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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당 3 - 시탕구전에서 운하를 따라 옛거리를 구경하다!

작성자유두상|작성시간26.06.19|조회수28 목록 댓글 0

 

서당 여행3 - 수향 서당의 시탕구전에서 운하를 따라 걸으며 옛거리를 구경하다!

 

 

10월 29일 저우좡(周庄 주장 에서 택시를 타고 50분만에 시탕(西塘 서당)에 도착해 Ji 호텔 자싱 시탕에

체크인후 정문인 남문으로 들어가니 유객복무중심이 나오고 입장료 문표는 95위안

이나 60세 이상과 20세 미만은 절반인 47.5 위안이며 70세 이상과 초등학생(145cm 미만은 무료입니다.

 

 

시탕구전(西塘古镇 서당고진은 절강성(浙江省에 속하며고대 오월(吴越문화의 발상지 중의 하나

라고 하니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마을로 입장후 먼저 남쪽인 호수에 이르러 구경을 하고

나와 올라가니 옛 거리가 보이는데..... 운하가 흐르니 우린 다리를 건너서 왼쪽 길 탑만가로 들어갑니다.

 

 

시탕(西塘 중국 6대 수향마을 중 하나로 천년의 역사를 가진 오래된 수향 마을이니

망명에서 돌아온 오나라 대부 오자서가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오자당이라는

연못을 파고 인근 서산 북쪽 물을 끌어들여 만들었으니 고대에는 쉬탕이라 하였답니다.

 

 

상해에서 90km 떨어진 곳에 자리한 시탕(서당)은 수나라 때 대운하 건설시 운하 가 지나는 길목에

자리하여 번영을 누렸으며 원나라 때 진(으로 승격되었다고 합니다만 그후 개발을 거의

하지 않아 오히려 독특하고 이국적인 수로 마을 본연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마을 입니다.

 

 

여기 시탕(서당0 운하변에 줄지어 선  건물들은 지붕이 있으니 비를 맞지 않고

다닐수 있어 좋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른바 연우장랑 (烟雨長廊인가 합니다.

 

 

"연우장랑은 서당의 메인 로드로 수로를 따라 1km 에 조성된 상점 거리이니 찻집,

식당기념품점군것질 가게들이 몰려 있어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 합니다.

 

 

강남 수향 마을은 비가 많이 내리기로 유명한 데 비와 햇볕을 막기 위해 설치한 넓은

지붕인 랑붕(기와지붕이 가장 아름답게 설치된 곳도 바로 이 연우장랑

이니... 궂은 날씨엔 운치 있게맑은 날엔 그늘을 피하며 산책할 수 있는 명소입니다.

 

 

여기 길게 이어지는 연우장랑(烟雨長廊은 종이 파는 사람이 처음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래서 나온 구절이 "랑붕일야차풍우적선인가호운래" 라던가요?

 

 

운하를 구경하면서 연인들이 배를 타고 떠내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준식 성균관대

교수가 동아일보  이준식의 한시 한수’ 칼럼에 쓴  “ 영웅 회고”  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승패는 군대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법수모와 치욕을 견뎌야 진정한 대장부.

강동 젊은이 중에 인재가 넘쳤으니권토중래할는지는 그 누구도 몰랐으련만.

(勝敗兵家事不期包羞忍恥是男兒江東子弟多才俊捲土重來未可知.)

― 오강정에서 짓다 (제오강정·題烏江亭)’  두목 (杜牧· 803852)

 

 

시황(始皇의 통일 제국 진(이 스러진 후 한왕 유방(劉邦과 초왕 항우(項羽의 패권 다툼은 치열했다.

해하(垓下전투에서 궁지에 몰린 항우는 애첩 우희(虞姬와 작별한 후 유방의 포위를 뚫고 오강

(烏江)에 다다른다당초 8000여명의 강동 젊은이를 이끌고 전투를 치렀던 항우에게 남은 병사는 수백명뿐.

 

 

마침 오강의 관리가 배를 준비해 두고는 지금  강동으로 건너가서 후일을 도모하라고

권유한다 하지만 패배의 치욕을 견디지 못한 항우는 그 길로 적진으로

뛰어들어  생을 마감한다.  실패한 영웅의 장렬한 최후에 대해 역사는 포폄이 엇갈린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는 패왕(霸王)을 자처하며 초나라의 부흥을 도모했던 항우를 제왕의 치적

으로 기록한 반면,  두목은 불세출의 지도자가 허망하게 무너진 것이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강동 젊은이 중에는 인재가 넘쳤으니,  권토중래할는지는 그 누구도 몰랐으련만.

