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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선한목자교회 | 2026-06-21주일예배 | 갈6:11-18 (오직 우리 주의 십자가) | 나경수 목사

작성자윤광일|작성시간26.06.20|조회수72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21일 성령강림절 후 넷째 주일예배

성경: 갈6:11-18(신309)

제목: 오직 우리 주의 십자가 (나경수 목사)

성도 여러분,
어떤 책(논문)이나 서신은 크게 서론과 본론과 결론으로 구분됩니다. 서론은 본론의 주제를 소개하며, 결론은 본론을 요약하여 다시 주제를 강조합니다. 바울도 인사를 하는 서론(1:1-5)에서 갈라디아서의 주제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소개합니다(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그는 본론에서 이 복음을 다른 복음과의 대조(1:7-2장), 믿음과 율법주의의 대조(3-4장), 육체와 성령의 대조(5:1-6:10)를 통하여 설명하였고, 갈라디아 교회의 문제에 적용하여 해결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 즉 서신의 결론 부분(6:11-18)을 통하여 ‘갈라디아서의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를 다시 확인하고자 합니다.

먼저, 바울은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11)의 말씀으로 이 결론을 강조하였습니다. 당시 관례에 따라 자신이 이 결론만을 큰 글자로 쓴 것을 말하면서 ‘너희는 보라’, 즉 우리의 주의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아주 주의하여 읽기를 원합니다.

1. 바울의 복음에 반하는 갈라디아 교회의 유대주의자들입니다(12-13).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왜냐하면)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먼저, 바울의 복음에 반하는 거짓 지도자들은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입니다(12a), 여기서 ‘육체’는 인간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와 세상의 기준에 의존하는 영역입니다. ‘육체의 모양을 내다’는 겉으로 좋은 인상을 주다, 즉 속은 다른데 남에게 잘 보여서 좋은 평판을 받으려 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그들은 ‘할례를 받았지만,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는 자들’입니다(13a). 그들은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강요하기 위해 율법을 제시할 뿐이지 정작 그들은 스스로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였습니다. 사실, 율법을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2:16, 롬3:20). 그런데도 그들은 육체의 모양을 내려고 한 것입니다(마23:4-5). “그들(서기관과 바리새인)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성도 여러분,
그들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육체의 모양을 내려고 하는 위선의 본성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이제, 그들이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강요하는 목적은 첫째로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박해를 면하려 함뿐”입니다(12b). 여기서 십자가가 유대주의의 율법적인 의를 부인하며, 특히 나무에 달려 죽은 그리스도가 율법에 따라 하나님의 저주받은 자로 생각하기에 유대인들은 그의 십자가를 전하는 자들을 박해한 것입니다.

둘째로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13b). 그들은 할례를 받은 많은 이방인의 개종을 그들의 성공으로 인정받기 위하여 할례를 강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많은 교인을 가진 대형교회를 목회의 성공으로 자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반면에 40여 년의 목회를 은퇴하신 ‘홍정길목사님’은 자신은 실패한 목회자로 고백하였습니다. 이는 미국 대형교회의 목회방법에 따라 많은 성도를 모으는 데 성공하였지만, 그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2. 그들의 자랑과 반대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14-17).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왜냐하면)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1) 바울(우리)의 자랑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입니다(14a).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여기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을 통하여 우리의 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는 그의 소유(종), 즉 ‘그와 우리의 연합’을 시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어떤 육체의 모양(우리 자신의 경건, 업적, 민족성, 율법 준수 등등)도 결코 우리에게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왜요? 그것들은 헛된 영광이며(5:26), 오직 그의 십자가만 모든 악의 뿌리를 근본적으로 제거하여 하나님의 창조된 복된 상태로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바른 이해(해석) 입니다(14b).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여기서 ‘세상(코스모스)’은 물질세계 자체가 아니라, 그의 복음과 성령에 반하는 육체의 모양을 자랑하는 가치 체계를 의미합니다(5:17). ‘못 박히고’는 현재 완료 수동태로서 과거에 십자가에 못 박힌 결과가 현재까지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14b)은 5:24의 반복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복음은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건들과 그들에 대한 해석입니다. 우리는 보통 그의 십자가를 우리의 죄 사함을 위한 희생제물(구속)로 해석합니다(롬3:25). 여기서는 더 나아가 성경(복음)적 세계관을 갖기 위하여 세상의 가치관에 대하여 우리의 죽음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에게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세상 안에 살며 유혹을 받습니다.

