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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우리는 교회에서 「경배와 찬양」이라는 말을 흔히 듣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경배와 찬양이라는 예배에 대하여 묻는다면 '젊은 청년들이 드리는 예배'라 말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배와 찬양을 이렇게 이해하게된 것은 이 예배가 젊은 층을 중심 시작되었으며 지금도 드려지고 있기때문일 것이다.
경배와 찬양에서 경배란 신약성경에 자주 나오는 단어인 '프로스쿠네오'(proskuneo)라는 말로 '이는 충성이나 존경을 나타내기 위하여 입을 맞추는 행위'를 의미한다. 요한복음(11:2, 12:1-8)에 나오는 예수님을 만나서 지난날을 회개하고 그 발 앞에 엎드려 눈물과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은 후 입을 맞춘 여인의 행위가 바로 이 프로스쿠네오를 잘 설명해준다. 히브리어로는 '샤'(shachah)인데 이 단어의 뜻은 부복하다. 경배하다, 엎드리다, 겸손히 탄원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굴복하고 입을 맞추지 않는 자에게는 진노하심이 항상 그 머리 위에 있게 된다(시 2;12). 이러한 행위의 상징성 때문에 경배를 몸의 행동과 연관시키지 않고서는 그 의미를 정확하고도 깊이 인식할 수 없다. 나를 낮추고 하나님을 지극히 높이는 경배의 의미 속에서 찬양의 영적인 의미를 깨닫게 된다. 찬양도 역시 경배와 마찬가지로 나를 낮추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는 행위이다. 여기서 찬양과 경배의 동질성을 찾을 수 있다.1)
찬양은 창조주와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노래를 말한다.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창조되었다. 또한 전통적 찬송가는 시편가에 한정되었다. <시편> 기자는 찬양이 인간의 숨을 쉬는 것처럼 인간에게 필요 불가결한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경배와 찬양을 쉬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시 34;1)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찬양과 나를 낮추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꿇어 엎드리는 겸손의 행위는 결코 떨어져서는 안 된다. 찬양은 동적인 요소를 갖는다. 찬양은 경축적이며 열성적이고, 넘치는 기쁨을 발산하는 요소가 들어 있다. 또한 찬양의 방법에는 노래하는 것(시 27:6), 손을 들고 손뼉을 치는 것(시 63:4, 47:1), 일어나는 것(시 134:1), 춤을 추는 것(삼하 6:14-16), 기뻐 뛰는 것(행 3:8), 허리를 굽히는 것(시 95:6) 등과 같이 동적인 행동이 따르는 행위를 동반한다. 이런 동적 요소를 잘못 해석하거나 행위에 초점이 맞춰지게되면 자기가 드러나기 쉽다. 그러므로 경배와 찬양을 하나로 묶어 조화시킬 때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있다.
찬양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재물의 드림보다도 찬양을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을 늘 우리는 찬양해야 한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시편 69:30-31).
하나님은 경배의 모습과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찬양에 기뻐하신다. 아모스 선지자의 경고와 같이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암 6:5)라고 했던 것처럼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찬양은 차라리 노래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경배와 찬양의 예배는 영과 마음과 뜻이 담겨있으며 가식적으로 인간의 감정을 노래하는 찬양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참고 인용 문헌
1) 노주하, 『음악과 신학』,(서울 : 요단출판사, 1997), 432쪽.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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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 |
도 서 명 |
출 판 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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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씀 |
톰슨 Ⅱ 주석 성경 |
기독지혜사, 19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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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구 |
성가대원 핸드북 |
생명의 말씀사, 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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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수 |
교회와 음악 그리고 목회 |
요단출판사, 1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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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주하 |
음악과 신학 |
요단출판사, 1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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