영웅의 자포자기를 못내 애석해하며 시인은 재기의 다짐을 뜻하는

권토중래 (흙먼지 일으키며 다시 쳐들어온다)’  라는 신조어  까지 만들어 썼다.

 

 

그로부터 약 200년 후 두목의 시를 읽은 왕안석의 생각은 달랐다. ‘수많은 전투에

지친 장수는 사기 떨어지고중원의 패배는 만회하기 어려웠지비록

강동 젊은이들  여태껏 남아 있다 해도,  기꺼이 군왕과 권토중래하려고  했을까.’

 

(‘다시 오강정에서 짓다’· ‘첩제오강정·疊題烏江亭’) 천하대세는 이미 기울었고 그간

독단적으로 행동해온 항우에게서 민심은 멀어졌으리란 게 왕안석의 판단이었다.

 

 

운하 왼쪽 길을 구경하고 다리를 건너 운하 오른쪽으로 오니 저쪽 보다 훨씬 더 붐비는데.... 95위안 짜리

입장권을 끊으면 여러 박물관 등을 모두 자유롭게 이용할수 있으며 동양의 베네치아 라고 불리웁니다.

 

 

운하에서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여행자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임용한 역사학자가 동아일보

임용한의 전쟁사’  라는 칼럼에 쓴  쿼드와 대만해협”  이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중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다가이드가 중국은 대만 침공 준비가 다 돼 있다고 말했다바닷가에 군대가

대기 중이며 주석님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이라는 분위기라는 것이다그 뒤로 30년이 지났다.

요즘  자주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겠냐는 질문을 받는다.  생각해보니  30년간  그런 질문을 받고 있다.

 

 

 

아니요그런 질문을 30년 동안 들었지만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라고 한다면 어리석은

답이다. 300년 동안 아무 일이 없었어도 내일 벌어질 수 있는 것이 전쟁이다.

 

 

게다가 지금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긴장도가 높다중국은 3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게 강해졌고,

국제적인 위상도 높아졌다미국과는 각을 세우며 대립하고 있고3세계에서

지지를 모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위안화가 이제 달러 패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한다반면 미국과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만 해도 버겁고경제 상태는 위태위태 하다.

 

 

30년 사이에 대만의 정치 경제도 격동을 겪었다군대와 국민들의 국방 의식은 많이 약해졌다지금 반성

하고  각오를 다지고 있다고 하지만전쟁 준비는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다만 중국의 확장과 해양

진출에  대한 우려는 몇년 전 부터 충분히 감지되고 있었다.   그래서 결성한, 아니 결성했다기

보다는 결성되어 가고 있는 전략이  미국일본호주,  인도가 참여하고 있는 집단 방위동맹인 쿼드다.

 

 

쿼드는 처음 탄생할 때 부터 한국에 양날의 검이고어려운 선택이었다미국은 가입을 요구하고,

중국은 눈을 부라린다이미 국론은 분열되어 있고미국과 중국의 사이에서 중립적인 입장

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진짜 문제는 이 상황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의 국력은 이미 새우 수준이 아니며대만 문제는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평화를 유지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갈등을 일으키지 않고화목한 상태를 유지하는

군자의  방법과 치열하게 견제하고 다투며 서로를 억제하는 호랑이와 늑대의 방법

이다군자의 방법이 최선이지만따지고 보면 가식일 뿐 인류 역사에 그런 순간이 있었나 싶다.

 

 

그리고 걸어서 너무나도 작은 골목길이 보여 들어가 보는데 여기가

"미션 임파서블"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더 유명해진 곳입니다.

 

 

미션 임파서블톰크루즈가  부인  줄리아를 찾기 위해 달린 장면인  석피농(石皮弄)

인가 했더니 표지판을 보니 여긴 즙가농 (汁家弄이고 석피농은 더 아래쪽 입니다.

 

 

여기서 어찌할까 잠시 망설이는데 우리 호텔은 저 아래쪽 방향에 있으니 여기서 위로 올라가 위쪽

운하를 먼저 보고 내려오면서 석피농(石皮弄을 구경하자고 결정하고는 위로 올라갑니다.

 

 

문득 국제신문 기사에  “‘싱가포르다움’ 을 위한 그들의 선택”  이란 글이 있으니 중국 남부 고광성과

복건성의 중국인들이 바다 건너 남쪽으로 이민을 가서 건설한 나라 싱가포르의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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