성도 여러분,
유혹받았던 우리 경험과 이것(14b) 중에 어느 것이 진리일까요?
3) 우리가 그의 십자가만을 자랑해야 할 이유입니다(15). “왜냐하면,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여기서 ‘지으심을 받는 것(피조물)’으로 번역된 ‘크티시스’는 ‘창조’와 ‘피조물’ 둘 다 가능한 번역입니다. 대부분 학자는 ‘새 창조’로 이해하는데, 우리도 동의합니다. ‘할례’와 ‘무할례’는 인간이 행하는 일이지만 ‘새 창조’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영역입니다.

그러면 성도 여러분,
중요한 하나님의 새 창조를 위하여 왜 그의 십자가만을 자랑해야 할까요? 언약의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창조(행위, 율법) 언약을 성취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근거하여 성령을 통하여 새 창조를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축복입니다.

4)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바울의 첫 번째 축복입니다(16).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여기서 ‘규례(카논)’는 기준, 규범, 원칙인데, ‘이 규례’는 14-15의 내용에서 나온 규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새 창조의 기초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만을 자랑하는 원칙이며, 하나님의 새 창조로 규정되는 새로운 삶의 원칙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아니라 이 규례를 행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언약 백성)’입니다. 이는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관계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새 창조함을 받은 자들만이 그의 이스라엘이기 때문입니다(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바울은 이 규례에 따라 행하는 자들, 즉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평강과 긍휼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새 언약대로 그들에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3. 바울의 마지막 부탁과 두 번째의 축복입니다(17-18).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왜냐하면)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1) 바울의 마지막 부탁입니다(17a).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바울의 괴로움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의 복음을 반한 거짓 교사들의 율법주의의 이단에 미혹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괴로움이었습니다.
2) 바울이 그 부탁을 한 이유입니다(17b). “왜냐하면,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여기서 ‘흔적(스티그마타)’은 종이 특정한 주인의 소유임을 나타내는 자국이나 소인을 의미합니다. ‘예수의 흔적’은 바울이 예수의 소유(종)이란 신분의 표시들입니다(5:13). 바울은 그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 즉 그의 복음을 통하여 그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흔적’은 ‘그의 복음의 증거들’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바울에게 예수의 흔적, 즉 복음의 증거들은 무엇일까요? 육체의 모양들이 아니라 주를 위하여 바울이 받은 고난과 박해와 궁핍(가난) 등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을 우리에게 예수의 흔적, 곧 복음의 증거들로 생각하나요?
3) 바울의 마지막 축복입니다(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여기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14)을 다시 긍정하며, ‘율법주의의 이단’(12-13)을 다시 부정합니다. 2:21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갈라디아서의 핵심임을 다시 확인하였고, 특히 그의 복음에 반하는 거짓 교사들의 ‘율법주의’와 대조를 통하여 그의 십자가는 우리 죄 사함을 위한 희생제물일 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한 우리의 죽음’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새 창조를 통하여 ‘성경(복음)적 세계관’을 갖게 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였습니다. 이것이 그의 복음을 통한 우리의 회개요, 회심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의 십자가로 구원받은 우리는 그 십자가에 따라 자기를 부인하고 이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사는 존재(목적)이며, 우리 육체로 사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믿음과 성령으로 살며, 헛된 영광인 육체의 일들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사랑)를 맺어가는 (성화와 영화)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다 우리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이루어지기에 이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갈라디아서의 핵심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날마다 세 번 이상 자신에게 선포(설교)하시면서 혹시 다른 복음, 특히 율법주의의 이단에 미혹되지 않았는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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