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절송(六節松)
아내와 함께 백자 산에 올랐다. 확연히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음이 느껴진다. 잎을 무성하게 달고 있던 나무들은 앙상한 몸피로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땅에 떨어진 낙엽은 발길에 부딪혀 자그락거리며 아픔을 호소한다. 한 해 자연의 끝자락 아픔이 새봄을 맞이하는 진통을 겪는가 보다.
중간 봉우리에 다다라 쉬면서 물 한 잔을 마시며 주위를 둘러본다. 아내가 저기 소나무를 가리키며 ‘육절송’이네 한다. 나는 매주 서너 번씩 산을 오르는데 왜 보지 못했을까 싶다. 정말 신기함에 한참을 보았다. 한 뿌리에서 솟아나 줄기가 여섯 개로 뻗어나 있으며 한 줄기에 수많은 가지를 거느리며 버티고 있다. 한 세월 동안 얼마나 힘들고 아팠을까.
주위를 둘러보니 소나무의 모습이 제각각이다. 외롭게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도 있고 한 나무의 둥치에서 나와 V자형 줄기로 키 재기를 하듯 하늘을 향한 것을 보니 어릴 때 탱자나무를 베어 새총을 만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다윗’이 돌팔매의 명수였듯이 나에게도 ‘삼손’처럼 힘이 있다면 저것으로 새총을 만들어 세상을 평정했을 텐데 하고 망상에 젖기도 한다.
육절송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 형제들이 생각난다. 부모님은 슬하에 육 남매를 두셨다. 나는 삼남삼녀의 다섯 번째이다. 자라오면서 형들에게 밀려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느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어느 자식 하나 소중하지 않았을까 싶어 죄송한 마음이 든다. 자식을 키워보니 부모님의 심정을 알 듯하다.
위로 형이 둘인데 아버지께서는 온갖 정성을 형들에게 쏟아 부었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못 배운 한을 형들에게 돌려주셨다. 아버지께서는 문전옥답 팔아가면서 형들을 일찍이 대구로 유학을 시켰다. 그러나 형들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아버지께서는 기대했던 대학에 형들이 실패하고 말았으니 속내는 많이도 아팠으리라.
그 당시 나는 초등학교 졸업반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나를 가업의 대를 잇게 하셨다.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농사일을 배워야 했다. 어린 나로서는 농사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때의 깨우침이 내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열심히 노력해서 아버지께서 기대했던 사범대학에 들어갔다. 한갓 높드리의 어레미논에 지나지 않았던 나였는데,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했으니 많이 기뻐했으리라 싶다.
또한 육절송은 우리가 사는 공동체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각자의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신앙 안에서 하나인 것처럼 육절송도 그러하리라. 제각기 하늘을 향해 뻗어 있지만 한 몸임을 인정하고 있으리라. 연리지(連理枝)는 부부처럼 다른 두 개체가 하나인 것처럼 붙어 있는 나무로 이들을 볼 때 애틋한 사랑을 느끼는 데 비해 육절송은 부모가 자식에게 나누어준 사랑을 먹고 자란 형제애처럼 느껴진다.
한참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갔다. 저만큼 가다 뒤돌아보니 육절송은 ‘흩어진 형제나 이웃을 모아 나처럼 함께 아우르며 평화롭게 지내라.’고 하는 속삭임이 가슴을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