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를 산으로 돌려보내라
<호랑이라는 명칭>
호랑이라는 말은 중국식 표현이고 우리 고유의 명칭은 범이다. 범이라고 하는 말도 실은 호랑이와 표범 모두를 지칭하는 말이며 조선 후기로 가면서 점차 호랑이라는 말이 범을 대신하게 된다. 범을 현재의 국어사전을 보면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범虎=호랑이과의 총칭,
칡범(葛虎 갈호=줄무늬 호랑이),
표범(豹虎 표호=얼룩무늬 호랑이).
조선초기의 자료인『훈민정음』이나『용비어천가』고려시대 우리말을 살필 수 있는 『계림유사』에 나오는 ‘虎’를 ‘범’이라고 기록된 것을 보면 우리말에서 적어도 고려 중엽이전부터 ‘범’과 ‘호랑이’를 혼동하여 써 온 것 같다. 또 ‘범’은 곧 ‘호랑이’라고 풀이한 사전도 있고, ‘호랑이’는 범을 무섭게 일컫는 말이라고 풀이한 사전도 있다. 범의(虎) 종주국에서 범이라는 순수 우리 말을 놔두고 호랑이란 단어를 쓰는 것은 맞지 않으나 외래어가 이젠 토착화하여 우리말이 되었다.
※참고: 조선범(虎)의 그 흔적을 찾아서
<우리 민족의 호랑이>
호랑이는 알다시피 고양이 과에 속하는 흉포하고 잔악한 육식 맹수다. 옛말에 “사람은 호랑이를 해칠 뜻이 없지만 호랑이는 사람을 해칠 마음이 있다.”라는 말이 있었지만 이제 한반도에서 사람 때문에 호랑이가 사라진지 오래다. 호랑이에 대한 인류의 편견은 전체 동물계에 대한 편견 가운데 하나의 예이지만 어떤 의미에서 여러 편견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동물 자체에 대한 선악미추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으면서 우리의 상상만으로 그들을 단정하고 평가한다. 나비는 예쁘고 공작새는 아름다우며, 원숭이는 총명하고 여우는 교활하고 전갈은 독해야하며, 호랑이와 늑대는 흉포하고 잔악해야 하며 돼지와 당나귀는 바보 같고 멍청해야 하며, 소와 말은 부지런하고 근면해야 하며, 심지어 고양이와 개는 간사하고 충직해야 한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세뇌를 받아왔으며 이러한 틀에서 일찍부터 스스로 만족해 왔다.
그런 편견 속에서도 호랑이는 우리에게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신물, 그리고 민화에서는 다정한 친구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산학지역이 발달한 우리나라는 사자가 없었기 때문에 호랑이 홀로 ‘땅위의 제왕’이라 불리어 왔다. 특히 우리민족에게 범의 존재는 단순한 맹수가 아니라 영험하고 신성한 동물로서 경외의 대상이었다. 지금도 사찰에 들러보면 산신각이 있고, 그 산신각 탱화에는 흰 수염을 늘어뜨린 노인이 구름 위에 앉아 계신다. 그분이 우리 민족 민간 신앙의 한 대상인 범이다. 그뿐 아니다. 조상이 돌아가시어 산에서 장례를 치를 때 또는 묘제를 모실 때 반드시 제일 먼저 산신에게 제사를 올린다.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정서 속에 범은 두려우면서도 친밀감을 지닌 동물이었다.
<일제의 호랑이 사냥>
예로부터 일본은 호랑이 서식에 절대 필요한 은신할만한 밀림이나 가파른 암석 능선이나 동굴 계곡 등이 없기 때문에 범이 살지 못했다. 범(호랑이)이 한 마리도 살지 않았던 일본. 다른 나라 민족이 정신적인 국민 동물로 사랑하는 호랑이. 일제는 호랑이와 표범을 한반도와 대륙을 대표하는 대형동물로 여겨 이를 포획하는 것에 한반도와 대륙을 정복하고 굴복시킨다는 상징성을 부여하였다.
