 한일회담 때 데모도 하고 그랬던 형이었어요. 그 형이 한 번씩 제 아버지를 찾아와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가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형한테 왜 우리가 한일회담을 반대해야 하는지, 주욱 설명해주기도 했죠. 박정희 정부의 경제정책이 왜 잘못됐는지를 말해주기도 하고요.” <대한민국이 묻는다>
   -아버지는 대학생에게 완전히 틀린 정보를 심어준 셈이다. 한일국교 정상화도, 경제개발도 성공했는데 학생에게 이를 반대하라고 선동한 셈이다. 김일성 세상을 경험한 사람은 거의가 박정희 근대화를 지지했는데 그는 참 특이하다.
  
   “(아버지가) …드물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면 사회의식이 깊은 분이었다. 한일회담 때 이웃 대학생에게 왜 한일회담에 반대해야 하는지 설명해주는 걸 들은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는 농촌을 살리는 중농(重農)주의적 성장을 추구해야 하는데, 박정희 정권이 거꾸로 저곡가로 농촌을 죽이는 정책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게 어린 내게 강하게 와 닿았다. 장준하 선생이 발행하던 ‘사상계’ 잡지를 때대로 읽기도 하셨는데, 그 시절 주변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아버지가 나의 사회의식, 비판의식에 영향을 미쳤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문재인의 운명>
  
   박정희가 수출입국을 위한 공업화 정책을 펴지 않고 중농정책을 추진했다면 오늘의 번영이 있었을까? 박정희는 농촌 출신으로서 한시도 농민들의 고통을 잊은 적이 없다. 그리하여 농촌의 가난을 없앤 지도자로 역사에 영원이 남을 인물인데, 북한에서 농업과장을 했다는 사람이 그런 위인을, 농촌 죽이는 정치인으로 가르쳤으니 이때부터 문재인 전 대통령은 세상을 왜곡해서 보게 된 것이 아닐까? 잘 사는 농민들이 이 대목을 읽으면 실소(失笑)할 것이다. 저곡가 정책은 이승만 정부 시절부터 유지되었는데 농촌을 죽이려 한 것이 아니라 물가상승과 노동자의 임금인상 요인을 줄여 수출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농민 소득 향상을 통해 저곡가로 손해 본 것의 몇 배를 보상, 가난의 문제를 영구적으로 해결했다. 이런 사정을 모르고 저곡가 정책에만 집착, 박정희를 매도했으니 아들에게까지 그런 편협성이 전해진 것이 아닐까?
  
  한국은 박정희(朴正熙) 소장이 군사혁명을 일으켜 본격적인 산업화에 착수하기 전엔 국민들의 과반수가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국가였다. 농업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는 ha(헥트아르: 100아르. 1아르는 100평방미터)당 쌀 수확량이다. 대한제국 말기에서 일제(日帝)시대가 끝나는 시기까지 한국은 ha 당 쌀 수확량이 1.14t에서 1.63t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이 시기 일본은 면적당 쌀수확량이 늘 한국의 두 배 가량이었다.
  
