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지면 같이 깨어지고/김시헌(金時憲)
그 날 나는 고갯길을 오르고 있었다. 반쯤 올라갔을 때 숨이
너무 가빴다. 멈추어 서서 숨고르기를 하고 옆으로 눈을 보냈더니 큼직한 기와집 툇마루 벽에 "사무사(思無邪)"라는 현판이 보였다. "삿된 것은 생각하지 말라"고 멋대로 풀이해 보면서 '그래 맞아!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고 무엇을 깨닫는 기분이 되었다.
인생은 무엇인가? 왜 살아야 하나? 마침내는 끝이 나는 것인데? 따위의 생각들이었다. 끝도 없이 반복되는 헛된 생각이었다. 안 하겠다고 다짐을 해도 사흘을 넘기기 어려웠다. 30대를 막 들어서던 연령이었다. 그 후 40년이 지나간 지금도
그 날 보았던 '사무사(思無邪)'의 글자 획이 눈 안에 남아 있다.
A읍에서 대구시로 이사를 했다. 넓고 새로운 땅으로 옮겨간
충격으로 얼마동안 새 기분으로 살았다. 사람도 새롭고 길도
새롭고 하늘도 새로웠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나에게는 권태가 찾아왔다.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너무 무의미했다.
어느 날, 아랫배가 아팠다. 신약을 사 먹어도 낫지 않았다.
집에서 나가는 골목길 끝에 한약방이 있었다. "무위당 약방(無爲堂藥房)"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노자나 장자가 하는 말 같았다. 그 집 방문을 두들겼다. 칠십이 넘어 보이는
백발의 노인이 40대의 장년과 마주 앉아 있었다. 노인 쪽이
한의사로 보였다.
내가 정중하게 허리까지 굽혀 인사를 하니까 노인은 코가 땅에 닿도록 답례를 했다.
"까짓 것 교수면 제일이냐, 하늘에도 교수가 있나? 나무에도
교수가 있나?" 하면서 꾸짖는 투의 말을 장년에게 마구 퍼부었다. 가까운 친척으로 보였다. 장년은 아무 말도 못하고 듣기만 하더니 약봉지를 들고 슬그머니 일어섰다.
교육을 단단히 치르고 가는 광경이었다.
나의 차례가 되었다. 찾아간 이유를 대니까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 합니다. 세상을 구름처럼 살아야 합니다. 가면 가고
오면 오고 깨어지면 같이 깨어지고..." 하는 것이었다. 의사가 아니고 도인처럼 보였다. 누구에게나 비슷한 설교를 하는
것 같았다. 약을 짓는 동안 나는 그래서 '무위당'이로구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약봉지를 받아 일어서려는데 "마음에서 병이 오고 마음으로
병을 고칩니다."고 또 한마디하는 것이었다. 머리를 깊게 숙이고 약방을 나왔다.
그 날 이후 때때로 "깨어지면 같이 깨어지고..." 하던 말이 가슴을 돌아다닌다.
세월이 가서 내가 칠십대가 되었다. 칠십대 하면 흰 수염을
늘인 신농씨 같은 풍채를 생각했는데 나는 그와 너무도 거리가 멀다. 구름처럼 살지도 못했고, 구름처럼 세월만 보냈다.
노인이 되면 모두 놓아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돌아보면 이미
놓여진 것이 많다. 직업도 놓았고, 돈도 놓았고, 교제도 놓았고, 여자도 놓았고, 공부도 놓았고, 명예도 놓았다. 놓지 않으려 해도 손가락 사이로 물이 빠지듯이 새어 나갔다. 허전하기보다 시원할 때가 더 많다. 아직 남은 것이 있다면 육체뿐이다. 그것이 놓여지면 완전 해방이다.
그런데도 30대 때 생각했던 문제들이 홍역 뒤의 흔적처럼 고개를 드는 때가 있다. 진드기 같은 집요이다.
어느 날 책에서 읽었던 철학가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구두를
맞출 때, 발 크기보다 구두 크기를 항상 작게 주문했다. 구두장이는 궁금했다. 물었더니 그냥 그대로 해 달라고만 했다.
몇 번을 거듭 물었더니 대답을 했다.
작은 구두를 신고 다니면 발이 끼어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고, 다니다가 신을 벗으면 그럴 수 없이 편하다는 것이다.
철학가도 때로는 쓸데없는 생각으로 골치를 앓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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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 설
수필가(1925∼). 경북 안동 출생. 호는 무원(無圓). 중·고교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음. 1965년 《現代文學》지에 <私談>을 발표하면서 등단. 수필집으로는 《멋을 아는 사람》,
《두만강 푸른 물에》, 《오후의 思索》, 《해질 무렵》, 《생각하는 사람》 등이 있고, 평론집으로는 《수필을 말한다》가 있음.
이 글은 철학적인 수필로서, 끝없는 사유(思惟)가 때로는 무위(無爲)보다 못함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그
사유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솔직하게 그리고 있는데, '무위'의 사상을 설파하고 있는 한의사 역시 매우 사유적이고 철학적이어서 이 글의 품격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