일제 강점기 이후 신식화기로 무장한 일본의 경찰과 헌병들이 호랑이나 표범이 나타났다는 제보가 있으면 조직적으로 인원을 동원하여 이를 포획 하였다. 당시 일제의 고위 관리들은 호랑이나 표범 모피를 탐내 어떻게든 구하려고 하였고 일본으로 돌아갈 때 마치 전리품처럼 가져가 자랑하였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일제 강점기 해수구제 명목의 남획이 한국 범의 감소에 가장 치명적인 작용을 하여 자연적으로 회복되기 힘든 수준까지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호랑이>
지금의 동물원에 있는 우리 호랑이는 어떤가? 근친교배로 인한 퇴화, 늘어지게 잠만 자고 온순하게 만들어 ‘호랑이를 기르려다 고양이를 기르는 꼴’이 되어 결국 호랑이는 천성을 잃게 되었다.
심지어는 이런 황당한 말까지 있다. 어떤 동물원에 영화를 찍기 위해 호랑이에게 사슴을 놔주자 사슴이 호랑이 앞에서 벌벌 떨더란다. 하지만 더 황당하고 웃긴 것은 호랑이 역시 사슴을 보고 안절부절못하고 똑같이 벌벌 떨더라는 것이다.
이것은 호랑이에게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동물원은 동물들의 감옥이기 때문에 그들의 본성, 천성은 없어진지 오래다. 그렇게 생존시켜 봤자. 우리는 껍데기뿐인 동물을 볼 뿐이다. 그렇기에 호랑이(동물)를 산(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호랑이 장가간다>
우리는 흔히 비 오다 그치고 햇살이 나면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고 표현하는데 전문 기상용어로 「천루」(天漏)라고 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범은 한반도 야생 생태계의 최상 위 포식자로서 우리 민족에게는 호환이라는 공포의 대명사이자 때로는 재미있는 이야기 소재로 우리의 삶과 정서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동물이다. 또한 지배계층에서는 범 가죽을 권위의 상징으로 여겨 집안의 장식으로 쓰이기도 했다.
‘범(호랑이) 장가가는 날’ 음력 11월에 들어있는 24절기 중의 하나인 동지(冬至)를 달리 부르는 이 말은 범의 생태적 특성과 관련되어 유래되었다. 민간에서 범은 열이 많은 동물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날씨가 춥고 밤이 긴 동짓날에 암수가 교미를 할 것이라고 여겨 이날을 ‘범(호랑이)장가가는 날’이라 하였다. 한편 이날은 부부간의 관계도 금기시한다. 그 이유는 범이 동짓날 교미를 하여 평생 한, 두 마리의 새끼만 낳기 때문에 사람도 방사를 하면 자식이 적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호랑이의 지혜>
호랑이는 토끼를 사냥할 때, 자신의 모든 능력을 다해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호랑이는 사냥할 때만큼은 절대로 토끼를 하찮게 보거나 가볍게 생각하는 법이 없다고 한다.
개에게 돌을 던지면 개는 돌을 향해 달려간다.
사자는 돌은 쳐다보지도 않고 돌을 던진 사람에게 달려든다.
하지만 호랑이는 그냥 가던 길을 간다.
<호랑이의 무늬>
히말라야 고원 라다크 사람들의 속담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호랑이의 무늬는 밖에 있고, 사람의 무늬는 안에 있다.”
사람마다 고유의 무늬가 있다는 말이다. 섬세하고 아리따운 무늬가 있는가 하면, 선 굵고 터프한 무늬도 있다.
‘귀하는 어떤 무늬를 가지고 있나요?’
※본 게시판의 글은 현재 <하늘을 향해 쏴라>라는 책으로 출판중이며 저작권은 경호무술창시자 이재영총재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