  한국의 쌀수확량이 급증(急增)한 것은 박정희 정부가 적극적으로 농촌 진흥 정책을 쓴 1960년대 중반부터이다. 1966~1970년 평균 ha 당 쌀수확량은 3.14t으로 일제시대의 두배로 늘었다. 박정희 대통령 말기에 해당하는 1975~1979년 평균 ha 당 쌀수확량은 4.46t으로 같은 시기 일본의 4.25t을 능가하였다. 이는 한국 농업사상 최초의 개가였다. 좌익들은 문재인 아버지처럼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공업화 정책에 집중, 농촌을 피폐하게 만들었다고 거짓말한다.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1960년대 말의 농촌은 절대적으로 낙후되어 있었고, 상대적 박탈감이 점점 커져가는 상황이었다>(천재교육 발간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379페이지).
  그런데 문재인 씨는 아버지가 공산당을 싫어했다고 주장한다.
  “제 아버지 이야기가 안보와 연결될지 모르나 하나만 덧붙이자면, 아버지는 공산주의 체제가 싫어서 피난을 내려왔습니다. 공무원을 하면서 노동당에 입당하라는 강요 때문에 굉장히 시달렸다고 합니다. 끝내 입당하지 않고 피난을 왔는데, 내려오고 난 이후 이북에서 공직생활하던 사람들을 공무원으로 특채하는 식의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그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북에 있을 때 공산당에 입당하라고 강요당했던 피해의식이 있어서 절대로 공직생활은 안하겠다고 마음먹으신 거죠. …어쨌든 제 아버지가 공산주의가 싫어서 피난 온 분이고, 또 저 자신이 대한민국에서 특전사로 군복무를 당당히 하고 병장으로 제대했던 사람입니다. 저 보고 사상을 얘기하며 시비를 걸면 안 되죠.” <대한민국이 묻는다>
   -그런데 대통령이 된 후 문재인은 김일성주의자 신영복을 사상가로 존경한다고 만천하에 공포했다. 그래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단정적으로 그를 김일성주의자라고 했고, 고영주 변호사도 대통령이 되기 전의 그를 공산주의자라고 했다. 그의 사상은 문제가 심각하고 대통령의 사상은 한 점 의심도 남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공개검증해야 하는데 자신의 사상에 시비를 걸지 말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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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씨는 북한에서 살다가 남한으로 넘어온 사람들에 대하여 흥미로운 관점을 갖고 있다.
  “흔히 이북 피난민들이 생활력이 강해 성공한 사람이 많다는 말을 많이 한다.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전쟁 전에 북한체제가 싫어 내려온 사람들은 대개 상류층이고 가산(家産)을 정리해 내려왔기 때문에 대체로 형편이 괜찮았다. 전쟁 통에 갑자기 피난 온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문재인의 운명>
  “피난민들이 갖고 있는 북한에 대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공산 체제를 싫어하는 것은 일반적인데 전쟁 전에 내려온 사람들은 북한 체제가 너무 싫어서, 탄압을 심하게 받거나 해서 내려온 사람들이어서 북한에 대한 증오심이 아주 강해요. 북한 출신이지만 북한을 도와주는 것에 대해 부정적 감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죠. ‘퍼주기다, 김일성 독재를 돕는 것이다’ 이렇게 극심하게 반대하는 거예요.
  
  반대로 전쟁 통에 내려온 사람들은, 물론 북한 체제가 싫어서 내려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서 남북회담을 하거나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면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앞에 매달려 눈물을 흘립니다. 이북5도민회라든지 공식적인 피난민 기구들은 과거에 대체로 전자(前者) 쪽 사람들 중심으로 되어 있어요. 피난민들이 다들 반북적(反北的)일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피난민들 전체 정서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숫자는 전쟁 통에 내려온 피난민들이 훨씬 많기도 해요.” <운명에서 희망으로>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반북적(反北的)이라면 그것은 북한동포나 북한지역에 대한 반감(反感)이 아니다. 북한정권에 대한 반감이다. 그런데 문재인씨는 이런 점을 무시하고 전쟁중 탈북자들 중엔 마치 북한정권에 호의적인 이들이 많다는 식의 오해를 부를 만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흥남철수민들을 포함한 많은 월남자들 중에는 우선 전란을 피해보자는 생각이었을 뿐 공산주의를 싫어해서 행동한 게 아니란 뜻이 된다. 그런 동기(動機)라고 해도 일단 한국에 와서 자유롭게 살면서는 미국과 한국체제에 고맙게 생각하게 될 것인데 문재인 아버지는 그러지 않았고 아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가치관으로 해서 한국에서 성공하지 못했고, 아들에게도 그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씨는 대통령이 되고나서는 그런 경향을 멈추고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자유민주 체제에 감사하면서 대한민국 편으로 돌아서야 했었는데 막강한 대통령 권력을 믿고 이를 反대한민국, 反美, 친북적으로 행사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그가 2018년 9월19일 평양에서 아들뻘 되는 김정은 앞에서 연설하면서 자신을 '남쪽 대통령'이라 격하시키고 김정은을 '국무위원장'이라 호칭, 부하입장에서 3대 독재자를 민족의 지도자인 것처럼 추켜세우는 연설을 한 것도 집안 내력이라고 봄이 타당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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