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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을 금지하는 나라 페르시아의 후예인 이란

작성자주오시리|작성시간12.04.05|조회수168 목록 댓글 0

이란은 마라톤을 금지한다.


기원전 490년 마라톤의 유래가 된 마라톤 평원에서 벌어진 아테네와의 전투에서 페르시아가 패했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의 후예인 이란은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1974년 수도 테헤란에서 아시안 게임이 열렸을 때도 마라톤 종목은 아예 거론되지 않았다...

 

 

1936년 독일 베를린에서 올림픽이 열렸습니다.대회 마지막날인 8월 9일
엔 올림픽의 꽃인 마라톤 경기가 있었지요.올림픽의 피날레를 장식한
마라톤 우승자는 22살의 평안도 청년 손기정이었습니다.2시간 29분 19
초.당시 마의 벽으로 여겨지던 30분 벽을 깬 세계최고기록이었습니다.

하지만 경기후 시장대에서 울려퍼진 건 애국가가 아니었습니다.애국가
대신 일본국가가 연주됐고,태극기 대신 일장기가 게양됐습니다.그리고
그의 가슴엔 일장기가 붙어 있었습니다.손기정은 한국인이었지만 그의
금메달은 우리의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주권을 잃어버렸던 일제치하에
서 손기정의 금메달은 그렇게 강탈당했습니다.손기정의 금메달은 우리민
족의 영광이 아니라 슬픔이 됐습니다.

 

마라톤 경기의 공식 거리가 42.195 인이유는?

마라톤 거리와 코스

■ 왜 42.195㎞인가

BC 490년 침공한 페르시아 대군을 아테네군이 마라톤광야에서 대파했다. 승리를 알리기 위해 한 병사가 약 40㎞를 달려 간신히 아테네성문에 도착해 <우리 군대가 승리했다>고 외치고는 곧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1896년 아테네에서 근대올림픽 1회 대회가 열렸을 때 프랑스의 언어학자 M.J.A. 브레알이 사실이라기보다는 전설에 가까운 이 고사(故事)를 본떠 올림픽종목에 마라톤을 넣자고 주장하여 채택되었다. 그 당시의 거리는 마라톤광야에서 아테네까지로 39.909㎞였는데, 7회 대회에 이르기까지 40㎞ 전후로 일정치 않았다. 1921년 국제육상경기연맹은 거리의 통일을 검토하여 1908년 4회 런던대회에서의 코스인 윈저궁에서 런던시내 올림픽스타디움까지의 42.195㎞를 정식거리로 채택했다.


마라톤의 기원


기원전 B.C490 년.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제는 그리스의 도시국가인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사신을 보내 페르시아에 무조건 항복할 것을 권고하였다.
이같은 페르시아의 항복요구에 화가난 그리스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며 오히려 사신을 우물속에 넣고 매장시켜버렸다. 이에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제는 '다티스'장군과 조카인 '아르파페르네스'를 총사령관에 임명하고 원정군을 파병하여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정벌토록 했다. 이때 동원된 원정군의 병력규모는 전함 6백척을 비롯하여 보병 10만명 및 기갑 1만명, 실로 어마어마한 대규모 병력이었다. 페르시아 원정군은 그리스 본토 아티카주의 동쪽 해안에 상륙했다. 페르시아 대군의 침입소식을 전해들은 아테네는 다급해졌다. 당시의 아테네의 병력으로서는 이같은 엄청난 병력을 당해낼 재간이 없을 뿐 아니라 자칫하면 종족보존마저 위태로운 긴박한 상황이었다.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즉시 원군을 파병해 주도록 요청키로 하고 당시 올림피아 경기의 달리기 선수 였던 '필리피데스'를 사자로 스파르타에 보냈다. 그러나 막상 '필리피데스'가 가지고 온 회신은 아테네를 더욱 절망에 빠지게 했다. 종교적인 규칙에 따라 보름달 이전에는 출병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국가의 존페가 풍전등화 같은 절대절명의 위기를 맞은 아테네는 지략이 뛰어난 용장 '밀티아데스' 장군 지휘하에 불과 1만명의 기갑병으로 페르시아 원정군을 요격케 했다. 아테네는 동북방 42Km지점에서 양군을 대치했다. 그것이 마라톤 평원. 바로 여기서 역사적인 마라톤 전쟁의 개시가 된다.
열배의 우세한 병력을 보유한 페르시아군은 그러나 '밀티아데스' 장군의 교묘한 전술에 말려들어 협곡으로 유인돼 괴멸되고 만다.
이 기쁜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스파르타에 원병 요청 사신으로 갔던 '필리피데스'가 다시 사신으로 임명돼 마라톤 평원에서 약 42Km의 거리를 단숨에 달려간다. "우리 아테네군이 승리했다." 그는 수만 아테네 시민에 둘러싸인 가운데 이 한마디를 전하고 숨을 거둔다. 마라톤의 전설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와 같은 마라톤전쟁의 고사를 스포츠로 승화시켜 장거리 마라톤을 창설한 사람은 프랑스 솔몬느 대학의 '브레알' 교수였다.
그는 친구인 '쿠베르탱' 남작에게 부탁하여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근대 올림픽이 부활될 때 마라톤이라는 육상종목을 처음으로 선보이게 했던 것이다.
마라톤 레이스는 이처럼 제 1회 아테네 올림픽에서 스포츠 경기로 실시 되었고 그 후 지금까지 약 90년을 거치는 동안 전세계로 보급 되었다.
육상경기의 꽃으로 지칭되는 마라톤은 그 동안 배출해낸 무수한 마라토너들과 숱한 에피소드로 인해 육상에서도 독특한 장르를 이루고 말았다.
그러나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마라톤을 금기로 여기고 있는 국가가 있다. 그 국가가 바로 이란이다. 이란은 마라톤의 근원이 되는 마라톤 전쟁에서 패배했던 페르시아의 후예이기 때문에 당연히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1974년 테헤란에서 아시안게임이 열렸을 때도 마라톤 종목은 거두절미하고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았었다.
오늘날 마라톤 풀 코스가 42.195Km라는 어정쩡한 거리가 된 것은 제 4회 런던 올림픽때 부터이다. 당초 런던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당초 마라톤 출발 지점으로 메인스타디움으로 하는 42Km의 코스를 선정했으나 윈저궁을 스타트 라인으로 변경함에 부득이 42.195Km라는 거리를 택하게 된 것이다. 이후부터 마라톤의 정규코스는 42.195Km로 공식화 됐다.

http://www.marathon.pe.kr/pds/define.html

 

1908년 제4회 런던 올림픽에서는 윈저궁에서 화이트시티 스타디움까지41.8km의 코스였는데. 에드 위드 7세의 로얄박스 앞에서 골인하도록 하기위해352m를 더늘렸다.이회에 원래 화이트시티스타 디움에서 출발하는 40km의코스가 있었으나 에드워드 7세가
알렉산드라 여왕과 출발 모습을 보고 싶다고 요청해56명의선수들이 윈저궁까지 가야하는 상황이 벌어져 원래 코스 보다2.195km를 더뛰게댔는데,지금의 코스길이와거의 비슷
하거나 같은 거리가 된 최초의 대회가 된사연이다.물혼 바로 런던올림픽의
코스 길이가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아니다.이전 여러 올림픽 및 마라톤대회에서
들쑥날쑥 했던 코스길이는 이후에도 몇 차례의 올림픽 경기에서 변화를 보이다가
1924년에 국제육상연맹(LAAF)위원장 아브라함이 26마일(42km)를 결정했는데 그보다
385야드(195m)길어져서 지금의 거리가 되었다는 설이있다. 여하튼 갈피를 못잡던
정규 코스42.195km가 정착되기까지28년의시간이 걸린셈이다. 현재의마라톤코스는
마라톤 벌판에서 아테네까지의 거리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1896년 제1회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40km(국제육상연맹 공식 측정거리39.994km)

1900년 제2회 프랑스 파리 올림픽:40.260km

1904년 제3회 미국 세인트루이스 올림픽:39.909km

1906년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 중간대회:42.842km

1908년 제4회 영국 런던 올림픽:42.195km

1912년 제5회 스웨덴 스톡홀롬 올림픽:40.200km

1920년 제7회 벨기에 앤트위프 올림픽:40.244km

1924년 제8회 프랑스 파리 올림픽:42.195km


마라톤의 기원

마라톤(Marathon)은 그리스 북쪽 해안에 자리잡은 평원이다 기원전490년경,이곳에서
아테네는 페르시와 대전중이었다.아테네의 장군들은 헤메로드로모이(hemerodromoi :
하루 종일 달리는 사람들)라는 그리스 전령 집단 중에 스파르타로 소식을 전할 군사한명을 뽑고자 했다.이들 집단은 경주엔 절대로 참가하지않는 전문 장거리 주자들로써 나라 전역에 빠르게 소식을 전하는 임무를 맡았다. 때로는 말보다 빠르게 마라톤 거리 이상을,그것도 험악한 그리스 지역을 달릴수 있는 지구력을 받아왓다,물론응답자의감정과 얼굴 표정을 살피는 것도 그들이 할일이였다.스파르타로 소식을 전할 전령으로
'피디피데스'(Phidippides:이름이 다르게 전해지기도한다)가 선정되어던 듯하다
그는 임무를 수행하느라 1주일이 채안되는 동안 400km가 넘는 거리를 달렸다.스파르타의원군을 얻지 못한 아테네군은 마라톤에 자리잡은 페르시아군을 독특한 전략으로 공격하여 승리를 얻어냈다. 이후피디피데스는 승리의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보내졌다.패배를 눈앞에 둔아테네 시민들이 도시를 불태우고 철수할 준비를 마친 뒤였기 때문에 그는 먼거리를 가능한
빨리달려야만 했다 약40.2km의거리를 전속력으로 달렸던 피디피데스는 그동안의피로까지 겹쳐 갑자기 쓰러졌다. 그와중에도"우리군대가이겼다"라는 의미인'네니케카멘'
(NEnikhkamen)혹은나이키(Nice)라는 유명한 승리의 말을 남겻다.그리하여 아테네 사람들은 승리의 기쁨을 얻었지만,지친(혹은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르는)전령은 죽어야한 했다.이것이 마라톤의 선례가 되는 일화이다

 

고대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때 어떤병사가 그리스가 이겼다고 그리스까지 42.195km를 달려와서그리스가 이겼다고 그말만하고 숨을거뒀다.그래서그병사의뜻을기리기위해마라톤을만들고거리를42.195km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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